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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킹(The King)(2017)

2016년은 여러모로 시끄러웠던 한 해였다. 특히,지난 10월에 한반도 전체에 충격과 공포를 몰고왔던 거대한 국정농단을 시작으로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엮여져 나오는 충격적인 전말들은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을 패닉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믿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과, 엄청난 뒤통수를 맞은 듯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이들 등등 한반도 내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다 상처를 받았다. 거대한 스캔들의 여파는 영화계에도 번져나갔다. 터무니없는 정부의 블랙리스트 등장으로 영화인들도 단단히 화가 났었다. 그에 대항하듯 2015년에 개봉해 정치와 언론의 유착관계를 실감나게 담아낸 <내부자들>이 연말에 있었던 영화제를 휩쓸었고, 후발주자로 정부의 무능함, 희대 스캔들, 사회의 부조리함 등을 지적한 영화들(<아수라>, <판도라>, <마스터>, <자백> 등)이 관객들의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현 국정의 막장이 끝까지 가고 있는 와중에, 시국을 반영(?)하는 또 다른 묵직한 영화가 등장했다. <더 킹>이다. <더 킹>의 화려한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사람들의 기대치는 높아졌고, 12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첫 공개된 영화는 "역대급"이라는 표현과 함께 언론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나 또한 크게 동의한다. 극 중에서 비선실세로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한강식이 외치는 "역사를 모르면 배워! 자존심 버리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따르면 되는 거야!" 라는 의미심장한 일침에 영화가 부응하듯, <더 킹>은 우리가 살아왔던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영화를 절묘하게 데칼코마니처럼 대칭하여 풀어나갔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다. 각 시대별 정권에서 일어났던 주요 사건과 맞물려 극 중 주요 인물들은 자신들이 직접 기획하고 판을 만든다. 정부가 선포한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그들은 범죄를 소탕하면서 일약 스타로 떠오르고, 정권 교체 시점에 그들은 직접 차기 주자를 골라 애덤 스미스와는 다른 '보이지 않는 손'을 사용해 자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자신들의 장애물이 될 것 같은 존재들은 제거해버리고, 다른 사건을 터뜨려 화제를 전환시킨다. 이를 보고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 같다"라고 느껴지면 결코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킹>은 단순히 '현대사-영화'만 데칼코마니로 만든 게 아니다. 영화 내내 끊임없는 대칭 구조를 만들어냈다. '검사-조폭'의 대칭구도를 시작으로, '한강식-김응수', '양동철-최두일', 그리고 '박태수의 서로 다른 두 면'의 대칭까지 <더 킹>을 "데칼코마니의 향연"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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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Machu Picchu, Aguas Calientes

"위~~~~잉" 머리맡에 울리는 핸드폰 진동소리와 함께 잠에서 깼다. 핸드폰 시계는 새벽 4시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곤히 자고 있는 Y와 C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소리 날까봐 조심스레 화장실로 들어가 머리를 감았다. 씻고 나왔을 때, C도 일어났다. 숙면을 취하는 Y를 놔두고, 두 사람은 조용히 숙소 밖으로 빠져나왔다. 꼭두새벽부터 나온 이유는 오늘 갈 마추픽추(Machu Picchu) 입장권과 버스 티켓을 사기 위해서였다. 마추픽추 매표소는 새벽 5시 반부터 문을 열고, 버스표는 새벽 5시부터 판매했다. 먼저 버스표를 사러 아구아 깔리엔떼(Aguas Calientes) 기차역 부근에 있는 버스 매표소로 향했다. 매표소로 가는 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른 시각부터 바삐 움직였다. 매표소에 도착하니, 건너편에 있는 버스대기줄을 보고 깜짝 놀랬다. 첫 차 타고 마추픽추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잠 설쳐가면서까지 줄 서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군대에서 훈련할 때 꼭두새벽부터 바쁘게 돌아가던 부대 환경 이후론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사람들의 부지런함에 존경을 마다할 수 없었다. 버스 편도 티켓으로 12달러를 지불한 후, 아직 마추픽추 매표소가 문 열리는 데 10여분 정도 남은 상태였다. 그 짧은 시간인데도 기다리는 동안 쌀쌀한 새벽공기와 피곤함으로부터 버텨내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다행히 매표소 대기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고, 128솔을 지불하고 안전하게 마추픽추 입장권을 구입하는 데 성공했다.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돌아가는 두 사람 뒤에는 어느덧 아침을 알리는 해가 높은 산봉우리 사이에서 솟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우리가 들어오는 소리에 Y도 그제야 잠에서 깼다. 어젯밤 숙소로부터 오늘 마추픽추에 올라가기 전에 받은 아침(이라고 해봐야 빵과 팩형 주스, 과일 하나)을 출발 전에 먹었다. 사람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전 8시반 이후에 나가려고 최초계획을 세웠으나, 지금 나가나 나중에 나가나 큰 차이를 못 느낀 우리는 준비가 끝마치는 대로 숙소를 빠져나왔다. 키를 반납하려고 리셉션을 들렀으나, 불은 꺼져있고 아무도 없었다. 아무 문제없겠지 싶었던 나는 아무도 지키지 않는 리셉션 데스크 위에 키를 살포시 올려놓고 C, Y와 함께 버스 대기줄로 향했다.
사진예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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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조(共助, Confidential Assignment)(2017)

오는 18일에 개봉 예정인 <공조>가 시사회로 첫 선을 보이기 전까지 사람들의 예상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이제는 뻔하면서 식상한 소재 '남북관계'를 다루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공조가 재밌을까?" 하며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시사회 이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김상훈 감독은 자신이 과거에 즐겨본 <다이하드>, <리썰 웨폰>, <나쁜 녀석들>을 참고했다고 밝혔으나, 이미 유사한 소재로 관객들에게 선보였던 '의형제'라는 작품이 떠오르는 건 기분 탓일까? <의형제>에 출연했던 두 남자 주연배우 강동원과 송강호처럼, <공조>의 두 주연배우 또한 비슷한 이미지를 갖춘 현빈과 유해진이다. 그래서 <의형제>를 이미 관람한 사람들이라면 비슷한 소재를 사용한 <공조>를 보는 내내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보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서로의 신분을 속였던 <의형제>와 달리 남북 최초 비공식 합동수사로 서로의 신분이 노출된 점, 그리고 <의형제>가 '이한영 피살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두 영화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대체로 비슷하다. 실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친근한 남한 남자(송강호 VS 유해진)와 사연 많은 얼굴을 하고 있는 북한 남자(강동원 VS 현빈)의 만남, 살아온 환경이 서로 다른 두 남자가 살을 부대끼면서 소통하고 서로에 대한 정과 우애를 쌓아가는 과정, 영화 내에서 막강한 포스를 뿜어내며 등장하는 악역(전국환 VS 김주혁) 또한 묘하게 닮아있다. 그래서 <공조>를 보다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게 결코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물론 <공조>와 <의형제>의 명확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오로지 남성 위주 캐릭터로 구성하여 남자들의 진한 우애를 강조하며 영화의 무게감을 실었던 것이 <의형제>라면, <공조>는 이보다 가벼운 대신 두 주연배우에게 가중된 부담을 조연들이 적극 지원하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좀 더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공조>를 통해 칭찬해야 할 인물이 이번에 처음 스크린에 데뷔하는 임윤아다. 그녀는 그동안 TV브라운관을 통해 연기를 하면서 청순가련한 인물을 줄곧 맡아 한정된 이미지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발랄함과 천연덕스러움을 갖춘 '박민영' 역할을 자기 옷 입듯이 자연스럽게 소화하면서 <공조>의 신스틸러로 떠올랐다. 의외의 수확이다. 그리고 <응답하라 1988>를 비롯하여 <럭키>, <안투라지> 등에서 가벼움과 개그 캐릭터로 대중들에게 어필하던 이동휘가 간만에 웃음기를 뺀 상태로 출연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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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브(Nerve)(2016)

눈을 뜨는 순간부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기타 자신들의 SNS 계정을 로그인한다. 밤새 누가 '좋아요'나 '하트' 등을 눌렀는지, 혹은 내가 올린 게시물에 누가 댓글을 달았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밥을 먹거나, 출근해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와중에도 우리는 스마트폰을 시야 밖에서 떼지 못하고 손에 붙들고 있어야 하는 중독에 빠졌다. 현대인들의 이런 패턴과 취향에 맞춰 현실 반영해서 즐길 수 있는 증강현실 게임(VR)도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서비스되고 있지만, VR 중 대표적인 게임인 '포켓몬GO'만 하더라도 해외에서 지나가다 쉽게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SNS에서 유명인 또는 연예인들 못지않은 인지도와 명성을 얻기 위해 일반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는, 심지어 자극적인 행동까지 보여가며 시선을 끌고 그들의 관심을 통해 슈퍼스타가 된 듯 마냥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뜬구름을 잡으러 다니기도 한다. 이제 더는 스마트폰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SNS와 증강현실 게임, 그리고 스마트폰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팩트폭력을 가할 만한 신선한 영화가 한 편 등장했다. 이름에서부터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영화 <너브>가 주인공이다. <너브>가 우리에게 팩트폭력을 가한다고 말한 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소재가 현대인의 일상을 그대로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비너스의 컴퓨터 사용하는 모습이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쥐고 있는 SNS 미션 수행사이트 '너브'는 가입 시 2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미션을 직접 수행하는 '플레이어(Player)', 그리고 그들의 미션 성공 여부를 배팅하고 도전과제를 던져주는 '왓쳐(Watcher)'다. 이 설정,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국내에서만 하더라도 아프리카TV가 너브 같은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BJ(방장)'이라 불리는 수만 명의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방에 들어오는 불특정 다수의 익명의 '왓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남들이 함부로 따라 하지 못하면서 자극적이거나 대담한(nerve) 행동을 생중계로 보여준다. BJ들의 퍼포먼스가 무르익어갈수록, 시청자들은 '별풍선', 혹은 '스티커' 등을 채팅창에 띄워 그들에게 좋은 구경을 했다는 의미의 보상을 한다. 또한, BJ들이 시청자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다른 경쟁자들에게 인지도나 명성 등이 뒤처지기 시작하면 극도의 불안감(nerve)에 시달리곤 한다.

4-1. Piazzale Michelangelo, Firenze

장장 8시간에 가까운 장거리 여행을 끝마치고,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Firenze S.M.N.)에 드디어 발을 딛었다.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확실히 독일과 남다른 이탈리아 특유의 느낌이 기차역에서부터 풍겨져 왔다. 뜨거운 태양, 르네상스·바로크 풍의 건물들, 아기자기한 색채, 자유분방한 사람들... 그동안 머리속 이미지로만 그려왔던 이탈리아의 느낌이었다. 내가 이 곳 피렌체(Firenze)까지 오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번째로는 누구나 다 아는 일본 멜로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冷静と情熱のあいだ)>의 여운 때문이다. 주인공인 준세이가 학창시절 사랑했던 여인인 아오이와의 약속한 곳이자, 현재 준세이가 수복공방을 배우고 있는 주요 무대가 바로 피렌체였고, 영화를 통해 비춰진 두 남녀보다 그들의 배경이 된 피렌체의 아름다움에 나는 순식간에 빠져들었었다. 그리고 두번째는, 나의 절친 K의 생생한 여행후기 때문이다. 그는 파리를 거점삼아서 당일치기로 여러 도시를 다녀왔지만, 피렌체를 여행하는 동안 도시의 아름다움과 황홀함에 취해 정신을 못차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와 같이 다니던 일행 중 하나는 피렌체에 매료되어 그 자리에서 여권을 찢어버렸다고 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지, 피렌체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나의 기분은 다른 때보다 상당히 상기되었다. 내가 피렌체에서 머물 숙소는 S.M.N.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도보로 10분 거리. 숙소에 가는 동안, 역 근처 안내소에서 피렌체 전체 지도도 하나 챙겨갔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어느덧 저녁식사를 할 시간대가 되었다. 그래서 숙소에 있는 대부분 사람들이 잠시 밥먹으러 들어왔었고, 그 덕분에 한 방에 함께 쓰는 사람, 옆 방 쓰는 사람 등등 한꺼번에 인사할 수 있었다. 짐은 대충 풀어놓고 숙소에서 차려 준 카레를 먹고 있는데, 두 명의 여성이 대뜸 나에게 다가와 커피원두 사러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어여쁘신 분들의 제안을 마다할 필요가 없었기에, 허겁지겁 한 그릇 비운 뒤에 그녀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친구였던 S와 J는 남부인 나폴리에서 피사의 사탑을 보러 피사 가는 길에 잠시 피렌체를 들렀다고 한다. 그녀들도 나처럼 피렌체는 오늘 처음 왔는데, 무엇을 누구와 해야할 지 사실 잘 모르던 찰나에 나에게 말을 한 번 걸어봤다고 했다. 그녀들로부터 선택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어느새 산 로렌조 성당(Basilica di San Lorenzo)을 지나 두오모(Doumo di Firenze)까지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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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君の名は。)(2016)

2007년 <초속 5센티미터>를 시작으로 하여 수많은 매니아를 양산하기 시작했던 신카이 마코토. <별을 쫓는 아이>, <언어의 정원>에 이어 2016년 여름 일본에서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공개했는데, 바로 <너의 이름은.>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일본 현지에서 개봉했을 때, 엄청난 파급력과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일본 전역에 퍼져나갔고, '애니메이션의 거장'이자 일본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최초로 흥행 100억 엔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너의 이름은.>은 해외시장에 진출하여 호평을 받고 있으며,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다. 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된 근본적인 계기는 바로 지난 2011년 일본에서 벌어졌던 도호쿠 대지진 사태였다. 신카이 마코토는 "'대지진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때 내가 뭔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들이 살아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때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바람이나 기도, 이런 것들의 결집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고 밝혔다. 그렇다보니, 이전 그의 작품들에서 풍겨져 나오는 현실적인 연애 소설 느낌과는 전혀 다른 긍정적이면서도 가벼운, 대중적이면서도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낸 것이다. 지난 12월에 있었던 언론/배급 시사회에서도 반응이 괜찮았고, 올 연초에 있었던 유로시사회도 단시간에 매진을 기록할만큼 벌써부터 사람들은 <너의 이름은.>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다(나는 12월 시사회를 통해서 선관람했다). <너의 이름은.> 영화가 가장 뛰어났던 부분은 영상미였다. 이전작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신카이 마코토가 그려낸 그림체들은 사진을 찍어놓은 듯한 정밀묘사에 아름다움을 더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그 패턴을 고수하는 듯 했다. 그의 화풍의 판타지에 헤어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실제로 애니메이션의 모티브가 된 도시(도쿄 신주쿠 일대)와 시골(기후 현 히다 시)을 성지순례하러 여행하기도 하며, 그 숫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간략하게 나의 감상평을 먼저 써본다면, <너의 이름은.>은 정말 좋은 영화라고 말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신카이 마코토의 이전 작품들도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너의 이름은.>과 비교한다면 전작들이 더 나아보였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왜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고평가를 받는 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정도다. 먼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나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헷갈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인 타키와 미츠하 두 사람은 "무스비(結び)로 연결되었다" 식으로 어떻게든 엮어가려고만 하는 흔적만 보여주었다(무스비란 일본어로 '약속', '맺음'이라는 의미로 하나의 연결고리라 생각하면 된다).

1-7. Valle Sagrado, Cuzco

아침 6시 핸드폰 알람과 함께 눈을 떴다. 사실, 6시가 되기 전부터 이미 눈을 말똥말똥했다. 재빨리 씻고 난 후, 옆 침대에서 자던 C를 깨웠다. 신속하게 준비를 끝마치고 나오니, 시간은 7시를 조금 넘어섰다. 숙소 앞에서 택시를 타고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까지 갔다. 일요일 이른 아침은 도로조차도 고요했기에, 택시 타고 광장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다소 쌀쌀한 공기였지만, 충분히 버틸 만 했다. 고요한 일요일 아침 일찍, 조용히 성당으로 미사 드리러 가는 현지 사람들과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추정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행렬도 쉽게 눈에 띄었고, 새파란 하늘과 우리 사이엔 잿빛 구름 행렬이 가로막았다. 약속 시간인 8시가 다되어가지만, 액션 마추픽추(Action Machupicchu)는 문 열 생각을 하지 않아 불안한 마음에 스페인어 능력자인 C를 통해 10분 간격으로 주인장인 아드리안과 통화했다. 그는 우리의 전화를 받을 때 마다, "곧 가니까,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만 반복하고 오질 않았다. 어느새 시계바늘은 8시를 넘겼고 아무도 등장하지 않을 때, 반대편에서 한 남자가 출석부 비슷한 것을 휴대한 채 등장했다. 우리와 눈이 마주친 그는, 우리쪽으로 다가와서 명단에 우리의 이름이 있는 지 확인해주었고, 다행히 그 명단에 나와 C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우리를 데리고 여행사 건물 뒤편 광장으로 갔다. 그 쪽에는 이미 메르세데스-벤츠 콜렉티보 3대가 정차되어있었고, 그는 우리에게 가장 앞차에 탑승하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줬다. 잠시 후, 우리가 탄 콜렉티보에 칠레에서 우정여행을 온 남정네 5명과 파나마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노부부, 그리고 홀로 마추픽추 여행을 하는 다이애나라는 이름을 가진 브라질 여성 한 명이 탑승했다. 나와 C가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까지 가는 데 함께 할 파트너들이었다. 모든 인원이 탑승한 것을 확인한 남성은 자신이 이번 근교 투어의 가이드 크리스티안이라고 간략하게 소개하였고, 스페인어가 안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고려하여 스페인어와 영어로 두 번 말했다. 한가득 태운 콜렉티보는 아르마스 광장 뒤편에 펼쳐진 높은 언덕들을 굽이굽이 돌아 쿠스코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마추픽추(Machu Picchu) 근교 도시인 아구아 깔리엔떼(Aguas Calientes)까지 가는 우리의 여행 코스는, 쿠스코(Cuzco)에서 출발하여 친체로(Chinchero), 살리네라스(Salineras de Maras), 모라이(Moray),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까지 콜렉티보로 이동하고, 오얀따이땀보 기차역에서 페루레일(Perurail)을 타고 아구아 깔리엔떼까지 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마추픽추까지 가면 이 코스를 많이 이용하는 데, 여행자들의 기호에 따라 우루밤바(Urubamba)를 추가하는 대신 앞서 언급한 지역들 중 하나를 뺄 수 있고, 마추픽추를 먼저 다녀온 후에 따로 당일치기로 쿠스코 근교투어를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기차 대신에 콜렉티보를 타고 히드로 일렉트리카(Hidroelectrica)까지 간 후, 도보로 아구아 깔리엔떼에 입성하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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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From München To Firenze

2012년 7월 25일, 또 한 번의 장거리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무려 두 개의 국경을 지나쳐가는 여행, 뮌헨 중앙역(München Hauptbahnhof)에서 출발하여 첫번째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Innsburk)를 가로지른 후, 다시 한 번 국경을 넘어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에서 잠시 정차했다가 최종 목적지인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Firenze Santa Maria Novella, 이하 Firenz S.M.N.)까지 도달하는 거리. 시간으로만 따지면 기차에 앉아서 7~8시간 타고 가야하는 거리다(물론 그 이후, 이보다 더 오랜시간동안 기차를 탄 적도 있다). 오전 9시 반, 드디어 출발. 잘있어라 뮌헨! 잘있어라 독일(Auf Wiedersehen, Deutschland)! 이 기차를 타기 위해 아침일찍부터 일어나 부산스럽게 움직이다보니 조금 피곤함이 몰려와 예약한 자리에 앉으면 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예약한 6인실 칸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그 칸은 나 혼자, 아무도 타지 않았다. 눈을 감으려는 찰나, 6인실 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검표관이 들어왔다. 그는 나에게 여권과 기차표를 요구했고, 나는 그에게 바로 보여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검표관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로 무어라고 자꾸 이야기했다. 당연히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를 향해, 나는 "미안한데, 나는 독일어를 할 줄 모른다"고 영어로 대답을 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버럭 화를 내기 시작하면서 거칠게 쏘아부쳤다. 물론 독어로. 무슨 영문인지 전혀 알 리가 없는 나는 멀뚱멀뚱 거리면서 무슨 말이 모르겠다는 몸짓까지 보여주었고, 그는 씩씩거리면서 나갔다.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왜 나에게 화를 냈는지. 검표관이 나간 후, 기차는 어느덧 뮌헨 도심을 멀리 벗어나 시골 사이를 가로질러 달리고 있었다. 낯설면서도 낯익은 듯한 유럽 시골 풍경을 보다가,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아직 가려면 6~7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남아있다보니 빠른 시간 삭제를 위해 게임을 켰다(사실 이런 장거리 여행을 대비하기 위해 노트북에 오프라인에서도 실행가능한 게임 몇 개를 다운받아놓긴 했다). 그 중에서 시간 떼우기 참 좋다는 삼국지 시리즈를 골라서 열심히 영토 넓히기에 집중했다. 인스부르크(Innsburk)를 한참 지난 뒤, 6인 객실 칸을 홀로 점령하여 삼국지에 빠져있는 나에게 누군가가 찾아왔다. 아까 뮌헨에서 출발할 때 나에게 버럭하던 검표관이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동료 한 명을 데리고 왔다. 마치, '내가 지금 지원군을 데려왔으니, 넌 이제 끝났어' 하는 표정으로 대면했다. 그는 날 보자마자, 또 과격하게 독일어로 쏘아부쳤다. 당연히 나는, 그 말을 알아들었을 리가 없다. 의사소통이 전혀 안된다는 것을 단번에 간파한 검표관의 동료가 중재에 나섰다. 그는 다행히 영어가 가능했고, 나에게 나의 기차표와 좌석을 번갈아 가리키면서 이 헤프닝이 왜 일어났는지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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