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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접시에 초밥 둘

회전초밥 전문점에는 초밥 접시에 같은 종류의 초밥을 두 개씩 놓는다. 우리뿐만 아니라 초밥의 원조인 일본도 마찬가지다. 왜 하필 접시 하나에 같은 재료를 사용한 초밥을 한 개도, 세 개도 아닌 두 개씩 올려놓는 것일까?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지만, 이유가 있다. 전쟁이 남긴 후유증이다. 초밥 접시에 놓은 두 개의 초밥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의 결과다. 일본은 다른 나라에 준 고통과 피해에 대해서는 언급과 반성 없이 제2차 세계대전 패배로 인해 자국이 받은 고통에는 목소리를 높인다. 마치 일본이 피해국인 양 엄살을 부린다. 당연한 결과지만 패전국 일본은 종전 이후 고통을 겪었다. 그중 하나가 극심한 식량난이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은 일본의 전후 복구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일본 국민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고통은 일본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결과이며 연합국은 일본 경제의 복구에 대해 부담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1945년 11월, 연합국 최고사령관 맥아더는 일본 점령 및 관리를 위한 기본 지령을 발표하면서 “일본이 특정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연합국은) 아무런 의무도 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몇 년이 지난 후 정책이 바뀌어 미국이 전후 복구 지원을 하고, 또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이 다시 일어섰지만, 종전 직후에는 식민지에서 벗어난 다른 아시아 국가들처럼 일본 역시 심각한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부족한 곡식을 조선과 타이완·태국·인도 등에서 강압적으로 조달했던 일본이었으니 식민지 독립 이후 곡식의 약 3분의 1이 모자랐다. 세 명 중 두 명 먹을 쌀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생선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이 끝날 무렵 일본의 어획량은 1939년에 비해 65%까지 줄어들었다. 종전 후에도 어선과 어부의 부족, 일본 연근해에 설치된 기뢰 등으로 인한 조업이 원활하지 못해 부족한 어획량을 대신해 주로 민물 생선과 조개류에 의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