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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캐롤, 오 마이 캐롤.

'Love at first sight.' 흐릿하게 비쳐진 창문 사이로 사람들의 풍경과 시선이 지나간다. 가진 자에게나 못가진 자에게나 누구에게나 평등한 사랑이란 감정은 낯설음의 변형된 모습으로 다가오곤 한다. 그걸 쟁취하는 것도 능력이고, 그걸 배격하는 것도 선택이라는 듯. 그 흐릿한 창문은 어쩌면 일종의 벽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그 구분을 정당화시켜주는 구실일 수도 있다. '바람이 분다.' 낯설었기에 설레였고, 낯설었기에 간절했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편안함의 감정으로 변하고, 심지어는 익숙함의 지루함으로까지 변형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 간절했던 시간의 짙은 농도만큼이나 엷어진 감정의 흐릿함은 응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그것도 부지불식간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다름은 다름이었기에 아름다웠고, 달라야만 했음에 자유로웠던 시간과 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사랑한다 하였기에, 혹은 사랑하고 싶었기에, 그렇게 흘러온 시간은 종점을 향해가고, 그 종점엔 늘 그러하듯 원점보다 더 서운한 차가운 겨울바람보다 시릿한 서늘함만이 기다릴 뿐이다. 시간은 흘렀고, 막을 수 없는 게 원래 사랑이기에.

아날로그의 추억, '캐롤'을 보고.

'추억은 기억을 잠식한다.' 얼마전 '캐롤'을 관람하고 너무도 당연하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져버린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1)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필카. 어릴 때에는 필름을 새로 사서 갈아끼우고 동네 사진관에 가서 출력해오던 게 당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디카로 바뀌고 그나마 현재는 디카도 추억속으로 사라지고 핸드폰 카메라로 대체되어버린지 오래이다. 필카에는 이틀 정도의 간극이 있었고, 디카에는 집에 컴퓨터에 연결하여 하드에 옮기는 몇시간에서 하루 남짓의 텀이 있었지만,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엔 그런 시간적 간극이 없다. 그저 찍힐 뿐, 소유되진 않는다. 2) 또 하나의 추억은, 아지트이다. 블로그가 일상화되고, sns 의 태그 및 체크인 기능이 일상화된 시대에 '나만의 공간'이란 단지 사치일 뿐이다. 이제는 누구나 즐기고, 누구에게나 공유되고,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그런 유명한(혹은 만만한) 공간일 뿐이다. 나만의 레서피는 블로그와 뚤팁이 되는 시대에 독창적인 공간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명제일 지도 모르겠다. 그럴 바엔 어차피 그래서 잘 갖춰진 프랜차이즈와 마일리지가 더 매력적일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자주 가던 대학로 한 귀퉁이의 까페가 있었다. 학전 다방만큼의 공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학로 스타벅스(이대점 이후 2호점)처럼 대로변의 접근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성대로 넘어가는 골목 귀퉁이 그 어딘가에 위치했던 그 자그마한 까페. 오렌지쿠키가 맛있었고, 주인장들의 사진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던 내공있던 공간.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 장시간이 필요했고, 못만남조차도 하나의 추억이 되던 그런 공간, 그런 장소. 구글지도와 네이버블로그, 그리고 페이스북 시대엔 사치에 지나지 않을 그 공간이 문득 그리워졌다. the Table. 인스타 시대는 그 인스타함이 매력이지만, 인스타함이 가질 수 없는 먹먹함이 가끔은 목마르다, 무척.

슬픔의 발현 -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8살짜리 딸래미과 4살짜리 아들래미를 '어렵사리' 재우고 '인사이드 아웃'을 보았다. '업'의 감동이 워낙 강했고, 각종 평이 워낙 높아서 새벽 1시반에 끝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요즘엔 이런 류의 영화를 볼때마다 내가 애가 없었으면 어떤 느낌으로 영화가 다가왔을까,하는 적이 많다. 간접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소설이나 영화는 확실히 본인의 감정선과 경험에 많이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면에서 딸바보인 아빠로서 '7번방의 선물'을 보고 나서 크리넥스 한통을 썼던 기억과 혼자 살던 어린 시절 시체자르는 '네크로만틱'을 즐겼던 시절과 같은 대비 말이다. '인사이드 아웃'은 디즈니 마크를 달고 나온 픽사 영화의 성질 답게 발랄하고 즐겁고 따스함은 간직하지만,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은 잔상이 강한 영화였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쌉쌀한 클래식 소주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달콤하기만한 청량음료도 아닌 첫맛은 달지만 끝맛은 쌉쌀한 '순하리' 같은 느낌이랄까. 삶이 마냥 행복하다면 좋으련만, 시간이 지날 수록 - 팽팽했던 아버지 눈가에 주름이 겹쳐지고, 계단을 오르는 어머니의 한걸음한걸음이 벅차고, 응애하던 첫아이가 학교를 가고, 호흡곤란으로 중환자실에 실려갔던 둘째아이가 야구장 응원단장 흉내를 내고, 난 이제 곧 40이고, - 그다지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Joy' 보다는 'Sadness' 가 전면에 등장하는 (좀 더 정확히는 영화에서도 표현되지만, 믹스되는 ) 시점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 부모라면 그걸 좀 더 늦춰주고, 결국 S 가 J 보다 커지는 상황을 담담하게 맞이하게 해주는 것, 그 역할을 잘해내야할 것 같다는 생각과 다짐을 해보게 되었다. 과연, 이라는 물음표와 함께. * 한국의 문/이과 분리교육은 필히 지양하여야 한다. 인문학스러운 주제를 철저히 공학적으로 잘 풀어내는 헐리웃 영화들을 볼때마다 '우린 왜 이런 걸 못만들까'가 아니라 '우린 왜 이렇게 못만들게 아이들을 교육시킬까'가 먼저 떠오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