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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살 과학선생님, 메이저리그 가장 높은곳에 서다 (2편)
[35살 과학선생님, 메이저리그 가장 높은곳에 서다] 2편으로 이어가겠습니다. 1편에서 태그 부탁하신 분들여기 있습니다! @hyunjeter2 @baeksung0903 @skims @park67 @starcentral @bonowodbs @sparkle94 @iwantx (1편을 아직 못보신 분들은 http://bit.ly/1IzDTsM) 템파베이 데빌레이스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모리스는 템파베이로 부터 마이너리그 계약에 대한 제안을 받습니다. 그는 35살이라는 적지않은 나이와 자신의 아내, 그리고 두아이를 생각하면서 과연 메이저리그에 다시한번 도전해보는것이 맞는 선택인지 끈임없이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15년전에 도전한 메이저리그가 무산된 만큼 그는 두려움이 먼저 앞섰을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98마일의 빠른공을 던질수 있다는 사실에 메이저리그에 다시한번 도전해보고싶은 마음이 점차 커집니다. 어렸을적 자기 자신의 꿈이였던 메이저리그...그리고 더빨라진 자신의 구속! 짐 모리스는 마지막으로 후회없는 삶을 살기위해 메이저리그에 다시한번 도전하게 됩니다. [좌: 실제 짐 모리스 투구 장면 우: 영화 속 짐 모리스 투구 장면] 그렇게 짐 모리스는 템파베이 산하 더블A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다시한번 도전하게 됩니다. 신인시절 싱글A를 벗어나지 못했던 모리스는 한단계 높은 더블A에서 시작을 하면서 메이저리그를 향한 도전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게됩니다. 가족도 텍사스에 남겨두고 그는 자신과 띠동갑인 선수들과 함께 버스에 몸을 실으면서 마이너리그의 생활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모리스의 나이때문에 선수들은 새로 들어온 코치인줄 착각할 정도로 35살의 마이너리거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꿈 하나만 보고 다시 도전하는 메이저리그 였지만 98마일의 강속구 하나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한다는것은 결코 쉬운것이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98마일 강속구로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도 흔치않은 98마일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는 35살이여도...아니 오히려 35살이여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신인시절 밟아보지 못한, 메이저리그의 바로 전단계인 트리플A로 더블A 경기를 몇번 뛴후 콜업을 받습니다. 트리플A 에서도 꾸준히 98마일의 강속구를 뿌리는 그는 좋은 활약을 이어 갔습니다. 그리고..... 매년 9월 메이저리그 에서는 확대로스터를 실시하죠.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들은 아무 제약없이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뛸 기회를 제공합니다. 주로 플레이오프 탈락팀들이 내년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마이너리그에서 뛴선수들에게 메이저리그 경험을 쌓게 해주기 위해 도입된 제도입니다. 9월 확대 엔트리가 실시되면서 짐 모리스는 메이저리그에 콜업이 됩니다. 드디어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엔트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거죠. 그리고 그는 드디어 경기를 뛰게 되는데...매우 특별한 대뷔전을 치르게 됩니다. 템파베이가 텍사스 레인저스의 원정경기에 나서면서 짐 모리스는 자신의 첫 메이저리그 경기를 고향인 텍사스에서, 그것도 가족과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게 됩니다. 모리스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먼저 상대한 타자를 공4개로 삼진처리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공을 던지는 꿈을 그는 1983년 밀워키 드래프트 이후 16년만에 드디어 이루게 됩니다. 그 시즌에 모리스는 4번의 경기에서 등판을 가지게 되고 짧지만 굵은 메이저리그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짐 모리스는 2000년 시즌에도 메이저리그 생활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신인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부상을 다시 입으면서 결국 5월 9일 양키스전에서 끝내기 볼넷을 내주고 자신의 짧았던 메이저리그 선수생활을 접습니다. 2001년에 우리에게 익숙한 다저스로부터 마이너리그 계약을 제시받지만 부상이 모리스의 발목을 잡으면서 결국 스프링 트레이닝 도중 방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짐 모리스의 메이저리그 통산성적은 0승 0패 방어율 4.80 삼진 13개 였습니다. 짐 모리스는 자신의 첫 메이저리그 등판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From the time I was 3, I wanted to be a major-league player. To accomplish that at 35, get my name on my jersey, be in the clubhouse with major-league players, see my family for the first time in three months, be in my home state and pitch the day I got called up, was incredible." "저는 세살때부터 메이저리거가 되는 꿈을 꾸어왔습니다. 그 꿈을 35살에 이루고, 유니폼에 제이름을 새긴것부터, 다른 메이저리거 선수들과 클럽하우스에서 어울리고, 세달만에 제가족을 처음 보게되고, 제 고향에서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자마자 경기에 투입된것까지...이 모든게 저에겐 아직까지 꿈같습니다." 자신이 포기하고 있었던 꿈을...짐 모리스는 평생 잊지않고 살아왔습니다. 자신이 지도하던 고등학생 선수들과의 작은 내기로 인해 동기부여를 받은 모리스에게는 짧지만 후회없는 메이저리그 선수 짐 모리스 로써 활약을 할수 있었죠. 가끔씩 우리는 너무 늦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목표나 꿈을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이룰수 있는것들...우리 눈앞에 보이는 기회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것 같습니다. 야구에서 가장유명한 명언 중 하나는 요기 베라의 "It ain't over till it's over." "끝날때 까지 끝난것이 아니다." 입니다. 짐 모리스는 이명언을 기억하면서 끝까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메이저리거로써의 꿈을 이룰수 있었던것이 아닐까요? 35살 과학선생님도 메이저리그 투수가 될수 있는게 인생인것 같습니다. 지금 오늘도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시지 말고 우리 각자의 꿈을향해 빙글러 여러분들도 달려가보세요! 야구는 9회말 2아웃 부터 시작입니다. 더많은 야구소식을 보고싶으시다면! [미국유학생의 야구이야기 컬렉션: http://www.vingle.net/collections/1719842] [메.읽.남. (메이저리그 읽어주는 남자) 컬렉션: http://www.vingle.net/collections/2222447]
킹 르브론 제임스와 노히트 노런은 무슨관계?
미국에서 스포츠 핫이슈들이 쏟아져 나온 오늘이였습니다. NBA 파이널이 지금 한창 진행중 인데요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스테판 커리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홈경기장인 퀵큰 론즈 아레나에서 맞이하여 시리즈 세번째 경기를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2승1패를 거둔 캐빌리어스는 이제 2승만 더 추가하면 45년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NBA 챔피언 자리를 가져올수 있게됩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는 센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크리스 헤스턴 선수가 뉴욕메츠를 상대해서 몸에맞는 공 3개만 내주면서 올시즌 첫 노히터를 달성했습니다! 2012년에 케인 (퍼펙트게임), 2013-2014년 린스컴, 그리고 올해 헤스턴까지 이렇게 해서 센프란시스코는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투수를 4년연속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9월에 메이저리그에 대뷔한 헤스턴 선수는 메이저리그 경력 1년을 채우기도 전에 노히트노런을 달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까지 클리블랜드 캐빌리어스는 구단 역사상 두번에 NBA 파이널 무대에 진출했습니다. 2007년도에 한번 그리고 올해 2015년에 진출한것이죠. 그래서 오늘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NBA 3차전은 클리블랜드 도시내에서 열린 세번째 NBA 파이널 경기였습니다. 그런데 2007년에도 NBA 파이널 클리블랜드와 샌 안토니오 스퍼스의 시리즈 3차전은 클리블랜드 홈경기장에서 열렸습니다. 근데.....2007년 이 3차전이 열렸을 당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는 밀워키에서 브루어스와의 원정경기를 치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2007년 6월 12일) 경기 디트로이트 선발투수 였던 금강벌괴 저스틴 벌렌더 선수가 자신의 커리어 첫 노히터를 달성했습니다! 과연 이것이 무슨의미일까요.....? 클리블랜드에서 NBA 파이널 3차전이 진행된 두번 모두다 메이저리그에서 노히트 노런이 나온다! 킹 르브론, 클리블랜드, 그리고 야구의 노히트 노런과 무슨 관련인건가요?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좀 의심스러운 면이 있는것 같은데요....어찌됬든 많은일이 일어난 오늘 미국 스포츠였습니다. 더많은 야구소식을 보고싶으시다면! [미국유학생의 야구이야기 컬렉션: http://www.vingle.net/collections/1719842] [메.읽.남. (메이저리그 읽어주는 남자) 컬렉션: http://www.vingle.net/collections/2222447]
양키스의 전설 데릭지터 Top 3 Plays
안녕하세요 빙글러 여러분! 오늘 포스팅 할 내용은 바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야구선수, 양키스의 영원한 캡틴, 데릭지터에 대해서 써볼려고 합니다. 처음 미국에 갔을때 데릭지터라는 선수의 매력에 푹빠져버려서 양키스를 응원하게 되고 지금까지 양키스를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양키스의 유격수 자리를 지켜줄것 같았던 지터 선수는 작년에 아쉽게도 양키스에서만 20년간 선수생활을 하고 은퇴를 했죠. 유격수라는 수비부담이 큰 포지션을 소화함에도 불구하고 20년간 통산타율 3할 이상을 때리고 또 양키스라는 명문구단에서 캡틴까지 맡으며 그의 등번호 2번은 지금 현재 많은 유격수 유망주들이 가장 달고 싶어하는 번호가 되었습니다 (LG트윈스의 오지환 선수도 등번호를 2번으로 바꾼이유가 데릭지터 같은 유격수가 되고싶어서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럼 데릭지터 선수의 통산기록 다음 블록에서 보시겠습니다. 잘 보이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통산타율 .310, 통산안타 3465개, 신인왕, 14번의 올스타 출천 등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기고 은퇴한 데릭지터 선수입니다. 명예의 전당 입성은 거의 확정이고 또 데릭지터 선수의 등번호인 2번 또한 양키스에서는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데릭지터 선수의 2번과 전 양키스 감독이였던 조 토레 감독의 6번까지 영구결번으로 지정이 됬으므로 이제 양키스에서는 한자리수 등번호는 영영 볼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임팩트를 남긴 데릭지터 선수의 커리어 하이라이트 중 톱3를 선별하는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작업이였습니다 ㅜ.ㅜ 하지만 제가 정한 데릭지터의 톱3 플레이 함께 하시죠~! 첫번째는 바로 데릭지터 선수의 메이저리그 대뷔해인 1996년도에 만들어진 장면인데요, '96년 시즌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즉 포스트시즌 중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을 결정짓는 뉴욕 양키스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시리즈에서 데릭지터 선수의 홈런이 터집니다. 그런데 영상에서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관중이 공을 낚아채면서 아웃이 될만한 타구를 홈런으로 만들어주는것을 보실수 있겠습니다. 당시 오리올스의 우익수 였던 토니 타라스코 선수가 심판에게 강력히 어필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공을 낚아챈 저 소년의 글러브가 경매를 통해 2만2천705달러 (약 2천515만원) 에 최근에 팔렸다는 것입니다. 이제 32살의 어엿한 어른이 된 제프 마이어는 양키스에게 행운을 안겨주며 그 기세를 몰아 양키스는 '96년도에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하게 됩니다. 그리고 데릭지터는 팀 우승과 신인왕의 영광까지 얻게되죠. 두번째로 뽑은 데릭지터 선수의 톱3 하이라이트는 바로 "The Flip" 이라고 널리 알려진 장면입니다. 2001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 양키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맞대결에서 데릭지터 선수가 멋진 장면을 연출해냈습니다. 2001년 10월 3일, 양키스오 애슬레틱스 경기에서 7회에 애슬레틱스의 테렌스 롱 선수의 안타가 나왔습니다. 양키스의 우익수인 쉐인 스펜서 선수의 송구가 1루에 있던 컷오프맨을 완전히 빗겨나가면서 지암비 선수가 홈으로 쇄도합니다. 여기서 데릭지터 선수가 아무도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나타나 공을 잡아서 바로 포사다 포수에게 공을 전달하죠. 그리고 지암비 선수는 아웃이 됩니다. 2002 시즌 최고의 명장면으로도 뽑힌 이 플레이는 양키스가 5전 3승 선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아메리칸 디비전 시리즈에서 2패를 하면서 탈락위기에 몰린 팀을 데릭지터가 구해낸겁니다. 야구 역사상 한번도 보지도 못한 플레이를 데릭지터 선수가 즉흥적으로 그리고 팀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연출해나가면서 역시 Captain Clutch (캡틴클러치) 또는 Mr. November (가을의 사나이)로 불리는데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작년에 데릭지터 선수의 홈 고별전 도중 나온 장면입니다. 양키 스타디움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게 된 데릭지터 선수는 홈팬들에게 잊지못할 선물을 선사합니다. 9회말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스코어는 동점, 1사 주자 2루 상황에서 데릭지터 선수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해설위원은 스크립트는 정해졌다고 전합니다. 여기서 만약 데릭지터 선수가 안타를 치고 2루에 있던 주자가 홈에 들어오면서 양키 스타디움에서의 마지막 타석은 끝내기 안타로 멋지게 마무리 하는 영화같은 스토리가 완성되겠죠. 데릭지터는 달라도 역시 달랐습니다. 투수의 초구가 들어오자마자 가차없이 그는 배트를 스윙해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우익수쪽 밀어서 때리는 안타를 때리면서 끝내기 안타를 칩니다. 데릭지터는 역시 양키스의 캡틴이였습니다. 마이클 케이 해설위원은 이런말을 남깁니다. "Where fantasy becomes reality. Did you have any doubt?" 판타지가 현실이 됩니다. 그를 의심한 사람이 있었나요? 그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야구선수 데릭지터 톱3 명장면들을 제 마음대로(?) 뽑아봤습니다. 또 곧이어 데릭지터 선수에 관한 포스팅을 할태니 계속해서 지켜봐주세요! 더많은 야구소식을 보고싶으시다면! [미국유학생의 야구이야기 컬렉션: http://www.vingle.net/collections/1719842] [메.읽.남. (메이저리그 읽어주는 남자) 컬렉션: http://www.vingle.net/collections/2222447]
아시아 최초의 ML 포수. 조지마 겐지
아시아 최초의 ML 포수. 조지마 겐지 1976년 6월 8일 출생 오늘 소개할 선수는 2000년대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했던 포수 조지마 겐지 선수입니다. 일본 프로야구 리그는 단일 리그인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양대 리그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조지마 겐지는 현역 시절 퍼시픽 리그 소속으로서 센트럴 리그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의 포수 아베 신노스케와 양대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였습니다. 또한 그는 지난 2006년 일본인 포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해 4년 간 활약하였고, 이후 다시 일본 한신 타이거즈로 복귀해 지난 2012년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습니다. 최악의 포수에서 최고의 포수로 조지마 겐지는 1995년 일본 프로야구 다이에 호크스에 입단했는데요. 당초 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을 희망했으나 당시 다이에 호크스 감독으로 취임한 오 사다하루(왕정치)의 요청으로 다이에 입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다이에는 현재 이대호 선수가 활약 중인 소프트뱅크의 전신 팀으로 일본 후쿠오카 현에 연고를 두고 있는 팀입니다. 입단 초기 공격력은 인정 받았지만 수비력에서 낙제점을 받으며 1루수로 수비 전환까지 검토되었으나, 포수에 대한 본인의 애착이 워낙 강해서 주전으로 거듭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프로 데뷔 3년 차인 1997년, 마침내 그는 주전 포수로서 마스크를 쓸 수 있었고, 사상 최연소 올스타 투표 1위와 포수 최연소 3할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1군 무대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3년엔 0.330의 타율과 34홈런, 119타점을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퍼시픽 리그 MVP를 수상했습니다. 2004년엔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했고, 2005년을 마치고 FA 자격을 취득할 때까지 퍼시픽 리그 베스트 나인 6회, 포수 부문 골든 글러브 7회를 수상하였습니다. 한국에 박경완이 있었다면 일본엔 조지마 겐지가 있었던 거죠. 아시아 최초의 ML 포수 FA 자격을 취득한 조지마는 2006년 일본 포수 최초로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하게 됩니다. 시애틀 매리너스는 일본인 메이저리거 스즈키 이치로가 활약했던 팀이기도 한데요. 메이저리그 입단 첫 해엔 일본인 메이저리그 데뷔 첫 해 최다 홈런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주전 포수로 활약, 0.291의 타율과 18홈런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도 0.287의 타율과 14홈런을 때려냈고, 특히 0.465의 도루 저지율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조지마 겐지는 2008년 시애틀과 3년 연장 계약을 맺었으나 그 해 0.227의 타율과 7홈런을 기록하며 부진에 시달렸습니다. 또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듬해인 2009년 두 번의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그 사이 팀 내 신인 포수인 롭 존슨이 주전 자리를 꿰찼고 선발 투수들이 조지마와 배터리를 이루는 것을 거부하면서 점차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습니다. 팀 내 투수들과 불화와 자신의 장기였던 타격 마저 출전 기회 부족으로 슬럼프를 겪으면서 점차 팀에서 설 자리를 잊은 조지마는 결국 시애틀과 잔여 계약을 파기하고 일본으로 복귀 선언을 하게 됩니다. 퍼시픽 리그와 센트럴 리그, 양대리그를 모두 호령하다 그렇게 2010년 일본에 복귀하게 된 팀은 친정 팀 소프트뱅크 호크스(구 다이에 호크스)가 아닌 현재 오승환 선수가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한신 타이거즈였습니다. 줄곧 퍼시픽 리그에서만 뛰다가 센트럴 리그로 복귀한 그는 복귀 첫 해부터 일본의 전설적인 포수인 후루타 아쓰야가 가지고 있던 한 시즌 포수 최다안타 기록을 경신했고, 또한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포수로서 최초로 퍼시픽 리그와 센트럴 리그에서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는 최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즌 종료를 앞두고 왼쪽 무릎에 큰 부상을 당하며 수술을 하고 이듬해 복귀했으나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며 엔트리에서 말소 되었고 계속되는 무릎 통증과 허리 부상으로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결국 조지마는 2012년 9월 28일, 은퇴 기자 회견을 열었는데요. 하지만 구단 측에서 제시한 1군 은퇴 경기 요청을 거절하고 다음 날인 9월 29일, 한신의 2군 홈경기에서 은퇴 경기를 치르면서 일본과 미국, 그리고 다시 일본에서의 18년 간의 현역 생활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그는 포수임에도 불구하고 통산 타율이 0.296에 달했고 244홈런, 808타점을 기록하였으며 역대 포수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182개)과 퍼시픽 리그 포수 역대 최고 타율 기록(0.338)을 가지고 있는 일본을 대표하는 포수로 현재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사진 출처 : 한신 타이거즈, 야후 재팬
오른손? 왼손? 메이저리그의 양손잡이 투수
몇일전에 메이저리그에서 양손잡이 투수, 즉 "스위치 투수"가 등장하여 큰화제를 불러들였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펫 벤디트 선수입니다! 한손으로 제대로 던져도 올라서기 힘든 메이저리그 무대의 그는 양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 메이저리그 무대에 스게됩니다. 2008년 드래프트 당시 뉴욕 양키스로부터 지명을 받으면서 큰 화제를 불러 모았는데요 그후로부터 7년이 지난 드디어 벤디트 선수는 드디어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서 2이닝 동안 피안타 1개와 삼진 한개를 잡으면서 무실점으로 레드삭스 타자들을 막았습니다. 팀은 4-2로 패하였지만 7년간의 기다림 끝에 스위치 투수로써 대뷔를 한 벤디트 선수에게는 감격스러운 대뷔전이였을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벤디트 선수 외에도 메이저리그에 스위치 투수가 있었을까요? 스위치 타자는 메이저리그 뿐만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자주 볼수 있는 광경인데요...과연 스위치 투수는? 메이저리그 최초의 스위치 투수는 바로 그렉 해리스 선수 입니다. 태어났을때는 오른손 잡이이였지만 노력끝에 1986년 부터 양손잡이로 투구를 할수 있는 스킬을 터득했었습니다. 하지만 정규시즌 동안 한번도 양손잡이로 투구를 해본적이 없던 해리스 선수는 1995년 9월 29일 정규시즌 한경기가 남은 시점에서 자신의 은퇴경기가 될지도 모르는 경기에서 소원을 이루기 위해 특별제작된 글러브를 끼고 양손투구를 하게됩니다 (슬라이드를 해서 보시면 왼손으로 투구하는 모습을 보실수 있습니다). 왼손 투수로써 처음 던진 공은 크게 벗어나면서 포수조차도 잡지 못하는 곳으로 빠지게됩니다(2). 하지만 몇번 던지고 난후 해리스 선수는 영점을 잡았었는지 포수 앞 땅볼을 유도하여서 아웃카운트를 잡습니다(3). 그리고 이내 다시 오른손 타자가 올라와서 오른손으로 투구를 하면서 타자를 잡아냅니다(4). 이날 해리스 선수는 스위치 투수로써 최초이자 마지막 활약을 하고 은퇴를 하게 됩니다. 해리스 선수의 스위치 투구는 딱 한번의 등판으로 끝이 났지만 이에 반면 벤디트 선수는 메이저리그 최조 전업 스위치 투수가 되었습니다. (1)이렇게 벤디트 선수의 글러브는 여섯개의 손가락 구멍이 있습니다. 오른손 엄지 손가락이든 왼손 엄지 손가락이든 자유자재로 뺏다 꼇다를 반복할수 있게 특별 재작해서 만든 글러브 입니다. 그리고 이 벤디트 선수를 위해 메이저리그에서는 벤디트 룰이 탄생하게 됩니다. 스위치 타자를 만났을때의 상황을 대비해서 만든 룰이죠. (2)이 룰이 만들어진 계기로는 벤디트 선수가 마이너리그 시절 스위치 타자인 랄프 엔리퀘즈 선수를 만나면서 만들어지게됩니다. 벤디트 선수가 오른손으로 투구를 하기위해 준비를 하자 엔리퀘즈 선수는 왼쪽 타석에 들어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자 벤디트 선수는 왼손으로 투구를 하기위해 글러브를 바꿔끼자 엔리퀘즈 선수는 다시 오른쪽 타석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해서 두 선수가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하자 심판의 중재로 경기는 다시 진행되고 엔리퀘즈 선수는 자포자기한듯 오른쪽 타석에 들기로 합니다. [벤디트 룰이란?] 1. 스위치 투수는 스위치 타자가 올라오기전 어떤 손으로 투구를 할지 정해야 한다. 2. 그후 타자는 자신이 어느쪽 타석에서 타격을 할지 정해야 한다. 3. 투수는 한타석 내에서 손을 바꾸는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4. 한가지 예외는 부상으로 인해 한쪽 손으로 투구를 하지 못할경우 손을 바꿔서 투구를 할수 있다. 5. 투수는 투구하는 손을 바꾼다고 해서 투구연습할 기회를 갔지는 못한다. 6. 투수는 투구할 손을 변경할 경우 주심에게 명확이 이를 전달해야 한다. 벤디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먼저 상대한 타자는 좌타자인 브록 홀트 선수였습니다. 홀트 선수를 상대하기 위해 벤디트 선수는 글러브를 오른손에 끼고 왼손으로 투구를 하였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왼손으로 처음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1)! 그리고는 홀트 선수를 2루수 땅볼을 유도하면서 첫아웃을 잡았습니다(2). 그리고 나서 상대한 타자는 헨리 라미레즈 선수였습니다. 오른손 타자인 라미레즈 선수를 상대하기 위해 벤디트 선수는 글러브를 왼손에 끼고 오른손으로 투구를 이어갔습니다. 오른손 투수로써 던진 첫공 또한 스트라이크를 던지면서 그는 양쪽 손으로 던진 초구 두개다 스트라이크를 잡는 장면을 연출해냈습니다(3). 라미레즈 선수에게는 안타를 내주었지만 다음타자인 나폴리 선수를 병살타로 처리하면서 이닝을 마무리 지었습니다(4). 다음이닝에도 등판하면서 벤디트 선수는 이날 총 2이닝 동안 레드삭스 타선을 무실점으로 돌려세우면서 성공적인 대뷔전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벤디트 선수는 어렸을적 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인해 스위치 투수로써의 훈련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렸을적 리틀리그에서는 똑같이 생긴 선수가 좌우로 공을 던져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쌍둥이 형제인줄 착가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합니다. 오클랜드의 감독 밥 멜린은 벤디트 선수의 활용방법을 다양하게 쓸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예를 들어 한손으로 한게임을 던지면, 다음날엔 다른손으로 투구하면서 연투도 가능하게 된 상황이라고 말하였죠. 이렇게 해서 양손으로 두공을 다 던질수 있는 이 선수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물론 두손을 쓸수 있다고 해서 아웃을 잡지 못하면 아무리 신기한 스킬을 지니고 있어도 메이저리그에서는 볼수 없겠죠? 첫 스타트는 성공적으로 끊은 만큼 이 투수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지금까지 메어지리그 최초 "전업" 스위치 투수인 팻 벤디트 선수에 대한 포스팅이였습니다! 더많은 야구소식을 보고싶으시다면! [미국유학생의 야구이야기 컬렉션: http://www.vingle.net/collections/1719842] [메.읽.남. (메이저리그 읽어주는 남자) 컬렉션: http://www.vingle.net/collections/2222447]
35살 과학선생님, 메이저리그 가장 높은곳에 서다 (1편)
<영화 The Rookie 中> 십년전 쯤 "The Rookie" 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Rookie는 스포츠팀에서 신인 선수를 일컫는 말이죠. 그래서 미국에선 "신인왕", "올해의 신인" 등을 Rookie of the Year 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대부분 루키를 떠올리면 젊고 활발한, 그리고 패기까지 넘치는 그런 선수들을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 선수들에게 미래가 달린만큼 팬들은 그들에게 열광하고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옆에서 열심히 응원하곤 합니다. 하지만 영화 "The Rookie" 에서는 원래 사람들이 마음속에 그리는 루키와는 매우다른 한 루키를 소개하였습니다. 텍사스에 있는 조그만한 동네에서 고등학교 과학을 가르치는 어느한 선생님의 이야기이였는데요, 이 과학선생님이 자신의 어릴적 꿈을 이루기 위해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내용을 그린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훈훈한 영화다....라는 생각만 가지고 살다가 이 이야기가 실제내용을 바탕해서 만든 영화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짐 모리스 (Jim Morris)는 35살의 고등학교 과학선생님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35살이라는 나이에 신인신분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였습니다. 월드시리즈 7차전. 9회말 2아웃 만루상황. 상대편 4번타자가 타석에 들고....삼진을 잡으며 월드시리즈 우승! 야구선수가 꿈인 어린이들은 한번쯤은 상상하게 되는 장면일겁니다. 짐 모리스도 어렸을적 부터 이 장면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야구를 계속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직업군인이셔가지고 잦은 부대이동 때문에 이사를 자주 갔습니다. 그런 덕분에(?) 친구가 별로 없던 모리스는 항상 야구가 그의 최고의 친구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계속 야구를 놓치 않은 짐 모리스는... 1983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밀워키 브루어스로 부터 지명을 받으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생활과 대우가 하늘과 땅 차이인만큼 모리스는 매우 힘들게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메이저리그에 올라가기 위해 대부분 신인 선수들은 루키리그 에서 시작하여, 싱글A, 더블A, 그리고 트리플A를 밟은 후 메이저리그에 입성하게 됩니다. 여기서 매년 1200명 정도의 신인선수가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팀의 부름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매년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기회를 얻는 선수는 750명 정도 되죠. 그만큼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는 것이 힘듭니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생활을 비교하자면 메이저리그는 5성급 호텔이고 마이너리그는 민박집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모리스 또한 1200명 중 한명에 불과했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메이저리그 입성을 노리게됩니다. 하지만 그는 끈임없는 부상으로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면서 결국 메이저리그 입성의 꿈은 무산되고 1987년 싱글A 에서 머물다가 방출이 되는 아픔을 겪게됩니다. 다시한번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1989년에 계약을 맺으면서 메이저리그의 꿈에 도전해봤지만 싱글A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출의 아픔을 다시 한번 겪게 됩니다. 결국 그는 메이저리그의 대한 미련은 버리고자신의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다시 텍사스로 돌아와서 인근 고등학교 과학선생님이 됩니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고등학교 내 야구팀 감독을 맡으면서 야구와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리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팀은 매해 기대이하의 성적을 내면서 이미 약채로 분류된 팀이였습니다. 이러한 선수들을 동기부여 시키기 위해 모리스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이미 패배의식이 심어진 이 선수들에겐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매우 실망스러운 경기를 펼친후 모리스는 꿈과 목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선수들에게 의식의 변화가 없으면 야구뿐만 아니라 아무 목표도 이룰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왠지 여기서 김성근 감독님의 향기가 나는건 저뿐인가요?) 그말을 듣고있던 한 선수가 모리스 감독에게 "감독님이 이루려던 메이저리그의 꿈은 어떻게 된건가요?" 라고 되물은 후 모리스는 할말을 잃었습니다. 가끔씩 의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습후 피칭을 한 모리스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모습을 지켜본 선수들은 모리스라면 충분히 메이저리그에서 통할수 있다는 생각을 평소에도 했던거죠. 선수들에게는 꿈을 잃지말고 도전하라고 하면서 자기자신은 잊고 있었던 메이저리그 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이 모리스에게 제안을 합니다. "우리가 지역대회를 우승하면 감독님은 다시한번 메이저리그에 도전해보시는거에요." 모리스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합니다. 자신의 생각에는 선수들만 동기부여 시키면 되고 지금 이팀이 지역대회 우승은 절대 불가능 할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단순한 내기로 시작했던것이 거짓말처럼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리스 감독이 메이저리그에 다시한번 도전해보길 원했던 선수들은 기적처럼 연승가도를 달리면서 지역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우승을 확정지은 후 어쩔수 없이 짐 모리스는 감독이 아닌 선수, 그것도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기위해 다시한번 도전하게 됩니다. 그는 선수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탬파베이 데빌레이스(현 탬파베이 레이스)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선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잦은 부상과 어깨수술로 선수생활을 그만둬야 했던 모리스는, 35살이라는 적지않은 나이에 연속으로 98마일 (약 158km) 의 빠른공을 던집니다. 자신보다 적어도 10살이상 차이나는 젊은 선수들과 경쟁해야만 했던 모리스는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한 스카우트로부터 눈도장을 받게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내와 두아이도 있는 한가정의 가장이였고....또 이미 몇번의 도전끝에 실패만 봤던 모리스. 짐 모리스 감독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35살 과학선생님에 메이저리그 도전기! 2편이 궁굼하신 분은 코멘트 달아주세요~! 2편이 마무리 되는대로 태그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2편이 나왔습니다! [2편링크: http://bit.ly/1QkHT4x] 더많은 야구소식을 보고싶으시다면! [미국유학생의 야구이야기 컬렉션: http://www.vingle.net/collections/1719842] [메.읽.남. (메이저리그 읽어주는 남자) 컬렉션: http://www.vingle.net/collections/2222447]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퍼펙트 게임 (The Perfect Game That Never Was)
2011년 겨울에 "퍼펙트 게임" 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었죠. 그 당시 최고의 투수! 선동열과 최동원 선수의 불꽃 튀는 대결을 그린 영화입니다. 1987년 5월 16일 롯데와 해태의 경기를 집중조명해서 만든 영화인데요 그때 그경기가 선동열 선수와 최동원 선수의 세번째 맞대결 이였습니다. 그전 상대전적에서는 1승1패로 역시 라이벌다운 최고의 경기내용을 보여줬습니다. 그 두경기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1986년 4월 19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첫번째 맞대결에선 선동열 선수가 1:0 완봉승을 거두었고, 1986년 8월 19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두번째 경기에서는 최동원 선수의 2:0 완봉승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두선수가 붙은 세번째 경기는 4시간 54분간의 경기 끝에 2:2 무승부를 이루었습니다. 이 두선수의 실력과 야구에 관한 열정은 거의 완벽했다고 볼수 있죠. 하지만 실제로 야구에서 퍼펙트 게임은 무슨 뜻을 가지고 있을까요? 퍼펙트 게임은 야구에서 한명의 투수가 선발등판해 단 한명의 타자도 진루시키지 않고 끝내는 경기를 말합니다. 즉 한명의 투수가 1회부터 9회가 끝날 때까지 상대편 타자를 한명도 1루에 보내지 않은 경기를 말하는거죠. 한 이닝당 쓰리아웃이 있으니 상대팀 타자들은 총 합해서 27번 타석에 들고 모두다 아웃으로 처리가 되면 퍼펙트 게임이 되는거죠. 현재 13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퍼펙트 게임은 현재까지 총 23번이 있었고 한국프로야구에선 아직까지 퍼펙트 게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나오기 어려운 기록이죠. 5년전 오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경기가 디트로이트의 홈구장인 코메리카 파크에서 열렸습니다. 디트로이트의 선발투수로는 아르만도 갈라라가 선수가 나왔고 클리블랜드는 로베르토 에르난데스 선수를 선발투수로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당시 클리블랜드 소속이였던 추신수 선수는 우익수 2번 타순에 배치되면서 선발출장 하였습니다. 2회에 디트로이트의 미겔 카브레라 선수의 솔로홈런이 터지면서 디트로이트가 선취점을 뽑아냈습니다. 그러고 나선 경기는 팽팽한 투수전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8회가 오고나서 안타 2개 이후 터진 매글리오 오도네즈의 적시타와 추신수 선수의 송구에러가 겹치면서 디트로이트는 2점을 더 추가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디트로이트는 8회까지 3점을 뽑아내면서 3-0의 스코어로 9회를 맞이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디트로이트의 선발투수 였던 아르만도 갈라라가 선수가 8회까지 모든 타자들을 아웃으로 처리하면서 마지막 9회만 삼자범퇴로 처리하면 메이저리그에서 21번째 퍼펙트 게임을 던지는 투수가 될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맞이한 9회....... 하지만 9회에 올라온 갈라라가 선수의 초구를 클리블랜드의 마크 그루질라넥 선수가 중견수 키를 넘기는 큰 타구를 날리면서 갈라라가 선수의 퍼펙트 게임은 무산이...... 되는듯 싶었지만 중견수 어스틴 잭슨 선수의 호수비가 일어나면서 갈라라가 선수는 다시한번 퍼펙트 게임을 이룰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디트로이트 벤치 전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다들 갈라라도 선수의 퍼펙트 게임을 간절히 원하는 것을 볼수 있죠? 그리고 다음타자인 마이크 레드몬드 선수도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면서 이제 퍼펙트 게임까지 아웃카운트 하나만 남은 상황이 왔습니다. 팬들도 이 역사적인 순간을 축하해주기 위해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하네요...! 과연 갈라라가 선수는 퍼펙트 게임을 달성 할수 있을까요? 마지막 타자가 될수 있는 상황에 유격수 제이슨 도널드 선수가 타석에 듭니다.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도널드 선수를 상대한 갈라라가 선수! 도널드 선수가 친공을 1루수 미겔 카브레라가 잡으면서 커버들어간 갈라라도 선수에게 던지는데...... 타이밍상 아웃? 하지만...이게 뭔가요! 1루심의 판정은 세이프! 이렇게 해서 갈라라가 선수....메이저리그의 21번째 퍼펙트 게임은 무산이 되고 맙니다. 퍼펙트 게임의 길은 험난하고 힘든걸 다시한번 보게됩니다. 26명의 아웃카운트를 완벽하게 막고 마지막 한타자가...그것도 간발의 차이로 세이프가 되면서 퍼펙트 게임이 날라갔습니다. 갈라라가 선수도 쓸쓸하게 미소를 짓고.....카브레라 선수를 비롯해서 디트로이트 선수단 전체와 팬들 모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하지만.......느린화면 판독결과 갈라라가 선수의 발이 조금 더 먼저 베이스를 밟았네요. 카브레라 선수도 아웃인줄 알고 포효하다 절망에 빠지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이때도 비디오 판독이 있었으면 하는 큰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였습니다. 메이저리그 21번째 퍼펙트 게임이 될수 있었던 마지막 아웃은 오심으로 인해 무산이되고 말았습니다. 갈라라가 선수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다음타자를 땅볼로 처리하면서 경기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경기가 끝난후에 동료선수들로 부터 위로를 받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그 순간 화를내고 심판에게 강하게 어필할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갈라라가 선수는 끝까지 경기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차분하게 경기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갈라라가 선수의 진정한 스포츠맨쉽을 볼수 있었던 대목이죠. 막상 본인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였지만...선수와 코치들이 심판진에게 다가와서 강한 불만을 표출합니다. 특히 당시 디트로이트 감독이였던 짐 레이랜드는 1루심이였던 짐 조이스씨 에게 다가가서 강하게 어필합니다. 자신의 선수의 퍼펙트 게임이 날라가는것을 보고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ㅜ.ㅜ 경기 후 짐 조이스 1루심은 경기영상을 본 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I did not get the call correct. I took away a perfect game away from that kid over there that worked his ass off all night." (그것은 명백한 오심이였습니다. 저는 경기내내 자신의 모든것을 쏟아부은 저 선수로부터 퍼펙트 게임을 뺏어왔습니다.) 심판이 경기후 자산의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은 흔치않은 장면을 볼수 있었습니다. 짐 조이스 심판의 스포츠맨쉽 또한 볼수 있었죠. 이러한 용기를 낸 조이스 심판의 마음을 이해한 갈라라가 선수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He probably feels more bad than me. Nobody's perfect. Everybody's human. I understand. I give the guy a lot of credit for saying, 'I need to talk to you.' You don't see an umpire tell you that after a game. I gave him a hug." (지금 그는 나보다 더한 고통을 받고 있을거에요.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다 인간이기 때문이죠. 저는 그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용기내어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점에는 박수 쳐주고 싶어요. 그렇게 할수 있는 심판은 많지 않거든요. 저는 그를 한번 안아줬어요.) 다음날 열린 클리블랜드와 디트로이트의 경기에서 전날 1루심을 봤던 짐 조이스는 주심으로 경기에 나서게 됩니다. 경기전에 라인업 카드를 주심에게 건네주는 것은 감독이 주로 맡는 일이지만 이번에 특별하게 갈라라가 선수가 디트로이트의 선발 라인업 카드를 들고 짐 조이스 주심에게 다가갔습니다. 경기 전 부터 감정에 복받쳐서 눈물을 참고 있었던 짐 조이스 주심은 갈라라가 선수를 보고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맙니다. 22년간의 심판경력을 지닌 베테랑 조이스 주심에게도 그날은 매우 특별했을것 같습니다. 갈라라가 선수는 라인업 카드를 건내준뒤 울음을 터트린 조이스 주심을 보고선 격려의 말을 건내고 등을 한번 툭 처주고는 다시 밴치로 들어갑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갈라라가 선수의 완벽한 게임은 메이저리그 역사속에 영원히 기록되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실수로 일생에 한번 올까 말까한 기록이 무산된 갈라라가는 그 완벽한 게임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완벽하지 않은 그 사람을 위해 이해하고 배려하며 그 사람이 상처받지 않도록 행동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줬습니다. 2010년 6월 2일에 퍼펙트게임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갈라라가 선수가 보여준 스포츠맨쉽 정신은 퍼펙트 했습니다. 더많은 야구소식을 보고싶으시다면! [미국유학생의 야구이야기 컬렉션: http://www.vingle.net/collections/1719842] [메.읽.남. (메이저리그 읽어주는 남자) 컬렉션: http://www.vingle.net/collections/2222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