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 전략 / 역사
by
KA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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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스쿼드의 놀라운 정체
잉글랜드가 졌습니다. 잉글리쉬 프리미어 리그는 세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리그입니다. 당연하게도 상업적인 면이 부각되는 리그이고 선수들의 몸값 역시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 안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연봉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이번 유로에서 잉글랜드 스쿼드는 가장 비싼 스쿼드라는 망토를 뒤집어쓴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게 졌습니다. 물론 비싼 몸값의 선수가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경기는 정말 공이 둥글다는 것을 증명한 경기였습니다. 아이슬란드는 재밌게도 공동 감독 체재를 구축하고 있는 대표팀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랑거벡 감독은 과거 스웨덴 감독도 맡을 정도로 명망있는 감독입니다. 하지만 왼쪽에 있는 할그림손 감독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의 본업은 치과의사입니다. 물론 감독 경력도 코치 라이센스도 있지만 할그림손은 현역 치과의사입니다. 역전골을 어시스트했던 보드바르손 역시 축구선수만 하는 선수는 아닙니다. 보드바르손은 여름엔 축구를 하고 비시즌기인 겨울에는 주유소 알바를 하는 투잡족입니다. 그들이 뛰고 있는 리그의 재정 수준을 생각해보면 이런 선수들이 한 둘은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골키퍼인 할도르손 역시 따로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영화 감독 입니다. 치과 의사, 주유소 알바, 영화 감독 이들은 오롯이 축구가 업인 선수들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궁금하네요.
꼴랑 12억에 눈물 흘린 노무현
오늘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7주기입니다. 그토록 노무현 대통령을 미워했던 새누리당이 이번에는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지역주의 타파 등 통합의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애쓰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가족분께도 깊은 애도를 표한다.”는 아주 후한 논평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을 말하면서 울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떠난지 7년이 넘었지만, 그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났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할까요? 그가 단순히 우리 곁을 떠난 추억과 아쉬움 때문일까요? 아이엠피터는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보다 그가 걸어온 길을 각종 사료와 자료를 통해 찾아내면서 더욱 놀라웠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많은 사람의 추모를 받는 인물이기보다는 그가 한국 정치사에 끼친 개혁과 변화의 시도와 노력이 지금 우리 정치를 이끄는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의 118억과 노무현의 12억’ 여기 2002년 10월 29일 같은 날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한 장은 이회창 대선 후보를 위한 ‘한나라당 중앙당 후원회 및 대선필승 결의대회’ 모습이고, 한 장은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선 후보를 위한 ‘희망돼지 저금통 및 희망티켓 1차 정산금 전달식’의 모습입니다. 모두가 대선 자금을 모금하는 행사였습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대선자금 모금식은 서울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당원 8천 명과 김각중 전경련 회장, 김재철 무역협회 회장,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조남홍 경영자총 연합회 부회장 등 경제 5단체 지도자와 정계, 재계 인사들이 참석했습니다. 노무현 후보 모금 전달식은 새천년민주당 당사 앞에서 조촐하게 열렸습니다. 이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대선자금 모금액은 118억7천만 원이었고, 노무현 후보에게 전달된 금액은 12억 3천 8백만 원이었습니다. 이회창 후보는 10월 29일 하루 만에 모금된 금액이고, 노무현 후보는 2주 동안 모금한 돈입니다. 10배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한나라당이 이례적으로 모금액을 발표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대세는 이회창이라는 사실을 기업가들에게 대놓고 말한 것입니다. 아무리 노무현 후보가 노력해도, 결국 선거는 돈이고, 그 돈을 전경련 등 재계 인사들이 내놓았으니 승리는 이회창 후보에게 있다는 무언의 압력이었습니다. ‘살아있는 권력과 맞짱을 뜬 검찰’ 2002년 대선이 끝났습니다. 2003년 서울중앙지검이 SK그룹의 분식회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대선자금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검찰수사가 진행되면서 불법대선자금 공방이 시작됐습니다. 2003년 7월 21일 노무현 대통령은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각 당의 대선후보가 확정된 시점 이후 사실상 대선에 쓰인 정치자금과 정당의 활동자금 모두를 포함해 공개해야 한다. 대선 자금 문제가 국민적 의혹으로 제기된 이상 투명하게 밝히고 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정치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길이 없다”며 “여당과 야당 모두, 16대 대선 자금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철저하게 검증을 받자고 제안을 합니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민주당 대선자금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조사하면 되는 것 아니냐, 왜 한나라당까지 문제 삼느냐’며 대통령의 제안을 반대하며,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공개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검찰의 수사결과 한나라당은 815억7천만 원, 민주당은 78억 68000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이 밝혀졌습니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한나라당이 트럭을 이용해 LG그룹으로부터 150억 원의 불법대선자금을 ‘차떼기’로 넘겨받은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검찰의 대선불법자금 수사로 서청원, 최돈웅, 김영일,서정우 등 한나라당 측 인사와 안희정, 최도술, 여택수, 정대철, 이상수 등 대통령의측근들이 구속됐습니다. 당시 안대희 대검찰청 중앙수사본부장은 좌희정이라고 불렀던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씨와 청와대의 권력 최도술을 구속시키면서 살아있는 권력과 맞장을 뜬 사람이라며 팬클럽까지 생겼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 수사결과 발표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옛날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일이 이번에는 문제가 됐다. 고통을 받고 있는 우리모두가 더 나은 내일로 한 발짝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 되었으면 한다. 진통과 아픔을 겪고 오늘과 다른 내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해도 검찰의 정당한 수사는 인정했고, 검찰또한 살아있는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사했습니다. 혹자는 그럽니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하지만 815억과 78억은 다릅니다. 100보나 10보나 같다고 하면 바뀌지 않습니다. ‘초선 의원도 가능해진 정치자금 모금’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 발표가 있기 전부터 대선자금 공개 제안과 함께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의 개정을 제안했습니다. 정기국회 시정연설에서도 “합법적 정치비용은 현실에 맞게 올리고 선거공영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정치신인도 합법적으로 자금을 모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득표수에 따라 선거비용 전액을 보존해주는 제도 등은 참여정부 시절 만들어진 것입니다. 정치자금법 개정 이전에는 중진 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이 몰렸으나 정치자금법 개정 이후는 초선 의원들도 정치자금 모금액을 넘길 만큼 모금하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소액 후원의 힘…정의당 의원들 개인모금 1~3위” “野 필리버스터 주역 후원금 성적 보니…평균 훌쩍 넘겨” ‘꼴랑 12억에 눈물 흘린 노무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들이 800억이 넘는 돈을 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에게는 10년 근속 메달을 보내온 노동자, 결혼반지를 보낸 부부,생활비를 아껴 보내온 미국유학생 부부, 비닐봉지에 꼬깃꼬깃 돈을 모아준 시장 상인들, 용돈으로 꼬박꼬박 모은 돼지저금통을 보내준 초등학생, 폐품수집으로 근근이 모은 10만 원을 보낸 70대 할머니 등이 돈을 냈습니다. 지금이야 소액 다수 후원금 모금이 당연했지만,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국민들이 보냈던 돈은 대한민국 정치문화를 바꾼 의미있는 사건이자,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정치를 발전시키는 크나큰 계기였습니다. 당시 유시민 개혁국민정당 대변인은 ‘후보자가 유권자를 매수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가 후보를 매수하는 대중적 행동이 시작됐다. 대한민국 정치문화의 새장을 여는 것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돈이 깨끗하면 정치가 깨끗해지고, 정치가 깨끗해지면 그 정치가 국민들을 위한 정치가 될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는다.그래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은 돈을 깨끗하게 하고, 깨끗한 돈을 통해서 정치를 깨끗하게 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로 만들어 나가는 아주 중요한 개혁이다.개혁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생각한다” (2002.10.29, 희망돼지 전달식 노무현 후보) 하루 만에 118억을 모은 한나라당에 비해 약 13억을 모은 노무현 후보를 객관적으로 보면 초라합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후보는 막강한 한나라당의 자금력 앞에서도 ‘큰 소리’를 칠 수 있게 해준 국민들이 너무 고마웠을 것입니다. 아니 엄청난 자신감이 생겼을 것입니다. 노무현을 기억하는 사람이 울컥하는 이유는 별것이 아닙니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정치인이 가진 대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국민대권시대”를 만들고, 왕을 뽑는 대통령선거가 아니라 소신 있고 원칙 있는 친구를 뽑는 선거를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혼자 만든 세상은 없습니다. 그러나 노무현과 국민이 함께 만든 세상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난 날입니다. 그를 추억하기 보다는 그와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세상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했으면 합니다.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도 하늘에서 국민과 함께 만들려고 했던 세상이 꼭 오기를 간절히 바랄지도 모르겠습니다. <2006년 청와대에 초청된 노사모 회원의 답사> 참 와보고 싶었습니다. 참 만나보기 원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분, 우리가 지지하는 분이 일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불가능해보였던 승리를 쟁취했던 그 날로부터 한참 지나 이제야 오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정말 부패없는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셨던 분들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대접받기 원치 않았고 보상을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 대통령님(노짱님)의 성공과 우리의 승리입니다. 낡은 시대의 유물을 청산하고 대한민국을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것 우리 사회가 더 진보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우리가 다시 승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는 노짱님에게 새로운 용기를 드리러 왔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을 대표해서 말씀드립니다. 힘내십시오. 사랑합니다 필자 주: 이날 노사모 회원의 답사가 끝나자 노무현 대통령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이 글 일부에는 참여정부 백서와,노무현 사료관에 남아 있는 노무현 후보 인터넷선거특별본부 취재팀의 기사가 인용됐습니다.
중국 장웨이린교수의 이순신에 대한 평가와 고백
사실 조선의 역사에 관심이 없었다. 일본교수들의 말만 듣고 학술연구회에서 거북선을 처음 보았다. 저런 배가 400여년 전에 있었단 말인가? 나의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학술연구회의 이름은 '이순신'이었다. 일본교수진의 도움으로 책 7권을 하루만에 다 읽고 책을 놓은 뒤, 가느다란 한숨과 함께 어디선가 느껴지는 심장소리.....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서양과 일본에게 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를 구할수 있는 위인이 있다면 누구일까? 물었다. '항우', '제갈공명', '손자', '관우'ᆞᆞᆞ 나는 한참동안이나 창문 너머를 바라보다 말했다.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이 나타난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이었을 거라고ᆞᆞᆞ 그리고 학생들에게 거북선 사진을 보여주었다. 모두들 의아해 했다. 400여년전 조선과 일본의 전쟁시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이야 말로 중국을 구할 유일한 영웅이라고 나는 여러분께 말한다.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조선 수군장수 '이순신'은 5천명도 안되는 군사와 50척 도 안되는 함대를 이끌고 40만 대군의 왜군과 1300대의 일본함대와 맞서 싸워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모두 승리 하여 조선을 구했었다. 당시 일본군은 100년의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싸움의 고수들이었고 동아시아 최강의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때 조선 수군은 물고기나 잡고 농사나 짓던 나약한 병사들이었으나, 단 1년만에 훈련시켜 40만 대군과 1300척을 거느린 일본군과 맞서 이길 수 있는 군대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위대하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일본 장수였다면 당시 명나라는 물론이고 태국과 베트남,인도네시아까지 일본군에 점령 되었을 것이다. 세계 어느 국가도 한 인물의 존재에 따라서, 이렇게 역사가 뒤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 거북선을 보라, 누가 이 배가 400여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믿겠는가? 여러분들은 눈을 떠야한다. 나는 1시간정도 더 '이순신'장군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강의를 끝마칠 수 있었다. 강의가 끝났을 때 난 처음으로 전 학생들이 일어나며 기립 박수를 받았다. 어떤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기까지ᆞᆞᆞ 내가 처음 '이순신'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을때 그감정 을 나의 제자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장웨이린' 교수ㅡ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고구려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 시키는 일을 맡았다가 '이순신'학술회를 시작으로 고구려 역사 편입작업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말한다. 역사학자가 후세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되는 두가지 부끄러움이 있다. 하나는, 히틀러가 200만 유대인을 죽인것보다 그역사를 감추며 숨기는것이고, 또 하나는, 진정한 위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것이라고... 성웅 이순신 제독의 명언 1.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2.머리가 나쁘다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 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과거에 급제했다. 3.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장교로 돌았다. 4.윗 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불의한 직속 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5.몸이 약하다고 고민 하지 마라. 나는 평생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 았다. 6.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 일곱 에 제독이 되었다. 7.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 세 번 싸워 스물 세 번 이겼다. 8.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 말라. 나는 끊임 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긴 채 옥살이를 해야 했다. 9.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라.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열 두 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았다. 10.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지 말라. 나는 스무 살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 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섰다. 11.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