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구:헬조선①]‘유학’ 신발 신고 한국 떠나는 사람들
유학길에 오른 이들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어떤가. 보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견문을 넓히기 위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들이) 택하는 특별 코스라고 생각하는가. 혹시 그들이 순전히 자신의 의지만으로 유학을 선택하고 있을까 생각해본 적은 있는지. 없는 것 없는 이 나라에서 굳이 무엇이 부족해 비싼 돈 들여 말도 섞기 힘든 외국으로 나가야 하는 것일까. 지난 24일 코엑스에서 열린 호주 유학박람회를 찾아 사람들이 이 땅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박람회가 열린 어느 컨퍼런스룸. 어학연수, 직업교육, 대학, 초중고 조기유학 등의 팻말을 붙인 부스가 조밀하게 붙어있다. 이번 박람회는 호주G8대학교, 국립호주대학, 어학연수기관 등 다양한 유학 관련기관이 참여한 규모 있는 행사다. 관람인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했다. 등가방을 멘 두세 명이 몰려다니며 관심 있는 분야 부스에서 상담을 받고 세미나를 듣는다. 전국유학·어학연수 부스 담당자는 “호주는 영주권을 취득하기도, 경력을 쌓기도 쉬운 나라”라며 “요즘 이곳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단순 유학뿐 아니라 이민까지 고려하는 경우가 많아 호주의 실질적인 비즈니스와 관련된 간호, IT 관련학과에 쏠리는 관심이 높단다. 중요한 것은 유학을 선택하는 이유다. 그는 “대학진학을 앞둔 고등학생이나 군대를 갓 졸업한 대학교 1~2학년의 유학상담이 많다”며 “많은 고등학생이 부모님의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할 거면 차라리 유학을 가라’는 권유로 인해 비행기에 오른다”고 밝혔다. 일명 ‘SKY’대학 아니면 차라리 외국 어느 대학을 나왔다는 설명이 취업에도, 남들 시선에도 낫다는 식의 판단. 우리나라에서 지극히 ‘일반화’된 정서 아닌가. 대학생은 군대에 다녀온 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유학길에 오르는 경우가 많단다. 좋은 대학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간의 학점이 낮은 상태라면 더 쉽게 결정할 수 있다. # 대학생 : 경력 쌓고 어학점수 따러…한국생활 위해 외국으로 간다(?)
귀퉁이에 들어섰더니 젊은 커플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남자친구인 최민수(21세) 씨의 유학준비를 위해 이곳에 들렀단다. 최 씨의 관심전공은 ‘요리’. “일단 외국에서는 경력 쌓기가 편하잖아요. 견문 넓히기도 좋고.”
외국 경력은 일단 좋게 쳐주는(?) 우리나라 특성상 유학은 취업에 매우 유리한 선택이다. 연인을 두고 바다 건너로 떠나는 것이 맘에 걸리지만 그는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25세 전모 씨, 22세 김모 씨 커플도 유학박람회를 찾았다. 내년 봄 유학을 계획한 전 씨를 따라 여자친구 김 씨도 워킹홀리데이(18~30세의 청년들이 협정 체결국을 방문해, 관광을 주된 목적으로 체류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떠날 생각이다. 전 씨는 왜 유학을 결정했을까. “사실 편입이 최종 목적이에요. 편입하려면 높은 토익점수가 필수고, 어차피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영어실력을 보유하려면 유학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 씨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편입, 취업을 위해 유학길에 오른다. 영어점수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절대적인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전공과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다. (전 씨의 전공은 건축이다)
# 초등학생 : 주입식 교육, 사교육비 부담 큰 한국 싫어
작은 테이블에 가만히 앉아 상담을 기다리는 한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12세, 10세 어린 남매와 아버지 장진후 씨다. 장 씨는 유학을 고려하게 된 이유가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문화가 맘에 들지 않아서”라고 토로했다. “저는 아이들에게 평소에도 공부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학업보다는 교외활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제 의지대로 아이들을 양육하기 힘들더라고요.”
아무래도 외국에서 교육비 부담이 더 커지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외려 한국보다 저렴할 것”이라며 단언했다. ‘사교육비’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학교 교육만 받으면 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너도나도 사교육에 힘쓰잖아요. 월 100만원 이상은 지출했던 것 같아요.” # 고등학생 : 제약 없는 꿈의 나라, 외국으로
고2 김수현(18세) 양의 손을 붙들고 박람회장을 찾은 어머니. “학생은 학생답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데, 수현이는 통 공부에 관심이 없어 유학을 보내려고 한다”고 쓴웃음을 지은 후 “요리에 관심이 있어 호주 요리 관련 학과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도 요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나라는 요구하는 자격조건이 너무 많아 부담된다”며 인상을 찌푸린다. “각종 자격증, 외국어 점수, 기타 시험 등 모든 것들이 어차피 다 지출로 이어질 것이며 들여야 하는 시간도 굉장히 많지만 먼저 (호주에) 나가있는 지인 얘기를 들으니 외국에서는 요리 딱 하나만 파면 되더라”는 설명이다. 이어 “한국처럼 4년제에 우수한 성적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실습기회를 이용하면 연간 2000만원 정도 수입을 얻을 수 있어 학비부담도 덜할 것이라고 들었다”며 “어린 딸을 멀리 떼어놓아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려 오래 고민했지만 어차피 우리나라에 살아도 바쁜 딸을 매일 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는 어머니.
김 양은 내내 확신에 찬 표정이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곳에서 맘 편하게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가족과 친구를 떠난 외로움 따위는 별로 문제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