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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억의 사나이 토레스의 이야기 (4편) (다음편은 움짤..)

1. 플레이스타일 (라인브레이킹의 달인) 개인기나 드리블이 특출나게 뛰어난 편은 아니고 볼터치도 상당히 투박하다. 단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는 것이나 위치를 잡는 능력이 뛰어나고 골결정력도 빼어나다. 키가 큰편이고 센터포워드다 보니 윙어들처럼 스피드가 부각되는 선수는 아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빠른 편인데 리버풀 시절 2000년대 후반을 기준으로 EPL에서 가장 빠른 선수 TOP10에 들어갔었다. 특히 순간속도와 민첩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정도였다. 볼터치도 투박하다지만 빡빡한 압박 사이에서도 칼같이 트래핑하는 스페인 국가대표 동료들에 비해서나 그렇지 압박 강도가 적당하다면 볼터치도 쓸 만하다. 이 모든 장점이 결합되어서, 라인을 올리고 뒷공간을 넓힌 팀 상대로 뒷공간을 따먹고 골을 넣는 능력은 00년대 후반 세계 최고였었다. 2. 국가대표 (국대 커리어만 따지고 본다면 레전드 오브 레전드) 토레스는 어릴때부터 남다른 플레이와 훌룡한 플레이로 스페인 16세 이하에 발탁되었는데 2001년 2월, 토레스는 스페인 16세 이하 팀 선수로 참가하여 알가레브 토너먼트의 우승을 차지하였다. 16세 이하 팀은 5월에 열린 2001년 UEFA U-16 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역시 우승하였다. 2001년 11월에는 2001년 FIFA U-17 월드컵에 참가하였지만 조별리그를 통과하진 못하였다. 2002년 7월에는 2002년 UEFA U-19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 토레스는 최다 득점자가 되는 등 어릴때 또한 다양한 우승컵을 들어올리게한 장본인이다. 그렇게 토레스는 유소년때부터 꾸준하게 우승을 차지를 해왔었고, 성인팀에 와서도 많은 우승트로피를 만들었다. 2008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 우승 2012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으로 메이저대회 3번이나 연속 우승을스페인에게 만들어주었다. (유로 2012에선 득점왕도 차지) 3. 토레스와 관련된 이야기들 (마지막 개지림..)

850억의 사나이 토레스의 이야기 (3)

그렇게 토레스는 첼시에서 최악의 선수가되면서 결국 밀란으로 이적을간다. 가디언을 비롯한 언론에 따르면 임대이적은 한푼의 위약금도 주지 않기 위해서 한 결정이며, 주급 보조 또한 0%로 밀란이 모두 부담한다고 한다. 그리고 첼시는 곧바로 로익 레미 영입에 착수했다이건 첼시가 벼르고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사상 최악의 먹튀에게 위약금 따위 한푼도 주지 않겠다는 첼시 보드진의 의지가 보인다. 토레스는 첼시와 2016년 6월까지 계약했으므로 사실상 밀란으로 이적한 셈이 된다. 그리고 그의 이적이 확정되자마자 수많은 첼시 팬들이 이제는 우리 선수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어 토레스를 나노 단위로 까대기 시작했다. 그런 토레스는 밀란에서 임대를통해 1년을보내었고, 완전 이적이성사되면서 밀란으로 이적을가지만 토레스는 또 다시 이적을간다. 2015년 1월 5일부터 AC 밀란으로 완전 이적하게 되며 곧바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1년 6개월간 임대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이에 토레스는 기자회견에서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꿈을 이루게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라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먼저 토레스는 19번으로 다시 시작을하게 되었고 다음시즌인 15-16 시즌때부터는 9번으로 뛰게되었다. 돌아온 토레스 다시 한 번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한 15-16시즌 토레스의 아틀레티코 복귀 2번째시즌이 시작되었는데, 초반엔 그다지 활약을 하진못하였고 15년 11월 26일 챔피언스리그 갈라타사라이 전에서 매우 좋은 움직임과 연계능력을 보여주었다. 그 후 또 다시 좋은경기력을 보여주게 되었고, 이적설도 나게 되었다. 바로 K리그의 전북현대 모터스의 감독인 최강희감독이 네임벨류급 빅스타 공격수 영입을 프런트를 요청하게되며 접촉을 했다고 한다. 16년 1월 22일 토레스의 에이전트는 토레스가 세계 최고의 연봉을 내세운 오퍼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 후 2월 7일 에이바르와의 경기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의 리그 100호골을 달성하게되고, 경기가 끝나자 토레스를 키워준 아틀레티코 유스팀 단장인 마누엘 브리아니스에게 100번째 골을 넣은 경기 유니폼을 건내주었다. 현재 토레스가 아틀레티코에서 100번째 골을 넣은 유니폼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박물관에 토레스의 마누엘 브리아니스에 단장에게의 친필의 글이 적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첼시때 850억을 날려먹은 슛팅을 보여드림..

850억의 사나이 토레스의 이야기 (2)

토레스는 첼시 이적 후 리버풀에서 보여주던 폼은 전부 잃었다. 그러나 첼시 이적 후 커리어는 정점을 찍어버린다. 유럽선수로 경험할 수 있는 메이저 대회는 리그와 슈퍼컵을 빼면 모두 우승컵을 들었다. 슈퍼컵은 논외로 치고 리그만 우승하면 커리어만큼은 정말 대박이 나는 것이다. 자 그럼 첼시시절을 더 자세히 알아보자 이적 5일 후, 첼시 vs 리버풀전, 경기시작과 함께 이전 동료인 막시 로드리게스로부터 자연스럽게 패스를 이어받아 결정적인 득점상황을 맞았으나 무위, 잠시후 새 동료 디디에 드록바로부터 뒷공간 패스를 받아 슈팅에 이르렀으나 이전 동료인제이미 캐러거의 육탄방어에 무위. 또 다른 이전 동료인 다니엘 아게르는 토레스를 1:1로 마킹하던 순간에 팔꿈치로 토레스의 얼굴을 교묘하게 까버린 것이 포착되었는데, 이게 고의였냐 아니였냐에 대해서는 어느 쪽으로 부터도 정확히 언급된 바가 없지만 팬들은 고의였다는 데에 암묵적으로 동의중이다. 동시에 이 장면을 포착한 사진은 리버풀 팬들의 10대 명짤이 되기도. 그렇게 토레스는 첼시시절을 위 와 같이 보내게된다. 토레스가 그렇게 못했었나? 음.. 수많은 찬스들을 모두 날려버리는 슈팅들을했었지만 위치선정과 돌파력은 최고였다. 근데 왜 그렇게 욕을먹었나? 살펴보자 1. 활약상 부족 패스를 잘 주는 미드필더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골수가 저것밖에 안되는 것은 확실하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많다. 경기력에 대한 말도 말이 많은데, 지난 시즌의 패턴의 반복 아니냐는 과격한 반응이 많다. 즉 움직임은 좋은데 골은 못넣었다. 2. 나이 및 부상으로 인한 혹사에 따른 몸상태 저하

850억의 사나이 토레스의 이야기 (1)

먼저 페르난도 토레스는 자신의 고향인 마드리드에서 축구를하면서 컸다. 토레스는 어릴때부터 재능이 남달랐다. 7살에 어울리지않은 현란한 드리블과 돌파력으로 인해 토레스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소년팀으로 바로 입단하게 되었다. 그렇게 유소년팀에서 좋은모습을 보여주면서 2001년 무려 당시 17살에 1군 경기를 뛰게되었고 2001년부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일원이되었다. 당시 2부리그에 속해있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1군으로 올린 장본인이라고도 한다. 그렇게 좋은모습을보이며 2007년까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뛰게되는데 당시 유럽 강팀인 맨유, 첼시, 리버풀, 뉴캐슬 등 많은팀이 관심을 보였지만 결국 리버풀이 2000만 파운드(한화 276억)으로 데려가게된다. 그렇게 많은 관심을 받은채 리버풀로 이적을 결정한 토레스는 첫시즌부터 남달랐다. 데뷔 첫 시즌부터 대활약을 보이면서 리그에서만 24골로 EPL 외국인선수 데뷔시즌 최다골을 경신했고, 1995-96 시즌의 로비 파울러 이후 리버풀에서 한 시즌에 20골 이상 넣은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빠른 주력을 앞세워 비어있는 뒷공간을 침투하는 플레이에 아주 능했다. 햄스트링 부상을 자주 당하며 은근 유리몸 기질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리버풀에서 토레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했다. 그리고 사비 알론소가 팔려나간 후 리버풀 FC는 상당히 기울었던 상태였지만 정말 안습한 활약을 하였다. 그렇지만 리버풀은 더 불안하였다. 너무 잘해서 다른팀이 노리고있기때문.. 다른 팀들, 특히 첼시 FC에서 정말 매의 눈으로 노려보았다. 이전부터 토레스를 틈틈히 노려온데다가 첼시가 정말 토레스에게 많이 데였기에 안첼로티 감독로만도 토레스에 대한 관심을 표하였었다. 물론 첼시만이아니라 다른 빅클럽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에 리버풀은 머리가 아플 뿐 이였다. 그렇게 2011년 1월 30일, 케니 달글리시 (당시리버풀감독)는 토레스의 이적에 동의했다는 기사가 떴으며, 곧이어 리버풀도 이적에 동의했다. 요구 이적료는 5000만 파운드 (당시 한화 약 850억) 혹은 4000만 파운드 (당시 한화 약 730억) +니콜라 아넬카. 이제 남은 것은 로만(첼시 구단주)의 선택이다. 그때 당시 토레스의 이적 때문에 잉글랜드 이적 시장은 하루만에 말 그대로 혼돈의 카오스에 빠져들었다.

로번의 마지막 아야기 (3)

2009년 레알이 엄청난 공을 들여 영입한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은 갈락티코 시즌2의 시작과 함께 중앙에는 카카, 오른쪽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왼쪽은 로번으로 두는 4-2-3-1 전술을 구상했다. 허나 로번은 국대 동료들인 훈텔라르, 반 니스텔로이, 반 더 바르트, 스네이더 등이 카카가 들어오자마자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쓸려나갈 기미를 보였고, 그 꼴을 참지 못해 자신의 에이전트이자 아버지인 한스 로번에게 이적할 구단을 물색하라고 요청. 레알의 신임감독 페예그리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09-10 시즌이 개막했지만 이적시장이 닫히기 전에 분데스리가의 명문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먼저 당시 뮌헨은 기복이 심한 중앙 수비, 리베리의 폼 하락, 마리오 고메즈의 부진등 여러 악재가 있었지만 바이에른 뮌헨에는 로번이 있었다. 특히 챔스에서 맨유와 피오렌티나를 격침시키는데 그의 왼발이 공이 아주 컸다. 오죽하면 자기 힘으로 팀을 억지로 끌고 올라갔다고 할까. 물론 이 표현은 챔스 한정일 분 시즌 내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경기 출장수의 문제로부턴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유리몸.. 물론 챔스 시즌 때 신기하게 부상에서 벗어나긴 했고, 확실히 클로제와 루카 토니가 부진하긴 했고, 중앙 수비도 안 좋긴 했지만 부상에 시달리던 리베리도 어쨌든 보통 분데스 1류 윙어 정도는 뛰었고, 땜빵으로 알틴톱과 뮐러가 좋은 활약을 보여줬으며 특히 토마스 뮐러는 포텐이 빵 터지면서 뮌헨의 공격이 살아났었다. (현재는 말이필요없는 최고 명성의 팀인 바이에른 뮌헨은 라이벌인 도르트문트의 핵심선수인 훔멜스를 영입하는등 엄청난 스쿼드를 과시하고있다.) 마지막은 로번과 영표의 친분관계를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