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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퇴사 이유

박본부장이 그만뒀다.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다. 사장님 대학, 직장 후배였다. 사장님한테 물었다. 나간 이유가 뭘까요? '약해 빠져서 그래' 하셨다. 박본부장님, 차 한잔 해요. 짐작할 거다. 굳이 묻지 않았다. 그냥 당구 치고, 맥주 마셨다. 동갑이다. 딸 하나에, 큰 애와 비슷하다. 이제 뭐 할 거냐 묻고, 잘 될 거라 말했다. 고맙다 했고, 나도 고맙고 또 보자 했다. 그는 새로운 회사에서 중국 법인으로 갔다. 심천, 우한으로 출장 갈 때, 말동무가 되고, 친구가 되었다 몇 년이 지났다. 큰 힘이 됐다 한다. 먼저 보자고 해 고맙고, 껄끄러운 걸 묻지 않아 고맙고, 뭘 할지 막막한데 투자자가 잘될 거라 해서 힘이 났다 했다. 왜 그만둔 건지 그때 말했다. 박본부장은 직장 후배 김상무를 영입했다. 아끼던 후배였다. 스타일은 완전 달랐다. 김상무는 스스로도 장돌뱅이라 했다. 얼마 안 있어 사장님은 김상무를 2 본부장으로 했다. 나란히 둔 거다. 전 직장 사수, 부사수가 이제 나란한 형태다. 묘한 구조가 됐다.  박본부장 사업에 힘이 실리면, 김상무 쪽은 순위가 밀렸다. 선의의 경쟁이라지만, 김상무와 그런 관계는 싫었다 했다. 사장님은 결국은 붙잡지 않았다. 퇴사한 직원, 그들은 시원하고 섭섭하고 아쉽고 불안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다. 모르는 외부인에 하자니 이야기가 길다. 의미 있게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데 마땅치않다..그런 얘기 애써 들어봐야 한다. 의도는 걸려야겠지만, 심사역이 가까이 가야 한다. 그만둘 땐 나름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남들이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 그럴까 다른 이유를 댄다. 작은 문제가 누적되는 경우다. 본인은 참지 못 할 큰 문제가 되 버렸는 데도, 두번 말하기 창피하다. 알아만 주면 고칠 수 있다. 호미로 막을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외면하더라도 사장이, 심사역이 알아야 한다. 견고한 외양간도 시간이 지나면 허름해진다. 늘 손봐야 한다.

입학 30년, 산경 87 여행

5월 13일 토요일. 비도 그쳤다. 입학 30년 기념으로 여행 가는 그날은 날씨도 좋았다. 시작은 2월 10일. 강남역 봉피앙, 7명이 모였다. 봄나들이 이야기가 또 나왔다. 몇 년 전부터 불쑥불쑥 나오는 주제. 입학 30년을 기념하자고. 도쿄에 가자, 봄 하면 교토, 홋가이도가 제일, 그러다 흐지부지. 작년엔 영일이가 제주도 예약까지 하고도 못 갔다. 이젠 “어디던 좋다, 일단 가자”에 방점이 찍혔다. 남해가 떠 올랐다. 87 졸업여행 간 곳, 의미있다. 부산, 포항은 소라, 정희, 숙연이 선에서 잘렸다. 남해가 당첨됐다. 숙소는 사우스케이프로 정했다. 친구 한 명 한 명을 모아 24명 단톡 방을 만들고, 9명이 가기로 했다. 비행기로, 기차로 어떻게 가지 하다, 전용차선 가능한 카니발 두대를 확보했다. 집이 서울인 석우, 영일, 진호, 학진이는 여의도에 모였다. 북부파다.  경기도 남부 쪽인 정희, 소라, 병윤, 나는 분당에 모였다. 남부파. 숙연이는 창원에서 남해로 바로 합류하는 걸로. 북부파는 8시 출발, 남부파는 8시 반 출발. 첫 목적지는 삼천포 용궁 수산시장.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먼저 도착한 북부파가 장을 봤다. 식당에서 바로 요리해 준다. 남부파가 도착하고 숙연이도 곧이어 왔다. 이렇게 첫 전체 상봉. 밥 먹을 때 모이는 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삼천포 대교를 건너 남해 숙소로. 파란 바다, 맑은 하늘, 시원한 바람, 녹색 나무와 잔디. 핸드폰 꺼내고, 카메라가 바빠졌다. 해변 산책길 따라 트레킹. 자잘한 생각들은 사라지고, 바닷가 바위에서, 탁 트인 언덕에서 오랜 친구들과 편안한 시간이었다. 저녁 먹고, 여기선 나갈 곳이 마땅찮았다. 그럼 그때처럼 술판을 만들지 뭐. 거실도 좋은데, 베란다가 더 좋았다. 시원한 바람, 바다, 별도 초롱초롱. 야외 카페로 딱이다. 작은 탁자 네 개 모두 옮기고, 2미터 조명 스탠드를 베란다 옆으로, 블루투스 스피커도 창가로 붙였다. 의자가 모자랐다. 소파냐 양탄자냐. 소파를 세워서, 네 명이 낑낑 옮겼다. 일사불란하게 알아서들 돕고, 끝냈다. 소라, 정희, 숙연이가 와서 감탄했다. 와인을 따르고 치즈를 꺼내고, 우리들이 만든 바에서 옛이야기를 이어갔다. 몇 병이 나왔는지, 석우도 가져오고, 영일이도 가져오고, 같이 마시려고 따로 챙겨 온 것들이었다. 스위스 출장에서 병윤이는 치즈, 샴페인, 초콜릿을 사 왔다. 과자, 오징어, 쥐포, 파인애플, 라면 3 봉지, 아예 박스로 바리바리 싸온 애도 있었다. 포항 추억의 명소가 소환되고, 에피소드가 줄줄이 나왔다. 우리들 노래에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시간 여행이었다. 다음날 골프조는 일찍 라운딩 가고, 다른 친구들은 여유로운 아침을 만끽하고 브런치 카페로 갔다. 그림 같은 풍경, 커피, 음악을 즐기는 동안, 골프조가 합류했다. 즐거운 추억을 가슴에 담고, 또 다음을 기약했다.

60. 직원은 자산 또 사고뭉치.

토요일 오후, 중국 청도에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전화가 울렸다. 한국 번호, 본부장님이셨다. “ A사 불났다는데, 들었나? TV 뉴스에 나오네.” IPO 심사일이 2주 뒤인데, 불이라니. A사 김 대표님 전화 안 받는다. 몇 번 해도. 이 실장님, 김 전무님, 최 상무님도, 임 감사님도. 같은 산단, B사 오이사님께 전화했다. 8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회사라 하신다. A사 불났다는 데 맞습니까 물었다. 방향은 그 방향인데,  A사는 아닌 것 같다 하신다. 다행이다. 누나가 그 도시에 살았다. 화재 속보에 업체 이름도 나왔는지 물어봤다. 비슷하다고. 다시 오이사님한테 전화했다. 죄송한데, 가서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좀 있다, 맞다 하셨다. 김 사장님도 통화됐다. 내일 뵙죠 했다. 한국에, 집에 오자마자 KTX 예매하고, 일요일 이른 기차로 갔다.  공장, 사무실은 새까맣게 탔다. 100 미터 떨어진 제2공장, 4층 회의실 밖으로 누군가 손짓을 했다. 부사장님이었다. 현장에 있는 직원이, 누군가 계속 기웃거린다 알려왔다고. 주요 거래처도 다녀 갔다. 여기 머티리얼 없으면 반도체 공장도 중단된다. 어서 제2공장을 가동하자고 했다. 공장 승인도 가장 빠른 시간에 협조한다고. 거기도 발등에 불 떨어졌다. 불났다는 소리에 사장님은 이젠 죽었구나 했다. 예전에도 큰 사고가 있었다. 제발 인명사고만 없기를… 다행히 직원이 심하게 다치진 않았다. 주말이라 감독자가 없었다. 그럼, 규정상 작업을 못한다. 그런데도 뭘 하다 사고가 났다.

2017.06.04 융건릉 나들이

오랜 만에 주말 헤리티지 나들이. 화성에는 사도세자와 정조를 모신 융.건릉에 다녀왔습니다. 유네스코 지정 유산입니다. 정조는 효성이 지극했습니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추존하고, 여기에 모셔왔습니다. 현륭원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하지 못했답니다. 왕의 무덤 능이 되지는 못했지만, 무덤의 규모나 양식은 어느 능보다 정성을 다했다 합니다. 능에만 쓰는 무늬를 석벽에 새겨넣습니다. 늘 지켜보려고 자신의 얼굴(용안)을 그려 능을 바라보게 했답니다. 참배 왔을 때 기거하는 행궁(수원)을 500칸 이상 규모로 지었습니다. ( 보통은 200여 칸이라 함) 1번 국도 수원과 안양사이에 "지지대고개" 있습니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능이 보이지 않아, 정조가 한참을 지체했다고, 백성들이 "지(느릴 지)"를 두개 써 그렇게 이름지었습니다. 아들 순조가 15세가 되면, 상왕으로 물러나고, 순조가 장헌세자를 왕으로 추존하게 하려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오래 살지 못했죠. 홋날 고종이 장헌세자를 "장종"으로 추존하고, 융릉이 됩니다. 아관파천 후에 위신 회복하려고 대한제국을 선포합니다. 선대 4대까지 황제로 추존하는데, 장헌세자를 일단 "왕"급으로 올립니다. (고종은 효명세자(익종)의 양자로 입적했습니다. 장종-정조-순조-익종-고종) 정조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꼬인 일들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노비 제도 폐지입니다. 미국 링컨보다 50년 앞섰습니다. 시행을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순조때 공노비만 폐지합니다. 정조 24년간 숨한번 크게 못쉰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면서, 사대부 재산인 사노비는 제외한 거죠.  또, 정조의 정책을 하나하나 뒤집는 데, 그래도 명분이 필요한 지라, 천주교를 걸고 넘어집니다. 실학에 기반한 남인들이 풍비박산 됩니다. 주변에 용주사가 있습니다. 사도세자의 능참사찰로 정조가 중창했습니다. 효심으로 지어진 이 사찰은 지금 분쟁 중입니다. "주지가 쌍둥이 아빠" 의혹이 있습니다. 잘 꾸며진 능, 울창한 소나무 숲, 뒤에 아담한 산까지, 산책, 힐링 코스로 좋았습니다. 기가 무척 센 곳이라 합니다. 10:30, 14:00 하루 두번 해설사가 설명합니다.

58.이만하면 됐다.

통신사가 가입자 500만 명 확보하려고 전 직원을 독려했다. 협력사인 A사가 담당자 구하기에 나섰다. 사장님도 그 회사에 다녔다. 그가 잘 살아야 A사도 잘 산다. 투자사한테도 도와달라 했다.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핸드폰 공짜, 컬러, 40 폴리 최신폰을 공짜로", 거기다 가입 사례금 9만 9천 원 얹어 준다고. 사례금은 A가 별도로 줬다. 이틀 동안 우리 회사에서 "고병철 폰" 신청서 42장, 전체 200명을 넘게 가입시켰다. 사장님은 그 이통사에서 일할 때, 마케팅 전단지를 직접 돌렸다. 부모님이 그걸 보시고 한숨 쉬었다. 기껏 공부시켰더니 길바닥에서 일한다고,, 아랑곳 않았고, 광역 지역 내 1위 직영점이 됐다. 대기업에서도, 창업해서도 시작했다 하면 끝을 봤다. 데이터 팀장으로, 본인이 다 밀어줬다는 협력업체가 상장했다. 무선인터넷 대장주, 시총 3,000억. 창업을 결심했다. 자신만만 하지만, 망할 수도 있고, 돈도 없고, 일단 남의 돈으로 시작했다. 얼마 안가 주주와 사달이 벌어졌다. 다시 시작하는 데,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걸렸다. 서비스는 순조롭게 성장했다. 투자도 받았다. 하지만, 지르질 않았다. 안전 또 안전. 조금씩 성장했다. 서비스가 생각대로 안 가면 바로 내렸다. 진득한 프로젝트가 아쉬웠다. 큰 손실은 없는데, 답답한 상황. 현금은 항상 챙겼다. 여차하면 바로 청산하고, 투자금 돌려줄 거라고 했다. 그럼 본인 몫이 얼만가 생각했다. IPO 로드맵은 말 뿐이었다. 어느 해부턴가가 실적이 커졌고, 시큰둥했던 상장도 했다. 타이밍도 좋았다. 공모자금도 꽤 들어왔다. 고객들 한테 직접 마케팅했다. B2C 서비스는 처음. 실패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회사를 팔았다. 상장하고 1년 만이었다. 회사는 그 후에 여러 번 팔렸다. 그때, 왜 바로 접었을까? 자기는 그 정도라 생각했을까? 자금도, 조직도 그대로. 한 번은 더 해볼 수도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