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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역사, 존안문서 총정리
벌써 10년 전 일이라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MB와 박근혜가 대선경선에서 대결하던 2007년 여름, 한나라당과 국가정보원이 대치했었죠.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이 도곡동 국정원을 방문해 김만복 원장을 면담했고 존안문서의 열람을 요구했습니다. 경선과정에서 쌓인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는데, 국정원은 강하게 거절했습니다. 보온병 포탄과 행방불명으로 유명한 안 위원 측은 안기부의 최태민 수사보고서, MB와 경쟁했던 박근혜 후보 관련보고서가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나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이 발끈했던 것은 MB의 과거 부동산 관련 기록을 국정원에서 퍼뜨렸다는 의혹 때문이었습니다. 대선후보는 물론 고위공직자라면 피할 수 없는 존안문서, 그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무엇이든 거침없이 대충 정리해서 배달해 드리는 내 손안의 지식인, 총정리! 이번 69화의 주제는 ‘사찰의 역사, 존안문서’입니다. - 존안문서의 정의와 역사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합니다. - 일제가 만든 ‘쁠랙크리스트’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 503 정권의 인사참사는 사실 예견된 것이었죠. 이유를 알려드리죠. - 정보기관 존안문서의 디테일은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 사찰은 저도 당해봤고 여러분도 당했을지 모릅니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끔찍한 인사 참사를 반복했죠. 박근혜의 수첩인사는 MB의 고소영, 강부자 인사보다 처참했습니다. 삼성 떡값 수수 의혹이 있던 김진태 검찰총장, 부실한 답변과 전문성 부족으로 청문회를 개콘으로 만들었던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대표적이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야당 지도부와의 저녁 자리에서 “청와대에 오니 존안자료가 없었다”라고 미흡한 인사 검증을 변명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전 정권으로부터 인계받은 문서는 10장이었죠. 그나마 현황보고서와 회의실 예약 내역이었습니다. 세월호 당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근거 자료도 없었죠. 김기춘이 주도한 문화계 블랙리스트도 증거가 남지 않는 구두 지시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역시 MB 정부로부터 제대로 인수인계를 받지 못했습니다. 아니, 받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과거로 가보죠. 노태우 정권이던 1990년에 일명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해 연말 국정감사 이슈는 당연히 민간인 사찰사건이었습니다. 국회국방위는 국방장관과 보안사령관을 출석시킨 후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문제에 대해 강공을 퍼부었죠. 평민당을 비롯한 야당은 밤늦게까지 민간인 사찰의 실상을 추궁합니다. 군 장병의 신상 파악 및 감시를 위한 ‘존안카드제’ 폐지, 정보비 내역을 요구했죠. 존안문서, 대체 무엇일까요? 존안(存案)이란 게 ‘존나 안전하다’는 말의 줄임말은 당연히 아닙니다. 없애지 않고 보관한다는 뜻이죠. 비밀문서나 보안등급이 해제된 기록 중 따로 보존하는 기록들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고 할 수 있죠. 앞서 박 전 대통령이 말한 존안자료는 정보기관의 존안카드로 보입니다. 국정원, 검찰, 경찰, 기무사 같은 기관은 주요인물의 활동상황을 카드에 기록해 보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요 인물이란 정부기관 국장급 이상, 언론계, 재계 및 학계, 시민단체의 주요 인사를 말합니다. 20세기에는 안기부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실, 총무처가 각각 존안카드를 관리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중앙정부보가 안기부로 이름을 바꿨고 지금 이름은 국정원이죠. 청와대 존안문서는 정보기관의 존안자료를 취합한 후 별도로 조사한 내용을 더한 것이죠. 개인의 신상을 탈탈 털어 만드는 것입니다. 공직이나 회사 생활에 대한 내용은 물론이고 은밀한 개인비리, 사적인 대화, 정치적 성향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고’란에는 상당히 사적인 내용이 적혀있다고 하죠. 남녀관계 같은 내용도 있다는 말입니다. 존안자료라 쓰고 ‘사찰자료’라 읽어야 하는 것이죠. 청와대 인사의 기초자료로 쓰이기 때문에 민정수석실에서 관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내용이 은밀한 만큼 누군가를 협박하고 회유할 때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과 비서실장, 정무수석비서관 같은 극소수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전 정권의 존안자료는 보기 힘들죠. 이유는 잠시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국정농단을 수사하며 박영수 특검이 거둔 성과 중 하나가 블랙리스트 사건이었습니다. 블랙리스트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제의 총독부 경무국은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인물을 이른바 ‘요시찰인’으로 분류해서 리스트로 관리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청와대 입장에 다른 의견을 내면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하고 좌파 척결 블랙리스트에 올렸죠. 일제가 만든 ‘쁠랙크리스트’는 천 명 정도로 시작해 삼일운동 후 3천명에 달했습니다. 광복 이후 친일파가 장악한 한국 경찰에도 이 쁠랙크리스트가 이어집니다. 그래서 ‘빨갱이’를 감시하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었고 사상범을 잡는 데 활용했습니다. 공안기관의 블랙리스트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까지 이어졌습니다.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는 육군 방첩부대를 통해 별도의 존안자료를 만들어 주요 인사를 관리합니다. 70년대 중반에는 군 정보기관을 통해 연대장 이상 800명의 장교를 관리하는 ‘옐로카드’를 만들죠. 전 수경사 보안반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장군 1명의 존안 자료가 어마어마합니다. 종이를 쌓으면 50cm가 넘는 높이였다고 합니다. 정보기관인 보안사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같은 정치인은 물론이고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종교계 인사까지 관리합니다. 그러면서 잡지를 출간하는 ‘현실문화사’를 만듭니다. 기자 신분을 가장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죠. 윤석양 이병의 폭로로 밝혀졌습니다. 보안사는 정보수집을 위해 술집도 운영했습니다. 한 언론에서 이를 찾아냈는데, 지배인은 장교였고 병사는 웨이터로 근무하는 카페였죠. 영화 제목이 된 이 술집의 이름이 바로 ‘모비딕’이었습니다. 쿠데타 반대세력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중앙정보부도 존안문서를 만듭니다. 기초적인 정보부터 가족사와 정치 성향, 최근 활동, 만난 사람까지 기록했죠. 중앙정보부가 안기부로 이어지듯 박정희의 블랙리스트는 전두환에게 이어집니다. 전두환은 공안사범 데이터베이스까지 만들었고 노태우로가 물려받습니다. 민주화 운동 인사들의 가족과 친척은 물론, 주변 인물까지 존안 자료로 관리해 온 것이 드러났죠. 1996년 연합뉴스는 신군부의 ‘집권 시나리오’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의 발표 내용에 따르면 80년 당시 신군부 측이 만든 정권찬탈 계획서가 있었다는 것이죠. 보안사가 만든 A4 네댓 장 분량의 집권 시나리오 내용은 국회해산, 비상계엄확대, 비상기구 설치, 언론 통폐합 등이었습니다. 자료존안실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수사 직전에 폐기되면서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며 김중권 비서실장이 언론에 존안문서를 확인해주었습니다. 정부 인선에 존안자료를 활용했다고 밝힌 것이죠. 이어진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정원과 검찰, 경찰의 존안자료를 인선에 거의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참여정부는 대통령기록물법을 제정한 후 존안 자료도 대통령기록물로 분류했죠. DJ 정부 출범을 앞둔 1997년 12월 26일, 국민회의 총재실. 김대중 당선자는 국방부장관과 안기부장의 업무 보고를 받았습니다. DJ가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이 많았다는 건 다들 아시겠죠. 게다가 당시 대선기간에 안기부가 개입한 북풍 공작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DJ는 대인배답게 그런 과거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안기부장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던 것은 존안카드와 관련한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안기부의 A급 관리 대상자 존안카드에는 김대중 당선자를 포함한 인사들의 파일이 있었죠. 발언 내용은 물론 누구를 만났는지에 대한 내용까지 매일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B급 대상자는 주간 보고 형식으로 기록되었죠. 그런데 안기부장은 DJ측에서 존안카드를 달라고 하자 “폐기했다”고 답변했습니다. 사실 파기한 것이 아니었죠. 새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담긴 자료는 공개하지 않는 게 안기부의 원칙이었습니다. 존안문서를 파기하고 있던 건 군 정보기관이었습니다. 30년 넘게 모아온 민간인 사찰 자료, 리어카 한 대 분량을 소각장에서 태웠다고 하죠. 정보기관이 속속 문서를 파쇄하고 있다는 첩보가 인수위에 계속 들어옵니다. DJ에 대한 정치 공작과 북풍 관련한 문서, 대북 협상 관련한 비공식 자료, DJ 진영 인사의 사찰 자료, 금융 위기 사태와 간련한 회의록, 삼성자동차 허가 관련한 회의록과 결재문서가 사라지고 있었죠. 민주정부 10년, 그동안 블랙리스트란 말도 사라졌고 존안문서도 유명무실해졌습니다. 그런데 MB 정부 때 민간인 사찰이 부활했죠.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장관과 차관급 인사까지 감찰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대외관계, 도덕성과 복무기강, MB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해서 출퇴근 시간, 취미생활, 주량 등까지 문서로 기록해두었습니다. 이런 악습은 다음 ‘안 민주 정부’로 이어집니다.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 역시 블랙리스트를 관리하고 사찰과 공작을 했죠. 김영한 수석의 업무일지에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취임 직후 인사 참사의 원인을 MB 정부로부터 존안자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돌렸죠. 전 정부의 존안자료를 받지 못한 것은 당연합니다. 앞서 살펴본 대통령 기록물법 때문이죠.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부의 존안자료는 기밀문서가 됩니다. 대통령기록물로 분류되면서 보관소로 이관하고 봉인하죠. 함부로 열람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국회의원 2/3 이상이 동의하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생활이 포함된 개인자료의 공개는 정치권에서도 부담이 되는 일입니다. 당사자가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벌일 수도 있죠. 그런데 여기에 작은 반전이 있습니다. MB 정부 말미 인수위 시절, 청와대는 박근혜 당선인에게 제안을 합니다. 인사와 관련하여 청와대 존안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한 것이죠. 그런데 거부한 것이 바로 박 당선인 측이었습니다. 자기들이 선택한 인사의 명단이 청와대로 넘어가는 게 싫었던 것이죠. 박 당선자 본인이 존안자료를 그리 신뢰하지 않았다는 언론보도도 있었습니다. 전두환과 노태우의 신군부 세력은 12·12 사태로 정권을 장악합니다. 빨리 정부조직을 구축해야 했죠. 하지만 정치를 몰랐던 이들에게는 시간도 능력도 부족했습니다. 이때 존안문서는 복음과 같았습니다. 중앙정보부와 보안사, 경찰 등 정보기관의 사찰자료를 활용했죠. 인선에 참고자료로 쓰는 동시에 신군부의 반대 세력에게 공격무기로 활용하기도 좋았죠. 정보기관의 존안문서는 디테일합니다. 한 사람을 정리하는데 100페이지가 넘는 문서로 기록하는 경우도 있죠. 1호 정보는 생년월일과 출생지 같은 기초적인 정보를 다룹니다. 2호 정보는 정치와 사상 성향을 다루죠. 3호 정보는 요즘 뭐하고 있는지, 누구를 만나는지를 다룹니다. 성격과 말투, 좋아하는 넥타이 색까지 기록했죠. 특정인을 별도로 보고할 때는 최근 여자관계, 누구의 후손인지, 요즘 평판이 어떤지도 포스트잇 같은 부전지로 부착합니다. 저도 전방에서 중대장 할 때 기무사 간부와 여러 번 접촉했습니다. 지휘관과 주요 간부에 대해 얼마나 디테일하게 정보를 수집하는지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죠. 정보부대에서 근무하다 전역한 예비역 장교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존안문서의 위력을 설명했습니다. “외부에서 국군기무사령부의 고위직으로 발령받으면, 대개 자신에 대한 ‘존안 자료’를 찾게 된다. 자신의 수십 년 군 생활에 대한 동향 첩보들이 어떤 식으로 존안 자료에 기재되어 있을지 당연히 궁금하지 않겠나. 하지만 존안 자료에는 열람자 기록까지 다 남게 된다. 그럼에도 지휘관들은 보고자 하는 욕구를 떨치지 못한다.” 김 씨는 자신이 근무할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위관급은 보통 6개월에 한번, 영관급은 3개월, 장성급은 수시로 존안자료를 작성하고 관리한다”고 밝혔습니다. 기무사 요원이 연대 이상, 각 사단, 군단, 군사령부, 국방부에 파견되어 장교와 군무원의 동향을 감시한다는 것이죠. 2004년의 유명한 사건 중 장군 진급 심사 비리 파동이 있었죠. 당시 한 현역 대령에 대한 기록이 공개되며 존안문서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2003년, 그 대령이 연대장으로 복무할 때 사단 OO회관의 호프집에서 부부 동반 회식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모 대대장 부인의 허벅지를 만지려다 몸을 피하자 인격 모욕을 했다’는 자세한 기록이 있었죠. 또 다른 대령을 다룬 존안문서는 더욱 충격적입니다. ‘부인의 치과 치료로 알게 된 OO시 OO치과 의사와 불륜 관계로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내용이 담겼죠. 여기에 ‘2002년 그 사실을 인지 후 부인을 친정으로 보낸 후 이혼을 전제로 별거 생활을 하다 자녀 혼사 및 장군 진급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재결합’했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MB 정부 때는 기무사의 신 모 대위가 민간인을 사찰하다 걸렸죠. 민노당 가족과 금속노조 관계자 등 민간인의 일상까지 촬영했습니다. 그리고 신 대위의 수첩에는 민간인 남녀에 대한 관찰기록이 적혀있었죠. 모텔에 언제 투숙했는지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이런 야만적인 사찰이 아주 오래 전 있던 게 아니라 불과 8년 전 얘기입니다. 존안문서는 정치보복을 위해 쓰이기도 했습니다. 꼼꼼한 MB는 광우병 촛불시위 이후 전 정권사람을 향해 복수의 사찰을 강행했습니다. PD 수첩에서도 다룬 김종익 KB 한마음 대표 사찰은 신호탄이었죠. 청와대가 국무총리실에 대포폰을 지급한 것도 드러났습니다. 이어서 친노 성향의 의원과 비서, 비서 친인척까지 수사를 받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까지 측근에 대한 사찰은 계속되었습니다. 정치보복에 이어 파워 게임에도 사찰이 쓰였습니다.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 의원 중 MB의 형인 이상득 의원의 2선 퇴진을 요구한 의원들도 사찰을 당했죠. 대표적인 인물이 정두언과 남경필입니다. 정두언 전 의원은 자신의 회고록에서도 “MB 정권의 사찰이 역대 어느 정권보다 사적이고 비열했다”고 적었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적폐는 너무도 크고 블랙리스트는 야만적이며 악질적이었습니다. 하지만 MB 정권의 적폐는 스케일은 더 컸고 민간인 사찰은 더 디테일했습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려면 이 모든 적폐를 청산해야죠. 9년 묵은 적폐를 정리하려면 정부와 청와대가 전원 임플란트할 각오로 열심히 뛰어야 가능한 일일 겁니다. - 이 글은 전체 방송의 일부분만 다루었습니다. - 무엇이든 정리해드리는 "총정리" - 아래 주소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PC, 모바일: http://www.podbbang.com/ch/12078 * 아이폰 팟캐스트: https://itunes.apple.com/kr/podcast/chongjeongli/id1130129527?mt=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