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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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s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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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 홀로 서 있을 때
"용서란 미움에게 방한칸만 내주면 된다는 말 아시죠. 저에게 많은 걸 준 여자 입니다"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 대사 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나에게도 찾아 든 문제 입니다. 한 개인의 철저한 아픔에 대한 문제이고, 그 개인이 겪고 있는 슬픔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정작, 어른의 도움이 필요했던 자아와 가치관이 말랑했던 스무살 이전에 겪었던 시련들에 대해서는 '뭐, 나 혼자 겪는다' 겪고 어금니 물고 견뎌 낼 만큼 정서적인 영양 상태가 좋은 편이었으나 도리여 스물 다섯이 된 지금 나는 어른을 찾고 있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이겨 냈겠습니까' 혹은 '당신에게도 나와 같은 시기가 있었겠지요' 엄격한 동의를 구하려 애를 썼습니다. 하루 마시는 물의 양 보다 텍스트를 더 많이 삼켰던 근 한 달 동안의 나를 평가하자면 '호전적이지 않음' '가여워 보이나 그럴 필요 없음' 정도 입니다. 이틀 전 적어도 나를 제대로 비난 할 줄 아는 친구 녀석 만났는데 눈썰미 없고 둔감한 그 녀석이 "울었냐" 묻길래 "뭔 개소리냐" "눈이 운 것 같은데" 자못 어색할 정도로 진지하게 나를 걱정하는 눈치길래 아끼는 녀석과 무거운 짐을 나눌까 "관둬라" 대화를 피했었습니다. '차라리 울어버릴 수만 있다면 좋았을텐데' 그때 든 생각이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건 마음이 건강하기 때문이지도 모르겠구나 눈물이 많은 사람은 단순히 마음이 여리거나, 감정에 유약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프거나 괴로운 낮은 정서의 감정들을 마음이 잘 소화시켜 눈물이란 통로로 배출하니 건강한 사람은 눈물이 많을 겁니다. 그런면에서 나는 눈물이 꽤 오래 체 했었으니 마음이 건강하지 못할 수 밖에요. 이런 이별, 이와 같은 고통 이와 같은 배신감 절대 희망적이지 못한 아픔 지금 내 나이, 내 시기 왜 하필 지금 이어야 하는가 하찮은 푸념도 많이 가졌었습니다. 때때로 '박탈과 상실이란 게 나만의 문제이겠냐' 스스로를 위로해도 '그래 나만 문제다' 라는 생각은 떨쳐지질 않습니다. 바쁜 일정을 보낸 하루 같으면 돌아와 씻고 누워 잠을 청하려고 천정을 보고 있을 때 '어른이 되는 과정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긍정하기도 하지만 잠이 못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시련과 실연은 찾아 오겠지요 그런데 오늘도 문득 잠들지 못한 방 천정을 바라보면서 깨닫기를 '나는 원망의 대상' 을 상정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냐 혹은 무엇이 나를 이토록 숨도 못 쉴 만큼 힘든 곳으로 밀어 넣었냐 주체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오히려 내 안에서 내 고통을 감당하고 찾으려 했지 누구도, 무엇도 탓하거나 원망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선 하거나 마음이 넓어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는 것이었지요 (시련에 늪에 발목이 잡힌 사람의 문제라는 것이었지요) 그럼 내가 이 고통의 대상을 상정해야 해야 하는가? 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원망의 대상이 '내' 가 아닌 '너' 로 전환해야 하는가 나를 무참히 버리고 간 너 함께 나눠든 사랑의 균형에서 두 손을 빼고 달아나 버린 너 다른 사람을 사랑한 너 그런 너에게로 이 괴로움을 전이 시켜야 하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럼 조금 더 수월 하겠는가 그럼 나아지겠는가 그럼 조금 덜 힘들겠는가 그럼 눈물을 체 하지 않았을까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밑져야 본전 아니겠는가? 하며 말입니다. 그런데 설령 그게 정답이었다 라고 하여도 나는 아니 하겠습니다. 나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요 입니다. 그건 내가 아닙니다. 그건 진정한 우리가 아닙니다. 나는 넓은 의미에서 '우정'과 '의리' 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이별이 오고 사랑이 떠난 뒤에 우리가 붙들어 놓아야 할 것은 우정 이어야 합니다. 인연이 다한 관계에서는 오물 처럼 뒤섞인 혼탁한 감정이 남아 좋았던 추억 마저도 추악하게 더럽히는데 그 더러움에 함께한 시간과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룩지지 않도록 보호하고 감싸 주어야 하는 것은 '나' 밖에는 해줄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추억과 사랑했던 마음은 무슨 잘못이에요 그 마음을 지켜주어야 하는 것 그것이 내가 본 이별에서의 우정 입니다. 그리고 이별에 홀로 서 있을 때의 우리의 책임 입니다. 다시한번 나는 그것을 '사랑' 이라기 보단 우정, 의리 라고 말해두고 싶습니다. 이별이 나를 깊이 담궈 두고 있는 그 오물 속에서 우정만이 진주처럼 빛이 나니 그 우정을 찾아야 하고 잡아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오랜 시간 서로를 사랑했고 아껴 주었고 둘 도 없는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사람이 나를 버리고, 나를 외면하고 나에게 상처를 주고 떠나 갔지만 남은 '나'는 우정으로서 우리의 시간을 안아주어야 했습니다. 다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다 그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말 못할 사연과 상황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애둘러 말하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사실, 내 마음은 그 정도 마음이면 충분히 위로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나를 버리고 떠났지' '우리 소중한 시간은 다 거짓이었나' '차라리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사실 정직한 내 마음은 알잖아요 내가 지금 떼 쓰고 있다는 걸요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쓰면 내 마음도 한 결 나아 졌습니다. 괴로움을 위탁하거나 이양시킨다고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을겁니다. 다만, 함께 키운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이 강아지를 버리고 떠나고 혼자 남은 내가 홀로 이 강아지를 돌보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 그런데 그 강아지가 자꾸 떠난 그 사람을 찾아서 이 강아지에게 내가 어떻게 해주어야 좋을지 모르겠을 때 그때 만큼은 왜 내가 다 짊어져야 하나 ... 눈물이 가슴을 비집고 터져 나옵니다. 그럴 때는 그 괴로움을 적출 시키고 싶은 충동에 이성을 잃기도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닙니다. 단지 아픔과 슬픔에 지친 심연 깊은 곳의 나일 뿐 온전한 내가 아니란 것 나는 결국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솔직히 나는 오늘도 괜찮지 않습니다만 군대에서 굵직한 한 방으로 나를 가르쳐준 것이 하나 있는데 끝은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도 고통도 터널 처럼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조금은 긴 고통스러운 터널을 지나야 할 차례 라고 생각합니다. 이 어둡고 캄캄한 슬픔의 터널도 끝이 있겠지요. 이별에 홀로 서 있다고 느껴질 때 '우정' 에 대해 담아둔다면 좋은 이별이 될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 올 한 해에는 고통의 터널 보다 행복의 터널이 우리 모두에게 더 길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