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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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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증책임
https://www.sankei.com/world/news/190723/wor1907230043-n1.html 산케이의 이 간단한 기사가 눈에 띄는 이유는 단순하다. 입증책임을 한국이 "보여줘야 한다(示さねばならない)"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꽤 산 인물이라고 하지만 미국인이니 당연히 영어로(...) 기고했을 터인지라 영어 표현을 안 봐서 좀 조심스럽기는 하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기고자인 라일리 워터스(참조 1)는 해리티지 재단 소속이며, 이력을 봤을 때 WTO 소송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즉, 이 인물이 실제로 "국가안보 예외"를 다뤘던 WTO 판례(참조 2)를 공부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WTO 패널은 국가안보 예외 판례에서, 제소국(우크라이나)에게 입증책임이 있다고 분명히 얘기한 적이 없다. 패널 보고서(참조 3)를 자세히 보면, 패널은 대단히 조심스럽게 입증책임을 제소국인 우크라이나나 피소국인 러시아에게 지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UN총회에까지 상정됐던 사안이니 자연스럽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무장 분쟁(armed conflict)"이 있다고 결론내렸고, 그에 따라 러시아가 국가안보 예외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결론내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흥미로운 것은 3자참여국들, 그 중에서도 다른 누구도 아닌, 일본이 한 얘기이다. (패널 보고서에 나온다. 읽어 보시라.) 일본은 해당 분쟁에서, 입증책임이 피소국인 러시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억울함을 호소한(...) 우크라이나가 저런 조치 안 해도 된다고 뭔가 보일 수 있다면, 당연히 러시아가 국가안보 예외 조치를 왜 했어야 하는지, 러시아가 입증책임을 진다고, 일본은 분명하게 얘기했다. 정리해 보자. 국가안보 예외 조치 판례를 볼 때, WTO 패널은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다, 이런 식으로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았다(참조 4). 또한 우리가 일본과 전쟁중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한일 분쟁을 UN 총회가 인정한 적도 내 기억에는 없다. 결론적으로 여기서 인용하는 라일리 워터스씨의 말 중, 입증책임 부분이 틀렸다는 얘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발 뻗고 잘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알죠? ---------- 참조 1. https://www.heritage.org/staff/riley-walters 2. 국가안보 예외(2019년 7월 21일): https://www.vingle.net/posts/2646401 3. 패널보고서: https://www.wto.org/english/tratop_e/dispu_e/512r_e.pdf 4. 흥미로운 점은, WTO 패널이 각국이 WTO에 제출하는 무역정책검토보고서(TPRM)를 사실입증용 증거로 사용했다는 점인데... 우리나 일본이 제출한 무역보고서에, 현재 일본이 주장하는 안보 문제는 정부 제출 보고서에 없다. https://www.wto.org/english/tratop_e/tpr_e/g351_e.pdf
미드소마(2019)
한 마디로 여름 휴가 특집 힐링 영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거짓말이 아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여러가지 장면을 보고 생각난 것들이 좀 있다. 사실 이 짤방이야말로 영화의 줄거리를 알려주는 스포일러 역할을 한다 볼 수 있는데, 영화를 안 보셨다면, 잘 모르실 터이다. 당연히, 그림 설명 안 한다. 첫 번째로는 춤이다. 일명 호르가단센(Hårgadansen)인데, 이게 하멜른의 쥐잡이(Rattenfänger von Hameln), 즉 피리부는 사나이와 일치하는 전설이다. 악마가 음악가로 변해서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춤추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전통(?)은 확실히 유럽 전역에 알려져 있던 것이 분명하다(참조 1). 호르가단센도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춘다. 이 때 부르는 노래가 호르가곡(曲)(Hårgalåten)인데, 가사를 보면 실제로 “바이올리니스트”가 나와서 마을 사람들을 꾀는 내용이다(참조 2). 단, 스트라스부르의 경우와는 달리, 영화에 나오는 호르가단센에 성 비투스의 도움같은 것은 없다. 룬 문자도 등장하고 크리스트교 이전의 풍습을 이어받는다고 하니, 크리스트교의 전래와는 별 상관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절벽(Ättestupa)이다. 이게 일종의 고려장인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스웨덴의 전통도 아니기 때문이다(찾아보면 아이슬란드 전통으로 나와 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Gautreks saga)를 1664년 스웨덴어로 번역하면서 스웨덴에 있는 지명으로 바꿔버렸다가… 스웨덴 전통으로 둔갑한 것이다. 심지어 그 번역자도 알려져 있다(참조 3). 그래서… 현대 스웨덴에서는 은퇴자 연금이 부족하면 대안으로 추천함직하다는 살벌한 농담용으로 쓰이는 모양이다(참조 3). 세 번째는 곰이다. 모두들 만화 베르세르크를 좋아하실 텐데, 주인공인 가츠가 광전사 갑주를 입고 각성(!)하면 어떻게 된다? 짐승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이 어원이 뭐냐면, “곰”의 “가죽”이다. 그래서 모두들 그 장면이… 더 이상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듯 싶다. 게다가 노르딕 신화에서 곰을 조상들의 영혼으로도 간주한다고 한다. 곰 가죽을 뒤집어쓰면 오딘에게 가까이 간다는 의미다. -------------- 여기서부터의 내용은 상당히 스포일러가 될 성 싶다. 그래서 주인공은 가정을 찾았는가? 인종적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일부러 “조정”시켜 장애인을 태어나게 만들기도 하는 이 곳 사람들은 어쩌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일지도 모른다(참조 4). 그래서 가족을 찾은 주인공이 드디어 미소를 지었고 말이다. 그것이라도 의미가 있다면 있을 수 있겠다. 아마도 새로운 연인도 이미 생겼을 테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로맨스 힐링 영화가 맞네. 그렇네. 참고로 영화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스웨덴 국민화가, 욘 바우어(John Bauer, 참조 5)의 그림들을 참고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스웨덴 대외홍보처의 실제 미드소마르 축제 설명(참조 6) 영상도 보도록 하자. 확실히 영화 속 축제보다는 재미가 없는 듯 하다. -------------- 참조 1. 1518년 스트라스부르의 춤 전염병(2018년 7월 15일): https://www.vingle.net/posts/2445275 2. https://www.mamalisa.com/?t=es&p=5170 3. Ättestupa : https://en.wikipedia.org/wiki/Ättestupa 4.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2019년 1월 25일): https://www.vingle.net/posts/2561728 5. John Bauer (Swedish, 1882–1918): http://www.artnet.com/artists/john-bauer-2/ 6. Swedish Midsummer for Dummies(2012년 3월 28일): https://youtu.be/u8ZLpGOOA1Q
국가안보 예외
지난 2019년 4월 5일, WTO는 우크라이나 vs. 러시아가 걸려 있는 패널 보고서를 채택했다(참조 1). 여기에 대해서는 내가 얘기를 한 적이 있다(참조 2). “국가 안보”를 대상으로 한 첫 WTO/GATT 판례라고 말이다. 기록을 보니 상소기구(AB)로 또 소를 제기하지는 않았던데(여러 이유가 있을 거라), 그냥 이 패널 보고서를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다. 이 “안보 예외(GATT 1947, 제21조)”는 대단히 민감 이슈이며, 여러분도 이게 왜 중요한지 지금은 모두들 알고 계실 것이다. 한 마디로, 안보가 위험하다면서 온갖 무역제한조치를 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되기 때문인데, 이 “안보 예외”가 패널 보고서에서 어떻게 나왔는지부터 알려드리자면… 향후 어떤 나라이든지 간에 “안보 예외”를 함부로 거론하기 힘들게 만들어 놓았다. 일단 승소국(?)은 러시아다. 안보를 이유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트럭을 막아도 된다는 결론이다. 잠깐, 러시아가 이겼다며? 그러면 어느 나라든 안보 예외를 해도 된다는 말 아닌가요? -------------- 아닙니다. WTO 패널은 그 요건을 상세하게 제시했어요. “국가안보”를 멋대로 회원국이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참조 3), 바로 UN 총회 정도가 인정하는 “무장 분쟁(armed conflict)”의 “객관적 사실(objective fact)”이 있고 영토와 국민을 보호할 정도의 조치가 있어야 “국가 안보”를 원용할 수 있다는 조건이다. 그냥 상대국을 벌하기 위해서 국가안보를 휘두르면 안 되고, 어지간한 갈등을 이용해서 국가안보를 잠칭하면 안 된다는 추론도 가능하겠다. 그렇다면 이런 국가안보는 왜 등장한 것일까? 바로 그 연원을 따져 보자는 것이 이 드래프트 논문(참조 4)의 내용이다. 양도 얼마 안 많으니 여러분들도 짬 나면 읽어 보시기 바란다. 국가안보가 화두가 됐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IMF, IBRD와 함께 UN 산하에 ITO(국제무역기구)를 만들려고 할 때(GATT 조약문이 이때 만들어진다), 미국 군부와 국무부 내의 “국가 안보” 조항 해석 다툼에서 비롯됐었다. 곧 냉전이 시작될 터였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미국 군부는 “국가안보”를 언제든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 조문에 넣기를 희망했고, 국무부는 자유무역의 확산을 무기로 조문에 넣기를 희망했다. …충돌하지 않겠는가? -------------- 하지만 어느 소속이든지 간에 “국가안보”를 남용할(abuse) 수 있다는 문제는 심각했었다. 그래서 논의됐던 것이 국가안보 조항에 대한 낱말 하나 하나의 분석이었다. 국가안보를 이용해서 수량제한을 정당화시킬 나라가 “덜 개발된 국가들”이라 하면서 말이다. (아이러니를 느끼실 것이다.) 미 군부는 특히 자원(석유와 금속, 참조 5) 확보에 집중했었다. 자원 많은 미국이 일부러 해외 자원을 끌어다 쓴다는 신화가 바로 이때부터 나오잖았을까 싶은데, 실제로는 소련과의 전쟁 대비였다. 즉, 위에서 말했듯 미 군부는 모든 상황을 대비, 국가안보의 개념을 확장시키려 했었다. 그래서 국무부가 개입, 현재의 어느 정도는 애매한 문장들로 바꿔놓은 것이다. 국가안보를 국가가 혼자서 정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다 앞뒤가 맞아야 한다는 것이, 금번 WTO 패널의 판단이기도 했고 말이다. 결국은 사법심사가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정치와 외교가 개입할 여지를 터 줬다고 봐야 할 일이다. 따라서… 현재 여러 건들이 저마다 “국가 안보”를 외치며 올라와 있기는 한데, 정말로 인정을 받으려면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상식적인 결론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가 알아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마련. 역시 주말은 논문이지. -------------- 참조 1. 이 패널 보고서는 DS512 건이다. 물론 거의 동일한 건으로 DS532도 있기는 하지만 DS512의 보고서가 나왔으므로 진행이 될지는 불투명하다. 단, 두 가지 소를 소송경제로 합친 것은 아니다. https://www.wto.org/english/tratop_e/dispu_e/512r_e.pdf 2. 의견에 일치한 미국과 러시아(2018년 7월 31일): https://www.vingle.net/posts/2467147 3. 즉, 패널이 하는 말은, “국가 안보”의 사법심사가능성(justiciability)이 존재한다는 선언이라고 봐도 좋겠다. 4. Trade Multilateralism and U.S. National Security: The Making of the GATT Security Exception(2019년 7월 18일): https://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3422488 5. 바로 이때 언급되는 금속(metal)이 바로 현재 미국이 철강제품에 대한 국가안보 예외 주장의 기반이 된다.
터키와 F-35, 100년 전 사례
https://orientxxi.info/magazine/la-turquie-face-a-la-perfidie-des-occidentaux,3188 오늘은 탑건:매버릭 예고편이 나온 기념으로 전투기 얘기를 안 할 수 없겠다. 터키가 기어이 S-400 시스템을 도입함(참조 1)에 따라, 터키를 향한 F-35 인도가 중단됐다. 그에 따라 공식적으로 F-35 프로그램에서 터키는 퇴출된다. 당연히 미국 입장에서는 터키에게 최신 전투기를 넘겨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역사적 선례가 있다는 말씀. 나도 몰랐다. 때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토만 투르크 시절이다. 아니, (난데 없이) 브라질 얘기부터 해야겠다. 한창 커피와 고무 수출이 잘나가던 시절의 브라질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한 군비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영국에 드레드노트 급 전함을 주문한다. 이 드레드노트 급 전함이 지금으로 치면 F-35로 비교할 수 있는 최신 전함이다(물론 드레드노트와 F-35가 정말 똑같은 개념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잘나가던 커피와 고무 수출(참조 2)이 갑자기 꺾인다. 때마침 터졌던 발칸 전쟁 때문에 유럽 은행들로부터의 대출도 여의치 않았던지라 브라질은 거의 다 만들어진 전함 인수를 포기하고, 그 권리를 오토만 투르크 제국에게 판매한다. 게다가 신형! 업그레이드! 드레드노트에 대한 소식도 들려오던 차였다. 당시 오토만 투르크는 최신형 전함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매물에 눈독을 들였고, 국민성금을 통해 전함을 인수한다. 무려 두 척이었다. 그래서 하나는 술탄 오스만 1세, 다른 하나의 이름은 Reşadiye이었다. 양도일도 정해졌다. 1914년 8월 2일. 연도를 보십시오. 1914년이다. 1914년 6월에 무슨 일이 있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사라예보에서 저격을 받아 사망합니다. 윈스턴 처칠 해군부장관은 생각했다. 동맹이 될지 안 될지 모를 오토만에게 이 최신식 군함을 양도할 수 없다. 그래서 이미 양도받으러 와 있던 오토만 해군이 양도식을 치르기 1시간 전, 모든 것을 다 취소시켜버린다. 오토만 투르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붙었었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사건으로 악화된 여론이었다.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내용인데... 사실 터키도 뾰족한 수는 없는 모양이다. (여전히) NATO 회원국인 터키 입장에서 (서방에 걸쳐 있는) 이스라엘과 한국이 대안일 수 없다(참조 3).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오토만 투르크 제국은 나라 자체가 사라졌었다. ---------- 참조 1. 터키의 F-35와 S-400(2018년 8월 28일): https://www.vingle.net/posts/2490195 2. Ciclo da borracha라고 하여 아마존 유역이 개발되면서 있었던 고무 붐이었다. 공업용 고무를 생산할 만한 곳이 브라질밖에 없었던 탓인데... 영국(탐험가 Henry Wickham)이 고무 씨앗을 훔쳐갑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스토리다.) 이후부터는 영국 식민지였던 말레이시아와 스리랑카에서도 고무가 생산된다. 3. Turkish-Russian Defense Cooperation: Political-Military Scope, Prospects and Limits(2019년 5월 13일): http://edam.org.tr/en/turkish-russian-defense-cooperation-political-military-scope-prospects-and-limits/
메르켈과 VdL, AKK
https://www.bild.de/politik/inland/politik-inland/akk-von-der-leyen-und-merkel-warum-uns-dieses-foto-freut-63365776.bild.html 어지간해서는 빌트 지를 인용하고싶지는 않지만, 빌트답게 묵직하게 쓴 기사라서 공유한다. 새 시대의 상징이어서 그렇다. 이 사진을 찍은 장소는 베를린 티어가르텐의 벨뷔 궁, 여기가 연방 대통령궁이다. 여담이지만 이름에서 보듯, 근대 초 프로이센이 얼마나 프랑스를 베꼈는지 알 만 하다. 사진이 나온 이유는 이렇다. 총리와 함께 이전 국방부장관과 새 국방부장관 임용 때문에 세 명이 같이 자리를 했기 때문이다. AKK는 어째서 국방부장관에 올랐을까? 유럽의회에서 중도는 물론 극우파들의 지지(...)를 얻어 EC 집행위원장으로 확정된 VdL(폰 데어 라이엔)은 이제 브뤼셀로 떠나고, 여러가지 삽질(참조 1)로 입지가 좁아진 AKK가 어쩌면 메르켈의 후계자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그렇다. 메르켈이 AKK를 구하기 위해(참조 2)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게 국방부다.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VdL이 국방부장관 역할을 잘... 못 했다. 외부 자문 스캔들(참조 2)도 있고 말이다. 그러나 그녀 이력을 보면 독일 내에서 커리어를 다지는 것보다 브뤼셀에서 하는 편이 더 낫기 때문에, 어쩌면 브뤼셀에서 그녀가 더 성장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EC 위원장 임기는 한 번 더 할 수 있다, 융커가 이번에 재임을 포기해서 그렇지. 그래도 유럽에서 제일 힘센 여자들 셋이 나란히 찍힌 사진은 여러모로 상징성이 크다. 군대랄 것이 없다시피한, 국방력을 없애버린 현대 독일의 여성성을 드러내니까? 그렇게 삐딱하게 보는 시각도 있겠지만, 요즘처럼 strongmen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세상에서 잠시나마 위안이 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물론 여성이라는 상징성에 속지 말고 정말로 그녀들이 뭘 했는지/할지 봐야한다는 칼럼(참조 3)도 있기는 하다. 내 글을 본 친구들도 아시겠지만 나도 남녀 구분 잘 안 한다. 엘리자베스 2세를 국왕이라고 쓰지 여왕이라고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메르켈은 총리이지 여총리가 아니다.) 그렇지만 바른말은 좀 나중에 하는 편이 좋겠다. 왜냐고? 빌트지 말마따나 이 사진 자체로 즐거우니까. DAS. MACHT. FREUDE. ---------- 참조 1. 녹색당, 지지1당이 되다(2019년 6월 7일): https://www.vingle.net/posts/2624975 2. En Allemagne, Merkel tente de sauver « AKK », la présidente affaiblie et contestée de la CDU(2019년 7월 18일): https://www.lemonde.fr/international/article/2019/07/18/en-allemagne-l-operation-de-sauvetage-d-akk_5490780_3210.html 3. Warum Feministinnen dieses Bild nicht feiern sollten(2019년 7월 18일): https://www.tagesspiegel.de/politik/kramp-karrenbauer-von-der-leyen-und-merkel-warum-feministinnen-dieses-bild-nicht-feiern-sollten/24673706.html
스파 타피셰
https://www.welt.de/icon/essen-und-trinken/article196827191/Toertchen-und-Desserts-Wie-Pariser-Patissiers-auf-Instagram-beruehmt-werden.html?wtmc=socialmedia.twitter.shared.web 여러가지 의미에서 요새의 유명 요리사들은 유명 패션 디자이너처럼 됐다. 날씬하면서 군데군데 문신이 있는, 수염이 자란 남자가 바로 인스타그램에서 띄우는 유명 요리사인데, 이 기사에서 얘기하는 건 요리사가 아니라 파티셰(pâtissier)이다. 이건 정확한 한국어 번역어가 없는 직종. 여기에는 두 명의 파티셰가 나온다. 첫 번째는 호텔 Le Meurice의 Cédric Grolet(참조 1). 그는 자신의 성공이 (원래) 유명한 요리사인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 참조 2)에게 돌린다. 8년 전, 뒤카스가 그를 파티셰로 고용했던 덕분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세드릭 그롤레가 처음부터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었던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이름 알리려면 인스타를 해야 한다는 친구 말을 듣고야 4년 전, 계정을 열었었다. 과연, 그는 현재 세계적인 파티셰가 되었다. 두 번째는 호텔 Plaza Athénée의 Jessica Préalpato(참조 3). 남아공 출신의 파티셰인 그녀 또한 알랭 뒤카스의 식당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다. 그녀는 아예, "파티셰 구직자가 있으면 그/녀의 인스타부터 뒤진다"라고 말한다. 그녀의 특징은 설탕을 소금처럼 쓴다는 것. 파티셰가? 디저트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적게? 그래서 위의 그롤레 만큼이나 그녀의 디저트도 각광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비쥬얼도 인스타용으로 충분하다. 이제까지 여자에게 한 번도 수여하지 않았던 영국의 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가 그녀에게 파티셰 1등상 줄 정도였다. (세드릭 그롤레가 작년 1등이었다.) 이 기사가 내리는 결론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제아무리 다른 곳이 흥하다 하더라도 파리의 파티셰들은 훌륭하다. 두 번째, 제아무리 상업화의 제왕이라 욕먹는 알랭 뒤카스가, 그래도 후배들 고르는 안목이 있다는 것. 전시회도 전시회이지만 유럽은 역시 먹으러 가야 하는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가 나의 결론. ---------- 참조 1.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edricgrolet/ 2. 미슐랭 가이드의 별 셋짜리 식당 세 곳을 갖고 있다고 한다. 레종 도뇌르 훈장도 받은 인물이지만 납세 절감(...)을 위해 모나코로 국적을 바꿨다(모나코는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다). 3.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jessicaprealpato/
갈릴레오 서비스의 중단
https://www.capital.fr/economie-politique/galileo-le-gps-europeen-en-panne-depuis-4-jours-1344841 인공위성 네비게이션 경쟁은 정말로 강대국들의 전쟁이다. 제일 잘 알려졌고 우리도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인 GPS는 미국, 러시아는 글로나스(ГЛОНАСС), 중국의 베이더우(北斗)가 있으며, 지역이 한정되어 있지만 인도의 NAVIC와 일본의 QZSS(참조 1)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미국과 러시아, 중국의 놀이터가 우주이고, 유럽은 역시나… 시작은 화려하나 전개 과정이 대단히 부족한 형태를 5일 전, 7월 11일부터 보여줬다. 고장났기 때문이다(긴급용인 SAR(Search And Rescue) 서비스만 작동 중이다). 이유도 현재는 알려져 있지 않다. 역시 미국과 러시아, 중국처럼 정부가 운영을 했어야 할까? 갈릴레오 시스템은 EU 회원국들이 예산만 냈지, 운영은 별도의 기관에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영기구는 체코 프라하에 설치되어 있고, 지상 통제국은 이탈리아 푸치노(Fucino)에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아마 고장의 원인은 푸치노의 통제국에 있는 것 같다(참조 2). 현재 26개 위성 중 24개가 “깜깜한” 상태이고 원래는 내년까지 30개 위성으로 서비스를 완비하기로 되어 있었다. 심지어 작년부터 유럽에서 판매되는 차량들도 갈릴레오 시스템을 (GPS와 함께) 사용하도록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은행연합이나 이민 정책, Instex처럼 유럽의 또 다른 (현재진행형) 실패 프로젝트로 끝나버리는 것일까? 물론 (아마도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최근 시리아-레바논에서 GPS가 먹통이 되는 사태가 있었기 때문이다(참조 3). 잠깐, 마크롱이 우주군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한 것(참조 4)이 우연이 아니겠군. -------------- 참조 1. Quasi-Zenith Satellite System의 준말이며 準天頂衛星システ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현재 무료로 위성정보를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마 이 또한 소위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보복”의 한 종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GPS를 쓰면 되니까 별 피해는 없을 듯 한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2. L'Europe privée du signal Galileo(2019년 7월 15일): https://www.air-cosmos.com/article/leurope-prive-du-signal-galileo-21481 3. La nouvelle guerre du GPS et ses risques(2019년 5월 2일): https://www.lemonde.fr/idees/article/2019/05/02/la-nouvelle-guerre-du-gps-et-ses-risques_5457320_3232.html 4. Armées : Macron annonce la création d’un commandement militaire de l’espace(2019년 7월 13일): https://www.lemonde.fr/international/article/2019/07/13/armees-macron-annonce-la-creation-d-un-commandement-militaire-de-l-espace_5489134_3210.html
의회 정지도 행정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https://ukconstitutionallaw.org/2019/07/12/robert-craig-judicial-review-of-advice-to-prorogue-parliament 복잡한 일이다. 만약 새로운 영국 총리가 노딜 Brexit를 지지하고, 의회의 겐세이(!)를 피하기 위해 의회 휴회(prorogation)를 국왕께 청구하여 국왕이 OK 한다면, 의회는 아무런 할 일이 없어지고, 그에 따라 자동적으로 10월 31일 노딜 브렉시트가 이뤄진다. 막을 수 있을까? 혹시 2016년의 Gina Miller 건 처럼(참조 1), 행정소송으로 갈 수 있을까? 일단 영국에서 국왕의 존재는 실정법 체계를 넘어선다는 상식부터 아셔야겠다. 즉, “국왕이 휴정 ㅇㅋ”라고 하는 것 자체는 영국 국내법의 규율 대상을 넘어선다. 그렇다면 무엇이 소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총리의 “청구 행위”이다. 우선 The Times에 올라온 칼럼(참조 2)부터 보자. 저자(상원의원이자 변호사이다)는 세 가지 구성 요건을 거론하고 있다. (1) 의회주권(parliamentary sovereignty)과 모순되는지, (2) 상황의 긴급성, (3) 노딜을 우회적으로 성사하기 위한 목적임을 분명히 밝혔을 때이다. 하지만 링크의 저자 의견은… “소송이 어렵다”이다. 왜죠? -------------- 사법심사가능성(justiciability) 때문이다. 심사 자체가 가능한가의 문제가 있다. 잠깐만요. 위에서 총리의 행위로 쳤으니, 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영국에서 국왕대권(royal prerogatives)은 보통 총리가 국왕의 이름으로 행사하는데(즉, 의회의 동의가 필요 없는 행위다), 명예혁명 이후 국왕 대권의 행사를 (총리의 행위라고 볼 수 있으니) 사법 심사의 대상으로 꾸준히 갈고닦아 온 것이 영국 법원의 역사였다. 그래서 Roskil List라는 것이 존재한다. 사법심사 대상이 될 수 없는 국왕대권 행위의 목록이다. 이것의 여집합은 법적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목록에는 조약 체결과 같은 외교 행위나 국가 보호(무력행사), 사면, 훈장 서훈, 의회 해산이 들어간다. 즉, 의회 휴회는 보통 의회 해산으로 넘어가므로,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는 목록에 들어간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노딜 브렉시트 또한 “외교 행위”에도 속하니 더욱 더 대상이 될 수 없을 듯 하다. -------------- 잠깐만요. 2016년 밀러 사건(참조 1)은 사법심사가 됐잖아요? 당시 메이 총리가 국왕대권으로 리스본 조약 제50조를 발동시키려 했었는데 그걸 소송으로 막았잖아요? 그래서 의원 투표를 통해서 발동이 됐고요. 판결문을 보면, 법원의 소 심사 대상 조건이 명확하다고 한다. 국왕대권을 발동할 경우, 그로 인해 의회의 (법제) 의도 혹은 의회 주권을 해칠 경우, 그 때 심사 대상이 된다. 즉, 메이 총리가 국왕대권으로 “브렉시트를 시동”시켜 버리면 의회는 할 일이 사라진다. 그래서 법원이 끼어들어서, 의회 투표를 거치라고 한 것이다. -------------- 그렇다면 밀러 사건 판결대로 의회 표결 없이 노딜을 이루려는, 의회를 우회하려는 것 자체가 소송감 아닐까? 이 또한 쉽지가 않다. 심사 대상이 되는 법률이 없기 때문이다. 사법기관은 정치적 행위를 해석하는 기관이 아니다. 게다가 리스본 조약 제50조는 자동으로 “탈퇴”에 이어진다. 영국 의회가 뭘 어떻게 해봤자 “딜”이 없으면 곧바로 탈퇴다. 게다가 자꾸 밀러 사건 얘기해서 미안한데, 급하게 고등법원-대법원(영국의 행정소송은 2심제다)까지 갔던 밀러 사건도 완결에 6개월이 소요됐다. 그래서 결론은… 노딜 브렉시트를 위한 (새 영국 총리의) 휴회 시도에 대해, 존 메이저 전 총리가 “legal review”를 몸소 하겠노라 말씀하셨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렵다이다. 판결문에 나오지만 의회 주권은 “법”의 형태로서만 표현된다. 브렉시트를 위한 의회 휴정에 대해서는, 의회 주권이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는 “법”이 없다. -------------- 참조 1. 의회를 거쳐야 Brexit가 가능한가?(2016년 11월 4일): https://www.vingle.net/posts/1841667 2. If Boris Johnson tries to use the Queen as Brexit pawn he will be thwarted(2019년 6월 27일): https://www.thetimes.co.uk/article/45c61b8a-9807-11e9-8fb0-df433656861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