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만남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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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ee
소소한 만남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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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만남의 기록 #2. 헷갈렸던 두 번째 만남
난 밀당에 약하다. 솔직한 거라고 좋게 포장하고 싶다. 예전엔 게임을 꽤 잘 했던 거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솔직해진건지, 가끔은 밀당 같은 거 나도 좀 하고 싶다. 사람들은 진짜 밀당을 안 좋아할까? 그냥 그게 밀당인지 몰랐던 건 아닐까.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너무 늦게까지 카톡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시간에도 카드를 쓰는 나는 원래 늦게 잔다. 하지만 열두시쯤 오늘은 일찍(은 아니지만) 자야겠다 내일 연락할게 라고 했다. 밀당 고자인 내가 이거라도 해냈다는 것에 뿌듯해하며 정신을 딴데로 팔기 위해 영화를 보거나 의미도 없는 페이스북 피드를 넘겼다. 두 번째 만남, 사실 워낙 카톡이나 전화를 자주해서 전만큼 어색하진 않았다. 이번 역시 강남. 강남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만나기 편한건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나보다. 그가 추천한 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저희 매장에 오신 적 없죠? 이렇게 예쁜 분 본적 없어서" 흔하디 흔한 종업원의 지나가는 한마디. 그래도 그 앞에서 예쁘다고 칭찬해주니 뭔가 으쓱해진 것 같았다. 그런 속맘이 들키지 않게 살짝 웃어넘겼다. "아 맞다, 줄 게 있어" 메뉴를 주문하고 이야기하는데 책이 한 가득 든 잔스포츠 가방을 (맞다, 그는 아직 대학생이고, 시험기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뒤적거렸다. 기대를 안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평.창.수. 너무나 정직한 생수병ㅋㅋㅋ 그 안에 커피를 담아줬다. 지난 번 그는 커피를 좋아한다고 했다. 나도 좋아한다고 했다. 난 마실 줄만 아는데, 그는 직접 더치커피를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나중에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근데 그게 오늘 일 줄 몰랐다!! 귀여워!!!! 생수병에 든 커피라니. 너무 고급지게 줬다면 오해했을 듯하다. 장난아니라고, 한 두번 해본 게 아닐 것 같다며. 근데 너무 정직한 생수병에, 담을 곳이 없어서 이런데 담았다고 미안하다면서 건네주는 게 참 사랑스러웠다. 동시에 나는 들뜨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직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끔씩 친절은 오해를 산다. 나의 "친절한" 행동이 호감으로 비쳐져 난감할 때도 있고, 거꾸로 상대방의 작은 선물이나 걱정 한마디를 있는 힘껏 확대 해석해서 상처받는, 한마디로 북치고 장구치는 상황도 연출된다. 그래서 커피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어떡해 나 진짜 좋아하나봐 설레발 치다가도. 뭐 간만에 커피 내린 날, 나 만나기로 돼있었고, 가져다주면 좋아할거 같아서, 대충 집에 있는 생수병에 담아줬나. 아무생각 없이. 그냥 친절한건가? 딱히 커피 말고는 잡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대화도 소소했다. 그게 싫다는건 절대 아니지만, 흔한 남자여자 연예인이나 이상형 얘기라든지,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묘한 긴장감도 (벌써) 없는 듯했다. 맘이 들뜨면서도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 호감은 있지만 친구로 지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착하다. 이야기도 잘 통하고. 소개팅 꼭 사귀라고 만든 자리는 아니잖아? 관계는 우리가 만들어가면 되지라면서... 어쩌면 친구여도 좋겠다는 마음은 내가 먼저 좋아하지 않았다는 괜한 방어 기제였을지도 모르겠다. p.s. 나는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었고, 뭔가 쌔함을 느꼈을 때 등뒤엔 엄마가......... 방으로 들어가면서 한마디 남기셨다. "참나.." (이불킥)
소소한 만남의 기록 #1. 소개팅 후기
"너한테 소개 시켜주고 싶은 애가 있어." 친한 친구가 갑자기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했다. 보통 친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믿을 만하다. 난 뭐하는 분인지, 어떤 스타일인지, 성격은 어떤지, 이런 저런 것들을 물어보았고, 그 친구는 나에게 괜찮은 애인거 같다며 사진도 보내줬다. 너무 내 스타일이잖아!!!!!!!! 키 큼이 사진에서도 느껴졌고, 속쌍에, 웃는게 귀여운, 그냥 완전 내 스타일이었다. 평소 셀카를 별로 안찍는 나는 최대한 예쁘면서 분위기는 있지만, 실제 만났을 때 실망할거 같이 너무 과장되게 예쁘지 않은 사진들을 골라서 보내주었다. 보내주면서도, 얘가 나랑 소개팅을 하겠어? 라고 생각했다. 너무 솔직한 사진은 친구에게 검열당했고, 친구는 사진 몇 개를 더 추가해 그에게 보냈다. "한대. 얘가 너한테 곧 연락할거야." 헐. 안 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분은 좋았지만 사진이 너무 잘 나온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카톡 프사는 연락이 오기 전에 얼른 (얼굴이 잘 나오지 않은) 멀리서 찍은 사진으로 바꿨다. 나에겐 카메라를 너무 잘 받는 것도 걱정이라면 걱정이다. "안녕하세요. ㅇㅇ한테 소개받은 ㅇㅇㅇ입니다" 라는 정석적인 첫 카톡이 왔다. 난 어색했지만, 어색하지 않은 척 온갖 이모티콘을 동원해 시시콜콜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우린 카톡을 주고 받다가 말을 놓자고 했고, 연하였던 그는 조금 뻘쭘하게 "그럼 누나라고 부를게"라고 했다. (심멎) 2시, 강남역. 애매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점심은 먹고 나오라는 거고, 카페에 있다가 집에 간다는 건가, 저녁을 먹자는건가... 아, 설마 저녁을 함께 할지는 보고 판단하겠단 건가? 라는 쓸데 없는 생각을 했다. 첫 인상은 조금 달랐다. 키가 컸고 외모도 준수했다. 근데 얘기하다보니 그는 너무 단정했다. 난 좀 더 장난기 많고 활발한게 좋은데... 라는 찰나의 아쉬운 생각을 내가 먼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배가 불렀다. 어색할 수록 웃음이 더 많은 나는 정말 많이 말했다. 이렇게 많이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이 말했다. 끊임없이 말했다. 4시쯤 애매하게 밥을 먹었고 (밥이 정말 맛있었다! 센스 인정) 그러고도 5시었기 떄문에, 우린 또 카페에 갔다. 그래도 꽤 재미있고, 볼수록 매력있다는 생각이 들 때 쯤, 그는 8시에 약속이 있어서 가야한다고 했다. 아 끝났구나. 20대 중반이 되면서 알게 된 것은, 첫 소개팅 때 너무 건전한 시간에 집에 들어가고 있으면 기대를 갖지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꼬꼬마 시절, 정말 바쁠거야 라면서 정당화하던 내 생각을 처참히 깨준 영화가 있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참 간사하다. 처음엔 내 스타일이라고 좋아하더니, 만나고 내가 상상했던 성격과 다르다고 실망을 하지 않나. 실망 해놓고 잘 안된 거 같으니 아쉽다, 뭐가 잘못됐을까를 고민하고 있다니!! 말을 너무 많이했나. 소개팅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입고가다니 좀 예쁜척좀 해볼걸 그랬나. 아님 그냥 맘에 안 드나. 하면서 터덜터덜 집에 가는데, 카톡이 왔다. "다음 주 언제 시간돼?" 다행이다!!!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가 좋아서인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회복 때문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내 모습을 보고 다 시 한번 내가 간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너무 늦지 않지만 너무 조급하지 않게, 수요일에 다시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