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 Soo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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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래리 페이지와 구글의 비전
구글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지난 1998년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공동 설립했다. 래리 페이지는 지난 2001년 CEO 자리를 에릭 슈미트 회장에게 양보했지만 10년이 지난 2011년 CEO로 복귀한 바 있다. 에릭 슈미트 시절을 거쳐 구글은 국제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동안 래리 페이지와 구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래리 페이지는 미국 미시간 주 랜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미시간대학 컴퓨터과학 인공지능 교수, 어머니는 같은 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사를 했다. 부모의 직업 덕에 집안에는 컴퓨터와 기술 관련 잡지가 늘 넘쳐났다. ◇ 테슬라에 반한 소년 래리 페이지=래리 페이지는 어느 날엔가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의 전기(Prodigal Genius : The Life of Nikola Tesla. 사진 아래)를 읽었다. 테슬라는 명석한 두뇌를 보유한 인물로 8개 국어는 물론 작시나 음악, 철학까지 능통했다. 하지만 사업에는 서툴렀다. 테슬라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발명가 가운데 한 명인 토마스 에디슨의 회사에서 일했던 적도 있다. 테슬라와 에디슨에 얽힌 일화도 많다. “당신이 만든 모터와 발전기를 개선할 수 있다”는 테슬라의 말에 에디슨은 “만일 그렇게 한다면 5만 달러를 주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테슬라가 모터와 발전기를 개선하자 에디슨은 농담이었다면서 10달러 임금 인상만 해줬다고 한다. 테슬라는 격노해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평생 투자는 한 번도 실현되지 않았다. 1943년 이 위대한 발명가는 뉴욕에 있는 작은 호텔 방에서 숨을 거뒀다. 소년 래리 페이지는 테슬라의 전기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그 때 “큰 아이디어만 있어도 충분하지 않고 제품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토마스 에디슨 같은 인물에 이용되는 걸 주의하자는 것도 마음 속에 새기게 됐다고 한다. 테슬라의 생애는 래리 페이지의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애플로 따지면 스티브잡스에겐 스티브 워즈니악이 있었던 것처럼 래리 페이지에겐 세르게이 브린이라는 공동 설립자가 있었다. 이들은 스탠포드대학에서 만나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돈을 모아 1998년 구글을 시작했다. 사무실을 차린 곳은 1층에 자전거 가게가 있어서 밖에 노상 주차를 할 수 있는 그런 건물이었다. 동료이자 라이벌이기도 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하루 종일 티격태격했다. 래리 페이지는 세르게이 브린의 아이디어를 어리석다고, 반대로 세르게이 브린은 래리 페이지의 아이디어를 단순하다고 싸우기도 했지만 이들의 우정이 깨지는 일은 없었다. ◇ 투자자 요구로 에릭 슈미트 CEO로 영입=래리 페이지는 그다지 사회성이 뛰어난 인물은 아니었지만 학창시절 이미 미래에 대한 전망이나 기술 같은 걸 통해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해왔다. 그는 구글 역시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기술적인) 방법으로 연결하고자 했다. 구글을 설립하고 몇 년 동안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이 래리 페이지가 자랑하는 아이디어나 성과를 초점에 둔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한 도구를 이용해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회사가 너무 커지자 래리 페이지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문제가 됐다. 예를 들어 내부에서 사용자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익스플로러를 이용하지 않고 검색할 수 있는 구글 툴바를 개발했다. 개발자는 툴바가 팝업 광고 차단기 역할을 갖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더했다. 래리 페이지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개발자는 몰래 그의 컴퓨터에 툴바를 설치했다. 어느 날 래리 페이지는 사람들에게 팝업 광고를 볼 기회가 줄었다고 말하자 개발자는 이유를 설명해줬다. 구글 툴바는 이런 과정을 거쳐 선보이게 됐다고. 1999년 구글의 인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서버와 직원 확보를 위해 추가 자본이 필요해졌다. 하지만 인기에 비해 구글은 아직 수익화는 되지 않은 상태였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야 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투자자들은 초기만 해도 구글을 비웃었다. 하지만 구글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면서 가치를 인정하게 됐고 궁극적으로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2개 회사가 2,500만 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 때 래리 페이지의 나이는 26세였다. 투자자들은 그가 이런 대기업을 이끄는 게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다. 투자 조건으로 좀더 무게감 있는 인물을 고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구글은 자금을 필요로 하고 있었지만 래리 페이지는 이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래리 페이지는 자신의 인생을 누군가의 손에 맡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구글 역시 제3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투자자들은 “스티브잡스라면 (CEO로) 고용하겠다”는 래리 페이지의 말에 다른 후보를 제안한다. 여기에서 소개한 인물이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노벨(Novell)의 CEO를 맡고 있던 에릭 슈미트였다. 래리 페이지는 다른 CEO와 달리 프로그래머 출신이었던 에릭 슈미트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 결국 그를 회장으로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제품 사업부를 맡은 래리 페이지는 관리자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다. 래리 페이지는 구글이 성장하면서 내부에 생겨난 엔지니어와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계층을 싫어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해고된 사람은 없었다. 관리자들은 다른 부서로 옮기는 바람에 결국 래리 페이지의 계획은 오래 가지 않았다. 막상 관리자가 없어지자 엔지니어가 피드백과 방향성에 대한 요구를 해왔고 구글은 결국 다시 관리자를 찾아야 했다. 래리 페이지는 애플에서 해고됐다가 복귀한 스티브잡스처럼 해고를 당한 건 아니었지만 구글 내에서 애플 추방 이전의 스티브잡스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한편 에릭 슈미트가 CEO로 취임한 이후 몇 년 동안 구글은 거대한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했다. 슈미트는 언제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논의의 중심에 놔뒀다. 비록 관리자를 없앤 엔지니어 팀 구성 등에 실패했지만 래리 페이지는 내부에선 직원에게 여전히 보스로 존재했다. 인력 고용에는 반드시 그의 사인이 필요했다. 에릭 슈미트 체제 몇 년 동안 래리 페이지를 비롯한 수백 명에 이르는 구글 직원이 백만장자 혹은 억만장자가 되어갔다. 처음에는 새로운 계층에 대한 불만을 품었던 래리 페이지 역시 점점 에릭 슈미트의 힘을 인정하게 된다. 래리 페이지의 목적은 어릴 때부터 일관되게 세계를 더 좋게 만드는 뭔가를 개발하고 이를 상품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구글 검색을 개발했지만 이런 비전을 자본화하고 회사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은 에릭 슈미트였다. 래리 페이지는 에릭 슈미트를 인정하면서 점차 배후로 모습을 더 감추게 된다. 2007년 회의 등에 참석하지 않거나 2008년에는 인터뷰 등도 거절한다. ◇ 에릭 슈미트 취임 후 ‘비전 창출’에 몰두=에릭 슈미트는 구글 CEO가 된 이후 2003년 구글북스, 2007년 구글 스트리트뷰 등을 시작했다. 이들 프로젝트는 모두 구글 창업 초기부터 래리 페이지의 비전 에 있던 것이었다. 구글 스트리트뷰는 초기만 해도 미국 5개 도시의 거리 풍경을 담았을 뿐이지만 올해 기준으로는 전 세계 50개국 국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만큼 커졌다. 에릭 슈미트가 돈을 만들어 회사를 안정화하는 한편 성장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래리 페이지는 자신의 역할이 비전을 살리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의 비전은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휴대용 컴퓨터를 갖고 주머니에서 구글에 연결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안드로이드는 에릭 슈미트에게 알리지 않은 채 인수했다. 당시 안드로이드의 CEO는 애플 임원 출신이기도 한 앤디 루빈이었다. 안드로이드는 구글에 인수됐지만 래리 페이지는 앤디 루빈의 재량을 인정해 거의 독립적인 회사로 존재할 수 있었다. 건물도 구글과 따로 쓰고 일반 사원은 출입 금지였다. 안드로이드를 인수하는 데에는 5,000만 달러가 들었지만 구글 입장에선 신경 쓸 정도의 액수도 아니었다. 에릭 슈미트 역시 안드로이드의 존재를 묵인했다. 래리 페이지는 앤디 루빈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안드로이드 개발에 열정을 불태웠다. 앤디 루빈은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모바일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2008년 T모바일의 G1이라는 모델을 통해 공개했다. 애플은 이미 2007년 아이폰을 발표한 상태였지만 안드로이드는 제조사 관계없이 어디나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2009년 2분기 안드로이드를 설치한 스마트폰은 전체 시장에서 1.8%에 불과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다음해 2분기에는 전 세계 시장에서 17.2%에 이르는 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운영체제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물론 안드로이드가 성공한 이면에는 에릭 슈미트 감독 하에 구글이 크게 성공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2010년 구글의 시가총액은 무려 1,800억 달러, 직원 수는 2만 4,000명에 달하게 된다. 하지만 ‘삼두정치’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이 커지게 된다. 래리 페이지는 한 인터뷰에서 다시 CEO 자리를 원하냐는 질문에 지금 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고 답했지만 인터뷰가 끝낸 다음 다시 돌아와 구글은 더 큰 스케일과 속도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2010년 가을 래리 페이지는 평소처럼 세르게이 브린, 에릭 슈미트와 함께 제품 검토에 참여했다. 하지만 몇몇 제품을 보고 “수억명에 이르는 사람이 안고 있는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드로이드와 G메일, 구글맵, 구글 검색처럼 기술을 담는 제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것이야말로 우리 일에서 중요한 가치지만 이 제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결국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에릭 슈미트 3명은 구글에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를 하다가 2011년 1월 20일 에릭 슈미트가 CEO를 사임하고 래리 페이지에게 자리를 물려준다고 발표한다. 에릭 슈미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어른들의 감독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 되돌아온 래리 페이지 “완벽한 검색엔진 꿈꾼다”=래리 페이지는 CEO 자리에 앉자 관리자 그룹을 재구성했다. 또 페이스북에 대항하는 소셜 서비스로 구글플러스(Google+)를 시작했고 2011년 모든 서비스를 일관된 형태로 다시 재설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특허 확보를 위해 125억 달러를 들여 모토로라도 인수했다. 구글은 이어 크롬북과 구글 글라스 등을 잇달아 공개했다. 2012년 말에는 기존보다 100배에 이르는 속도로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광섬유 케이블 서비스인 구글 파이버를 캔자스시티에서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꿈을 빠른 소도로 현실화해갔다. 주위 사람들도 뒤로 물러나 있던 래리 페이지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실감하게 된다. 지난해 2월 래리 페이지는 구글 이사진을 대상으로 연설을 했다. 구글의 목표를 밝히면서 지금까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보다 10배 성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구글 이사진은 함께 일하는 걸 배워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래리 페이지가 구글 CEO로 복귀한지 올해로 4년째다. 구글의 주가는 주당 700달러, 연간 수익은 1,000억 달러가 넘는다. 하지만 래리 페이지는 이미 검색 다음에 구글이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래리 페이지와 구글은 구글 검색과 안드로이드라는 큰 기술 2가지를 개발했다. 안드로이드는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어서 구글 입장에선 구글 검색 사업 확장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구글 수익 중 90%는 광고, 이 중에서 다시 70%는 검색 광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글의 광고는 이미 잡지나 신문 광고를 합친 것보다 많다. 어느 시점엔가 구글 검색이 지구상의 거의 모든 광고비용을 삼켜버리는 날도 꿈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구글 검색은 성장의 여지도 사라진다. 래리 페이지는 미래에는 어디를 향해 구글이 뭘 만들어야 할지 꾸준히 자문한다. 자동운전 차량과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건강과 인류의 행복을 개선하기 위한 생명공학 벤처기업인 칼리코(Calico)를 설립하거나 구글 파이버 제공을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지난해에도 스마트 화재경보기인 네스트 프로텍트(Nest Protect)를 인수했고 올해 4월에는 태양열로 무인 항공기 드론을 구동시킬 수 있는 타이탄에어로스페이스(Titan Aerospace)를 인수했다. 구글 내부에는 혁신적 연구를 진행하는 문샷(moonshots) 팀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사업을 보면 마치 구글이 임의로 이것저것 사업을 펼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 사업의 배후에는 중요한 목적이 있다. 래리 페이지의 구상은 “모든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와 연결하고 인공지능은 우리가 스스로 필요한 걸 재빨리 인식한다”는 게 그것이다. 그의 비전은 누군가 집안에서 춥다고 느낀다면 스마트워치가 이런 감정을 알아내 온도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다. 우유가 부족하다면 스마트 냉장고가 자동 운전 차량에 지시를 보내고 구글 로봇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에서 쇼핑을 한다. 이 모든 건 구글의 근간 기술인 검색엔진이 중심이다. 완벽한 검색엔진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고 있다는 얘기다. 래리 페이지가 그리는 세계가 무섭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이용하기 위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 기술을 위한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래리 페이지는 지난해 “요즘 사람들이 오래 전 사냥과 농경을 주로 삼아 살았던 조상을 보면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미래엔 지금의 우리 생활을 보고 같은 말을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2세 소년 래리 페이지가 봤던 니콜라 테슬라는 가난한 채로 말년을 보냈지만 성장한 래리 페이지는 자신의 꿈과 야망을 위해 수십억 달러와 수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관련 내용 원문은 이곳( http://www.businessinsider.com/larry-page-the-untold-story-2014-4 )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