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or Euro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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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yunsH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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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r Euro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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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Piazzale Michelangelo, Firenze
장장 8시간에 가까운 장거리 여행을 끝마치고,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Firenze S.M.N.)에 드디어 발을 딛었다.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확실히 독일과 남다른 이탈리아 특유의 느낌이 기차역에서부터 풍겨져 왔다. 뜨거운 태양, 르네상스·바로크 풍의 건물들, 아기자기한 색채, 자유분방한 사람들... 그동안 머리속 이미지로만 그려왔던 이탈리아의 느낌이었다. 내가 이 곳 피렌체(Firenze)까지 오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번째로는 누구나 다 아는 일본 멜로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冷静と情熱のあいだ)>의 여운 때문이다. 주인공인 준세이가 학창시절 사랑했던 여인인 아오이와의 약속한 곳이자, 현재 준세이가 수복공방을 배우고 있는 주요 무대가 바로 피렌체였고, 영화를 통해 비춰진 두 남녀보다 그들의 배경이 된 피렌체의 아름다움에 나는 순식간에 빠져들었었다. 그리고 두번째는, 나의 절친 K의 생생한 여행후기 때문이다. 그는 파리를 거점삼아서 당일치기로 여러 도시를 다녀왔지만, 피렌체를 여행하는 동안 도시의 아름다움과 황홀함에 취해 정신을 못차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와 같이 다니던 일행 중 하나는 피렌체에 매료되어 그 자리에서 여권을 찢어버렸다고 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지, 피렌체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나의 기분은 다른 때보다 상당히 상기되었다. 내가 피렌체에서 머물 숙소는 S.M.N.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도보로 10분 거리. 숙소에 가는 동안, 역 근처 안내소에서 피렌체 전체 지도도 하나 챙겨갔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어느덧 저녁식사를 할 시간대가 되었다. 그래서 숙소에 있는 대부분 사람들이 잠시 밥먹으러 들어왔었고, 그 덕분에 한 방에 함께 쓰는 사람, 옆 방 쓰는 사람 등등 한꺼번에 인사할 수 있었다. 짐은 대충 풀어놓고 숙소에서 차려 준 카레를 먹고 있는데, 두 명의 여성이 대뜸 나에게 다가와 커피원두 사러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어여쁘신 분들의 제안을 마다할 필요가 없었기에, 허겁지겁 한 그릇 비운 뒤에 그녀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친구였던 S와 J는 남부인 나폴리에서 피사의 사탑을 보러 피사 가는 길에 잠시 피렌체를 들렀다고 한다. 그녀들도 나처럼 피렌체는 오늘 처음 왔는데, 무엇을 누구와 해야할 지 사실 잘 모르던 찰나에 나에게 말을 한 번 걸어봤다고 했다. 그녀들로부터 선택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어느새 산 로렌조 성당(Basilica di San Lorenzo)을 지나 두오모(Doumo di Firenze)까지 걸어왔다. 두오모 또는 피렌체 대성당(Doumo di Firenze)으로 불리는 이 곳의 정식명칭으로는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산타 마리아 피오레 델 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이다. 피렌체의 상징이기도 하다. 준세이와 아오이가 만나기로 했던 쿠폴라(Cupola)도 이 곳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 '꽃'이라는 의미에 어울리게 대성당 외벽은 흰색과 초록색, 그리고 붉은색 이렇게 3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졌음에도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재밌는 건, 각각의 색깔을 지닌 이 대리석들을 다른 도시들로부터 조달받았다는 점인데, 흰색은 카라라, 초록색은 프라토, 그리고 붉은색은 시에나에서 온 것이다. 피렌체 대성당은 14세기에 완공되었고, 피렌체 대성당의 상징물인 쿠폴라는 15세기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완공했다. 이 아름다운 건축물과 우아한 쿠폴라를 구경하기 위해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것에 신경쓰지 않은 사람들은 대성당 주위에 모여들어 감상하는 데 푹 빠져있었다. 우리 일행 또한 이 거대한 꽃의 향기에 취해 누가 얼음땡 해줄 때까지 멈춰서서 우러러 보기만 했다. 두오모의 최면술에서 가까스레 풀려난 우리는 커피원두를 사러 가기 위해 다시 피렌체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레푸블리카 광장(Piazza della Repubblica)으로 흘러 들어왔다. 이 공간은 현대화로 바뀌어가는 피렌체에서 몇 안되는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고풍스런 가게들, 우리는 그 중 한 가게에 들어갔고, S와 J가 그렇게도 찾던 사향고양이 똥으로 만든 루왁커피 원두를 비교적 싸게 구매할 수 있었다. 광장 앞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회전목마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 묘하게 어울렸다. 수천개의 전구를 반짝이며 돌아가는 회전목마 위에는 어린 아이, 어르신, 커플들 구별없이 모두 다 행복해하는 표정으로 가득했다. 레푸블리카 광장에서 우리는 아르노 강 쪽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우리는 피렌체의 또다른 명소인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과 시뇨리아 광장의 주인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을 만났다. 피렌체 정치의 중심지이자 역사의 중심지인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의 현재 모습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야외 미술관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했던 조각상들이 이 곳 시뇨리아 광장에 전시되어 있는데, 넵튠의 분수(Fontana del Nettuno), 다비드 상(David) 등 여러 조각상들이 있다. 마치 시뇨리아 광장을 지키는 듯한 수호신처럼 광장의 모서리 등지에 포진되어 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가 만든 다비드상 진품은 아카데미아 박물관(Accademia di Belle Arti de Firenze)에 있고 시뇨리아 광장에는 진품과 똑같이 만들어낸 상이지만, 사람들은 이 시뇨리아 광장에 있는 다비드상이 더 뛰어나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곤 한다. 내가 아카데미아를 방문하진 않았지만, 시뇨리아에 있는 다비드상도 진품과 비교해서 손색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베키오 궁전 옆에는 피렌체를 대표하는 박물관이자 유럽을 대표하는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이 붙어있었다. 물론, 오후 7시가 넘어간 이 시점에는 폐관한 상태이지만, 우피치 외벽 기둥 하나하나 새겨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조각상들 - 단테,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갈릴레이 - 그들의 혼이 나에게 전달되어지는 느낌이었다. 우피치 미술관 건물 사이를 지나치는 샛길을 지나 아르노 강이 보였고, 고개를 돌리니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 뒤로 석양이 비추고 있다. 그 석양을 보기 위해 우리처럼 베키오 다리에 멈춰 선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석양 한 번 제대로 보는 데 불필요하게 자리싸움을 하게 되었다. 여태껏 매번 보던 석양이었는데, 피렌체의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낯선 여성들과 함께 보고 있기 때문인지 유독 이날따라 석양이 황홀함 그 자체였다. 나의 손목시계는 어느덧 오후 8시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이 피렌체에도 푸른 밤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베키오 다리를 건너 피티 궁(Palazzo Pitti)으로 걸어가보았다. 토스카나 대공국, 이탈리아 왕국의 왕궁으로 쓰였던 이 건물 앞 광장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서로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 하늘에 하나 둘 씩 등장하는 별을 보면서 자신들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젊은이들, 지금 이 순간을 잊지 못해 함께 하고픈 무리들의 광장을 장악한 듯한 웃음소리, 그저 훈훈하고 아름다워보였다. 피렌체가 가져다주는 황홀함과 낭만적인 분위기가 우리 세 사람 사이에 뭔가 묘한 기운으로 바꿔놓았다. 그래서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야할 것 같은 의지가 생겼다. 지도를 보다가, 나는 그녀들에게 피렌체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러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으로 올라가자고 제안했고, S와 J도 망설임 없이 내 의견에 동의했다. 우리는 곧장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향했다.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까지 올라가니, 어느덧 해는 지고 푸른 밤하늘이 피렌체를 덮었다. 수많은 청춘들이 광장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점령하고 있었고, 야경을 볼 수 있는 난관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어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 정도였다. 동상 아래에서는 몇몇 커플들이 피렌체의 분위기에 취한 나머지 열렬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광장 반대편에 있는 피렌체 대성당의 야경은 '꽃 중의 꽃',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 부를만큼 치명적이고 계속 내 눈에 들어왔다. 임시 가판대에서 세 사람은 하이네켄 병맥주를 하나씩 구입하고 서로의 청춘을 위해 건배를 했고, 술과 분위기에 한껏 취해버렸다. 아름다운 피렌체 밤을 배경으로 하여, 우리는 서로의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다 털어놓았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말이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의 제시와 셀린의 낭만적인 이야기가 마냥 허구가 아니었다. 이 분위기라면 충분히 가능하게 만들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영화를 보면서 머리 속으로만 상상하던 판타지가 현실로 이뤄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청춘남녀가 자신들의 내면에 감춰든 판타지를 꺼내고 있을 때, 난관 아래 야외식당의 분위기는 나의 로망을 충족시켜줄 또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아름다운 현악기의 운율을 배경음악 삼아서 사람들은 분위기 있게 식사를 즐기고 있었고, 난관에서 그걸 구경하는 청춘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음악과 술에 취해 뜨겁게 미켈란젤로 광장을 달구고 있었다. 우리의 피렌체 밤은 당신의 낮보다 훨씬 아름답고 낭만적이며, 뜨겁다. Amor Fati!
4-0. From München To Firenze
2012년 7월 25일, 또 한 번의 장거리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무려 두 개의 국경을 지나쳐가는 여행, 뮌헨 중앙역(München Hauptbahnhof)에서 출발하여 첫번째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Innsburk)를 가로지른 후, 다시 한 번 국경을 넘어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에서 잠시 정차했다가 최종 목적지인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Firenze Santa Maria Novella, 이하 Firenz S.M.N.)까지 도달하는 거리. 시간으로만 따지면 기차에 앉아서 7~8시간 타고 가야하는 거리다(물론 그 이후, 이보다 더 오랜시간동안 기차를 탄 적도 있다). 오전 9시 반, 드디어 출발. 잘있어라 뮌헨! 잘있어라 독일(Auf Wiedersehen, Deutschland)! 이 기차를 타기 위해 아침일찍부터 일어나 부산스럽게 움직이다보니 조금 피곤함이 몰려와 예약한 자리에 앉으면 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예약한 6인실 칸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그 칸은 나 혼자, 아무도 타지 않았다. 눈을 감으려는 찰나, 6인실 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검표관이 들어왔다. 그는 나에게 여권과 기차표를 요구했고, 나는 그에게 바로 보여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검표관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로 무어라고 자꾸 이야기했다. 당연히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를 향해, 나는 "미안한데, 나는 독일어를 할 줄 모른다"고 영어로 대답을 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버럭 화를 내기 시작하면서 거칠게 쏘아부쳤다. 물론 독어로. 무슨 영문인지 전혀 알 리가 없는 나는 멀뚱멀뚱 거리면서 무슨 말이 모르겠다는 몸짓까지 보여주었고, 그는 씩씩거리면서 나갔다.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왜 나에게 화를 냈는지. 검표관이 나간 후, 기차는 어느덧 뮌헨 도심을 멀리 벗어나 시골 사이를 가로질러 달리고 있었다. 낯설면서도 낯익은 듯한 유럽 시골 풍경을 보다가,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아직 가려면 6~7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남아있다보니 빠른 시간 삭제를 위해 게임을 켰다(사실 이런 장거리 여행을 대비하기 위해 노트북에 오프라인에서도 실행가능한 게임 몇 개를 다운받아놓긴 했다). 그 중에서 시간 떼우기 참 좋다는 삼국지 시리즈를 골라서 열심히 영토 넓히기에 집중했다. 인스부르크(Innsburk)를 한참 지난 뒤, 6인 객실 칸을 홀로 점령하여 삼국지에 빠져있는 나에게 누군가가 찾아왔다. 아까 뮌헨에서 출발할 때 나에게 버럭하던 검표관이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동료 한 명을 데리고 왔다. 마치, '내가 지금 지원군을 데려왔으니, 넌 이제 끝났어' 하는 표정으로 대면했다. 그는 날 보자마자, 또 과격하게 독일어로 쏘아부쳤다. 당연히 나는, 그 말을 알아들었을 리가 없다. 의사소통이 전혀 안된다는 것을 단번에 간파한 검표관의 동료가 중재에 나섰다. 그는 다행히 영어가 가능했고, 나에게 나의 기차표와 좌석을 번갈아 가리키면서 이 헤프닝이 왜 일어났는지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기차표에 적힌 좌석번호가 6인 객실이 아닌 일반좌석 번호였던 셈이다. 즉, 같은 번호로 좌석이 두 개가 존재했던 것. 검표관은 여기 6인 객실이 여성 전용칸인데 남성인 내가 앉아있었다는 것에 화를 낸 것이고, 나는 이 칸이 여성 전용인지도 몰랐다(객실 자체에 그렇게 붙어있지 않았기에 승객 입장에선 알 리가 없었다). 진작에 영어로 이렇게 설명이 되었다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었는데, 소통이 불통이 되니 서로가 답답하고 기분만 상해버렸다. 중재자 역할을 하던 동료직원이 없었다면 이탈리아로 넘어간 이후로 독일에 대한 마무리가 찝찝했을 것이다. 오해가 생긴 것에 대해 나는 독일어를 못알아들어서 몰랐었다고 검표관에게 전해달라고 말했으나, 검표관은 여전히 나를 이상한 놈 취급하는 듯 했다. 그 친절한 직원의 도움을 받아, 원래 내가 예약한 자리로 갈 수 있었다. 그 자리엔 어떤 여자가 무단으로 앉아있었다. 내가 표를 보여주면서 비켜달라고 말했더니, 들은 채 만 채 했다. 검표관이 나한테서 이런 기분을 느꼈던 것일까? 우여곡절 끝에 내 자리를 찾았을 때에는 어느새 기차는 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 국경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탈리아로 접어드는 순간부터, 하늘에 구름은 보이지 않았고 뜨거운 햇빛과 땅바닥은 햇빛에 반사된 태양열 장판 같았다. 거짓말처럼 선선한 공기에서 후덥지근한 공기로 바뀌고 있었다. 학교에서 글로 배운 지중해성 기후를 이렇게 체험하고 있었다. 오후 5시 12분, 목적지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Firenze S.M.N.)에 도착했다.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이탈리아 여행이 시작되었다.
3-5. Römer, Frankfurt am Main
2012년 7월 24일 오전 8시 20분, 뮌헨 중앙역. 어제처럼 오늘도 뮌헨 밖으로 나갈 계획이었기에 오늘도 이 곳에 출석도장을 찍었다. 뮌헨에서 머무는 내내 중앙역을 안 온 적이 없을만큼 꾸준히 온 것 같다. 어느새 내 집처럼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행선지가 다소 먼 지역을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바로 독일의 또다른 대도시이자 경제의 중심지인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였다. 원래는 7시 50분에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하는 기차를 타려고 했지만, 하루종일 퓌센에서 걷고 트래킹한 피로가 쌓여서였는지 늦게 일어났다. 그래서 한 시간 뒤에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하는 ICE를 타기 위해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한 후 숙소 밖으로 뛰쳐나왔다. 뮌헨 중앙역에 도착하니 타임테이블에 존재하지 않던 프랑크푸르트행 기차가 등장하여 출발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고, 내가 시간을 착각한 줄 알고 체크할 겨를도 없이 8시 28분에 출발하는 ICE 기차에 올라탔다. 예약없이 ICE 아무거나 공짜로 올라탈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다 유레일 패스만 있으면 국내선은 공짜로 탈 수 있는 독일의 정책 덕분. 이 기차를 타고 나서 나중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할 때 즈음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기차의 최종 목적지는 베를린(Berlin)이었고 뮌헨을 출발하여 아우구스부르크(Augsburg), 슈투트가르트(Stuttgart), 만하임(Mannheim),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베를린까지 가는 완행열차였던 것.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던 유레일 타임테이블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기차였던 것이다. 뮌헨에서 출발한 지 4시간 쯤 지났을까, 수풀 사이를 뚫고 고층 빌딩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프랑크푸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낮 12시 반, 점심시간이 한창인 프랑크푸르트의 평일은 한적했다. 뮌헨과 다르게 한 블럭 지나갈 때마다 고층 빌딩과 현대식 건물들이 이 구역을 점거하고 있었다.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자, 한국 항공기들의 주요 IN/OUT 도시이다보니 낯익은 한글 간판도 종종 눈에 띄었다. 프랑크푸르트의 마천루들은 실제로 <심시티> 같은 도시건설 게임에서 등장하는 고층빌딩의 롤모델들이 되기도 한다. 독일의 대표적인 은행 중 하나인 코메르츠방크(Commerzbank) 빌딩이 대표적인 케이스고, 다른 마천루도 게임상에서 많이 본듯한 생김새였다. 프랑크푸르트 EU타워를 지나치면서 재밌는 광경을 보았다. 거대한 EU 마크 주변에 펼쳐진 잔디밭은 시위참가자들의 캠핑장이었다. 텐트치고 노숙하는 이들은 그 중에서 부르주아, 텐트가 없는 이들은 어디서 신문지와 종이상자를 싸그리 끌어모아서 산성을 만들다 싶이 했고, 그마저도 없는 이들은 잔디밭이나 인근 벤치에 쭈그려서 누워있었다. 그들 앞에 하늘 높이 뻗어있는 EU타워는 아무런 대답이 없이 그 곳이 서있었다. 신기한 광경이라 카메라에 담을까도 했지만, 처절하게 투쟁하는 저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도로 내린 후 조용히 지나쳐갔다. 점심을 사먹으려고 지갑을 꺼낸 순간, 현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그래도 유로 지폐를 인출해야 할 시점이 왔는데, 프랑크푸르트에는 은행도 많고 하니 여기서 작정하고 많은 액수를 인출하기로 마음먹었다. 국제학생증을 들고 은행 건물들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하지만 여기 은행 ATM기들이 씨티은행의 카드를 인식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1시간 넘게 돌고 돌아 도이치방크(Deuschebank) ATM에서 돈을 인출하는 데 성공했다. 역시 독일의 넘버1 은행이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싸게 한 끼를 떼울 수 있는 맥도날드를 찾아나섰고, 변함없이 저렴한 가격대로 먹을 수 있는 치킨버거 단품을 먹은 뒤, 호기롭게 맥도날드 밖으로 나섰다. 가장 가깝게 구경할 수 있는 곳부터 찾아보았고, 근처에 있던 괴테하우스(Frankurter Goethe-Haus)로 향했다. 독일 문학의 상징이라 불리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학창시절에 문학수업 등을 통해서 들은 이름 중 한 명. 그의 대표작이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것 또한 주입식 교육으로 익히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말로만 듣던 독일의 대부호의 흔적이 묻어있는 생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이었기에 조금 설레긴 했다. 총 4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150여년 전에 괴테가 살았던 그 흔적 그대로 복원하였다. 물론 전쟁이 터지기 전에 미리 그의 유품을 먼저 옮겨두었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4년간 그의 생가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괴테의 대저택 규모를 이 때 처음보고 깜짝놀랬다. 어렸을 때부터 부족한 것 없이 자랐다는 이야기는 간략하게 들었으나, 이정도로 풍족한 집안일 줄은 몰랐다. 물론 그의 고향이 프랑크푸르트였다는 것도 괴테하우스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1층부터 4층까지 오르내리면서 둘러본 소감은, 오늘날 괴테가 유명해질 수 있는 데에는 집안 내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랄까. 손님을 접대하는 방부터 괴테 가족이 주거공간으로 활용했던 방들이 하나같이 고풍스러우면서도 각각 테마를 지니고 있었고, 전쟁 직후에 이 방을 고스란히 과거의 모습으로 하나 틀린 거 없이 완벽하게 복원시켰던 사람들의 능력도 새삼 대단하다는 말 밖에. 좋은 집안 환경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가던 그가 내 나이 또래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간하여 대중의 인기를 얻는 동안, 나는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무얼 이루었는지 한 숨 쉬며 괜히 들어왔나 자괴감이 들었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아이들도 괴테처럼 되길 원했는지,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아이의 손을 잡고 방문하면서 괴테의 모든 것을 둘러보고 있었다. 괴테하우스를 빠져나와, 프랑크푸르트의 예전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또 다른 공간인 뢰머 광장(Römerburg)으로 자리를 옮겼다. 뢰머 광장은, 오늘날 마천루로 둘러싸여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과거의 모습과 흔적의 상징이다. 구도심의 중심부인 이 곳에서 센터를 맡고 있는 옛 시청사인 뢰머(Römerburg)는 신성로마제국 대관식 후 피로연으로 사용되다가 시청사로 활용되었다. 197,80년대에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차붐(Tscha Bum)'이라 불렸던 차범근이 프랑크푸르트에서 뛸 당시, UEFA컵 우승기념 퍼레이드 할 때도 이 곳이었다. 뢰머의 지붕은 눈이 많이 내리는 이 지역 특성에 맞춰 겨울에 눈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 독특한 형식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뢰머 광장의 주위를 둘러보면 하늘을 뚫을 것 같은 뾰족한 지붕을 가진 목조건물들을 볼 수 있는데, 오스트차일레(Ostzeile)라고 한다. 15세기 쾰른의 비단상인들에 의해 도입된 양식이다. 현재 오스트차일레들은 관광객들을 위한 식당 및 상점으로 이용되고 있다. 뢰머 광장 근처에는 마천루와 비등한 높이를 지닌 프랑크푸르트 대성당(Frankfurt Dom)이 있었다. 쾰른 대성당 못지 않게 잘못 건드리면 피가 날 것 같은 날카로운 첨탑은 하늘에 구멍내려고 작정한 듯 보였다. 나처럼 뜨거운 태양을 피해 성당 안으로 잠시 들어온 방문객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잠깐 쉬러 들어왔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 숙이고 잠이 들어버렸다. 성당 내부를 감싸는 온화한 기운이 내 몸의 긴장을 풀어준 듯 했다. 대성당을 나와 무작정 마인 강(Main) 주변으로 걸어갔다. 아이제르 다리(Eiserner Steg)를 통해 마인 강을 건너 반대편에 서니, 재밌는 광경을 보았다. 마인 강 뒤로 펼쳐져 있는 프랑크푸르트라는 대도시가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누가 그어놓은 것처럼 자연스레 나뉘어져 있었다. 내가 서 있는 쪽 뒤편으로는 주택가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의 정확한 구역 분할이었다. 마인 강 고수부지에 있는 큰 나무 아래 크게 펼쳐진 그늘로 숨었다. 유람선을 타고 구경하는 사람들, 잘 닦아놓은 산책로를 통해 자전거를 타거나 애완견과 산책하는 이들, 어디서 피서용 의자를 깔아놓고 광합성 작용을 하면서 독서하거나 낮잠에 빠져있는 사람들, 옆에서 도로 보수공사하는 공사인부들, 프랑크푸르트 마인 강 근처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4시를 넘어섰다. 다른 곳을 더 구경하고 뮌헨을 돌아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 뮌헨까지 가는 시간만 족히 3~4시간이었기에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른 때면 모르겠지만 다음 날이 아침일찍 이탈리아로 떠나야 하는 머나먼 여정이었기에, 아쉬움을 강에 던져두고 뮌헨행 기차에 올라탔다. "Auf Wiedersehen Frankfurt!"
3-4. Neushwanstein, Füssen
9시 51분 뮌헨 중앙역(München Hauptbahnhof), 퓌센(Füssen)으로 출발하는 기차는 사람들이 미어터질만큼 탑승했다. 좌석이 모자른데다가, 입석한 사람들도 복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 기차에 서 있을 공간도 없었다. 이게 다 유레일 패스만 있으면 공짜로 탈 수 있는 독일 국내선 제도 때문이다. 예전에 국내에서 운행했던 통일호, 비둘기호를 연상케 하는 웬지모를 푸근함과 옛스러움을 지닌 기차는 독일 남부 시골을 유유히 지나갔다. 대략 3시간 정도 소요되는 동안, 나를 비롯하여 같이 동행했던 K와 P는 사람들 사이에 낀 채로 가는 내내 불편하게 서있어서 몸과 정신이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퓌센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목적지인 노이슈반슈타인(Neushwanstein) 성으로 싼 가격에 이동할 수 있는 택시를 찾아다녔고, 턱수염을 기르고 인심 좋게 생긴 택시 기사의 손짓을 보고 그의 택시에 올라탔다. 퓌센이라는 동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뮌헨 도착한 후, 민박집 사장님의 소개 때문이었다. 나의 최초 독일여행 계획은 뮌헨과 프랑크푸르트, 그리고 쾰른이었으나, 생각한 것에 비해 뮌헨에서 이동거리가 제법 먼 데다가 쾰른이나 프랑크푸르트가 관광하기엔 생각보다 크게 매력이 없다는 말만 반복해서 강조하셨다. 거기를 가는 대신 나에게 퓌센에 갈 것을 권장했다. 때마침, 숙소에 퓌센을 다녀온 다른 관광객들이 "다녀오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획을 수정했다. 노이슈반슈타인(Neushwanstein) 성은 호엔슈방가우(Hohenschwangau) 성과 근접해있고, 매표소도 한 곳으로 통일되어있다. 택시에서 내려 언덕으로 조금 올라가니 큰 건물의 매표소가 보였다. 성에 입장하려고 매표소 앞에서 줄 서있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 놀랬다. 퓌센과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인기를 매표소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실감하기 시작했다. 줄이 너무 길어, 입장권만 사는 데 무려 40분이나 기다렸다. 표를 끊은 후, 벌써 점심을 먹을 시간이 다되었기에 야외 스낵바에서 즉석토스트와 구운 햄, 그리고 맥주 한 잔을 주문해서 간단하게 배를 채웠다. 스낵바 옆에는 노이슈반슈타인 성까지 올라가는 셔틀버스 정류장이 있었는데, 이용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한산해질 때 이용하기로 생각했다. 두 개의 성이 끼고 있는 거대한 호수는 참으로 맑고 아름다웠다.그런데 한국에서 보던 물빛과는 조금 달랐다고나 할까? 여기 유럽의 물 밑바닥은 석회질로 구성되어 있다보니 한국에 비해 여기 물 색깔이 좀 더 짙거나 진한 느낌을 줬다. 한국은 에메랄드색에 가깝다면, 유럽은 사파이어색에 가깝다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물에 녹아든 석회질 성분 때문에 서양 사람들은 일반 생수보다 탄산수를 더 많이 애용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이게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맑고 고요한 퓌센의 호수 수면 위에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던 백조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백조는 아름답고 우아하고 얌전한 새다" 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기 전까지. P가 자신이 먹다 남은 햄 슬라이스 한 장을 잘게 쪼갠 후 백조를 향해 내밀었다. 햄 조각을 본 백조들은 어미이건 새끼이건 물불 안가리고 P에게 덤벼들었다. 그야말로 먹이 앞에서 가족이고 위아래고 전혀 없던 셈. P가 재빨리 햄조각을 물 위로 떨어뜨리지 않았더라면 백조들이 P의 손을 물었을 것이다. 그 광경을 옆에서 본 아이들은 백조에게 먹이주는 게 재밌어보였는지 부모에게 졸라서 어디선가 햄 슬라이스를 구해왔다. 그 중 한 아이는 겁없이 백조들 시야에 잘 보이라고 햄슬라이스를 흔들면서 바짝 약올렸다. 아이들의 장난에 새끼들이 놀아나는 모습을 본 어미 백조는 그대로 아이의 손으로 돌진하여 햄슬라이스를 낚아챘고, 아이는 백조의 기습에 깜짝 놀라 다리가 풀려 물 속으로 주저앉았다. 노이슈반슈타인(Neuschwanstein), 그리고 호엔슈방가우(Hohenschwangau)가 건립된 시기는 19세기 말, 바이에른 왕국의 왕 루트비히 2세 시절이었다. 사실 이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들을 지은 이유는 실용적 목적이 아닌, 당시 오페라에 빠져있는 루트비히 2세가 취미로 지은 것이다. 실제로 루트비히 2세가 완공된 이후, 산 속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이 성에서 머문 날은 겨우 2주 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가 죽은 뒤에는 관광지로 이용되었다. 그래서 재정파탄에 이르면서까지 이 성을 완공한 루트비히 2세를 향해 "미친 왕" 이라고 비난하는 독일 사람들도 제법 많다. 이 두 성에서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이름에 들어가 있는 "Schwan" 인데, 이는 "백조" 라는 독일어다. 그래서 유독 호수부터 성 주변에 백조 장식이 많았던 이유 또한 백조의 성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먼저 가장 가까운 호엔슈방가우(Hohenschwangau) 성부터 올라갔다. 성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마차를 끄는 말의 배설물이 너무나 눈에 잘 띌 정도로 보여서 능력껏 잘 피해야만 했다. 진한 말의 배설물 냄새를 맡아가면서 도착한 호엔슈방가우 입구, 입장 시간도 정해져있었고 우리는 2시반 타임에 들어가야만 했다. 똑똑한 가이드 크리스와 함께 호엔슈방가우 내부 투어가 시작되었다. 투어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략 3,40분만에 끝났다. 그녀는 영어와 독일어를 번갈아가면서 우리를 비롯한 관광객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설명해주고 있었다. 호엔슈방가우가 노이슈반슈타인 성보다는 아름다움이 떨어진다고는 하나, 루트비히 2세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라고 한다. 호엔슈방가우를 먼저 방문해서 그런지 몰라도, 성 창 밖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내려다보면서 이 미치광이 왕이 무리하게 성을 지은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했다. 노이슈바인슈타인까지 올라가는 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여전히 버스 줄은 빠질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래서 과감하게 포기하고 무려 3km 이상이나 되는 산길을 두 발로 걸어가기로 했다. 체력말곤 남는 게 없는 20대 남성들이 피할 게 없는 도전이었다. 40분간 땀을 흘리면서 걷는동안(가는 길에 버스를 2,3번 정도 보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공유했다. 비록 나보다 두 살 어린 친구들이지만, 절친사이인 P와 K가 유럽여행을 같이 떠나게 된 이유와 그들의 학창시절, 뮌헨으로 오기 전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들... 알게 된 지는 오늘로써 겨우 이틀째였지만, 마치 오래 본 사이처럼 가까워지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노이슈반슈타인(Neuschuwanstein) 성의 전체 모습이 잘 보이는 마리엔 다리(Marienbrücke)에 도착했다. 전방은 뻥 뚫려있고, 뒤편에는 높은 산맥들과 폭포가 있다보니 산에서 부는 자연풍은 무척이나 강력했고, 여름을 잊게 하는 차가움이었다. 번지점프를 해도 손색없을 높이에 위치한 마리엔 다리에서 밑을 내려보는 것 자체가 매우 아찔하고 어지러움을 느꼈다. 디즈니월드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노이슈반슈타인, 공사 때문에 얼굴의 한쪽 면을 마스크로 가리고 있음에도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새로운 백조의 성' 이라는 이름답게 새하얀 벽면들은 태양빛을 강렬하게 반사시키면서 자태를 뽐냈다. 마리엔 다리에서 보는 호수와 매표소 부근 상가들, 그리고 호엔슈방가우의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이자, 액자에 전시해놓은 그림이었다. 이 경치 하나 보기 위해 루트비히 2세가 이런 미친 짓을 감행하고 성을 지었나보다. 마리엔 다리에서 노이슈반슈타인 성쪽으로 이동하면서 가까이에서 성을 본 소감은 말을 못 잇게 만들었다. 다른 때라면 성 내부 투어도 가능했지만, 공사 때문에 내부 관람도 제한된다는 안내 문구만 걸려있다는 게 우리를 아쉽게 만들었다. 그래도 해가 쨍쨍 뜬 날씨 속에서 아름다운 성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3명의 남자는 매우 만족했다. 그거면 오늘의 목표를 달성했다. 성 앞에 설치된 가판대에서 우리는 상큼한 과일맛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입에 물고 내려왔다. 독일산 아이스크림도 제법 먹을만 했다. 국내에서 파는 맛과는 다르면서도 은근히 입맛을 당겼다. 내려오자마자 타이밍 좋게 택시를 잡은 3인방은 퓌센 역까지 갔고, 우리는 뮌헨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어느새 독일에서 지내야 할 날도 다 끝나가고 있다. 이렇게 독일이 좋은 곳인줄 알았더라면, 독일여행 일정을 더 늘릴 껄 후회했다. 그 후회도, 나중에 숙소에서 만난 40대 형님이 건네주신 잘츠부르크산 치즈를 먹으면서 금새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