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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버해협을 횡단하다, 롤렉스 오이스터
지금이야 롤렉스가 오메가보다 한단계 더 높은 프레스티지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지만 100년전만해도 이미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브랜드 인지도를 보유한 오메가에 비해 롤렉스는 1912년에 이르러서야 자체 기술력으로 시계를 만들기 시작한 중소기업에 불과했습니다. 스위스의 자그마한 시계제조회사였던 롤렉스를 단숨에 오메가와 견줄만한 명품 시계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은 역사적인 사건. 롤렉스 오이스터의 도버해협 횡단입니다. 1908년 영국 런던에서 롤렉스를 창업한 독일 출신의 사업가 한스 윌스도르프 (Hans Wilsdorf) 는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손목시계의 편의성에 주목하였고 손목시계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1910년 항해용 정밀 시계에만 부여되던 크로노미터 (C.O.S.C) 인증을 손목시계 최초로 획득하며 롤렉스라는 브랜드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당시 손목시계에는 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주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시간을 확인했던 회중시계에 비해 활동성이 중요한 손목시계는 충격을 받거나 물이 들어가면 자주 고장나는 단점이 있었는데 장 에그라社의 무브먼트 도입과 자체 기술개발로 충격문제는 극복했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방수 문제는 손목시계 대중화에 큰 장애가 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던 한스 윌스도르프는 수소문끝에 시계 케이스 제조회사인 오이스터社가 개발중이던 방수케이스를 발견합니다. 이미 자체적으로 방수 시계 케이스를 개발하고 있었지만 수많은 실패를 겪었던 윌스도로프에게 완벽한 방수성능을 자랑했던 오이스터社의 방수케이스는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었습니다. 방수케이스 성능의 우수성을 확인한 윌스도르프는 오이스터社를 인수&합병하여 방수시계 제작을 위한 기틀을 마련합니다. 1926년 롤렉스사는 특허를 획득한 일체형 방수 케이스와 습기차단을 위해 스크류 다운식 트윈록 용두를 장착한 롤렉스 오이스터 모델을 출시합니다. 오이스터에서 최초로 선보였던 방수기술들은 현재까지도 시계 방수기법의 표준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을 정도로 획기적이었습니다. 염원이었던 방수시계 출시에 성공했지만 홍보 방안을 고민하고 있던 그때 윌스도르프의 눈앞에 한 신문기사가 눈에 띕니다. '메르세데스 그라이츠라는 여성 속기사가 도버해협을 수영으로 건넌다' 기사를 본 윌스로르프는 그녀를 찾아가 한가지 제안을 하게 됩니다. "이 시계를 손목에 차고 도버해협을 건너면 막대한 돈을 지급하겠소" 시계를 차고 수영을 하면 불편하다는 그녀의 말에 윌스도르프는 도버해협을 건너다 실패해도 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고 그녀는 제안을 수락합니다. 마침내 세계 최초 수영으로 도버해협을 횡단하는 역사적인 기록이 쓰여질지도 모르는 1927년 10월 21일 메르세데스 그라이츠(Mercedes Gleitze)는 15시간 15분에 걸쳐 도버해협 횡단에 성공하였고 이 역사적인 순간, 그녀의 손목에서는 15시간동안 물속에서도 변함없이 시간을 표시해주던 오이스터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도버해협 횡단 성공 한달후인 11월 27일, 롤렉스는 영국의 일간지 'Daily Mail' 1면에 그라이츠와 함께 도버해협 횡단에 성공한 오이스터의 우수성을 알리는 대대적인 광고를 실시합니다. 이 광고로 인해 롤렉스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시계 기술을 선도하는 1등 브랜드로써의 기술력과 명성을 인정받게 되고 좋은 성능의 시계를 만드는 회사에서 명품 브랜드로써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됩니다 마케팅의 귀재와 기술력이 결합한 롤렉스의 명작. 롤렉스 오이스터였습니다. ------------------------------------------------------------------------------------ 사진1. 그라이츠와 도버해협을 함께 횡단한 롤렉스 오이스터 사진2. 메르세데스 그라이츠의 사진 사진3. 도버해협을 항해하는 그라이츠 사진4. 'Daily Mail' 1면에 실린 오이스터 광고
유명 랜드마크들 완공된 모습만 알고 있는 우리들… 공사중이 였을땐 어떻게 생겼을까? [뉴욕, 자유의 여신상 (Statue of Liberty) - 2편]
파리에는 에펠탑.. 리우데자네이루에는 예수상… 센프란시스코에는 골든게이트 브릿지… 뉴욕에는 자유의 여신상.. 등등 우리가 흔히 아는 유명 랜드마크들… 완공된 모습은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만큼 멋있다. 하지만 우리는 완공된 모습만 알고 있을뿐… 그 랜드마크를 세우기 위해 힘들게 고생하며 만들었던 사람들 대해선 한번도 생각 해본적이 없을것이다. 과연 유명 랜드마크들의 공사 과정은 어땠을까? 설계자: Frédéric Bartholdi 기간: 1876- 1886 횃불들고 있는 손은 1876년에 열린 Centennial Exposition에 전시 된적이 있었고 1876-1882년에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공원에 전시됬었다. 자유의 여신상 머리 부분은 1878 Paris World's Fair에 전시 됬었다.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 100주년 축하하기 위해 보내온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는 1884년에 놓여졌고 7월 17일, 1885년도에 분해해서 배에 실어 뉴욕으로 무사히 가져왔다. 자유의 여신상은 조립식 구조물이다. -------------- 여기에 있는 글은 제 개인적인 생각 + 제가 한국말로 번역해서 쓴 글입니다. 제가 쓴 글을 조금이라도 언급해서 쓰실 경우 꼭 외부/특히 블로그로 들고 가실때 출처 밝히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