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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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rireb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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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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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직업
빛이 들어오는 오후의 사무실. 노트북이 편해 모니터는 보드판처럼 사용 중. 오늘은 자발적 주말 출근을 했고 주말의 합정은 사람이 많아서 정신이 없다. 딱히 들을만한 곡이 없거나 찾아 듣기 귀찮을 땐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틀어주는 노래를 듣는다. 어제는 강원도 양양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국도를 통과하며 만난 설악산은 장엄했고, 우리는 가보지도 않은 중국을 운운하며 마치 중국에 온 것 같다며 연신 감탄했다. 킨포크 같은 삶을 살고 있던 취향 좋은 인터뷰이를 만났고, 좀 더 오래 머물지 못함이 아쉬웠다. 여름의 다시 찾을 그녀의 농장과 양양바다에서의 서핑을 기약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렇게 가기는 아쉬우니까. 다시 35분쯤 달려 낙산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발이 푹푹 잠기는 모래사장을 걸었다. 흐린 날 덕에 경계가 없는 하늘과 바다를 감상할 수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낙산사는 아름다웠고, 강원도엔 벌써 매화가 피었다. 속초에서 저녁으로 생선구이를 먹고, 유명하다던 닭강정을 손에 쥐고 돌아왔다. 서울로 다시 돌아오는 길엔 빅뱅, 샤이니, 인피니트 같은 대중가요를 크게 틀어놓고 많이 웃었다. 자정이 다다른 시각 도착한 서울의 밤. 모임 별을 들으며 한강을 건넜다. 반짝이는 서울의 야경과 차안을 가득 메운 '태평양'이 주는 완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천 십오년 삼월 이십일. 청춘이라는 터널을 지나는 스물다섯의 나를 결코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매달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나의 '일'에 대해 생각했다. 곧이곧대로 영향을 받는 사람인지라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나의 오늘과 내일이 확연히 다르다. 다행인 것은 이 일을 하면서 대부분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 좀 더 모험을 할 필요는 여전히 있지만. 늘 예측할 수 없고 매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하고, 마감에 시달려야 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내 일을 사랑하고 있다.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과 확신이 이제서야 조금씩 생기고 있다. 그러니 자, 이제 녹취(제일 하기 싫은 일)를 풀어볼까.
이별의 미덕
2015년 그래미 시상식 4관왕의 빛나는 샘 스미스는 말했다. “저를 차서 마음을 아프게 했던 남자에게 감사드립니다.당신 덕에 이 앨범을 만들었고, 그래미를 네 개나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가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지나간 이야기를 들추다 이런 얘길 한 적 있다. “나는 가끔 나를 차준 애들이 고마워.” 별 미친 소릴 다 한다는 소릴 들었지만 어쨌든 그건 진심이었다. 사랑의 갑을 관계에서 항상 ‘을’이었던 나는, 늘 차이기 부지기수였다. 그렇지만 이런 내 위치를 굳이 바꾸고 싶지 않았다. 나는 비록 ‘을’이었지만 후회 없는 사랑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최선을 다해 붙잡았으며, 최선을 다해 이별했다. 그렇다 보니 막상 이별 후엔 담담했다. 아프지 않아 좋았고, 더 이상 아플 일이 없어 기쁘기까지 했다.후회가 남는 건 오히려 상대 쪽이었다. 헤어지잔 말을 고한지 몇 달도 채 못 가 온갖 자질구레한 변명들로 나를 잡으려 애썼고, 어떤 새벽, 흔한 구남친 멘트를 날리며 자신의 감정을 구구절절 고백하곤 했다. 그럴 때일수록 나는 묘한 희열을 느꼈지만, 그들을 다시 만나거나 하지 않았다. 한 번 깨진 사랑은 다시 붙을 수 없다는 걸 이미 첫사랑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과정이 중요하듯 이별하는 과정 또한 중요하지만, 요즘의 이별은 몇 번의 손가락질로 단번에 끝이 나고 만다.사랑이 너무나 가볍게 여겨지는 요즘, 진정한 사랑이란 뭘까 자주 생각해본다. 소설가 김연수는 사랑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함께 빠져들지만, 모든 게 끝나고 나면 각자 혼자의 힘으로 빠져나와야 하는 것. 그 구지레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뼛속 깊이 알게 되는 것. 그게 사랑이다.’ 그렇게 보면 이 세상 모든 이별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별을 하고 나서야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뼛속 깊이 알게 되니 말이다. 컨셉진 vol.23 <연애의 온도> 글, 사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