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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감 좋은 격투 게임 어플, 섀도우 파이트(Shadow Fight) 2

격투를 기반으로 하는 액션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물론 여러 가지가 중요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타격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저가 실제로 격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려면 타격감이 좋지 않으면 안 되겠죠. 타격감을 기준으로 놓고 보았을 때 섀도우 파이트 2를 능가하는 모바일 격투게임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NEKKI라는 외국 회사에서 만든 게임으로 우리말 번역을 자동으로 다운받을 수 있게 되어있지만 번역이 구글 번역기로 돌린 것 같이 조악해서.. 영어가 어느 정도 되시는 분은 그냥 원본으로 플레이하시는 게 더 좋을 듯합니다. 섀도우 파이트라는 이름답게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은 검은 그림자로 보입니다. 주인공이 이계(異界)로 통하는 문을 잘못 건드려서 육체를 잃어버렸다는 설정입니다… 인물들이 온통 까만색이라 텍스쳐가 전혀 없어서 그래픽이 안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실제로 플레이 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캐릭터의 모션이 아주 부드러워서 실제 사람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물리엔진이 적용되어 있는지 격투 중에 이루어지는 캐릭터간 상호 작용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굉장히 사실적입니다. 아마도 3D로 작업하고 텍스처는 없애는 방식을 통해 이런 모션을 가능케 한 것 같습... 더보기
PC게임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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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물결의 진기한 향연, <식물의 정신세계>

이 책을 만난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제목만 보면 식물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을 것 같지만 이 책에는 식물을 주인공 삼아 그들을 둘러싼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끝까지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에 따른 가치는 충분했다. 처음 듣는 개념이나 현상을 무주칠 때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참고문헌도 메모하면서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은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신기한 것들로 가득 차있고, 이 실재하는 세계 앞에서 나의 세계가 얼마나 좁고 편협한 것인가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놀라운 발견과 가슴마저 설레게 하는 현상들이 기존의 관점의 좁은 틀에 막혀 묵살되었는지를 지켜보면서 이성적인 것과 생각의 지평이 좁은 것이 어떻게 다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물질 기반이 없는' 기능의 가능성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새롭고 경이로운 것들이 너무 많아 이 지면에 다 옮길 없을 것 같아 몇 가지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것들을 기록하려 한다. 먼저 이 책의 main theme에 해당하는 '식물의 정신'이라는 개념은 내게 신선한 충격과 한의학의 경락체계를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를 아이디어를 가져다 주었다. 식물에게 눈이나 귀가 없는데도 마치 보고 들을 수 있는 듯이 반응한다는 사실과 식물이 기억을 하고 계산을 하는 인지능력과, 아픔을 느끼고 두려워하고 기뻐하는 감정까지 가지고 있는 듯한 현상을 나타내는 것은 정말 놀라운 소식이었다. 콩이 데쳐질 때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한다면 동물들이 받게 되는 고통 때문에 육식을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들이 굳이 채식을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재미있는...더보기

'변신'한 이들에게 긍휼을, 카프카의 <변신>

'변신'이라는 이 제목은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익히 들어왔던 것이었다. 또,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도 어디선가 들어보았기 때문에 내심 친숙함을 느끼며 읽어보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두 가지에 놀랐다. 하나는 책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얇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내가 일전에 알고 있던 줄거리 외에 크게 인상 깊은 내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바퀴벌레 비슷한 해충으로 변해버린 주인공 그레고르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무력한 모습만을 보이다가 끝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레고르의 끔찍한 변신에 어떤 차도가 없는지 노심초사하며 읽은 나로서는 참으로 실망스러운 결말이었다. 애당초 그레고르가 왜 갑자기 벌레로 변하게 된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왜 이런 '변신'이 일어났는지를 모르니 도대체 카프카가 이 <변신>이라는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 '벌레'로 변했다는 점이 인간 본연의 죄성(罪性)이나 악함을 나타내려 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신학적 관점에서 이 작품을 보았던 사람들도 대략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그렇게만 보기에는 작품 전체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책 마지막에 실린 "카프카 문학의 비밀을 여는 열쇠"라는 글은 소시민적 가정 환경 및 자본주의적 사회 현실과 관련시킨 해석을 담고 있는데 그 설명이 매우 그럴듯하고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까지도 적용되는 듯하다. 그러나 그 해설을 여기 옮기는 것은 재미없는 일이다. 그 글을 쓴 사람도 언급했듯이 비평의 한계를 인식하고 각자의 독법으로 카프카를 재구성하는 것이 문학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기에 <변신>에 대한 나의 단상을 적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우리 주위의 '그레고르' 나는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의 모습에서 무력하고 쓸모 없어진 한 인간의 비참한 삶을 보았다. '변신'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레고르는 그의 가정에서 든든한 기둥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가 거대한 벌레의 모습으로 변하고 나서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자기 방을 기어 다니는 것 외에는 먹을 것을 스스로 구할 수도 없었고, 밖에 나가 예전처럼 돈을 벌어오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매일 여동생이 넣어주는 음식물 찌꺼기로 연명하며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흘려 보낸다. 이런 그레고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앞으로 돌보게 될 무수한 환자들이 떠올랐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처럼 병에 걸린 환자는 무기력하고 무능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게 되고,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여하는 것보다 손해 입히는 일이... 더보기

아름다움에 대하여

어디서 듣기를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탄할 줄 안다는 점이라 한다. 동물과 대화를 나눌 수 없으니 동물들은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알기로는 저녁 노을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해 가던 길을 멈추는 건 사람뿐인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어떤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기준이 사람마다 거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세세하게 들어가면 차이가 있겠지만 대강은 비슷하다. 밤하늘을 수놓은 듯한 별들을 보면서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반대로 어떤 것을 보고 흉측하거나 징그럽다고 느끼는 기준도 사람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 구더기나 파리를 보면서 눈살을 찡그리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듯이 말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징그럽다고 여겨지는 동물들을 키우기도 한다고는 하지만;;) 인간은 아름다움에 대한 어느 정도 보편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며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움을 향한 추구가 인간의 외모라는 영역에 이르면 문제가 조금 복잡해진다. 많은 현명한 사람들이 외모의 아름다움을 쫓는 것을 경계하는 말들을 했기 때문에 나는 아름다운 외모를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생각이 점점 확고해져서 언제부턴가는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호감이 생기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아름다운 대상을 보고 끌리는 마음을 죄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는가? 외모지상주의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것이 비판 받는 이유는 말 그대로 외모를 인간을 판단하는 유일한 잣대로 삼아버리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외모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최우선시하는 것이 나쁜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니 겉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끌리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외모를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흉측한 것을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사람을 대할 때에는 겉모습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사람은 겉모습과 내면의 모습이 전혀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면의 아름다움은 세월의 풍파에 무디어질 뿐이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은 갈고 닦기만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자니 떠오르는 성경 구절들이 있어 그 문장들로 글을 마무리한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베드로전서 1:24)

완악함에 대하여

요즘 완악하다는 말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스스로 마음을 돌아볼 때 이 단어가 떠오르는 때가 많아졌다. 네이버의 어학사전을 찾아보니 완악하다는 말은 '성질이 억세게 고집스럽고 사납다'는 뜻이라는데;; 내가 사용하는 의미와 뉘앙스가 좀 다른 것 같다. 성경에 보면 완악하다는 표현이 꽤 자주 나온다. 이 말이 나오는 가장 유명한 대목은 출애굽기에서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이 내리려고 하는 장면이다. '바로(Pharaoh)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완악하다는 말은 완강하다는 말과 유사한 의미로 쓰였다. 영어성경엔 'Pharaohs heart was hard…'라고 되어 있는데 이 표현이 완악하다는 말을 가장 정확히 묘사하는 것 같다. 마음이 굳어져서 옳은 말을 듣지 않는 것. 그것이 완악하다(hard-hearted)는 말의 뜻이다. 내 마음이 완악해졌다고 느낄 때가 많아졌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가장 최근에 완악함을 느꼈던 건 후원하는 아이에게 편지를 써야 하는데 그게 귀찮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 자책하기는커녕 오히려 변명했던 순간이다. 그 아이에게 써야 할 편지가 있다는 것을 기억했을 때 내 머릿속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편지를 써야 하는데 귀찮네. 사실 편지 쓰는 데 얼마 안 걸리긴 하지. 그리고 내가 그 짧은 시간과 적은 노력을 들여 편지를 쓰기만 하면 그 아이의 마음에 큰 기쁨이 될 것이다…(아마도?) 그런데도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편지를 쓰는 것이 귀찮아서 편지 보내기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좋은 마음으로 후원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귀찮아하고 있구나..'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순간 든 생각들이다. '사실 한 달에 한번씩 돈을 보내주는 것만도 그 아이로서는 충분히 감사할 일이지. 솔직히 돈 많아도 기부 안 하는 사람 많은데 편지 좀 안 쓴다고 그렇게 나쁜 건 아니잖아?' 정말 찰나의 순간 이런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슬퍼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어나지 않았던 핑계와 변명들을 보면서 선행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오히려 더욱 분명히 드러나는 본성의 악함을 다시금 확인했다. 예전에는 도리에 맞는 말을 들으면 내가 그 말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살피고 벗어나게 되면 부끄러워할 뿐 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모르게 변명을 쏟아낸다. '솔직히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하겠어?', '이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문득문득 일어난다. 바른 말에 점점 둔감해진다. 어떤 때는 변명하는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멍할 때도 있다. 안타까움도 없고 애통함도 없다. 이런 때는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든다. 잠들어있다가 잔칫집 문이 닫힌 뒤에야 땅을 치며 후회하는 어리석은 손님이 될까봐.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둔해져 가는 걸까. 양심을 돌아가는 칼날에 비유했던 어느 아프리카 부족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칼날이 날카로워 가슴이 아프지만 양심을 계속 무시하면 칼날이 닳아서 아프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 같은 자리에 상처가 자꾸 나면 굳은살이 생기는 것처럼 옳은 말에 자꾸 찔려서 마음에 굳은 살이 생긴걸까. 마음의 경화(硬化)를 멈추고 다시 부드러운 살이 돋아나게 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사실 답은 알고 있다. 나로서는 할 수 없다. '내가...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이 말씀을 바라고 기다릴 뿐이다.

제2의 아델, 벨라 페라로(Bella Ferraro)

유튜브에 올라온 오디션 영상들을 보다가 우연히 이 사람을 발견했는데… 노래를 듣자마자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2012년에 X factor Autralia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고 지금은 가수로서 앨범도 내고 있는 벨라 페라로(Bella Ferraro)입니다. 오디션을 나오게 된 사연을 들어보니, 오디션에 나온 이 때의 나이가 18살인데 벌써 2년 동안 휴학을 한 상태였다는군요. 학교를 다녀야 하는 동기를 찾지 못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해보면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해요. 자신이 노래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오디션에 참가한 것이구요. 이 첫 번째 오디션에서 4명의 심사위원들에게 모두 합격을 받고 영국의 유명한 싱어송라이터인 아델(Adele)과 비견될만하다는 엄청난 찬사를 받았습니다. 중도에 평가가 오르락내리락 했지만 결국은 12년도 오디션에서 최종우승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눈빛이라든가 분위기가 케이팝스타의 이하이 씨랑 닮은 듯하기도 한데.. 아래 영상은 그녀의 곡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Set me on fire 라는 곡입니다. 음악 듣기 - http://thinkingforest.tistory.com/222 중간중간에 살짝 목소리를 꺾는 창법이 매력적이네요. 아타리 코우스케의 창법과 살짝 비슷한 느낌도 나는 것 같고.. 어쨌든 우연히 좋은 노래와 가수를 알게 되어 귀가 호강을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