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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주의)박성민 비서관과 내가 생각하는 앞길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 모든 건 내 머릿속에서만 생각한 것이라는 것을 명시해야 할 듯싶다. 나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으며, 이 결과로 여러분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게 되는 것 또한 원하지 않는다. 결국 정치에 관련된 것은 공약과 그 이행률과 실적 따위를 종합해서 봐야 한다. 내 생각은 그렇다. 제목은 박 비서관에 대해서지만 내 글이 언제나 그렇듯 전체적인 내용을 다룰 것이다. 광복 이후의 한국 부정하고 싶지만 이 나라는 미국의 원조와 일본의 자금 그리고 선조들의 피 위에서 여기까지 올라왔다. 물론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하지만 맨 땅에 헤딩으로는 이러한 성공이 불가능하다. 한국의 경제 발전 과정을 보면 결국은 미국의 원조로 경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해서, 일본을 반 협박해서 빌려온 돈과 그 돈으로 부족하니 독일의 탄광과 간호사로 일하던 분들의 돈까지가 합쳐져서 기반을 다졌다. 분명히 말해야 할 게 있는데 이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이건 전 세계사를 찾아봐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수준의 경제 전략이며 한국이라는, 실질적 섬 국가에 정말 정확하게 어울리는 경제 전략이었다. 내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이제부터 살펴보자. 먼저 이승만 정부로 올라와야 한다. 한능검 1급 시험을 공부하면서 느꼈던 건, 이승만 이 작자는 정말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능검 시험이 그러한 논조에서 만들어지는지, 이승만은 정말 입만 털었지 잘한 게 없는 수준이다. 심지어 전두환, 노태우조차도 업적을 외울 수 있게 만들어놓은 시험인데도 이승만만큼은 거의가 실패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승만이 정말 잘 했던 것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미국과의 외교 관계이다. 수십 년의 세도 정치와 35년간의 식민지, 거기에 직격탄을 때린 6.25 전쟁까지 이어지는 고난의 시기 속에 대한민국은 피폐한 상태였다. 여기서 이승만은 미국의 원조를 아주 절륜하게 받아내는 데 성공하고, 그 결과로 돌아온 것이 바로 '삼백 산업'이다.
hobbesfly일부 생각을 달리하는 부분도 있지만 우리나라 현실에 대한 여러부분에 대해 공감합니다. 긴글이지만 잘 읽었습니다. 국힘당이 집권하는 약 10년여동안(어차피 국힘당 전신이기때문에 국힘당으로 묶겟습니다) 민주당은 국힘당의 비리 및 여러가지 부조리에 대한 비판을 해왔고 그것에 대한 공감을 얻어 정권교체 및 전례없는 의석을 확보했지만, 법적, 도덕적인 비판에 힘입어 얻은 정권인만큼 그 잣대가 그들에게 더욱 엄중할것을 각오해야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죠. 서울 부산 지자체는 성추문에 의한 재보궐선거를 해야했고 부동산, 비리, 도덕적 문제 관련해서 여러 의원들이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언론의 편향적인 보도는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사실관계로서 이전 국힘당을 비판할때처럼 떳떳할수는 없었죠. 추가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에 관한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나라의 두 거대정당이 망해도 제1야당으로서의 역할을 할수있다는 오만함이 깔려있습니다. 바미당, 국민의당으로 독립을 시도했다가 한계를 체험하고 다시 각 당으로 비슷하게 흡수된 전례가 있는것처럼요. 그러한 기조가 첫째로는 지지자인 당원들에게 둘러싸여 의견을 받음으로서 실질적인 국민들의 힘든 점을 파악하기 힘들게하고 비판하는 의견들은 단순히 반대세력의 공격으로만 치부하게 되며, 두번째로는 의원들이 개개인의 소신보다는 당의 목소리에 편승하게 되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봅니다. 첫번째 예시는 이준석대표가 당대표가 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민주당과 국힘당의 중진들은 고령화시대에 들어선 대한민국에서 20대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는 고령층과 3,40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죠. 박비서관과의 주된 차이라면, 이미 이준석대표는 각종토론에 끊임없이 출연하며 계속해서 20대의 공감을 사고있었습니다. 여성정책과 관련애서 정부에서 계속해서 주도했지만, 그것에 대한 정당성과 확실한 근거는 제시하지못한채 정책만 이루어지고 있었고, 토론에는 여당의원이 나오지도 않고 녹색당인가 의원이 나와서 나올때마다 논리적으로 밀리며 댓글로 갖은 조롱을 받고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사실 이 토론은 이준석이 아니라 웬만한 논리만 갖춘 사람이 대화를 해도 이길 수 있는 좋은 먹잇감이었지만 이준석이 그 역할을 아주 잘 수행했고 그렇게 인지도를 넓혀갔습니다. 이걸 여당이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충분히 그래도 해볼만하다고 착각하여 재보궐선거에 임한 것에 대한 결과가 20대 득표율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며 당한 패배였고, 그러한 입증이 당대표로 가는데 영향이 컷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 출발선그림의 혜택은 상대적으로 인지도나 경력이 입증되지않은 박비서관이 받은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이준석대표도 당대표라는 위치에 올라서자 그간 잃을게 없었던 상황에 비해 여러가지 공격들이 있고 치부도 드러나겠죠 벌써부터 군대관련 내지 과거 일들 많이 올라오던데.. 그리고 박비서관도 일단 그자리에 올라선 이상 앞으로 둘의 행보로 서로가 판단되겠죠.

여자도 군대 가라?

좀 시간이 지난 떡밥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요새는 한강역 사망자 사건과, 문재인 대통령 국민 고소 사건, 그리고 부실급식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틈을 타서 진행되지 않아야 할 것이 진행되고 있다. 군대 문제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899 놀라운 것은 이 청원에 12만 명이나 되는 엄청난 인원들이 동참했다는 것이다. 새삼 페미니즘의 패악질이 어느 정도에 달했는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방향이 잘못됐다. 일단 난 여군이 '신체적 능력이 안 돼서' 군대에 못 간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물론 군대에서 체력적인 부분이 중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제대 반 년차 군필자 입장에서 팩트를 말하자면, 그 체력은 일하면서 길러진다. 이건 흔히 욕먹는 여군부사관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다. 내가 군생활 할 때 신임 하사가 하나 왔었다. 탄약반이었다. 그런데 탄약반은 날라야 하는 탄약에 비해 인원 수가 턱없이 모자라서 매번 내가 있던 수송부에 인원을 빌리러 오는 실정이었다. 그만큼 힘들고 열악한 일이다. 그러나 그 하사관은 불평 하나 없이 열심히 직무에 임했다. 힘이 없어서? 그 부사관은 운동을 했고 힘을 길렀다. 그 부사관이 특별한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전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나 뿐만 아니라 남자 병사들도 전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모두 자신의 일에 임하고, 반복하다 보면 근육이 길러진다. 그 뿐이다. 물론 여성들의 우락부락한 몸은 살아가는 데 별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난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말을 믿으니까. 그러나 어쩌랴. 군대인데. 살아가는 데 별 도움 안 되는 일만 2년 동안 하고 오는 곳이다. 그러면 신체적 능력도 아닌데 왜 반대하느냐.

조선구마사, 예술의 허용은 어디까지인가?

요즘 큰일이 많은 것 같다. 윤석열 검찰총장 건부터 LH무역사건, 학폭 미투 등등이 터지고 있는 와중에 SBS의 드라마 조x구마사가 친중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결국 드라마가 폐지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논란이 된 해당 부분. 음식과 배경 모두 중국식인데다 당시의 예법도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 사실 역사 왜곡 및 동북공정의 경우엔 이미 드라마를 내릴 정도로 확실하게 제작자 측에서 인정한 내용이기 때문에 더 다룰 생각은 없다. 애초에 난 이 드라마를 안 봤거든.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건 이 문제다. 과연 "역사 왜곡은 수출로 판단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서, "이러한 종류의 창작물 역시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 줘야만 하는가?"라는 문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내 개인적인 생각임을 감안하고 글을 읽어 줫으면 한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꽤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주호민 작가가 말한 것처럼, 시민 검열로 작품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건 창작자 입장에서도 시청자/독자 입장에서도 상당히 불이익이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작품이라는 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글 혹은 그림 외 기타 표현 방식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는 걸 막는 것은, 사실상 작품을 보지 않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 상에는 이 관점을 통해 '조선구마사'의 폐지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꽤 있다. 심지어 어느 정도는 타당성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것도 어찌 보면 하나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실제로 작가들은 검열받는 표현 방식에 대해서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저항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진주 맛집]이름은 횟집인데 매운탕이 죽여줌

빙글에 글 쓰는 건 오랜만이다. 사실 딱히 쓸 생각도 없었고, 약간 맛집은 그런 거 있잖은가. 여긴 나만 알고 싶은데... 그런 집. 나만 알고, 나만 가서 먹고 싶은 그런 집이 다들 하나쯤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경우 그런 집이 많지 않다. 뭐 애시당초 뭐든 잘 먹고, 그래서 굳이 '나만의 맛집'을 놓고 살지를 않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그냥 나만의 맛집으로 남겨 두고 싶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생각을 바꿨느냐. 오늘 내 친구가 입대를 했다. 솔직히 이제까지는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당장 오늘 그 친구 어머니한테서 입대 잘 했다고 연락이 오자 슬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오는 3월에 입대하는 기술행정병에 지원한 상태고, 일단 1차 합격을 했다. 기행병의 경우 1차합격이면 거의 합격이나 마찬가지라고 들었는데, 그러면 내 군입대도 그다지 남지 않은 셈이다. 뭐 불합격이면 불합격인대로 7월 입대다. 고작 반년이면 어차피 똑같은 셈이다. 가는 김에 놔둬봤자 뭐 하겠나. 그리고 어차피 이 글 보는 사람들 중에서 실제로 찾아갈 사람 얼마나 있겠나.

그냥 답답해서 쓰는 글

수능이 끝난 지도 삼 개월이 넘었다. 그 사이에 자기계발을 할 시간을 가지라는 글들과, 대학에 가면 어떤 일을 할 지에 대한 글들이 잠시 빙글에 반짝거렸다가 사라졌다. 다른 sns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능이 끝났으니 내가 어떻게 놀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특별히 할 게 없었다. 내 동생은 나를 의아해했다. “왜 친구들과 놀러다니지 않아?” 귀찮아하니까. 나도 귀찮고 그 치들도 귀찮고. 거기다가 나는 순수예술을 좋아하는 특이 종자라 취미 생활을 공유하는 놈도 없어서. 같이 놀러가봤자 뭘 하지를 못 하거든. 거기다가 딱히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당구도 못 쳐, 볼링도 못 쳐... 수능 준비가 지옥같았다는 말은 사실 모든 고 3이 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는 않다. 뭐 놀거리가 제한된 학교에서 놀다 지쳐서 지옥같았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공부한다고 지옥이었을 놈은 실제 수험생의 1/3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아, 물론 이건 내 상상일 뿐이지. 우리 반이 딱 1/3만 공부하곤 했거든. 난 그 공부하는 축에 속했다. 매일매일 지옥같은 삶을 보냈다. 학년 초에는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곤 했다. 체력이 방전되면서 아침에 졸아버리는 일이 잦아졌고, 길어야 한 시간이던 졸기식 낮잠은 어느 새 네 시간으로 늘어났다. 나는 위기감을 느꼈다. 이대로 계속해서 두 시까지 공부하는 것이 옳은가? 옳지 않았다. 나는 공부 시간을 열두 시까지로 줄이는 대신 쉬는 시간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지 않자 오히려 공부하는 절대량이 늘어났다. 아침에 학교에 가서 자정까지만 공부해도 무려 14시간이라는 공부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그 시간 내내 집중했다고는 장담할 수 없으나. 그래도 책이나 인강을 보고 있는 것은 당연히 노는 것보다는 효과가 있을 것이었다. 나는 책읽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수능이 코앞인데 책을 읽을 수는 없었다. 쉬고 싶을 때면 수능특강을 읽었다. 수능특강 정리 노트, a.k.a 초록책은 책을 돌려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많이 없애 주었으며, 나올 만한 문장들을 추가시켜서 더욱 더 시간을 때울 수 있게 하였다. 또 수학 문제를 풀다가 지치면 설민석의 한국사 강의를 들었다. 쉬는 시간에는 좋아하는 공부, 공부 시간에는 어려운 공부. 그러다가 막바지에는 시간에 맞춰서 모의고사도 풀었다. 학교에 등교하면 잠 깨는 용으로 물리 평가원 풀고, 시간 남으면 단어 외우고. 국어 풀고, 영어 빈칸책 풀고, 수학 풀고, 밥. 영단어 외우고, 영어 풀고, 초록책읽기시간 혹은 물리/생물 평가원, 한국사+탐구 풀고, 오답체크 시작. 저녁식사 하고 물리/생물 평가원. 야자시간 시작하면 수학 풀고, 야자 끝나면 과탐.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당시 반에서 남아 있던 친구들도 거의 비슷한 일과를 보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사람 할 짓은 아니었다. 이 중에서 정말 괴물같이 공부만 하는 친구가 있었다. 주말에 내가 먼저 교실 문을 열면 30분쯤 뒤에 들어와 공부를 시작했고, 밥 먹는 시간을 줄이려 저녁식사까지 두 끼를 도시락으로 채웠다. 나도 한 끼는 도시락으로 채웠지만 두 끼 아니었다. 두 끼를 도시락으로 채운 사람은 전교에 이 친구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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