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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9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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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위대한 '여성'이 탄생시킨 '남자'의 로망, 벤츠
‘남자의 로망’ 제 남편의 이름을 딴 자동차에 자주 붙는 수식어라죠? 많은 성공학 서적의 제목에도 자주 그 이름이 쓰이더라고요. 그 이름 ‘벤츠’는 그렇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성공 혹은 욕망을 대변하는 단어가 됐더군요. 전 베르타 벤츠(Bertha Benz) 에요.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이자 현대적 의미의 자동차를 처음 발명한 칼 벤츠(Karl Benz)의 아내죠. 여성 인권이 거론조차 제대로 되지 못했던 20세기 초반을 인생의 주무대로 삼아야 했지만 전 단순히 한 남자의 배우자로 머물진 않았어요. 모국 독일엔 제 이름을 딴 도로와 학교가 있을 정도로 꽤 유명한 인사죠.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위대한 발명’을 한 건 남편이지만, 벤츠가 세상 빛을 보게 된 건 저의 무모한 도전 덕분이라고요. 저희 부부의 ‘벤츠’ 창업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독일 자동차 영웅의 탄생 남편 칼 벤츠는 1844년 11월 25일 ‘카를스루’(Karlsruhe)란 지역에서 태어났어요. 독일 제조업의 중심 슈튜트가르트(Stuttgart)에서 약 80km 떨어진 작은 도시죠.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지금의 ‘메르세데스-벤츠’를 있게 한 세 남자, 고틀립 다임러(Gottlieb Daimler), 칼 벤츠(Karl Benz), 빌헬름 마이바흐(Wilhelm Maybach)가 모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세계 최고의 자동차 박물관이자 회사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06년 개장한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이 슈튜트가르트에 위치하게 된 것도 이러한 연유가 있답니다. 남편은 두 살 되던 해 아버지를 잃어요. 산업혁명의 부흥기, 그 상징인 기차를 몰던 기관사 요한 조지 벤츠가 철도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죠.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지만 그 피는 오롯이 대물림된 것 같아요. 아버지를 닮아 어려서부터 기계 만지는 걸 좋아했다고 해요. 어머니의 교육열도 대단했나봐요. 정부 급료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칼의 어머니는 아들을 그래머 스쿨(당시 독일 중등학교)에 보내고, 결국 기계공학을 전공할 수 있게끔 뒷바라지를 했어요. 수리공에서 디자니어, 공장 감독까지 승승장구하던 남편이 자신의 첫 회사인 ‘칼벤츠와 아우구스트 리터, 엔지니어링 작업소’를 세운 건 1871년. 27살 때의 일이죠. 칼과 전 1년 후인 1872년 결혼을 했어요. 창업 초기 칼의 벌이는 시원찮았어요. 특히 동업자이자 기계공이었던 아우구스트 리터가 문제였죠. 사업 파트너로서 신뢰감을 주지 못했거든요. 칼은 제가 들고온 결혼지참금을 리터에게 넘기고, 그의 지분을 모두 물려받아요. 리터와의 관계를 모두 청산하고 혼자서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죠. 말이 끌지 않는 (마)차를 만들고 싶어한 벤츠 칼은 그 때부터 공장형 대형 엔진의 설계 · 제작에 몰두해요. 오랜 기간에 걸친 수많은 실험 끝에 1879년 12월 31일, 새해를 하루 앞둔 시점에 ‘소형 2행정 휘발유 엔진(2-stroke engine)’을 개발하게 되죠. 그로부터 7년 뒤 빛을 보게 될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그 심장 역할을 맡을 위대한 발명품이 탄생한 순간이에요. 남편은 외부의 투자를 받아 자신의 두번째 회사 ‘만하임 가스 엔진’(Gasmotorenfabrik Manheim)을 설립해요. 언젠가부터 자신이 목표로 세운 ‘말이 끌지 않는 (마)차’, 즉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열망으로 가득했어요. 그런데 칼에게 투자한 사람들은 당장의 수익을 내는 데에만 관심이 많았어요.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자동차보다 당장 돈벌이가 되는 가스 엔진에 더 집중하길 원했던거죠. 머리 속에 자동차 생각 뿐이었던 칼은 사업 파트너를 계속 바꿔가며 어렵게 회사를 꾸려갑니다. 그 중 한 파트너가 회사를 떠나며 “자동차에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충고를 남기기도 했지만 자동차를 향한 칼의 집착은 요지부동이었어요. 세계 최초의 자동차가 등장하다 남편의 열정이 비로소 빛을 본 건 1886년 1월 29일. 의자와 핸들, 세 개의 바퀴가 달린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가 독일 특허청으로부터 특허를 받은 날이죠. 이 때 받은 특허번호 ‘DRP 37435’는 자동차판 첫 주민등록번호가 됐지요. 우리는 인간의 이동권, 그 역사를 완전히 바꿔놓은 이 위대한 발명품의 이름을 ‘Benz Patent Motorwagen’이라고 지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벤츠(Benz)가 만들어 특허(Patent)를 받은, 모터(Motor) 달린 수레(wagen)가 드디어 세상에 등장한 것이에요. 이 물건을 두고 세계 최초의 자동차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이미 17세기 후반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삼은 이동 수단이 있었죠. 큰 틀에서 본다면 자동차의 원류라 부를 만한 것들이 미국, 프랑스, 영국, 오스트리아 등 이곳저곳에서 이미 등장해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역작,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사실상의' 세계 최초 자동차로 대접받는 이유가 있죠. 나머지의 것들이 이동 원리의 일부만 ‘자동’이었던 데 반해 남편은 배터리 시동, 점화 플러그, 속도 조절 시스템, 기화기, 클러치와 기어 시스템, 수냉식 라디에이터 등 지금의 자동차가 사용하고 있는 주요 시스템 대부분을 고안했거든요. 말 그대로 현대적 의미의 자동차가 나온 건 처음이었던 것이죠. '여걸'의 활약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은 지금과 비교해본다면 그 성능이 당연히 형편 없었죠. 954cc, 0.9마력을 내는 데 그쳤으니까요. 이후 1.5마력, 2마력을 내는 2호, 3호를 잇따라 개발했지만 최고 속도는 16km에 그쳤어요. 그래도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이 발(foot), 기껏 해봐야 말(horse)을 이동의 도구로 삼았던 것을 감안하면 천지가 개벽할 발명품이 나왔다고 저희는 생각했어요. 그런데 웬걸. 아무런 힘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털털 거리며 가는 새 이동 수단에 사람들은 좀처럼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일반 사람들이 보기엔 너무도 생소하거나 엄두도 못 낼 녀석처럼 보인 것이죠. 결정적인 문제는 남편의 성격이었어요. 지나치게 신중한데다 우유부단하기도 해 본격적인 상용화에 계속 뜸을 들였죠. 제대로 된 제품은 내놓지도 않은 채 특허 취득 이후 2년 동안 시운전만 해대며 엔진 출력을 높이는 보안 작업만 하고 있었던 것이죠. 지금의 벤츠를 있게 한 ‘결정적’인 장면이자 제가 무모한 도전에 나서게 된 때가 바로 이 지점이에요. 1888년 8월초 새벽. 전 15살, 14살 먹은 두 아들 오이겐(Eugen)과 리하르트(Richard)를 데리고 가출(?)을 감행해요. 제 생각은 이랬어요. 어린 아이 둘을 대동한 채 여자 혼자서 먼길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 우리의 자동차가 얼마나 위대한 발명품인지를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라고. 그래서 전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 3호를 몰고 100km 넘게 떨어져 있는 친정 나들이를 하기로 결심했죠. 당시의 도로는 그 먼거리를 마차로 오가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었어요. 제 여행도 난관을 거듭했죠.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건 예삿일. 기화기의 노즐이 막혔을 땐 머리핀으로 구멍을 뚫어 해결했고, 기름이 떨어졌을 땐 가까운 약국에 달려가 가솔린 대용으로 쓸 수 있는 리그로인을 얻기도 했어요. 제가 들렀던 그 약국은 ‘세계 최초의 주유소’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금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해요. 그렇게 하루를 꼬박 보내고서야 친정에 도착할 수 있었죠. 먼지와 기름으로 뒤범벅이 됐지만 남편에게 전보를 보내는 게 우선이었어요. ‘성공! 도착했음.’ 사흘 후 같은 차를 운전해 90km 짜리 지름길로 되돌아온 뒤 전 남편에게 개선 사항을 내놓기도 했지요. ‘출력 향상, 브레이크 가죽 보강, 핸들 유연화 필요.’ 제가 이 무모한 도전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데엔 평소 남편 옆에서 적극적으로 자동차 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이에요. 와이어가 다른 부품에 닿아 문제가 생기면 스타킹으로 묶어 고정하기도 하고, 브레이크가 닳아 없어졌을 땐 구두 구선공을 찾아가 가죽끈을 설치해 달라고 하기도 했어요. 현대식 브레이크 라이닝을 제가 처음 개발한 것이죠. 아무튼 제 가출(?) 소식은 삽시간에 주변으로 퍼져 나갔어요. 우리의 자동차가 인간의 발에 한없는 자유를 줄 수 있는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알리게 된 것이죠. 비평가도 곧 제 얘기를 알게 됐고, 저희의 자동차는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가 됐어요. 서두에 “위대한 발명을 한 건 남편이지만, 그 발명품이 세상 빛을 보게 된 건 저 때문”이라고 했던 제 말을 이제 이해하시겠나요? 벤츠 역사에 등장한 또 다른 여성의 '이름' 벤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성 또 한 명을 소개하고, 이 글 <위대한 기업의 별 볼 일 없는 창업 이야기> 벤츠 편을 마칠까 해요. 제 남편 말고도 요새 말로 치면 ‘자동차 성애자’가 당시 독일에 또 한 명 있었어요. ‘고트립 다임러’(Gottlieb Daimler)죠. 제 남편보다 10살이 많았던 다임러는 천재 디자이너 ‘빌헬름 마이바흐’( Wilhelm Maybach)와 함께 자기 이름을 딴 회사 ‘다임러’를 1890년 설립했어요. 벤츠와 다임러, 이 위대한 두 명의 자동차 발명가가 만난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두 사람의 이름을 딴 기업, 즉 벤츠와 다임러가 1926년 합병해 ‘다임러-벤츠 AG’란 회사로 다시 태어났지만요. 사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합병 전까지 둘 사이의 자동차 경쟁에서 한발 앞서 있었던 건 다임러였어요. 1902년 다임러가 내놓은 기념비적인 자동차 때문인데요. 이 자동차의 대박은 한 오스트리아 사업가의 손에서부터 시작해요. ‘에밀 옐리넥(Emil Jellinek)’란 사람이었는데, 1897년 우연한 기회에 다임러 회사를 방문해 그 자동차를 한 대 사가게 되죠. 옐리넥은 2년 후 열린 니스 자동차 경주대회에 이 차를 끌고 나가 당당히 1등을 차지하죠. 사업 수완이 남달랐던 옐리넥은 이 차가 엄청난 흥행을 거둘 것임을 확신했어요. 거금을 들여 36대를 사들이면서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죠. 이 계약서엔 또 하나의 특이한 조항이 있었는데, 차량 브랜드를 옐리넥의 딸 이름을 따 붙이기로 한 것이죠. 사랑하는 딸 이름을 후세에 영원히 남기고 싶었던 아버지의 사랑이 듬뿍 묻어나죠? 말씀드린대로 이 차는 그야말로 대박이 나고, 다임러는 이후 자신들이 출시하는 모든 차량에 그 이름을 사용키로 결정해요. 그 이름이 뭔지 궁금하시죠? 스페인어로 ‘우아함’라는 뜻을 가진 그 단어는 바로. ‘메르세데스’(Mercedes) 랍니다. /유병온기자 on@bzup.kr 이 시대 위대한 기업들을 살펴보면 사소하거나 소소한 계기가 사업의 출발점이 된 사례가 많습니다. 국내외 기업들의 창업 과정을 당시 인물의 관점에서 풀어보는 비즈업의 <위대한 기업의 별 볼 일 없는 창업 이야기>에서 사업 성공의 위대한 영감을 얻어 가세요. http://www.yes24.com/24/goods/32696657?scode=032&OzSrank=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