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
by
Woo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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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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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 The Tree of Life - Gustav Klimt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질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은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위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백석 시인의 시만 계속 올리는 것 같지만 상관없겠죠? 처음 이 시를 교과서나 참고서에서 보고는 길고 어려운 제목에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그냥 공부할 하나의 지문에 불과했는데 지금와서는 찾아읽게 되네요. 사실 미술이나 시나 되게 얕게만 알고 있어서 이 포스팅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아요 ㅎㅎㅎㅎ; 시를 찾으면 그림을 매치하기 어렵고 그림이 맘에 들면 시를 찾기가 어렵고 그래도 꾸역꾸역 하고 있습니다.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를 보면서 갈매나무와 같은 생명력, 희망을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클림트하면 관능, 화려함 (금삐까뻔쩍하죠)이 떠오르는데 사실 금이라는건 영원을 상징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따뜻한 위안보다는 차가움이 느껴지는 소재/제재가 아닌가 하네요. 하지만 그 재료로 클림트는 관능과 생명력을 담아내고 그 이질감이 우리에게 크게 와 닿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차가움과 희망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과 잘 어울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보다 사실 나무에 대해 다루는 그림중에 아는 그림이 거의 없다보니.....ㅠㅠ 어쨋든 시와 그림이 좋으니 즐기시길 바랍니다 :)
백석 - 내가 생각하는 것은 / Vincent van Gogh - View of Paris from Theo's apartment in the rue Lepic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디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우에서 마른 팔뚝의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다닐 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 제가 백석 시를 좋아하는 이유인 방언을 사용한 낯설면서 따뜻한 의성어와 외롭고 쓸쓸한 감정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문체 즉, 토속적이면서도 모던한 백석 특유의 색깔이 잘 드러나있는 시입니다. 그림은 반 고흐의 View of Paris from Theo's apartment in the rue Lepic 인데요 흔하게 정열의 화가, 해바라기 등으로 잘 알려져있지만 고흐의 그림에는 슬픔이 들어있는 것 같아요 그 참을 수 없는 좌절과 슬픔이 고흐에게는 끓어오르는 듯한 열정으로 튀어나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백석 -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 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 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아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 오늘도 제가 좋아하는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 를 가지고 왔습니다. 아마 언어영역 공부하면서 한번씩 읽어보시지 않으셨을까 생각해봅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이 구절을 읽을때마다 가슴이 짠해지네요 그림은 최석운 화백이 그린 '흰 바람벽이 있어' 입니다. 백석의 시를 읽고 모티브로 삼아 그린 그림이에요 너무 직설적이지만 그만큼 잘 어울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