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n Ske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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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sik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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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코 미술의 에로티시즘 -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ucher)의 <엎드려 있는 소녀>
누드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 주로 여성의 신체가 가진 미를 표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왔는데요..  지금보다 훨씬 노출이 적고 인터넷도 없고 매스 미디어가 없던 시절에 젊은 여성의 나신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겠죠?  더구나 이상적인 미의 기준에 맞춰 손에 잡힐 듯이 그려진 눈부신 나신을 보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었을 것이라 상상이 되네요.    수백년 동안 그림은 주문자가 있고, 거기에 응해서 화가가 작업을 하다보니 주문자의 취향에 맞춰 작품이 제작되었죠.  주문자는 대부분 남성이었고, 남성의 욕망과 시선에 맞는 그림을 남성 화가가 작업한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작품들이 대부분 남성적 시선에 기댄 것들을 접할 수 밖에 없는 것이구요.  많은 작품들을 감상하다보면 감상자로서의 여성들도 시선이 남성화되고 그것에 길들여지는 것을 느낄수 있어요.    누드는 (주로) 여성의 벗은 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관능미를 포함하고 있고,  그려진 의도에 따라 혹은 감상자의 주관적 가치관에 따라 단순한 에로틱한 그림이냐 포르노그라피냐의 경계에 놓이게 되죠.  이 두가지를 명확히 구분하는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죠.. 전적으로 감상자의 주관에 달렸다고 보는 것이 맞을거에요. <Reclining Girl>, Francois Boucher,1751, Wallraf-Richartz Museum in Cologne 위의 작품이 그려진 시기는 로코코 시대.  밝고 영롱한 여성적이고 감수성이 넘치는 작품들이 많이 나타난 시기죠.  프랑수아 부셰는 루이 15세 치세에서 마담 퐁파두르에게 총애를 받던 인물화의 대가였던 화가구요.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화를 비롯한 궁정 초상화나 많은 누드 작품을 남겼는데요.. 당시 미적 기준에 충실한  밝고 통통하고 사랑스러운 여성의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현재 독일 쾰른의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에서 볼수 있는 위 작품은 가슴조차 노출되지 않은 누드이지만  강한 에로틱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요.  전체적으로 은은하고 부드러운 황금빛 색채가 감상자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여 무장해제를 시키고요.. '셰즈 롱그(chaise-longue)'라 불리는 긴 의자에는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실크 커버와 벨벳으로 덮여있어서  벨벳의 그 형용하기 어려운 부드러운 촉감을 아는 감상자들에겐 자연스레 소녀의 몸에서 느껴질 부드러움이 연상이 되지요.  의자 밑에 떨어져 있는 장미에서는 이미 시들어버렸지만.. 은은한 장미향이 소녀의 주변을 감쌀 것으로 생각되고요..  그리고.. 그간의 누드 작품들은 대부분 신화나 역사적인 장면을 차용하여 현실세계에서 의도적으로 유리시킨 시공간을 만들어냈는데  부셰의 이 작품은 바로 당대의 현실속의 소녀를 묘사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구요.  (그림 하나 올려놓고 글이 너무 길어져서 중간에 제가 좋아하는 강아지 그림을 넣었는데.. 너무 뜬금없나요? 이번엔 실험적으로 넣어봏께요 ㅎㅎ) 이 작품에서 가장 에로틱한 요소는 물론 소녀의 포즈일 거에요.  다른 누드에서 잘 나타나지 않는 자세인데 화면 중앙에 위치한 소녀의 풍만한 엉덩이로부터 시선은 자연스레  넓게 벌린 다리선을 따라가게 되죠. 더우기 오른쪽 다리는 쿠션에 올려 놓고 있어 벌어진 정도를 더욱 심하게 강조하고 있구요.  이런 자세는 여지없이 연인의 성적 접촉을 적극적으로 고대하는 모습을 나타내기에 지극히 에로틱한 포즈라 할수 있겠죠..  모델이 된 소녀는 루이즈 오머피라는.. 당시 14세의 소녀입니다. 매우 가난했던 구두공 집안의 딸로서 14세때부터 모델일을 시작했고요..  나이를 알고 나니 위의 작품은 당대의 로리콘으로 불편한 느낌이 드실수도 있는데요.. 당시에는 로리콘의 개념이 없었을 겁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로리타> 이후에 '만들어진' 개념이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부셰를 만나기 전에 그 역사상 유명했던 남자.. 카사노바를 만났었고 카사노바의 소개로 부셰를 만나 모델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루이 15세는 굉장히 여색을 밝히는 왕이었고요.. 마담 퐁파두르는 그런 왕을 위해 "사슴정원"이라 불리는 곳을 두고  고급창녀들을 엄선해서 왕에서 진상하곤 했죠. 그래서 마담 퐁파두르의 말년은 뚜쟁이 업무가 반이었다는 얘기도 나오고요..  즉 이 그림의 모델이었던 루이즈 오머피를 에로틱하게 담은 이 작품은 루이 15세에게 진상하기 위한 작품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그녀는 루이15세의 총애하는 애첩이 되었고, 딸도 출산했습니다. 그녀의 나이 17세 때의 일입니다.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는 것인지.. 혹은 주변의 꼬드김이 있었는지.. 그녀는 마담 퐁파두르를 축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역으로 궁정에서 쫓겨나고마는 신세가 되고 말지요..  마담 퐁파두르는 당대 최고의 실세였거든요.. 루이 15세와 실제적인 육체관계는 거의 없었지만 루이 15세의 영원한 사랑이자 국정 동반자로서 흔들리지 않는 위치에 있었거든요.  많은 것을 보여주는 누드보다 저는 부셰의 이 누드화가 보다 강렬한 에로티시즘의 품은 작품이라 생각하고요..  감상자에 따라 이 그림을 저처럼 좋아할 수도 있고,  포르노를 예술로 포장한 그림이라고 싫어할 수도 있겠지요.  결국 처음에 말씀드린대로 이것은 감상자의 판단입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감기 조심하시고 잠시 에로틱한 후끈함에 몸을 덥혀 보심도~ ^^ - 혜연
여자노예는 에로틱(erotic)하고 미스틱(mystic) 하다? - 오리엔탈리즘 회화 두번째
1부에서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의 핵심 주장과 그런 근대 서양의 시각이 우리 안에 내재화되어 있어 우리 스스로를 타자화시킨다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2부는 어쩌면 1부와 순서가 좀 뒤바뀐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오리엔탈리즘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과 화가들의 태도에 대해 살펴보려고 해요. 오리엔트(Orient)라는 말은 원래 이탈리아에서 바라봤을 때 지중해 동쪽을 의미했어요. 따라서 그렇게 넓은 지역이 아니었고,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동양의 개념과 달랐지요. 구약성서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이 온 곳이 결국 유대의 동쪽지방에 해당하는 것이었죠.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확장된 동방은 오스만 투르크.. 지금의 터키 정도되는거구요.. 이런 시기를 거쳐 근세에 넘어오면서 식민 제국주의의 팽창과 함께 점차 유럽인들의 시선은 점점 동진하여 인도 중국을 넘어 우리나라와 일본까지 뻗어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자꾸 까치발을 하면서 동쪽을 바라보다보니 그들 시각에서 가장 동쪽 끝에 있는 우리나라는 극동(Far East)가 되는거구요. 이번 포스팅에서 보여드리는 노예 여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모두 19세기 유럽 화가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부분 여성들의 모습은 수동적이고 에로틱하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보입니다. 바로 위 작품처럼.. 어느 상인의 소중한 진주와 같은 눈부신 나신을 가진 여성들로 묘사됩니다. 당시 유럽인들은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오리엔트를 그렇게 보고 싶어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고 힘의 본질입니다. 그런 자기확신이 없다면 권력이 성립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유럽인들 눈에 동양은 '노예 여성'과 같이 주인에게 봉사해야 하는 존재이고 지배를 받아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났다고 믿었어요. 한없이 매력적이고 관능적이고 신비롭지만 그들은 스스로 자립할 능력이 없고 유럽의 손길을 기다리는 존재들이었죠. 유럽은 이성과 합리성 중심의 남성, 동양은 비합리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의 이미지로 세팅이 되었죠. 동양은 전제정권에 의해 폭압적인 지배를 받는 열악한 상황에 처해져 있고 유럽의 빛이 동양을 감싸안아야 한다는 자기중심주의적 해석의 결과로 나온 것이 오리엔탈리즘입니다. 동양여성의 시각으로 봤을 때는 이중적인 모욕감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이 작품들을 읽는 '동양 남성'들의 시각은 여성들을 타자의 시선으로 관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저 여성들의 입장에 자신을 이입해야 하는 상황이지요. 이 그림들의 시선의 주체는 지금의 우리가 아니라 19세기 서구인들이고, 우리는 저 그림 속의 대상들인 겁니다. 당시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의 거의 모든 화가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앙리 마티스나 살바도르 달리도 동방의 노예 여성이나 오달리스크의 모습을 작품에 남겼죠.... 당시 화가들 중에는 동양에 대해 직접 경험하고 사실주의적 색채를 띤 작품을 남긴 작가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는 대중이 원하는 작품을 그려야했고 그 결과로 나온 것들이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린 일련의 작품들이죠.. 상상 속에서 키워온 동양의 판타지와 남성적 관음주의, 지배성의 욕망을 이미지에 투영시켜 그려낸 유럽인의 로망이라고 할수 있을 것 같네요. 재밌는 것은 동양의 모습이라고 그린 대부분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여성은 전형적인 유럽 여성의 육체라는 거죠. 시간과 장소는 오리엔트를 빌려오고 그 안에 배치하는 것은 백인 여성.. 다른 시공간을 빌어 현재의 유럽이 아니라는 면죄부를 얻어 부담감없는 편안한 심리로.. 그 안에 등장시키는 것은 은근 슬쩍 동시대의 여성들을 끼워넣어 도랑치고 가재잡는... 이중적인 지배욕을 만족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두번에 걸친 오리엔탈리즘 회화 소개로 아마 웬만큼 이 주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작품을 훑지 않았나 싶습니다. 비슷한 계열의 오달리스크라는 주제가 남아 있지만.. Slave market이라는 테마가 역시 오리엔탈리즘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로 마무리할께요~ 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