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jeter2's Collection
by
hyunjeter2
h
hyunjeter2's Collection
0 Followers
넌 쏠로니까 빠져!
어제 강정호 선수의 4호 홈런이 터졌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전설 로베르토 클레멘테 선수에 관한 카드를 썻었죠. 아직 읽으신 분이 없으시다면 여기로 http://bit.ly/1G9b8gB 가셔서 한번 읽어보세요! 그러면 오늘은 클레멘테 선수 덕분에 목숨을 건질수 있었던 두 야구 선수에 대해서 얘기해보려 합니다! 먼저 지금 피츠버그의 2루수를 맡고있는 강정호 선수의 동료, 닐 워커 선수...가 아닌 그의 아버지 토미 워커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당시 몬트리올 엑스포스 투수로 활동 하고 있던 토미 워커는 클레멘테 선수와 함께 푸에르트리코 에서 윈터리그를 뛰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인해 1972년 대지진이 일어난 니카라과를 돕기위해 구조물품 전달작업을 하던 클레멘테 선수를 옆에서 꾸준히 도왔습니다. 1972년 12월 31일 비행기는 떠날 준비를 맞췄습니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일보직전 까지 워커는 클레멘테 선수와 니카라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예정이였지만...새해 전날 출발인점이 맘에 걸렸는지 클레멘테 선수는 당시 솔로였던 토미 워커가 새해는 즐기면서 보냈으면 했다고 말했답니다. 그래서 끝까지 따라갈려던 워커는 결국 미국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행기는 추락하면서 로베르토 클레멘테 선수는 사망하였고...토미 워커는 극적으로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아버지를 살게해준(?) 클레멘테 선수의 혼이 담겨있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현재 주전 2루수로 뛰고있습니다. 두번째로 목숨을 건진(?) 선수는 바로 매니 상귈렌 선수 입니다. 1940년 부터 50년간 중남미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스카우트한 피츠버그는 클레멘테 선수 뿐만 아니라 파나마 출신 포수로써 올스타에 세차례나 뽑힌 매니 상귈렌 선수 또한 피츠버그의 대표선수로 자리매김 하였죠. 이 선수도 평소 클레멘테 선수와 친분이 두텁고 클레멘테 선수를 존경하는 지어라 그의 봉사활동에 동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대지진이 일어난것을 안 후 부터 클레멘테 선수와 함께 나카라과행 준비를 같이 하였죠. 그런데 이게 웬일? 비행기가 떠나기로 한 당일 상귈렌은 자신의 자동차 키를 찾지를 못했습니다. 아침부터 계속해서 찾아봤지만 결국 키를 못찾고 비행기를 노치고 맙니다. 그리고 그 비행기는 추락하면서 매니 상귈렌 선수는 목숨을 구하게 되죠. 자동차 키 하나를 잃어버려서 목숨까지 구하게 된 매니 상귈렌 선수! 하지만 그는 클레멘테 선수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않은 채 바로 비행기가 추락한 곳으로 가서 물속에 뛰어듭니다. 그때까지 찾지 못했던 그의 멘토이자 친구였던 클레멘테의 시체를 찾기 위해 간거였습니다. 결국 클레멘테의 시체는 끝까지 찾지 못했지만 상귈렌 선수는 1980년 까지 피츠버그 한팀에서 만 선수생활을 이어가며 통산타율 .296, 통산안타 1500개를 기록하며 은퇴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한순간으로 살아남은 두선수 토미 워커와 매니 상귈렌! 클레멘테의 비극적인 죽음뒤에 숨겨진 스토리들이였습니다! 더 많은 메이저리그 소식들이 궁굼하시다면! [메.읽.남. (메이저리그 읽어주는 남자) 컬렉션: http://www.vingle.net/collections/2222447]
인디언스 선수단 단체 삭발!
메이저리그 구단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선수단이 단체로 삭발을 했습니다! 부진한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 한 행동인가요? 아닙니다. 클리블랜드 선수단의 감동적인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죠! 마이크 아빌스 클리블랜드 3루수에겐 아주 예쁜 쌍둥이 딸 둘이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에 동생인 아드리아나에게 암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4살밖에 안된 아드리아나는 백혈병으로 현재 치료를 계속 받는 중이죠. 딸이 암판정을 받고 나서 마이크 아빌스는 한동안 경기에도 못나가고 계속해서 딸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는 매일매일이 고통이였고 사랑스러운 딸이 힘든 치료를 견뎌나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던 그에게 클리블랜드 선수단이 특별한 선물을 주기로 결심합니다. 첫 스타트는 역시 다름 아닌 클리블랜드 팀 동료 선수들 이였습니다. 그들은 팀동료가 고통스러워 하는것을 옆에서만 지켜보지 않고 직접 나서서 삭발을 하면서 아드리아나의 빠른 쾌유를 기원했습니다. 선수단이 시작한 삭발은 구단전체로 퍼집니다. 감독 및 코칭스태프 뿐만 아니라 프런트 직원들, 거기에다 구단주인 제임스 돌란도 선수단이 시작한 일에 감동을 받아서 동참을 합니다. 그는 아빌스와 그의 가족들 전체가 힘을내서 암을 이겨내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선수들의 선행이 급속도로 퍼지자 팬들까지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팬들도 자신들의 머리를 밀고 인증샷을 SNS에 올리면서 아빌스 선수에게 응원의 메세지를 함께 전달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클리블랜드 선수단, 구단 직원들, 및 팬들은 "Team Adriana" 를 결성하여 다함께 아빌스 선수의 딸 아드리아나의 쾌유를 빌었습니다. 팀 아드리아나는 이계기를 통해 백혈병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램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아빌스 선수는 5월 부터 다시 경기에 나서기 시작하였습니다. 다행이 아드리아나의 치료는 잘 이뤄지고 있고 지금은 현재 집에서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팀 동료인 댄 머피는 아드리아나가 이것을 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알았으면 좋겠고 희망을 잃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인디언스 프랭코나 감독은 이 모든것이 아빌스 선수에게 힘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야구선수를 떠나서 인생에서 중요한것은 안타와 에러 뿐만아닌 더 많은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직 4살밖에 안된 어린아이가 백혈병 때문에 고생한다니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네요. 아드리아나의 빠른 쾌유를 바라고 아빌스 선수 또한 힘을내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안겨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Go Team Adriana! 더 많은 메이저리그 소식들이 궁굼하시다면! [메.읽.남. (메이저리그 읽어주는 남자) 컬렉션: http://www.vingle.net/collections/2222447]
피츠버그의 전설: 로베르토 클레멘테
요즘 강정호 선수가 피츠버그 4번타자로 연이어 출전하면서 좋은활약을 보여주고 있어서 국내 메이저리거 팬들을 설레게 하고잇죠! 그런데 이것을 적는 순간...이게 웬일! 강정호 선수가 2점홈런을 쳤습니다! 더욱더 기분좋게 카드를 쓸수 있을것 같아요! 그러면 오늘 카드내용은 바로 피츠버그의 레전드 로베르토 클레멘테에 관한 내용을 써볼려고 합니다. 클레멘테 선수는 피츠버그 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전체를 대표하는 레전드 선수입니다. 그는 메이저리그 1세대 중남미 출신의 선수로써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뛰고있는 중남미 출신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죠. 클레멘테 선수는 통산타율 .317 그리고 통산안타 3000개를 때리면서 1955년 부터 1972년까지 피츠버그 한팀에서 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그는 야구가 열리지 않는 겨울시즌에는 항상 봉사활동에 열중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죠. 그리고 그는 1972년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니카라과에 구호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당시 부실했던 비행기는 결국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비행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다 사망하였고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38세라는 젊은나이에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아쉽게도 생을 마감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야구 그리고 클레멘테 라는 사람을 더이상 볼수 없다는 사실에 미국전체가 슬픔에 잠깁니다. 그는 바로 이듬해 1973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게 됩니다. 원래 은퇴 후 5년이 지나야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자격이 생기지만 클레멘테 선수에게만은 예외 였습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는 클레멘테 선수를 기념하기 위해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을 만들어서 매년 사회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메이저리그 선수에게 이 상을 수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프시즌 이면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것으로 알려진 LA 다저스의 커쇼 선수가 2012년에 이 상을 받기도 하였죠. 피츠버그에 가시게 되면 클레멘테 선수의 흔적을 여러 군대에서 찾아볼수 있습니다. 먼저 철의 도시 (Steel City) 라고 알려진 피츠버그에는 다리가 많은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철의 도시가 아닌 다리의 도시 (City of Bridges) 또는 다리천국 (Bridge Heaven) 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중에 가장 유명한 다리는 저위에 사진에 보이시는 로베르토 클레멘테 다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다리는 엘러게니 강을 가로 지르고 그리고 또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미식축구 팀인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모든 차량출입이 통제됩니다. 그래서 파이어리츠 경기를 보러오는 야구팬들은 이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것이 필수코스가 되었습니다. 레전드를 기억하면서 또 색다른 경험을 할수 있는 로베르토 클레멘테 다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PNC 파크에 도착하게 되면 로베트로 클레멘테의 동상을 볼수 있습니다. "The Great One" 이라는 이름에서 보실수 있다시피 클레멘테 선수의 위대함을 보실수 있습니다. 원래 클레멘테 선수 동상은 쓰리 리버스 스타디움 (Three Rivers Stadium)에 위치해 있었지만 PNC 파크가 개장하면서 PNC 파크로 옮겨졌습니다. 드디어 구장안에 들어서면 특이한 점을 보실수 있겠습니다. 강정호 선수 중계를 통해 많이 보셨겠지만 우익시 뒷편 펜스가 다른 외야쪽 펜스보다 높다는 것을 볼수 있죠. 우익수 펜스만 특히 높은 이유는 우익수 였던 로베르토 클레멘테 선수를 기억하기 위해 PNC 파크를 지을때 펜스의 높이를 클레멘테 선수의 등번호를 기념하며 21피트 (약 640cm)로 지었습니다. 클레멘테 선수의 21번은 현재 피츠버그 구단에서는 영구결번이 되었고 클레멘테 선수를 우상으로 삼은 많은 라틴계열 선수들이 등번호 21번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새미소사 선수가 등번호 21번을 달았었고 지금 현재 파이어리츠의 간판타자인 앤드류 맥커친 선수는 클레멘테 선수 바로 뒷번호인 22번을 달면서 클레멘테 선수가 남긴 유산을 그대로 받아서 피츠버그를 위해 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로베르토 클레멘테 선수는 이런말을 했습니다. "If you have a chance to accomplish something that will make things better for people coming behind you, and you don't do that, you are wasting your time on this earth." "만약에 너의 후손들이 잘 되기 위해 해줄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꼭 하여만 한다. 만약에 그일을 하지 않는다면 너는 지금 헛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거나 마찬가지다." 로베르토 클레멘테 선수는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야구를 통해서 많은 중남미 선수들 그리고 더욱더 나아가서 전세계 야구선수들이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 진출할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 항상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먼저 가서 도움을 주는 선수였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 까지도 남을 도우기 위해 살았고 38세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가 사회에 남긴 흔적만큼은 강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그의 공로를 인정하고 기념하며 계속해서 그를 기억하며 살고 있습니다. Roberto Clemente "The Great One" (1934 - 1972) 더 많은 메이저리그 소식들이 궁굼하시다면! [메.읽.남. (메이저리그 읽어주는 남자) 컬렉션: http://www.vingle.net/collections/2222447]
짐 애보트, 메이저리그의 외팔이 투수
여러분은 메이저리그의 외팔이 투수 짐 애보트 (Jim Abbott) 선수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매년 메이저리그에서는 총 1200여명의 선수가 프로팀의 지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매년 메이저리그에서 뛸 기회를 얻는 선수는 750여명의 선수 밖에 안되죠. 이렇게 입성하기 조차 힘든 메이저리그에서...전세계에서 야구 제일 잘하는 선수만 모인다는 메이저리그에서 짐 애보트는 오른손이 없이 태어남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에 당당히 입성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전세계에 알렸습니다. One must think that nothing is impossible until there is no hope. Obstacles are not more than a stage we must pass in order to succeed. (우리는 희망이 없어지기 전까지 결코 불가능 한 일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장애는 단지 우리가 성공하기 위해 넘어야 할 하나의 단순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 짐 애보트 (Jim Abbott) 1967년 9월 19일에 짐 애보트는 선천적으로 오른손목 아래가 없이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하는것을 좋아했고 고등학교 때는 미식축구와 야구를 병행하면서 학교 대표 쿼터백과 투수로 활약을 하였죠.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1985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36라운드에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부터 지명을 받았지만 계약서 사인을 포기하고 대학을 가기로 결정을 합니다. 미시간 대학교에 입학한 애보트는 1985년 부터 88년까지 3년동안 주축 투수로 활약 했습니다.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미국 대표팀으로 뽑히면서 금메달까지 목에 걸으면서 아마추어 선수로써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1987년에는 미국에서 전 스포츠 부분 가장 뛰어난 아마추어 선수에게 주어지는 James E. Sullivan 상을 야구선수로써는 처음으로 수상하면서 그의 이름을 더욱더 널리 알리게 되었습니다. 아마추어로써 보여줄것을 다 보여준 애보트 선수는 1988년 다시 한번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 뛰어들면서 1라운드에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현 LA에인절스) 로 부터 지명을 받습니다. 그럼 여기서 잠깐, 애보트 선수는 오른손이 없는 장애를 가지고도 투수를 할수 있었을까요? 그는 손이 없는 오른팔에 글러브를 "걸고" 왼손으로 투구를 한후 바로 수비를 위해 글러브를 다시 왼손에 끼는 방법으로 메이저리그 까지 올라 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투구를 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공이 자신에게 언제 날라올지 모르기 때문에 애보트 선수는 이러한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다고 합니다. 미시간 대학교 재학 당시 애보트의 감독이였던 버드 미더 감독은 애보트 선수의 수비가 워낙 훌륭해서 상대편이 번트를 대도 야수보다는 투수인 애보트 선수에게 맡기는것이 마음이 더 편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상대팀이였던 쿠바가 고의적으로 애보트 선수가 나오면서 번트를 댔지만 애보트 선수의 능숙한 수비를 이겨낼수 없었습니다. 1989년도에 마이너리그 경기를 하나도 치루지 않은 상태에서 애보트 선수는 에인절스 선발 로테이션의 한자리를 당당히 차지하면서 12승 12패 방어율 3.92라는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1989년 신인왕 투표에서 5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대뷔시즌을 마무리 하였죠. 심지어 91년도에는 에인절스 투수로써 18승을 올리면서 그해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이영상 투표에서 3위를 기록하기도 하였죠. 그는 그후로부터 99년도 까지 10년간 메이저리그에서 선수생활을 4개의 팀 (켈리포니아 에인절스, 뉴욕 양키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이어가며 통산기록 87승 108패 방어율 4.25와 삼진 888개를 잡으면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져갔습니다. 여기서 더 놀라운 점은 애보트 선수가 양키스 소속이였던 1993년 시즌에 9월 4일, 노히트노런을 기록하였습니다. (야구에서 노히트 노런은 무안타 무득점 경기를 얘기합니다. 즉 투수가 상대방의 타선에 단 하나의 안타도 주지 않고 무득점으로 눌러 이기는 것을 말하는 용어입니다. 역대 한국프로야구에서도 12번밖에 없었던 아주 달성하기 어려운 기록입니다.) 그렇다면 투수도 타격을 해야하는 내셔널리그에서 브루어스 소속 선수로 뛴 애보트 선수는 한손으로 타격은 어떻게 했을까요? 이번에도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장애를 극복하면서 타자로써도 큰 무리없이 활약하였습니다. 장애는단지 성공하기 위해 극복해야하는 단순한 단계라고 말했던 애보트 선수의 철학이 이 대목에서도 빛이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고 은퇴를 한 애보트 선수는 현재 LA 에인절스 스프링 트레이닝 투수 인스트럭터와 강사로써 활동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러 기업들을 상대로 장애인 고용을 격려하는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죠. 계속해서 자신의 꿈을 이뤘다고 해서 끝이 아닌, 다른이들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심어줄수 있는 활동을 끈임없이 벌이고 있는 짐 애보트 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메이저리그라는 꿈의 무대까지 밟은 짐 애보트 선수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야구장을 향할때 마다 제 팔을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꿈' 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꿈을 바라보면서 야구선수로써 활약한 짐 애보트 선수. 그는 그의 장애를 탓하기 보다는 그것을 극복하고 성공하기 위해 끈임없이 노력한 외팔이 투수가 아닌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