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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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pj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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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교과서> - 여자들은 읽지 말라는 책을 훔쳐보다
요즘 '남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판타지의 남성이 아닌 한국을 살아가고 있는 유부남들의 속마음과 실상이 궁금했어요. 블로그를 하면서 이웃 남성들을 많이 접합니다. 제가 굳이 상대의 나이를 물어보는 일은 없지만 댓글을 주고받다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연상남과 연하남의 비율이 대략 9:1 인것 같아요. 저는 역시 중년남성에 관심받는 스타일인가 봅니다. Orz 여성 이웃들의 경우는 3:7 or 4:6 정도로 언니들보다 동생님들 비중이 더 높구요. 빙글을 하면서는 남녀 비율도 남성이 월등하고 평균적 고령화(?)는 더 심화된 것으로 설문조사 결과 밝혀졌습니다. 제가 한국남성과 본격적으로 연애를 해 본 경험이 없어서.. 한국 남자들에 대해서는 편견이 좀 있어요. (처음에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썼을 때만 해도 그랬는데, 물론 지금은 한국인 남친과 연애 잘 하고 있습니다. 다만 앞으로 적는 내용, 특히 결혼관 같은 것은 변한게 없으니 따로 수정하지 않겠습니다.) 가부장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바람피는 것을 쉽게 생각한다는... 블로그 하면서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다는 것.. 정말 가정적이고 모범적인 분들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마음 깊숙히 박혀있는 편견은 쉽사리 바뀌진 않더군요. 그래 저런 분은 대한민국 1%의 특이남편인게야....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제 거의 다 나와버렸네요. 첫번째는 물론 제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놓치기 싫다는 것. 시간적 정신적 자유의 포기와 결혼이라는 계약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가족'들의 굴레. 남편은 내가 자의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이지만... 그 선택의 결과에 옵션으로 따라오는 시월드의 서브 가족집단은 일일히 선택할 수 없는 옵션이기에 큰 모험이고 부담이죠. 두번째는 바로 이런 한국 남성에 대한 편견. 경험도 별로 없는 주제에 갖는 편견이 더 무서운거죠. 근데 이런 편견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니고 이래저래 줏어 듣는 가운데 점점 강화되고 고착된 편견이죠. 아주 근거가 없지는 않은.  그러던 차에 눈에 띈 책이 명로진이라는 배우 겸 작가의 <남자의 교과서>라는 책이었어요. "이 책은 여자들은 읽지 않았으면 한다. 그저 우리 남자들끼리 나누는 담소일 뿐이다. " 뭘 그렇게 숨김없이 썼길래 여자들은 읽지 말라는 것인지.. 얼마나 여자 흉을 본건지.. 얼마나 야하게(?) 썼는지 궁금해서 더 열심히 봤는데요 ㅎㅎ    크게 다섯가지 카테고리로 구분된.. 마치 <사물판독기> 마냥 카테고리 밑에 하나의 단어(주제)를 갖고 그에 대한 단상(혹은 수다)을 적어내려갔네요.  Work / Family / Sex / Favorites / Dream  - Work : 권력, 일, 프로, 계급, 돈, 가오....  - Family : 아버지, 엄마, 역할피로, 결혼, 잔소리, 생리...  - Sex : 팜 파탈, 외모, 섹스, 외도, 욕망 ....  - Favorites : 술, 담배, 자동차, 근육, 군대, 축구....  - Dream : 마흔, 나, 친구, 휴가, 만족, 죽음, 꿈 ....    조심스럽게 얘기하자면 이 책은 <남자의 교과서>라기 보다 <중년의 교과서>라 불러야 합니다. 읽을수록 미래의 남편이 될 수도 있는 남성상이 아니라 현재의 중년 남성들의 삶에 대한 애환과 속사정에 대한 얘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물론 지금 30대의 남성도 1-20년 후면 이 책에 나타나는 남자들과 똑같은 길을 갈지도 모르겠죠..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1-20년 차이라는 것은 엄청난 차이죠. 분명히 이 책의 내용과는 또다른 남성상들이 등장하리라 믿어요.    이 책의 내용에 그렇다고 제가 공감을 못하느냐.. 그건 아니에요. 공감이 백퍼 되는 것도 있고.. 너무 동떨어진 세계여서 이해할 여지가 없는 것도 있는.. 정말로 남자들의 수다인 분야도 있었어요.    Work 분야에 나타난 얘기들은 커리어우먼인 저로서도.. 그것도 남자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제 자리를 지켜온 입장에서... 직장에서 숱하게 봐온 장면들이 오버랩되면서 공감과 재미가 있는 부분이었어요.  각 테마마다 뒤에 한 두 줄의 정의가 나와있는데 이 부분도 재밌어요.    예를 들면,    권력 : 그 어떤 것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힘. 권력이 있어서 가장 좋은 점은 99퍼센트 쓸데없는 말을 해도 다른 사람들이 1퍼센트도 놓치지 않고 들어준다는 것.  (※ 진리인 것 같아요 ㅋㅋ)   프로 : 밥벌이로 하는 자신의 일에 능숙해진 사람. 프로는 열정을 다하지만 집착하지 않고, 할 말은 하지만 앓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 반성 좀 했어요. 그래 진정한 프로는 과연 이런 경지이겠구나....  저는 앓는 소리 많이 하거든요. 아직 멀었어요. 공감과 반성)    계급 : 드러내지 않아도 남자끼리는 보이는 것. 계급장은 떼야 할 때와 붙여야 할 때를 잘 구별해야 한다.  (※ 남자들끼리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    가오 : 남자가 꼭 지켜야 할 것 중 하나. 체면도 허세도 아닌 남자의 명예......  유의사항 - 가오를 지키려면 우선 추위나 배고픔에 강해야 한다.  (※ 남자가 가오가 있지.. 라는 말... 간혹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인데.. 솔직히.. 찌질해 보였답니다. 병맛이 아닌 병신처럼 보였거든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는 가오의 의미에 대해 조금은 이해를 했어요. 젊은 남자들이 말하는 가오는 허세나 후까시(?)에 가깝고.. 진짜 남자들의 가오는 지켜야할 마지막 명예라는 의미라는 것 같더군요.  그런 의미라면 가오는 남자에게만 있는게 아니죠.  굳이 가오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자존감, 프라이드, 자기효능감 등등... 근데 쓰다보니깐 가오라는 말이 풍기는 묘한 비속어적인 뭉클함(?)이 없이 학술적이거나 팍팍하게 들려서 인간미가 없어보이긴 하는군요.  그래요. 가오는 남자의 단어로 인정해 주기로 하죠 ㅎㅎ)  결혼 : 사랑하는 사람과 한집에서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 그것이 본질이며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다.  (※ 뒤로 갈수록 이런 얘기를 읽으면서 역시 남자는 여자를 알수 없는 것인가.. 아니.. 서로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이 이렇게 단순 명쾌하게 정리된다면 누가 결혼을 주저하리오!)    야동 :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남자들이 즐겨 보는 동영상. 단, 모든 남자들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다.   (※ 저도 야동을 취향에 맞는 것은 가끔 본적 있는데요. 즐겨 본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빈도를 말하는 건지... 국민엠씨 유재석부터 야동 순재 할아버지도 즐기시는 거 보면 과연 남자들에게 뗄래야 뗄수 없는 부분인 것은 맞는듯 하네요!)      제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은 남자들의 Favorites였어요. 저 위에 적힌 단어들을 보시면 짐작하시겠지만.. 어쩌면 여자들이 제일 듣기 싫어한다는 군대에서 축구했던 얘기같은 것으로 채워져 있거든요. 그런 것은 굳이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진정 남자들의 세계로 '존중'해 주면 되는 것이죠.    그래도 이 책이 저에게 의미가 있던 것은 남자들이 갖고 있는 고민이나 삶의 무게에 대해 꽤 직접적인 표현이 있었다는 것. 흔히 남자들이 술이 꽤 들어가기 전까지는 입에 담지 않는 고백들이 적혀 있다는 것. (네... 눈 앞에서 그런 남자 경험했습니다 ㅎㅎ)...  그리고 남자들이 안고 있는 고민들.. 요새는 사회생활하는 여성들도 공감하고.. 일정부분 같이 안고 있다는 것.. 그런 부분들은 소득이 있었어요.    다만 초두에 적은대로.. 저하고는 좀 관계가 없을 세대의 고민이라는 점.. 그 부분이 몰입도를 떨어트렸네요.  중년 남성들이 읽으면 격하게 공감하실지도 모르겠고요.. 그래서.. 저에게는 그저그런 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남자들끼리의 수다라고.. 여자는 안 읽었으면 좋겠다고 한 책을 훔쳐본 셈이니.. 제가 불평할 처지도 못되긴 하네요. 훗   - 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