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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man Timbs Special

이 멋진 자동차는 미국 LA의 우주선 엔지니어이자 취미로 자동차를 만들던 Norman Timbs가 1948년에 제작한 자동차이다. 문도 없고 커버도 없으며, 트렁크는 앞에 있고, 여분의 타이어와 엔진은 뒤에 있다. 이름 하여, Norman Timbs Special, 당시 1만 달러 정도를 들여서 딱 1대만 제작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10만 달러 수준이다.) https://www.hotcars.com/1948-norman-timbs-special/ 바디는 알루미늄이고 엔진은 1948 Buick straight 8를 집어 넣었으며, 제작 당시에도 디자인 때문에 숱한 화제를 뿌렸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잡지에 많이 실렸는데, 디자인에 영향을 준 차종은 1937 Mercedes-Benz Avus Stromlinie이었다. 그런데 이게… 사막 속에 묻혀 있었다. Norman Timbs Special powered by 1948 Buick Straight Eight : https://www.legendarycollectorcars.com/featured-vehicles/other-feature-cars/norman-timbs-special-powered-by-1948-buick-straight-eight/ 그래서 발견 후, 2002년 경매에서 이 차를 캘리포니아 말리부에 사는 자동차 수집자인 Gary Cerveny라는 인물이 구입해서 복원에 들어간다. 그는 Norman Timbs의 아들과 접촉, 많은 정보를 얻었고, 7년에 걸친 복원도 꽤 잘 됐다. 아래 영상을 보시라. Timbs Special and Hudson Italia(2014년 7월 9일): https://youtu.be/8lL5VojwaB0

리히텐슈타인 이야기

리히텐슈타인이 스위스에 붙어 있는 조그마한 공국이라는 사실 하나만 알아도 리히텐슈타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 자그마한 나라에 재미나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우선 리히텐슈타인 자체를 설명해 보자면 올해로 태어난지 301년째 됐다. 의외로 역사가 깊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1719년 1월, 한스 아담스 리히텐슈타인 공작이 해당 지역을 매입한 다음, 신성로마제국 카를 6세 황제로부터 공증을 받아서 공국을 세운 것이 처음이다. 역시 부동산이 먼저인 겁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0여년 후에?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을 무너뜨렸고, 나폴레옹 몰락 이후의 빈 체제는 라인연맹(Rheinbund) 대신, 독일 연맹(Deutsche Bund)을 성립시키면서 리히텐슈타인은 진정한 독립을 이룬다. 그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간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리히텐슈타인은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라기보다는 재정 부담으로 80여명 있었던 군대를 해체(1866년)한다. 그후 세계대전 때에는 중립을 지키는데, 오스트리아의 역사에 휘말려서 좋았던 적이 없었던 리히텐슈타인은 스위스와 급속도로 친해진다(참조 1). 1923년 스위스와 관세동맹을 체결하면서 화폐도 스위스프랑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진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아무래도 스위스의 리히텐슈타인 침략일 것이다. 국경을 구분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국경을 지키는 초소도 없다 보니 의도치 않게 스위스군이 리히텐슈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잦다. 기사에 2007년의 사례(참조 2)가 나오는데, 스위스 군의 실수(?)는 처음이 아니었다고 한다. 물론 다음 날 전화로, “미안” 하고 끝. 하지만 스위스 군의 전술 훈련은 좀 골치아픈 일이다. 기사에 나오는 1968년 사례 외에, 리히텐슈타인 기록(참조 3)에 따르면, 1956년과 1960년, 1985년에 스위스군의 훈련 때문에 리히텐슈타인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심지어 1992년에는 리히텐슈타인 땅인지 모르고 스위스군 5명이 초소를 세우는 사건도 발생한다. 이 정도 일이 발생하면 위의 미안 전화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스위스 외교부 대변인에 따르면, 그 정도의 사건일 경우 포도주 한 박스를 보내서 해결한다(참조 4). 주된 수출품이 의치(false teeth, 참조 5)인 리히텐슈타인에서 제일 재미나는 점은 아무래도 전임 공작이신 한스-아담스(Hans-Adam) 2세의 이야기일 것이다. 현재 공작에서 퇴임한 그는 UFO 신봉가로 알려져 있다(참조 6). 프랑스의 UFO 연구가 Jacques Vallée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지구상에 외계인이 존재하고 있으며, UFO 연구의 주요 후원가이기도 하다.

독일 가수들은 어째서 영어로 노래를 부르는가

예전 외국 살 때 항상 음악 방송을 켜놓곤 했었다. 기억하기로 주로 봤던 채널은 막 발족했었던 MTV France하고 이탈리아의 DeeJay TV였는데, 당연히 유럽 차트가 실시간으로 올라왔었다. 자기 나라 차트야 자기 나라 가수들 위주로 차트가 짜이는데, 서로서로 근처 큰 나라 차트도 알려주는 점이 재밌었다. 특징을 생각해 보면 아래와 같다. 첫 번째. 미국 혹은 영어권 아티스트들은 어느 나라 차트에나 반드시 들어간다. 굳이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영국 차트 또한 비-영어권 노래가 올라온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두 번째.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로망스 언어군 국가의 가요 순위는 대체로 자국 가수들, 혹은 자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외국 가수들(대부분은 프랑코폰 국가들이다)과 영어권 출신 가수 위주로 짜여져 있다. 세 번째. 독일이 정말 특이했다. 당연히 독일 가수들이 차트를 많이 차지하기는 하는데, 그들 중 다수는 영어로 노래를 불렀다. 왜죠? 당시에도 궁금했었다. 대중가요 한정으로, 유독 독일 가수들이 독어로 노래를 부르지 않고 영어 노래를 불렀기 때문인데 당연히, 영어권 시장에도 판매를 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여러분들 기억나는 독일어권 가수가 있으신가? 거의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이니그마? 이들은 영어와 불어로만 노래를 불렀다.) 그러니 마뜩찮다. 단순히 시장성만 보고 영어 음반을 만들지는 않겠거니 싶은 것이다. 물론 불어권과 이탈리아어권 역시 영어 노래를 제작하는 아티스트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주류라고 하기는 힘들다. 즉, 대중가요는 기본적으로 자기 언어권을 대상으로 한다. K-Pop 또한 처음에는 한국어 위주였다.

베사라보 사건(1920)

사진 속의 인물은 Marie-Louise Victorine Bessarabo(1868-1931), 여러가지 필명을 갖고 있다. Héra Mirtel, Juliette de Boulogne, Juliette de Lotus이 있으며, 19세기-20세기 동안 상당히 여러가지 타이틀을 가졌던 인물이다.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운동가이자 왕당파(뭔가 궤가 안 맞는 느낌?), 트레바리 클럽장(…salonnière), 주식시장 작전세력(!) 등인데 제일 유명한 타이틀은 남편 살인자였다. 오늘의 주말특집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녀의 일생에 남편이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은 자살이고 다른 한 명은 그녀가 스스로 자신이 어쩌다(!) 죽였다고 자백했다. 다만 당시 프랑스 시경은 첫 번째 남편도 그녀가 죽인 걸로 여기고 있었다. 어떻게 걸렸을까? 남편 시신을 접어서 포장하여 소포(트렁크)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그녀 인생이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젊었을 때 멕시코시티에 살았는데 그때부터 유명했다고 한다. 한 남자는 사랑을 애걸했다가 거절받아서 자살하고 다른 한 남자는 그녀의 사주로 시체로 발견됐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나이가 두 배는 많은 사업가를 만나서 결혼하는데… 1904년 파리로 이주하여 독서클럽을 하나 연다. 그녀의 로맨스 소설은 어느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독서클럽은 연애클럽과 비슷한 느낌? 여기서 여러 사람들을 사귀었고 남편은 그냥 방조했다고 한다. 그러니 아예 남편을 없애버리자는 논리가 나오는데(응?) 1914년의 1월의 어느 날 밤, 갑자기 그녀는 하녀를 시켜서 수프를 남편에게 주라고 명한다. 그런데 순진했던 이 하녀는 남편에게 가서, 주인마님이 뭔가 수프에 넣었다 말했고, 남편은 이 수프를 먹지 않았으며 나중에 화학자에게 조사를 의뢰했다. 역시나 독이 들어있었지만 떠들썩해지는 걸 원치 않았던 남편은 그냥 놔뒀다. 하지만 그해 5월,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을 맞은 채로 첫 번째 남편은 즉사했다.

Years and Years (2019)

아마 보신 분들 많으리라 생각하는데(한국에서는 왓챠에 있다, 참조 1) Years and Years는 상당히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다 준다. 우선 엠마 톰슨 누님을 오래간만에 보니까 참 좋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많이 들어있다. 엠마 톰슨이 맡은 비비안 루크의 모델은 따로 있지 않다. 아래 사진만 보셔도 알 수 있을 텐데 영국독립당 아니 브렉시트당의 당수 나이절 패라지이다. 물론 모델이 패라지만은 아니다. 왠지 모르게, 해리포터 이후 악역의 상징 혹은 서유럽 극우파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옅은 금발은 네덜란드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혹은 프랑스의 마린 르펜을 떠올리게 하고 거침 없는 언변은 보죠 혹은 트럼프를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방송에 나와 I don’t give a f-word를 말한 까닭에, 정당 이름을 Four Star Party라 짓는데, 이건 아무래도 이탈리아의 Movimento Cinque Stelle(5성운동)을 본딴 듯 하다. 그리고 이 정당은 다른 극우 정당들처럼, “공개적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님들이 항상 얘기하는 그것”을 실천한다. 공영방송을 없애고, IQ 기준을 통과한 사람들만 투표권을 주며, 범죄율에 따라 지역을 구분하여 봉쇄시켜버리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영국이 발명한 최고의 히트 상품(참조 2)인 수용소를 건설하여, 눈에 거슬리는(비판자, 이민자, 난민 등등) 자들을 모두 한곳에 모은다. 우파와 중도파는 항상 술집에서 얘기하던 걸 실천해주니 그녀를 지지한다. 좌파는 그동안 기득권화된 민주주의를 깨뜨리는 것이니(극중 이디스의 행동을 보시라) 그녀를 지지한다. 결론은 비비안 루크의 다우닝가 10번지 행이다. 그래서 마지막 에피소드의 급전개가 좀 의아하기는 하다. 뭔가 거슬리는 사람들 모두 싸그리, 어디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리는 것이, “국민이 바라던 일” 아니었나? 언제나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는 것이 국민이라면 납득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블랙 미러 시리즈를 닮은 이 드라마가 뭔가 시즌 1의 메인 빌런을 없애는 식으로 끝나는 건 좀 유감이다. 정치 엔터테이너를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은 그대로 의미가 있다고 해도, 비극으로 끝나는 편이 더 맞잖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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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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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 퀴리

“우리 집안 사람들 모두 노벨 상을 탔는데, 저만 못 탔어요.” 주말 특집, 퀴리 부인의 막내 딸 에브 퀴리(Denise-Ève Curie , 1904-2007)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노벨 화학상을 받았고 언니와 형부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심지어 남편도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 자기만 못 받은 것이다. 물론 농담으로 하는 말이다. 세월이 흘러 퀴리라는 성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퀴리의 집안 사람들은 정말 거의 백 퍼센트 이과다. 오늘의 부인공 에브 퀴리는 아무래도 어머님 사랑(…압박? 그녀가 태어날 때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때문인지 고등학교(참조 1)는 이공계였지만, 그녀의 특기는 아무래도 인문학과 음악이었다. 그래서 피아노 연주회를 꽤 다녔다고 하는데… 어머니 마리 퀴리를 대동하고 다닌 1921년의 미국 여행이 히트였다. 미국인들은 이 프랑스 젊은 미녀에 열광했고 그녀를 “the girl with radium eyes”라 불렀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 떴던 건 어머니 사후 작성한 마리 퀴리 전기였다. 어머니를 평생 모셨고 폴란드 친척들도 만나고 했기 때문에 워낙 내용이 풍성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만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그녀는 곧바로 샤를 드 골의 자유프랑스에 합류, 종군 저널리스트로 활약한다(비시 정부는 그녀의 프랑스 국적을 박탈한다). 북아프리카와 소련(특히 1942년의 모스크바 총공세), 이집트와 리비아, 이란, 자유중국, 폴란드 저항군까지 종횡무진, The Atlantic Monthly에 정기적으로 “French Women and the War”의 제목으로 칼럼을 기고했다고 한다. 그래서 드디어 이 짤방의 사진(참조 2)을 설명하자면, 1941년 미국 Vogue 지에 실린 그녀의 모습이다. 안 꾸미는 걸 좋아한다지만 아마 퀴리 가족 중에서는 제일 많이 꾸미는 구성원이었을 것이다. 다만 이 복장으로 속으시면 안 된다. 위에 적었듯이 그녀는 정력적으로 반-독일 활동을 펼쳤고, 1943년부터 전개된 이탈리아 작전에 의무대 자원대원으로 입대한다.

국왕의 옆자리

중국과 우리나라 아니, 다른 동아시아 국왕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기본적으로 국왕이 앉을 때는 배북남면(背北南面), 즉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며 앉는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국왕 기준에서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더 높다는 개념이 나온다. 좌상우하(左上右下, 참조 1)가 적용되는 것이다. 다만 어좌(throne)는 1인용, 왕세자가 만약 같이 있다면 국왕 기준에서 왼쪽에 서거나 앉는 것이 맞을 일이다. 그러나 왕비가 등장한다면 어디에 앉을까? 제아무리 검색해봐도 나오지를 않아서 시원하게 해결은 못 했지만, 서양의 국왕들은 국왕 기준 오른쪽에 왕세자를 두고, 왼쪽에는 배우자를 두고 앉는다. (서양의 군주들이 배북남면을 지킬 것 같지는 않다.) 출전이 위키피디어라서 좀 그렇기는 한데, 의회 개회식을 할 때의 사진을 보면 찰스 왕세자는 국왕 엘리자베스보다 밑단에 앉지만, 국왕의 오른쪽에 앉는 것으로 되어 있다(참조 2). 실제로 국왕의 오른쪽은 중요한 자리다. 식사 테이블에 앉을 때에도 당연히 국왕은 중심에 앉는데, 관행적으로 guest of honour는 국왕의 오른쪽에 앉는다(참조 3). 첫 번째 코스가 돌 때 국왕은 오른쪽 손님에게 말을 걸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더 찾아보자면 영국만 그렇지 않다. 어지간한 유럽의 군주국들은 국왕 기준에서 왼쪽에 배우자(consort)가 앉는다. 이게 영국의 경우 나중에 찰스 왕세자가 국왕에 오른다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현재의 필립공의 호칭은 prince consort이다. 찰스가 국왕이 된다면 찰스 기준에서 왼쪽에 콘월 공작부인이 queen consort로서 앉아야 하는데, 그녀가 과연 그 호칭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다. 만약에 말이다. 콘월 공작부인이 queen consort를 인정받지 못 한다면(가령 princess consort, 참조 4) 그녀는 찰스의 왼쪽에 앉을 수 없다. 한 단계 낮은 곳으로 가서 앉거나 서 있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엘리자베스 국왕께서 콘월 공작부인을 이제는 좀 받아들이셔도 되잖을까…
역사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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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라고 말하는 방법

브라질에서 내가 맨 처음 가졌던 포르투갈어에 대한 호기심은 다름 아닌 “yes”를 의미하는 “sim”이었다. 분명히 “예”의 의미라고 배웠는데,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도대체 sim을 거의 안 쓰는 것이었다. 외국인인 내가 sim을 많이 쓰는 느낌? 거기 사람들은 “예”의 의미로 거의 대부분 “isso/이수”를 사용한다. 그래서 하루는 우버를 타다가 운전사에게, 도대체 sim이 있거늘 왜 사람들이 isso만 사용하느냐고 따지듯 물었던 적이 있는데(그래, 내가 잘못했다), 답변은 “그냥 그렇게 써 왔다”였다. 물론 그게 정답이다. isso는 포르투갈어에서 “yes”를 뜻하지 않고, “그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실제 회화에서의 의미는 “그렇지” 정도의 뉘앙스다. 어째서, 포르투갈어에서 sim을 잘 안 쓰느냐, 하는 이 의문은 사실 간단하게 해결된다. 조상 격이랄 수 있는 (고전) 라틴어에 “yes”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로망스어 군은 나름대로 “yes”에 해당하는 단어를 발달시켰고, 결국은 라틴어의 sic이 채택되어 남쪽은 si가 대세를, 갈리아 쪽은 oui/oc이 대세를 형성한다. 그렇다면 “no”라는 단어(non)가 있는 라틴어는 “yes”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크게는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질문에 나오는 주된 동사를 되풀이한다. “빌라를 산다며?” “사지.”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차피 불어를 제외한(참조 1) 현대 로망스어는 동사 하나만으로 주어를 드러낼 수 있으므로, 지금도 쓰인다고 할 수 있겠다. 두 번째, 긍정적이라는 의미를 가진 다른 단어를 사용한다. 가령 “사실이야(ita 혹은 ita vero)”라고 하면 된다는 의미다. ita vero도 귀찮아서 ita라 줄여 말한다는 의미인데(참조 2), 그것도 맞습니다. 맞고요. 그러고보니 현대 이탈리아어에도 남아 있는 표현이다. è v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