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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난리난 고오급 술&디저트 드실 분?
안녕하세요 여러분. 빙글러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술을 대접하고 싶은 민박집 사장 이요리입니다. (33세 男, 제주도 가본 적 없음) 오늘은 여러분이 동네방네 자랑할 만 한 고급진 음식을 대접해 드리려고 해요. 그것도 1명, 2명도 아닌 무려 10명에게! 왜 갑자기 빙글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냐고요? 로또 맞았냐구요? 이유가 너무 궁금하시다구요? 그렇게 궁금해 하시니, 여기에 얽힌 사연을 들려드리죠ㅎ 이 이야기는 제 민박집에 찾아온 손님, 빠게뜨씨와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전세계의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는 게 취미인 프랑스 금수저 빠게뜨씨. 한국에 미식 여행을 하러 와서 요리네 민박집에 머물게 되었는데요. 저에게 한국에는 어떤 맛있는 음식이 있는 지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제가 가장 즐겨먹는 한국 음식인 소맥을 말아 주었지요^-^ 스트레이트로 여섯잔째 말아 먹이자 기분이 좋아진 빠게뜨씨는 외출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3시간 뒤, 집근처 전봇대와 진솔한 인생얘기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어요. 그대로 끌고와서 살포시 침대에 던져 넣어주었습니다.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 정신이 든 빠게뜨씨. 어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자기가 전여친에게 전화를 47통이나 했는지 묻더군요. 빠게뜨의 기억을 순삭시킨 소맥에 대해 이야기해주니 이친구 멘탈이 나가는겁니다. '이렇게 쎈 술을 평소에 먹은 적이 없다.' '평소 먹던 술이랑 너무 달라서 몸이 적응을 못한 것 같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평소엔 무슨 술을 먹는지 궁금하다고 물어보니, 귀국 후 프랑스에서 먹는 술을 보내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며칠 뒤, 빠게뜨씨가 보낸 술이 요리네 민박에 도착했습니다. 프랑스 금수저가 보내준 술이니까 뭔가 고급지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는데 심하게 고급져;;; 술을 보내달라니까 '술님'을 보내줬네ㄷㄷㄷ 지나치게 고급진 술님의 등장에 당황한 저는 술과 함께 들어 있는 편지를 보고 더 당황했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술인 '쎄시' 보낼게. 라거펠트랑 뒤카스도 좋아하더라. 엥? 라거펠트???!!! 지금의 샤넬을 만든 전설의 레전드인 디자이너! 간지 그 자체! 등장만으로 동대문 시장을 밀라노 패션 스트릿으로 만들어버린 칼 라거펠트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참고로 라거펠트는 지금의 샤넬을 만든 전설의 레전드인 디자이너! 간지 그 자체! 등장만으로 동대문 시장을 밀라노 패션 스트릿으로 만들어버린 칼 라거펠트를 말하는거야. 칼 라거펠트 & 쎄시 콜라보 사진도 함께 보낼게 으어이씨 대박;; 갑자기 급 부담스러워지네. 그렇다면 호..혹시 편지에 써있는 '뒤카스'는 미쉐린 3스타를 받은 프랑스 최고급 요리의 거장, 알랭 뒤카스 셰프를 얘기하는 건가? 아, 그리고 '뒤카스'는 미쉐린 3스타를 받은 프랑스 최고급 요리의 거장, 알랭 뒤카스 셰프를 얘기하는 거야. 헐 뭣이여ㅜㅜㅜ 저는 그냥 쏘맥 말아 맥였는데, 그 보답으로 온 술이 무슨 샤넬 디자이너에;; 미쉐린 3스타 셰프에;; 저와 어울리지 않게 넘나 고급진 술이 와버려서 당황한 저는 빠르게 트렌드에 편승해버리기 >ㅠ< 원래부터 이 술을 즐기는 트렌디 가이 인 척 하기로 했어요ㅎ 그리고 귀한 술을 선물해 준 빠게뜨 씨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지요. '술 너무 고마워 ㅜㅜㅜ 이렇게 구하기 어려운 귀한 술을 보내주다니 잘 마실게!' ㅇㅇ 지금 프랑스의 프리미엄 스팟 가면 다 쎄시 Cider 마시고 있음. 요즘 완전 트렌드라서, 한국 힙스터들도 좋아할 거야. 흔한_프랑스의_거리풍경.JPG 헐 진짜네. 여기저기서 다들 쎄시 때리는 것 보소ㄷㄷ. 근데 Cider라고? 가 술이 아니라 사이다였음..?? 응...?? 아아ㅏ아! 아하하하; 사이다 사이다! ㅋㅋㅋ 사이다 = 사과주죠 아하하; 맞아맞아 사과주! 영어로는 사이다 불어로는 시드르! 아 잠깐 진짜 순간적으로다가 까먹을 뻔했네 휴... 여러분도 다 알고 있었죠? 사이다(불어로 시드르)는 사과주라는 걸. 무튼 빠게뜨씨를 통해 SASSY 시드르를 받게 되었는데, 넘나 맛있다고 하니 빠게뜨씨가 다른 사람들도 나눠주라고 더 보내준다고 합니다. 무려 10세트나!! 여러분께 드릴 쎄시 시드르입니다! 쎄시 시드르는 각기 다른 맛으로 3개 제품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것들을 하나씩 모두 즐길 수 있게 세트로 드릴게요! 왼쪽부터 쎄시 시드르 쁘와레 (2.5도) 쎄시 시드르 (5.2도) 쎄시 시드르 로제 (3도)입니다 쎄시 시드르 / 쎄시 시드르 로제는 사과, 쎄시 시드르 쁘와레는 배로 만들었어요. 존맛이겠죠? 도수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맛있다고 꼴깍꼴깍 마시다가 정신차리면 3병 싹 비워져 있고 막 그럽니다. 게다가 과일을 10%도 아니고 50%도 아니고 100% 착츱! 각각 사과와 배 품종을 100% 착즙해서 만들었다는 거~ 천연 과일이 꽉 찬 신선한 그 맛 덕분에 한모금 하자마자 바로 음흠~ 음흠흠흠흠흠~ 음흠~ 이렇게 됨 ㅋㅋㅋㅋ 무튼 이 술은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고메이494’를 비롯해서 여기저기 품위 폭발하는 곳에서 볼 수 있는 술인데 빙글러 여러분께 드리는 겁니다(생색) 조엘 로부숑, 알랭 뒤카스, 야닉 알레노 등 미쉐린 3스타 셰프들이 인정한 존맛 술인데 빙글러 여러분께 드리는 거라구요!! (생색생색)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생산되는 100% 천연 크래프트 시드르인데 빙글러 여러분께 드... 넹 작작할게여; 여러분들이 쎄시 시드르를 즐기실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쎄시 시드르와 어울리는 고품격 프랑스식 디저트를 제공하는 아래 두 매장중에서 직접 가서 쎄시 시드르를 즐기고 싶으신 매장을 골라 댓글에 달아주시면 매장 디저트 이용권과 함께 쎄시 시드르 1세트를 받으실 수 있어요! 자 그럼 여러분께 고품격 디저트와 고오오급 쎄시 시드르를 제공할 매장 후보를 보여드릴게요! 1. 카페 인 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복합문화공간 [아라리오 뮤지엄]에 이어진 전통과 모던함이 어우러진 건축물 '인 스페이스' . 2층 계단을 오르면 통유리창 너머의 공간이 있으니, 바로 '카페 인 스페이스'다. 분위기 좋고 놀랄만큼 맛있는 디저트를 찾고있다면 바로 이 곳을 주목하자! 2. 애술린 라운지 프랑스 명품 서적 브랜드 ‘애술린(ASSOULINE)’에서 운영하는 아트 & 컬쳐 라운지인 ‘애술린 라운지(ASSOULINE LOUNGE)’. 문화 및 패션, 라이프 스타일관련 다양한 명품 책자들이 구비되어 있는 갤러리 북과 브런치, 샐러드, 파스타 등 음식과 커피 & 디저트가 마련 되어 있어 간단하게 식사와 티타임도 나눌 수 있다. 세계적인 명품브랜드의 브랜드북으로 대표되는 아트북과 함께 샴페인, 시드르(Cidre)를 즐기고 싶다면 ‘애술린 라운지’에서의 만남을 적극 추천! 자! 이제 고품격 프랑스식 디저트와 함께 프랑스에서 온 대세 술 쎄시 시드르를 즐기는 일만 남았습니다>< 디저트 이용권 + 쎄시 시드르를 받고 싶은 매장을 댓글에 달아주세요! ex) 1번 매장이요! ex) 카페 인 스페이스요! (본 이벤트는 빙글의 공식 허가를 거쳐 진행되는 이벤트입니다.
친일파와 독립투사
▣친일파와 독립투사 한국 역사상 가장 극단적 사대파는 바로 친일파였다. 이들은 조선에 지켜야 할 좋은 가치가 아무것도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유일한 살길은 조선인의 정체성을 버리고 선진국인 일본에 철저히 동화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친일파들은 자발적으로 일본의 침략을 도왔으며 일본이 패망하는 날까지 열렬히 일본에 충성했다. 하지만 모두가 친일파의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일본에 동화되기를 거부했으며,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주적 조선인만의 나라를 만들려 일본과 친일파와 맞서 싸웠다. 그들이 바로 독립투사였다. 500년을 넘게 이어져온 조선왕조는 1910년에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고 멸망한다. 조선이 망한 원인을 두고 여려가지 주장이 있으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구한말 조선 무렵 조선 지배층 내부에서 일본과 결탁한 친일파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근대적인 새로운 문물을 소개한 계몽 기관이자 언론사로 알고 있는 ‘독립협회’와 ‘독립신문’은 사실 일본과 결탁한 친일조직이었다. 애초에 독립협회와 독립신문 자체가 일본 외무대신과 주한 일본 공사 같은 일본의 정부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단체였으니,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일본이 제공한 자금으로 만들어진 독립협회와 독립신문은 일본을 열렬히 찬양하는데 열을 올리며, 조선인들 사이에 친일여론을 퍼뜨리는데 주력을 다했다. 고종34년(1897년) 114호자 《독립신문》에는 “사악한 청나라가 조선에서 쫓겨난 것은 하늘이 조선 백성에게 베푼 은혜”이며, 고종35년(1898년) 별호에는 “조선은 일본의 화폐를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라는 논설이 실렸다. 또한 《독립신문》은 조선이 자구 국방을 갖추려는 움직임을 방해하는 음해도 서슴지 않았다. 고종 황제가 2척의 군함을 외국으로부터 들여오려는 계획을 세우자“세계 모든 나라들이 조선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는데 무엇하러 군함을 들여오는가? 군대는 그저 도적떼나 평정할 정도의 소규모만 있으면 된다”라고 극렬히 반대했다. 《독립신문》의 논지대로 라면 조선은 일본의 화폐를 그대로 쓸만큼 경제가 일본에 종속되고, 자주 국방을 위한 국비 증강도 하지 말아야 했던 셈이다. 아울러 독립신문은 일본에 맞서 싸우는 조선 의병들을 가리켜 비도匪徒(도적떼)라고 모욕을 하는가 하면, 조선 침략에 열을 올리는 이토히로부미와 내통하던 이완용을 불세출의 천재이자 애국자라고 찬양을 했다. 이런 《독립신문》이야말로 친일 사대주의 언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독립협회 역시 친일 행각으로는 《독립신문》에 뒤지지 않았다. 러시아가 일본과 대립하자 독립협회는 반러시아적인 모습을 보이며 고종황제를 압박했다. 고종이 러시아의 협조를 받아 4000명의 장교와 3만 명의 병사로 조직된 근대식 군대를 창설하려 하자, 독립협회는 고종에게 조선이 군비를 증강하는 것은 일본에 대해 적대적인 의도를 품은 일이 아니냐며 협박을 했다. 또한 독립협회는 연일 러시아를 비방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군중을 선동하여 고종을 몰아내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말로는 ‘독립’을 내세웠으나, 《독립신문》과 독립협회는 사실 일본에 종속되기를 원한 위선적인 친일파 조직이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토히로부미 조선에 보낸 첩자이변서 고종의 측근이었던 배정자 같은 경우도 있었다. 김해 고을에서 아전 노릇을 하던 배지홍의 딸로 태어난 배정자는 아버지가 역모에 휘말려 죽자 일본으로 달아났다. 배정자는 이토 히로부미를 만나 그의 첩이 되면서 자기 아버지를 죽게 한 조선을 증오하여 반드시 망하게 만들겠다는 결심을 실행하게 된다. 배정자는 조선으로 돌아와 상류층 인사들과 어울리면서 친분을 쌓고 뛰어난 미모와 유창한 일본어 실력으로 고종의 환심을 사서 그의 측근이 되는데 성공한다. 조선 지배층 깊숙이 침투한 배정자는 조선에서 일어나는 고급 정보들을 전부 일본으로 넘겨주었다. 고종이 일본의 손길을 피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려던 일이 도중에 무산된 것도 배정자가 그 사실을 알고 일본 공사관에 정보를 전해주어, 일본이 손을 써서 고종의 망명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 일본의 주권 침탈을 폭로하려 밀사들을 보냈던 헤이그 밀사사건도 배정자의 밀고로 인한 내부 기밀 누출로 인해서였다. 이로 인해 고종은 황제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배정자처럼 자발적인 친일 사대 매국노로 활동하며 악명을 떨친 일진회도 빼놓을 수 없다. 약 4000명의 회원으로 조직된 일진회는 《독립신문》처럼 친일 여론을 퍼뜨리는 한편, 회원들에게 군사 훈련도 시켰는데 이는 일본군을 도와 항일 의병들과 싸우는 전투에 적극 가담시키기 위해서였으며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이들이야말로 구한말에 활개 치던 가장 악독한 친일 사대 매국노들이었다. 일본에 외교권을 넘긴 을사늑약을 체결하는데 동참한 이완용과 송병준 같은 조선의 고위 관리들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이완용은 을사 늑약 이후, 아들을 일본에 유학을 보내면서“장차 50년 후, 일본에 조선인 출신 재상이 나올 줄 누가 알겠느냐? 라는 말을 남겼다. 이렇게 조선 권력층 내부에 일본과 내통하는 친일파가 가득 했으니, 조선이 망하지 않을 도리가 있었겠는가? 아무리 항일 의병들이 무기들 들고 일어나 일본군에 맞서 싸운다고 해도, 친일파가 그 정보를 모조리 일본에 보고하는 상황이니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의병들의 항일 투쟁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본 반역자인 친일파들을 정신병자나 패륜적인 악마로 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 지식인이었다. 형세의 이익을 계산한 이들은 “조선은 존속할 가치가 없으니 빨리 망해서 일본에 흡수하는 일이 옳다”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 확신범들이었다. 구한말 배웠다는 상류층 위정자들은 나라를 팔아먹고 민초들은 의병으로 거사를 하여 독립투사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깨어있는 지식인 중에 일제에 항거한 훌륭한 지사들도 많았다. 또한 무지렁이 민초들 중에도 눈앞에 이익에만 급급하여 친일을 서슴지 않고 한 자들도 많았었다. 오늘날 친일파와 가장 닮은 사람들은 입만 열면 “한국은 이래서는 안 된다. 선진국이 하는 대로 본받아야 한다”라며 세계주의를 가면을 쓰고 자국 혐오와 사대주의적 발언을 일삼는 지식인이다. 만약 이들이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에 활동을 했다면, 아마도 대부분 자발적으로 열렬한 친일파가 되지 않았을까 『자주파 VS 사대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