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ZOOM 예술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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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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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줌예줌 리포트 59
답사로 끝난 미완의 출사지 편... <인문 Zoom 예술 줌> 도상탈출, 바야흐로 사진 단양.제천으로 가려거든 4 - 잔도길, 적요의 어스름 유난히 출발 시간이 늦었던 답사에다 잘못 든 길로 단양으로 향한 시간은 저녁 무렵. 잔도길의 실체도 모르고 네비를 찍고 달려 왔는데, 도담삼봉과 석회동굴을 빼면 갈 곳 없다 여겨지는 단양에 새로운 것이 생겼다. 만천하스카이워크와 수양개 빛터널이 이곳의 자랑인가 본데 들어가는 길은 역시 시골스러워 뭐가 있기나 한건가 싶었다. 답사 후에 알아보니 이곳이 주말이면 관광버스들로 교통정체가 심하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한 6시 즈음엔 만천하스카이워크는 폐장 후였고, 잔도길을 찾아 계단을 올랐다가 내려오니 주위는 어스름해지고 겨우 찾은 잔도길이라 명명된 남한강변 테크길에는 길을 밝히는 불들이 하나둘 켜졌다. 순간의 고요와 뜨문뜨문 산책길에 나선 인적이 시골의 적요를 느끼게 한다. 서울 살이의 복잡다단 호화찬란의 소요들에 대비되는 강변에 내린 산그림자와 저 멀리 철교를 지나는 기차의 철길 밟는 묵직한 소리가 산으로 둘러진 지방 소도시의 숨결인 듯했다. 그저 적요라고... 적적하고 고요하고 침잠하는 기운에 아침부터 부산하였던 맘이 내려 앉았으니 이번 여행길은 이것으로 모두 되었다 싶게 흡족하였다. 잔도길을 걸어야 단양을 밟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주위는 어두워졌지만 삼각대를 어깨에 걸치고 걷는다. 저 아래 자그마한 카누 모양의 배가 보인다. 노인듯 싶은 하얀 저것은 그대로 그림이 되었다. 묘하게 구성적이다. 끝이 어딘지 모를 잔도길을 가로등에 의지해 걷는다. 중간중간 구멍 뚫린 데크 아래 물이 흐르고, 그 깊이는 가늠할 수 없다. 괜한 불안감에 옆으로 돌아 걷는다. 중앙선 철로인 상진철교를 지난 기차는 어느새 저 멀리 단양역에 닿아 있다. 단양역을 지나면 호서에서 영남으로 든다. 그 길목이 죽령터널이다. 중앙선에는 유난히 터널이 많은데 터널이 생기기 전 옛날에는 대나무처럼 죽처럼 죽죽 미끄러질까 기피하던 죽령이나 새처럼 날아오를 듯한 조령을 넘어 영남에 들었다. 과거보러 가는 사람들이 기피하거나 애용했을 법한 길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지금은 산아래 곧은 터널로 이어지는 이 길과 저 너머 길을 퇴계 선생은 달구지를 끌고 굽이굽이 고개를 걸어 넘었으리라. 단양에서 군수로서 선정을 베풀었다던 소문이 저 고개를 넘어 풍기에 닿을 즈음, 상피제로 인해 충청도 관찰사가 된 형을 피해 풍기 군수로 이직가는 발걸음이 죽령을 넘기 힘들었겠다. 퇴계의 발끝을 좇는 여인의 눈길이 퇴계의 가슴에도 박히지 않았을까? 단양팔경의 하나인 구담봉 아래 나루에는 퇴계를 사모했다던 두향의 묘가 있다. 이를 퇴계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하니 그 이야기의 진위를 떠나 인연은 사실이었음을 증명한다. 후손들은 예를 다해 혼을 달랜다. 퇴계의 유언이기도 했다. 퇴계는 집안의 노비들까지도 가족으로서 예를 갖추어 대하도록 가르쳤다. 상진철교 위 기차를 보니 저 기차가 갈 북쪽길이 궁금하다. 남북의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 철도 연결이었다. 기차로 유럽까지 가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무정차 9박 10일을 가는 것, 꿈이 아닌 현실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고 미리들 부풀어 있다. 유럽가는 열차가 서울서 출발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변할까? 벌써부터 지자체는 울상이다. 관광객이 북으로 쏠리니 남은 도태될 것이라고. 일본이 한반도 평화를 바라지 않는 이유와 비슷하다. 우려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동참을 하면 어떨까? 열차의 종착지를 남으로 남으로 이어가는 거다. 일본 사람들까지도 우리나라 남쪽지방에서 여행을 시작하도록 말이다. 실크로드의 종착지가 신라였으니 유럽인들도 부산, 여수까지 기차를 타고 온다면, 시베리아 대륙횡단열차가 한반도에 들어 바닷길로 연결될 터이니 모래바람에 시달리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리라. 종착지는 사람과 재화가 모이는 곳이니 울상지을 일이 아니다. 길은 삶의 양식을 바꾼다. 상상하는 내일이 곧 오리라.  <단양.제천으로 가려거든, 끝>
인줌예줌 리포트 58
답사로 끝난 미완의 출사지 편... <인문 Zoom 예술 줌> 도상탈출, 바야흐로 사진 단양.제천으로 가려거든 3 - 의림지, 시가 된 문명 조선 후기로 추정되는 민화의 시작은 화원들에 의해서였단다. 모르는 사람은 백성들의 그림이 민화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채색 도구의 가격도 만만치 않거니와 그림의 숙련도나 대륙으로부터 전해진 그 의미까지 어린 백성들이 알리 만무하다. 민화는 화려해야 할 궁중이나 고사에서 유래한 길상과 수복을 비는 양반네 규방 병풍 등에 흔히 그려졌다. 민화의 시작을 고대 벽화에서 보기도 하지만 성행했던 것은 조선후기이고, 그 명칭은 일본인에 의해 지어져 일각에서는 명칭 변경의 논의가 있다는데, 논의된 '겨레그림' 못지 않은 좋은 명칭이 지어지면 좋겠다. 곳곳에 뿌리 깊게 잔재한 일제의 말들이 언제쯤에 바뀌려나. 3.1운동 100년을 앞둔 이 때에 말과 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으면 한다. 개봉을 앞둔 영화 '말모이'가 작품성을 떠나 의미있는 이유다. 교동 집집마다 민화로 그려진 문패도 눈여겨 보자. 향교길 문자도에서 군자의 도를 생각하고, 평생길을 걸으며 우리 삶을 돌아보고, 학업성취길 책거리로 공부의 의미를, 장생길 십장생도에서 수복을, 소망길 모란도에서 길상을, 추억의 골목길 캐릭터로 내 어린 날을 보듬고, 출세길에서 미래를 가늠한 후, 문명의 시작점으로 가자. 문명의 시작은 정착 생활이다. 정착 생활은 농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긴 시간 정성 들여 먹거리를 장만하는 농사라는 과정이, 곡식을 재배하고 저장하고 씨를 받는 다음 봄을 기약하는 일이다보니 정착으로 연결된다. 제천의 의림지를 '농경문화의 발상지'라고 하는 것은 삼국시대 제방의 흔적 때문이다. 더 멀리는 삼한(원삼국:마한, 진한, 변한)시대까지 보기도 한단다. 제방을 쌓는 것은 물을 다스리는 치수 행위다. 농경의 시작 이후, 치수는 지배자의 덕목 중에 으뜸이었다. 사람이 많아지니 수렵과 채취로는 역부족이라 먹고 사는 일이 물을 다스리는 일에 좌우되던 때였다. 권력자가 공을 들일 만큼 의림지의 제방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시설이었던 듯하다. 호서지방의 명칭이 의림지 서쪽이라는 데서 나왔다는 설을 보아도 그 중요도를 짐작할 수 있다. 굶지 않기 위한 시대에서 잘 먹기 위한 시대로 오니, 농경지는 줄었지만 물류로 전 세계 어떤 나라의 농작물도 안방에서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옛날의 물은 지금의 물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사가 소홀해진 탓일까? 의림지 호변 고인 물이 썩고 있었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의 녹조 탓이다.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치수로 시작되어 신라의 우륵이 정비했고, 고려 때 확충되었다가 구한말을 기점으로 그 역할은 극대화되었다. 정보통신국가로 가는 지금엔, 사람들은 의림지의 제방은 보지 않고, 저수지의 물은 관상용이 되었다. 순채가 자랐다던 순주 역시 의림지 가운데 있는 뱃놀이 코스일 뿐이다. 의림지 남쪽에 수십년 수령의 제림이 있다. 제림의 소나무는 유난히 소나무를 좋아하는 우리네 시선을 이끈다. 또 인공폭포도 만들었다. 김제 벽골제와 밀양 수산제와는 달리 지금도 저수하는 제 기능을 다하고 있는 의림지 제방을 알리기 위해 역사 박물관도 개장되었다. 의림지 수변데크에는 제천의 시인들 행사 현수막이 걸려있다. 의림지는 삶의 현장에서 퇴역하고 쉼의 기능만을 담당한다. 다만 역사로 기록되고 시로 노래될 뿐이다. 급변하는 현대에 우리네 인생이 다르지 않겠다. 우리는 미래에 어떤 모습일까?  <단양.제천으로 가려거든 4,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