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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설정한 프레임에 갇힌 사회적경제-

“사회적기업은 사회적경제의 가장 ‘전형적’ 형태, 또는 ‘대표적’ 조직이다.” 거의 모든 사회적경제 관련 책이나 논문의 서론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그러나‘전형적’이나 ‘대표적’이라는 형용사(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를 사용하는 것은, 사회적경제를 좁은 프레임 안에 가두려는 신자유주의 전략에 동조 또는 이용당하는 것일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전형적’이나 ‘대표적’이라는 형용사는 사회적기업이 사회적경제에서 대표 또는 가장 중요하다는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경제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사회적기업은 단지 신자유주의 위기에 사회적경제가 다시 주목받는 과정에서 탄생한 새로운 조직이다. 사회적 기업의 시장 친화성(지향성)을 고려했을 때 사회적경제의 일부일 뿐이다. 시장의 문제를 시장을 통해서 해결한다는 점에서, 사회적기업은 신자유주의 철학과 모순되지 않아 널리 환영받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적경제를 사회적기업으로만 은연중에 인식한다면, 사회적경제를 신자유주의가 수용하는 제한된 프레임에서만 이해하게 된다. 그 결과 사회적경제는 진정한 잠재력을 다 발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글을 쓸 때나, 실천 할 때나 모두.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돈 때문만은 아니다

돈을 버는 것이 우리가 일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은 100% 맞다. 하지만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Polanyi는 『거대한 전환』 4장에서“사람으로 하여금 노동하게 만드는 보통의 유인은 이익이 아니라 상호성과 경쟁, 노동의 즐거움, 사회적 인정 등이다.”라고 주장했다. ① 상호성: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장기적으로 양측 모두에게 동등한 이익을 보장하는 상호 간의 선물과 답례의 연쇄 과정으로 나타난다(Malinowski, “Crime and custom in Savage Society”, 1926). ② 경쟁: 경쟁이 치열하면 기존의 다양한 행동 유형(주로 노동)을 누가 더 훌륭하게 재생산하는가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Goldenweiser, “Loose Ends of Theory on the Individual, Pattern, and Involution in Primitive Society, 1936). ③ 노동의 기쁨: 마오리족은 노동 그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며 즐긴다(Frith, “Some Features of Primitive Industry”). ④ 사회적 승인: 밭을 완벽하게 가꾸는 정도가 그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재는 일반적 지표이다(Malinowski, “Coral Gardens and Their Magic, 1935). 이러한 역사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들 대부분은(극소수를 제외하고) 생계를 위해 마지못해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제학에서 노동을 negative good으로 가정하고 모형을 설정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아마도 노동이 허구적 상품이 되고, 우리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돈 말고 다른 동기는 다 상실한 것이 아닐까?

브렉시트와 트럼프 승리를 견인한 원인은 무엇인가?

지난 6월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에 이어서 또다시 세계를 놀라게 한 투표결과가 나왔다. 비록 격차가 좁혀지고 있는 추세였다고는 하나, 여론조사에서 줄곧 밀리던 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다. 세계가 놀란 이유는 단지 여론조사 예측이 틀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브렉시트를 찬성하고 트럼프를 찍을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상식에 반하는 이런 결과를 초래한 원인은 무엇일까?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세계화의 발전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보호무역주의를 점차 선호하게 된 경향이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때문에 자국 중심주의 또는 고립주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투표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보호무역주의를 선호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저명한 국제외교 잡지 Foreign Affairs는 2007년 6/7월호 ‘A New Deal for Globalization’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세계화로 발생한 소득의 실질적인 재분배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 미국은 근본적으로 더욱 진보적인 연방 조세 시스템을 채택해야 한다. 비록 보다 진보적인 소득 재분배라는 개념이 급진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미국 근로자들이 이익을 얻게끔 확실히 조치하는 것이 곧 보호무역주의자들의 반발로부터 세계화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주장을 한 필자는 큰 정부를 지향하는 좌파가 아니라 조지 부시 경제 자문회 위원이었던 Matthew Slaughter이다(Bishop and Green, 2008: 49-50). 결론적으로 세계화의 과실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았고, 이에 대해 누적된 반발심리가 폭발한 것이 많은 원인 중 하나라고 보인다.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육상산은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이라 했다. 백성은 빈곤한 것 보다는 불평등한 것을 더욱 염려한다는 의미다. 경제학적으로 보호무역을 하면 모두가 가난해진다. 그럼에도 보호무역을 선호하는 것은 불평등한 것보다는 가난한 것을 택하는 마음이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Matthew Bishop and Michael Green, 2008, 『Philanthrocapitalsim: How Giving Can Save the World』 안진환 (역) 사월의책: 서울

사회적경제는 압축·고도성장이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 사회적경제는 정부주도를 통해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정부주도라는 의미는 각종 지원법에 근거해서 공공자원을 투입함으로써 사회적경제 규모가 커졌다는 것이다. 사회적기업은 사회적기업 육성법을 시행한 2007년 55개에서 2016년 1,606개로 29배, 협동조합은 협동조합 기본법을 시행한 2012년 55개에서 2016년 8,939개로 163배, 마을기업은 시행지침이 마련된 2011년 550개에서 2015년 1,300개로 2배가량 늘었다. 이 수치는 누적 수치인데, 이는 성장률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규모의 변화를 보기 위함이다 양적 성장이 질적 성장의 필요조건이라는 점에서 양적 성장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정부주도의 성장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경제는 정부주도로 압축·고도 성장을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이 있었지만, 성과 자체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나 중국이 보여주듯이 경제성장이라면 자원을 특정분야에 집중해서 단기간에 성장하는 압축·고도성장이 가능하다. 경제성장은 물적자본과 인적자본으로 추동되는데, 물적자본은 단기간에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회적경제의 주된 성장 동력은 사회적자본(social capital)이다. 사회적자본의 하위 구성요소는 신뢰(trust), 규범(norm), 네트워크(network)이다. 이들 구성요소는 하나같이 축적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며, 소진되기는 쉽다. 신뢰는 쌓기는 어려우나 잃기는 쉽다는 사실은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규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상호호혜성 또한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구성원에게 내면화 되었을 때 제대로 기능한다. 네트워크의 연결 강도를 강화시키고 범위를 확장하는데도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든다. 이처럼 신뢰, 규범, 네트워크는 단기간에 축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물적자본을 토대로 하는 경제성장이라면 빠른 성장이 좋을 수도 있지만, 사회적 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경제는 천천히 성장하는 게 바람직한 것 같다.

창의성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 발현된다

우리는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 고도성장을 이루던 산업화 시기에는 표준화된 지식을 가장 빠르게 습득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성장은 완만해지고 첨단 기술이 주도하는 오늘날에는 창의성이 더욱 중요해졌다. 창의성은 무엇인가? 어느 학자에 따르면, 수많은 파편화된 정보를 이어주는 새로운 논리적인 관계를 발견하는 것이 창의성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창의성은 언제 발현되는가?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라고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검색하고 읽으며, 생각하고 쓰면 창의적이 될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정보의 파편들을 모으는 활동이지 새로운 관계를 떠올리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관계를 찾기 위해서는 잠시 모든 정보유입을 차단하고 멍때리면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내가 한참 연구주제를 찾아 헤매고 있을 때, 지도 교수님은 이제 충분히 읽었으니까 읽기를 잠시 멈추고 생각을 많이 하라고 말씀하셨다. 선배 김연아 박사는 연구스케쥴을 계획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시간을 반드시 포함하라고 조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창의성을 발현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하라는 의미였다. 나는 읽고 쓰지 않으며 멈추어 있으면 게을러지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일주일에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산책이나 하면서 멍때리며 지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