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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느와 단순성

회화에서의 구성의 문제는 가장 중요한 것이며, 한편 구성을 단순화한다는 것은 대상을 보다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한 것 외에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하는 의미의 단순화일 수 있다. 고갱의 종합주의적 태도가 그것이다. 그의 구성은 고전의 교훈을 누구보다도 풍부하게 받아들이면서 독자적 입장에서 체계화했다. 세잔느는 자연을 구(球)·원추(圓椎)·원통(圓筒)으로 요약하여 구성의 수단으로 삼았는 바, 이는 모든 사물을 투시법에 따라서 물체의 전후좌우가 중심 일점에 집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넓이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수평선과 수직선과의 교차점에 깊이를 가하고 자연을 넓이보다 깊이 보아 빨간색이나 노란색으로 나타냈다. 그러면서 빛의 파동 속에 공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청색을 충분히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세잔느의 이러한 생각은 그의 <목욕하는 사람들>에 잘 반영되어 있다. 세잔느의 물체에 대한 관심은 안정성있는 개념의 추구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만년에 그는 목욕하는 사람들을 많이 그렸지만, 거기에는 인물의 육체적 균형보다는 삼각형 구성 속에 인체를 조립하는 데 고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변시지 "예술과 풍토" 중에서

르노와르와 이탈 리아 여행

형태문제에 관해서는 르느와르 역시 앵그르를 하나의 전범(典範)으로 삼았다. 그는 이탈리아 여행중 그의 후원자였던 한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나폴리의 미술관에서 충분히 배워 왔습니다. 폼페이 화가들의 작업은 여러가지 점에서 대단히 흥미가 있었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앵그르가 말한 크기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저 고대의 미술가들의 솔직성입니다. 앞으로 나는 큰 색조(valeur) 만을 보는 걸로 정했습니다. 세부적인 것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상파 화가들은 무엇보다도 색채를 중시하고 빛의 관찰에 주의를 집중했기 때문에 형태나 선의 문제는 자연히 관심이 희박했던 것이다. 르느와르는 1881년 이탈리아 여행중 고전에서 형태의 중요성을 배우고 프랑스에 돌아간 후에는 앵그르를 다시 보게 된다. 1880년부터 중반기까지의 르느와르의 작품에는 앵그르의 영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청결한 형태의 단정한 작품이 많은데, 이 시기를 앵그르풍의 르느와르 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인상파 이전의 형태의 연구는 주로 그리스 조각을 교본으로 삼아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데서 형태의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였다. 세부의 형태에 집착하려는 경향은 이 때문이었다. '큰 형태를 잡으라'고 말한 앵그르의 가르침은 그러한 감정이나 생명감을 잡으라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형태의 단순화에 귀결되는 문제였다. 드가나 르느와르는 이를 철저히 지킨 사람들이었다.

선을 배워라

물항아리를 어깨 위에 얹고 물가에 서 있는 젊은 여인의 나체상 '샘'은 앵그르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이상적인 신체적 균형과 하얗고 투명한 피부색, 달콤하고 정겨운 표정은 이 나부의 청정한 느낌을 더해 준다. 들라크르와가 색채에 의해서 였다면, 앵그르는 형태에 의해 그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 사람이었다. 형태에 대한 앵그르의 기본 정신은 다음과 같은 진술에 잘 나타나 있다. '진실에 의해서 아름다움의 비밀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전은 창작된 것이 아니라 아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모델에 대해서는 크기의 관계를 잘 살펴보라. 거기에는 전체의 성격이 있다. 선 또는 형태는 단순하면 할수록 아름다운 힘이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그것을 분할하면 할수록 그만큼 아름다움에 약해진다. 왜 사람들은 더 큰 성격을 잡아내지 못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의 큰 형태 대신에 세 개의 작은 형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앵그르는 안정된 구도 속의 운동을 파악하여 그것을 성격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그의 유명한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드러누워 있는 나체 형태의 율동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의식적인 일종의 데포르마숑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드가가 소년시절에 보고 반했다는 '목욕하는 여인'에서는 완전히 관중에게 등을 돌리고 얼굴 표정을 감추고 있는 한 여인의 나체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앵그르의 형태에 대한 미학적 기준을 잘 보여준 예다.? 이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간 다음에도 형태의 단순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오늘의 추상주의를 앵그르는 이미 그때 우리에게 예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들라크르와가 색조분할에서 인상파의 선구가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線)을 공부하게. 그러면 자네는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야.' 청년 드가에게 앵그르는 이렇게 충고해 주었다. 앵그르의 이러한 회화적 정신은 우선 드가에 의해 계승되었고 인상파에 깊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보이는 것과 믿는 것

프라 안젤리코의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단순한 예술적 입장에서보다는 종교적 입장에서 그려졌다는 사실은 의미있는 것이다. 예술이란 감정경험을 환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가치의 묘사이다. 이때의 가치란 단순히 미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이외에 윤리적 종교적 애국적 도덕적 이념 따위가 포함되기도 한다. 신비한 기적, 하나의 사건도 그것을 자연의 대상으로서 볼 수 있는 한 그것은 시각의 대상이다. 그것을 볼 수 있는 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입장에 있어서는 신비한 기적 또는 그러한 자연경관을 봤다고 해서 신을 믿는 신도처럼,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것은 아니다. 회화의 세계에 있어서는 믿었기 때문에 성립하는 세계가 아니라 보였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세계이다.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기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사람들은 성서에서 얻은 정보에 의해서 그림에 그려져 있는 광경의 전후를 비로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떠한 종교적 경험을 얻게 될 수도 있다. 회화에서 그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회화적인 것, 즉 시각적 의미의 것 뿐이다. 그러나 가끔 종교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회화가 본질적 의미에서 색과 형태의 시각적 측면에서만 다루어져 있다고 할지라도 그림을 보는 사람도 인간이므로 단순히 눈으로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 경우는 그림에 대한 정보나 지식으로 인하여 종교적 입장에서 믿고 경배할 수 있는 경우이다. 동서의 종교화는 흔히 감상물으로서 보다는 교화시키거나 신앙심을 고양화할 목적으로 많이 그려졌다. 회화에 도덕적 종교적 사회적 이념 따위의 의식이 결부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예술의 독자적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종속적 관계가 아닌 상호 의존적 또는 상호 보완적 대등관계에서 서로의 영역이 존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