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by
LDray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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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는ㅡ
처음으로 마주친 두 눈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ㅡ애초에 운명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목을 매어 본 적이 없었던 그녀에게는, 첫눈에 반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길게 늘어진 검은 생머리는 그녀의 모친이 물려준, 몇 되지 않는 매력이지만 발끝까지 내려오는 피로 때문에 두드러지진 않았고, 어린 시절엔 아름답고 예쁜 눈망울이라고 칭찬도 들었건만(그 때 당시에 칭찬을 해준 이웃집 할머니는 3년 전에 돌아가셨다) 깊은 흑갈색의 두 눈에 비치는 것은 절망스럽기만 한 현실의 파도 뿐이였다.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삶을 놓지 못 했다. 죽음의 공포. 자살을 하기에 그녀는 너무 여렸고, 그에 비해 현실의 벽은 보다 가벼웠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 살다보니 20대 초반에는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고 (그녀의 양심이 허락하는 한도까지만), 정신을 차리고보니 28살이 되어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비록 지난 날이 행복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의 행복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ㅡ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결혼식이 있기 3일 전.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받은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이유를 묻거나 화를 내는 대신 "그래. 잘 살아."라며 웃어보였다. "ㅡ미친년." 신디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법이 없었다. 그럴 시간적인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그저 나지막한 욕지거리와 함께 묻는 것에 전념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도. 20년간 옆을 지켜준 로니가 눈을 감았을 때에도. 예쁜 눈이라며 자신을 아껴준 소피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마이클이 조금 전에 헤어지자고 했을 때에도. 잘 살라ㅡ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은 뒤, 짧은 욕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묻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쇼파에 어지럽혀 있던 니트 가디건을 걸치고 근처 마트로 향해 종류도 모르는 맥주 두 캔과 맛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나쵸칩을 사들고, 길지도 않은 밤을 지샐 것이다. 사실 결혼에 대한 현실감이 없었다. 마이클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사랑했다. 힘들어서 죽어버릴 것 같은 하루를 지내도 그와 함께라면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원한다면 달갑지 않은 섹스도 할 수 있었다. 그가 첫 남자는 아니였지만 첫 오르가즘을 느끼기도 했다. 잘 맞는다고 여겼고 나름 충분한 행복이라고 느꼈다.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기 전 까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기가 차서 욕이 나왔다. 욕을 잘 하지 못 해서 아쉬웠지만 그녀가 아는 욕이란 욕을 서 너번 뇌까리고 나셔야 조금 개운해지는 기분이 되었다. 그렇다고 여기기로 했다. 밤을 보내는데에는 맥주 두 캔이면 충분했다. 술은 전혀 마실 줄 몰랐기 때문에 두 캔이면 취하고도 남았다. 천천히 마셔도 어느 사인가 취해서 잠이 든다. 그래도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정신이 들곤 하니까 출근하지 못 할 걱정은 없었다. "저 결혼 깨졌으니까 전날 저녁에 굶거나 하지 마세요." 스스로는 담백한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내용은 담백하지 않았지만. 몇몇의 직장 동료들이 조심스럽게 물어와도 차였다는 한 마디면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힐끔거리는 눈치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듯이 여느 때와 같이 일과를 마치고 퇴근을 했다. 무대의 주인공은 그녀가 아니였다. 한동안 주목을 받을지언정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에게 향할리가 없으리라. 눈에 띄는 엑스트라는 가끔 있으니까. 나 역시 그것에 익숙하다. "하하.....죽어버릴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맥주를 사서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익숙한 절망과 고단함을 짊어지고 있었고, 몇 년 동안 월세를 살고 있는 빌라 문가에 처음 보는 남자가 피를 줄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을 발견했을 때에도 그녀는ㅡ "나 대신 누가 죽어주길 바란 건 아니였는데." 라며 중얼거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