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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마니아에게도 너무 충격적이었던 사건
오늘 얘기할 사람은 우범곤 전 경찰 김복준 아재 바로 윗 경찰 선배 + 나이도 차이도 얼마 안나는 또래. 근데 경찰들은 이 얘기 하는 게 썩 유쾌하지 않지 (여기 세명 다 경찰 출신) 왜냐 단기간 수많은 사상자를 낸 어마어마한 사건의 가해자거든 공부엔 소질이 없는 거의 꼴지 내성적인 성격 얼마 안 가 아버지가 대장암으로 사망하고 그때부터 유리깨서 배에 기스내고 거의 반 돌았었나봐 2년제 대학도 중퇴함 그리고 해병대에 갔는데! 이게 총을 오지게 잘 쏴서 주는 거라며 ㅇㅇㅋ 우범곤 인생 황금기 ㅋ 그리고 아버지 직업을 따라 경찰이 됨 옆에서 "근데 공부를...ㅋ (못했다는데)" 김복준: 그 시기에 순경이 들어오는게 어느정도 난이도인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ㅠㅋㅋ ✌🏻지금이면 못 들어와요✌🏻 지금이면 이 사람 심리검사에서부터 못 들어와요 적성검사 심리검사 다 ㄴㄴ 구체적으로는 말씀 못 드리지만 구멍이 많았고 아버지가 경찰이면 블라블라 그 시대엔 자연적으로 계급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할배 순경이 많았대 나이가 많아서 어쩌면 더 윗사람보다 힘이 센 느낌..? 보고서 쓰는데 타자도 맞춤법 다 틀리는 거 보고 경찰 한 거 약간 후회 됐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때 전두환 정권끼면서 시위 잘 막으면 경찰 시켜주는 등 온갖 특채 때려박으면서 또라이가 검열이 안된 거야; 지금은 아예 또 심리 전문가가 들어가서 본다네 그리고 부산 남우 감만파출소로 들어가는데 술만 마시면 거기 온 사람 패고 별명이 미친 호랑이었대 근데 이런 또라이가 어케 청와대 백일 경비단에 합격함 (청와대 외곽 순찰? 도는 사람) 아마 총 잘 쏴서 그렇지 않을까 사람들도 그러네 근데 여기 들어가서 좀만 버티면 경사까지 진급 하이패스라는 거야 근데 개웃긴게 8개월만의 재심사에서 짤린거야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어디로 갔느냐 (잘모름;;) 1급이 청와대 4급이 궁류지서 이런 건가봐 완전 시골이래 그니까 청와대까지 갓다가 완전 곤두박질 친 거지;; 배상훈 아재 ...웬만하면 잘 안 내보내거든요 진저 큰 사고를 쳤거나 총기 사고가 있거나.. 의령 파출소에서 일하면서 하숙을 하는데 전모씨랑 결혼할라고 했지만 노머니;; "80년도 초반에 3호봉 군필 순경 월급 얼마일 거 같아요?" "..13만 3천원" 그때 짜장면이 500원이었던 시기 ㅇㅇ 쌀 두가마 사기 간당간당한 돈 ㅇㅇ 일반 기업체 50만 일반 공무원 15만 경찰이 제일 적었다네 일단 처가살이 의령이 양반 동네래 (나쁜뜻은아니고) 그때엔 결혼 안한 남녀가 동거하는 건 말도 안되고;; 동네에서 엄청 수근대서 스트레스 오졌을 거라고 ㅇㅇ 처가살이 + 인생 곤두박질 크리 ㄷㄷ 열등감 애지는 범곤이는 아내의 정상적 타박에도 존나 화냄 야간 근무 오후 6시 출근한다고 자고있던 범곤이 가슴 위에 파리가 딱 앉은 걸 아내분이 딱 때려서 잡아주신 거지 자다가 발딱 깬 우범곤 "너 평소에 내가 얼마나 미웠으면 자는 사람을 때리냐? 거짓말 하지마" 너무 빡돈다고 지 와이프를 개패듯 팸 +말리는 친적언니도 팸 일찍 나왔으니까 그 한두 시간 방위병이랑 짬에 또 술을 마심; 방위병 : 파출소 무기고 지키는 출퇴근 군인 우리 엄마랑 이모 팼으니까 개빡친거지 여기서 뺑 돌아버렸다는 거예요 예비군 무기고에 키를 들고 가는데 그걸 아무도 안말렸죠 있어야할 담당자가 자리에 없었음ㅋ 카빈 총이랑 엠오원도 처음엔 같이 챙겼다고 "카빈총이 타격률이 상당히 낮은데 한 방에 다 했다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엠오원은 무거웠는지 버리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카빈총 두 자루 실탄 180발 수류탄 7개 챙김 이걸 방위병 2명이 봤고 하늘에 공포탄 한 발쏘고 지들도 무서워서 런 위에 보고도 안함 그래서 나중에 구속됨 ㅎ 이제 고삐가 제대로 풀리는데 예비군하러 이 동네에 온 26살 남자애? 쏴죽임 그대로 시장가서 전화 교환원 두명 죽임 근데 이 사람들이 있어야 전화가 되는거거든? 여기 전화선 다 끊고 무기들고 나오면서 경찰서 전화도 다 끊었대 내부랑 외부랑 연락을 못하게 하려는 거지; 완전 고립 통신이 안되는 동네가 된 거야 이제;; 근데 진짜 마음 아픈 건 교환원 분이 죽어가면서 마을 이장- 우체국 코드는 꽂아두고 돌아가셨대ㅠㅠ..... 경찰서 지키는 건 원래 3인 체제인데 한 명은 비번 두명은 접대 받고 있얶음ㅋ 이제 진짜 본집으로 간 거지 시골에는 친적끼리 좀 모여 살았대 와이프 찾으러 가는 길에 여자 한 명 죽이고 가보니까 마침 반상회 하는 날이라 수류탄 던젔는데 불발 와이프를 조준 사격했는데 잠시 살으셔서 파리사건 진술도 들을 수 있던 거지 딸이 걱정되서 달려가던 택시기사 조준사격 번화가고 10시 밖에 안됐는데 불이 다 꺼져있었다고 방위병들이 불 다 끄고 없는 척하라고 소리 지르고 다님 다른 동네 상갓집에 쌍총끼고 감 조의금내고 술상 받아서는 경찰대우 ㅈ같아서 못하겠다 ~ㅇㅈㄹ 신세한탄하는데 옆에서 놀라운 건 당시 우범곤 나이 겨우 27살 지금으로 치면 94가 이런거임;; 진짜 최악이다 피해의식 열등감에 찌들은 루져새끼;;; 쌍놈새끼 지옥가서 천벌받길 빈다 대체 아무 잘못 없는 사람 목숨을 얼마나 앗아간거야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 길빵 사건
정조임금이 다스리던 1790년에 있던 일이다. 채제공 초상화 정조의 손꼽는 충신이자 명재상으로 좌의정을 역임했다. 좌의정은 조선시대 관료 18품계 중 정1품 최고위직일 뿐 아니라 영의정과 우의정을 포함한 삼정승 중에서도 실권이 으뜸이었다.  이 좌의정 재체공이 1790년 길을 가던 중 돈의문 근처에서 담배를 꼬나문 두 명의 성균관 유생을 마주쳤다. "식후불연초하면 삼분내즉사라~" 당대 조선에는 웃사람 앞에서 담배를 피거나 안경을 쓰는 것은 예에 어긋난 일이었고 심지어 당시 이 유생들은 옷도 대충 걸쳐입고 있는 상태였다. 보다 못한 채제공의 권두(오늘날 비서/경호직)가 담배끄라고 호통치자 담배피던 유생이 한 말이 가관이다. "아저씨 요즘 애들은~ 한 성질 하거든요? 예?!" 더 정확한 표현은 "내가 무엇 때문에 저 자를 보고 담뱃대를 빼겠는가." 일개 유생이 일흔 살 먹은 좌의정 앞에서 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빡이 오른 권두는 이 두 유생, 곧 김병성과 김관순을 잡아다 가둔다. 어찌되었든 크게 처벌할 일은 아닌지라 채제공은 이 둘을 적당히 벌주는 셈 치고 다음날 풀어주려 했는데 그날 밤에 일이 터진다. 성균관 유생이란 작자들이 야밤에 우르르 몰려가 관리에게 잡힌 동료 유생들을 풀어주라고 협박한 것이다. 관리가 거부하자 유생들은 옥을 부수고 꺼내가겠다거나 관리를 때려죽이겠다고 패악질을 부렸다. 아 선비님들 잠시만요.jpg 생명의 위협을 느낀 관리가 호다닥 채제공에게 보고하자 놀란 채제공은 잡혀있던 유생 둘을 형조로 넘겼다가 얼마 뒤 풀어주었다. 좌의정 앞에서 양아치짓을 한 이 두 유생이 높으신 분 자제분들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김병성은 종9품 돈령부참봉 김세근의 아들이고 김관순은 종8품 동부봉사 김이의의 아들이었는데 둘 다 미관말직이었다. 결국 김병성은 아버지한테 끌려가 집안하인들 다 보는데서 빠따질을 당했고 김관순은 그 할아버지가 채제공의 지인에게 "우리집안에 병신새끼가 있다."고 돌려 사죄했다. 애초에 오늘날로 치면 외무부 말단 공무원 아들이 지나가던 국무총리한테 담배피며 개긴 꼴이니 조선시대에 그 아비가 빠따질을 안했다면 그게 용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신 못차린 유생들이 사발통문을 돌려가며 채제공을 공공연히 욕하고 나중가면 유생은 "죽일지언정 욕을 보일 수는 없다."고 상소를 올려대며 채제공을 공격한 것이다. 명재상으로 이름 높던 채제공의 인내심도 여기서 그만 폭발해버리고 만다. 채제공은 정조에게 나아가 "욕보일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선비가 공론을 말할 때나 할 소리인데 대낮 길가에서 양아치 새끼마냥 담배 꼬나물고 좌의정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놈을 혼내지 못한다면 이건 그냥 일하지 말라는 소리 아닙니까?" 라고 상소하고 사직서를 낸다. 당연히 정조가 이를 받아줄리 없었고 예의범절에 엄격했던 정조가 이를 묵과할 리도 없었다. 왜냐면 정조야 말로 당대 최고의 꼰대 중 하나였기 때문... 그 결과 길빵하며 좌의정에게 개긴 두 명은 어찌되었든 그 가장에게서 빠따질로 처벌을 받았으니 그걸로 넘어갔지만 야밤에 통금령 어기고 우르르 몰려가 관리를 때려 죽이겠다는 둥 패악질을 부린 유생들 중 주동자 이위호는 종신과거금지 처분을 받아 벼슬길이 막혔고 추종자들인 조학원, 윤선양, 원재형, 원재행 네 명은 10년과거금지 처분을 받게 된다. 결국 이렇게 1790년의 길빵사건은 정신 못차린 유생들이 꺵판치다 자기 뚝배기 깨는 걸로 끝을 맺게 된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 별반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이따. 펌) 출처 아니 유생들의 저 말도 안 되는 객기는 무엇이었단 말이오. 과거에 급제했으니 연령대도 다양했을진데... 본인도 꼰대인지 글만 봐도 화가 나는구려. 부들부들... 실록에 적힌 내용은 아래와 같소. -- 좌의정(정1품) 채제공이 상소하기를, "(중략) 유생(儒生)을 잡아가둔 일에 있어서는 모화관으로 거둥하시던 날 신은 병으로 반열에 참여하지 못하였습니다. 돈의문(敦義門) 안으로 들어갔을 때 웃옷을 걸치지 않은 두 사람이 서로 팔을 끼고 교자 곁에 서 있었는데, 한 사람은 부채로 얼굴을 절반쯤 가렸고, 한 사람은 입에 담뱃대를 가로 물고 있었습니다. 대동한 권두(權頭-오늘날 비서/경호직)가 담뱃대를 빼라고 호령하자 담뱃대를 가로 물고 있던 자가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하기를 ‘내가 무엇 때문에 저 자를 보고 담뱃대를 빼겠는가.’ 하였습니다. 이에 권두는 분개함을 참지 못하고 따르던 하인들을 시켜 그 두 사람을 잡아 가두게 하였는데, 신은 잠자코 있었을 뿐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 전옥서(典獄署)에서 죄수를 보고해왔는데, 그들이 곧 김관순(金觀淳)과 김병성(金炳星)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은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였으므로 아침이 되면 처결하여 석방하게 하려 하였습니다. 밤 3경쯤 되었을 때 옥리(獄吏)가 급히 고하기를 ‘학당의 유생 수십 명이 지금 옥문을 부수려고 하면서 큰소리로 공갈하기를「만약 두 사람을 석방하지 않으면 우리들이 전옥서의 관리를 죽이겠다.」고 한다.’ 하였습니다. 신은 그만 놀라서 두 사람을 즉시 형조로 넘겼는데, 다음날 아침에 들으니, 김병성은 곧 돈령부 참봉(종9품) 김세근(金世根)의 아들이고 김관순은 곧 동부 봉사(東部奉事-종8품) 김이의(金履毅)의 아들이었는데, 담뱃대를 물고 패악한 말을 한 자는 바로 김관순이었습니다 또 들으니, 학당 유생들이 통문을 돌려 아주 심하게 신을 헐뜯고 욕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신이 바야흐로 사유를 갖추어 초기(草記)를 올려 현재 갇힌 자를 엄격히 다스릴 것을 청하려 하고 있을 때 김세근이 신과 친한 사람을 찾아와 보고 매우 진지하게 애걸하였는데 그의 말은 매우 식견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김병성은 애당초 입을 열지 않은 채 부채로 얼굴을 가렸을 뿐이었고 오직 김관순과 함께 팔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갇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즉시 석방하였습니다. 듣건대, 김세근은 돈령부의 수직하던 곳에서 자기 아들을 여러 하인들이 보는 앞에서 볼기를 쳤다고 하니 이는 부형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이를 만합니다. 사흘이 지난 뒤에 김관순의 늙은 할아비는 신과 친근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 ‘집에 패역한 손자를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에, 근래 사대부들이 자손을 가르침에 전혀 예법으로 아니하여 패악한 짓을 하도록 그대로 방치하고 있으니 하나의 김관순을 다스리고 다스리지 않는 것이 교화에 관계가 없다면 차라리 그 할아비로 하여금 스스로 다스리게 하는 것이 나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신은 그래서 김관순을 또 석방하였는데, 대간의 상소에 ‘죽일 수는 있어도 욕보일 수 없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대체로 욕보일 수 없다는 것은 선비로서 공론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 말입니다. 대낮 큰 길가에서 홑옷바람으로 담배를 피워물고 대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에 대하여 누구도 감히 어찌할 수 없다면, 앞으로 선비라는 이름을 걸고 온갖 패려한 짓으로 용서하기 어려운 죄과를 저질러도 조정에 있는 자로서 그것을 보고도 말이 없어야 곧 잘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에서 논한 일은 오히려 작은 일입니다. 상소문 서두에 운운한 말에 있어서는 그에 관해 무신년에 상께서 명백히 하유하신 뒤로 조정 신하로서는 감히 믿지 않을 수 없는 일인데도 그는 거리낌없이 쉽사리 말하였으니, 신이 비난을 받는 것이야 아무런 상관이 없으나 임금의 말에 손상을 줄까 두렵습니다. 슬피 눈물을 흘리는 외에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신은 마음이 너무도 슬프고 처신이 너무도 불안하여 강교(江郊)로 달려나와 밤낮으로 벌책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하로부터 받은 신부(信符)를 그대로 계속 받들고 있는 것은 더욱 사적인 분의로 보아 감히 할 수 없으므로 10일 동안 재계 중이신 전하에게 날마다 신부를 바침으로써 전하를 성가시게 하였으니, 신의 죄가 이에 이르러 더욱 모면할 길이 없습니다. 승선(承宣)을 내보내 함께 오도록 하신 일은 특별한 예우입니다. 신처럼 죄를 진 자가 어찌 감히 이러한 예우를 감당하겠습니까. 신이 현재 맡고 있는 정승의 직책을 빨리 교체하고 이어 신의 전후 죄과를 다스리기 바랍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중략) 유생들의 일에 대해서는 조정의 기강을 존중하는 원칙에서 특별히 조사해 규명하려 하였는데, 경의 말을 듣고 그 넓은 도량에 감탄하였다. 그리고 그의 할아비와 아비가 이미 매를 때려 가르치고 편지를 보내 애걸하였다고 하니 지금 다시 제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수십 명의 학당 유생이 밤중에 떼를 지어 옥문 밖에 가서 그와 같은 해괴한 짓을 하여 선비들에게 수치를 준 것이야 어찌 작은 문제이겠는가. 이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모든 유생의 수치를 어떻게 씻겠으며 앞으로 대신이 어떻게 대신의 일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묘당으로 하여금 처결할 만한 죄명으로 사리를 따져 품계하게 하라. 이는 경을 위하는 일만이 아니라, 조정을 위해서이며 성균관을 위해서이다. 대개 야금(夜禁)은 법전에만 실려 있을 뿐 아니라 본디 한 벌의 단서(丹書)가 있다. 이 금령은 일찍이 그냥 지나쳐 넘긴 일이 없어 직제학(直提學) 이하는 으레 단속하는 대상에 들어 있다. 그렇다면 어두운 밤에 벼슬도 없는 무리들이 이와 같이 무엄하게 싸다니는 것에 대해 그 사실이 이미 위에까지 알려진 데야 어찌 그것을 소홀히 볼 수 있겠는가. 또한 묘당으로 하여금 그날 밤 순찰한 영문(營門)을 조사하여 일체 초기를 제출하고 제재를 가하게 하겠다. 이밖의 여러 문제는 한번의 비답으로 다할 일이 아니며 더구나 결심하고 있는 것은 경을 기어이 출사하게 하고야 말겠다는 것이니 경은 모름지기 이 뜻을 이해하고 당일로 입성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그날 전옥서에 남아 있던 관리들을 불러 물어보았더니, 그날 인정종(人定鍾)이 있은 후 학당 유생 10여 명이 본서의 대문 밖에 와서 말하기를 ‘갇혀 있는 유생은 곧 중부학당의 장의(掌議)이며 또 소청(疏廳)의 담당자이다. 너의 관원에게 말하고 대신에게 말을 전달하여 석방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고 하기에, 입직관(入直官)에게 말하였더니, 입직관의 말이 ‘대신이 가둔 사람이라 감히 멋대로 석방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내용을 학당 유생들에게 말하였으나 학당 유생들은 오랫동안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서로 으르렁거리고 위협하는 말이 물론 많았는데, 그중에도 가장 해괴하고 패려한 말이 있었으니, 어떤 자는 ‘너희들을 학궁에서 잡아다가 때려 죽인다면 너희들이 어쩔테냐.’ 하고, 어떤 자는 ‘우리가 옥문의 자물쇠를 부수고 빼앗아 간다면 너희들이 어쩔테냐.’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에 전옥서의 관리가 여러 유생들의 공갈을 못이겨 대신에게 가 보고할 때 사실을 더 보태어 대신을 놀라게 할 계책을 쓴 것은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학당의 유생들이 한꺼번에 옥문 밖에 몰려가 죄수를 빼앗아 가려고 한 계책은 이미 선비다운 행동이 아니며, 자물쇠를 부순다는 등의 말도 또한 해괴 망측한 말에 속하는 것입니다. 청컨대 주동자는 종신토록 과거를 보지 못하게 하고 추종한 여러 사람은 10년간 과거를 보지 못하게 하는 뜻으로 성균관에 분부할 것이며, 해당 전옥서의 관리와 학궁의 관리 등 여러 하인으로서 함께 행동한 자는 경중을 나누어 치죄할 뜻으로 형조에 분부하시기 바랍니다. 학당 유생이 몰려간 시간이 이미 인정종이 울린 뒤라면 야금이 엄격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그날 순찰을 담당한 영문의 대장을 우선 중하게 추고하고, 해당 구역 내의 패장(牌將)은 각별히 곤장으로 다스릴 뜻으로 해당 대장에게 분부하기 바랍니다." 하니, 윤허하였다. 성균관은 주동자 이위호(李偉祜)를 종신토록 과거를 못보게 하고 추종자들인 유학(幼學) 조학원(趙學元)·윤선양(尹善養)·원재형(元在亨)·원재행(元在行) 등 네 유생은 10년 동안 과거를 보지 못하게 하였다. (하략) ----------------------- 1790년 정조 14년 5월 22일 http://sillok.history.go.kr/id/kva_11405022_004
빙글발 괴담) 이사간 집이 뭔가 이상하다
오랜만이지! 다들 잘 지내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2020년이야말로 정말 공포미스테리라 2020년만한 무서운 썰이 잘 없더라구 그래서 올 수가 없었다고 한다 ㅋㅋ 그래도 귀신썰 올려주시는 분들 글 다 보면서 종종 댓글도 남기고 그러고 있으니까 같이 나누고 싶은 귀신썰 있는 친구들은 올려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재미니까!!! 오늘은 오랜만에 빙글 공포미스테리 톡방에서 주운 이야기를 가져와 봤어 @Lr7rZl 님의 이야기. 쓰고보니 나가리구나... 오... 암튼 같이 보자! 텍스트로 가져올까 하다가 이야기 듣는 느낌을 주기에는 역시 말풍선이 짱이니까 그냥 캡처를 했어 ㅋㅋ 시작! + 그의 보충 설명 그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 그림 킬퐄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ㅋㅋㅋㅋㅋ 왜 그런 게 옷장 안에 있어... 뭔가 저주를 하는 거였나 영문 모를 일이 제일 무섭다 정말 ㅠㅠ 그래도 나가리님은 친구들 덕분에 살았네 어찌나 다행인지! 이야기 전해주셔서 고맙다고 나가리님께 인사를 드리며, 여기서 마무리할게 그 전에! 아는 사람들은 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공포미스테리 톡방에는 종종 썰을 풀어주시는 분들이 계셔 내가 틈이 날 때마다 보고 흘러가는게 아까워서 카드로 박제하고 있긴 하지만 ㅋㅋ 실시간으로 보고싶다면 톡방에 가서 보면 돼! https://vin.gl/t/t:7yru6nchfm?wsrc=link 여기 들어가서 한마디씩만 남겨놓으면 내톡에 추가가 돼서 나중에도 쉽게 들어갈 수 있고, 아니면 위에 있는 종모양 아이콘을 누르면 알림을 받을 수 있으니까 편한대로 하면 좋을 거야 그럼 난 조만간 또 올게 맘에 드는 이야기 찾는 거 너무 힘들다 ㅎㅎ 눈이 너무 높아졌나봉가... 재밌는 귀신썰 있으면 많이들 남겨줘! 직접 가져오기 귀찮다면 나한테 제보해줘도 좋구 다들 건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