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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수 없는 당신에게 권하는 소설 5
|일본 - 니시이즈 정| 바다의 뚜껑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 민음사 펴냄 도쿄에서 미술대학을 다니던 ‘나’는 졸업을 하고는 고향으로 돌아와 빙수 가게를 연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관광지로도 인기를 끌지 못하는 조용한 바닷가 마을이 지금 고향의 모습이다. ‘나’가 빙수 가게를 열기로 한 건 어려서부터 빙수를 좋아했다는 단순한 이유. 이야기는 하지메라는 소녀를 만나며 색채를 더한다. 바다만 있을 때 어딘가 허전한 풍경에 해변이 더해져 더 사랑스러워지듯. 미풍이 부는 잔잔한 파도의 바다, 조용하지만 쓸쓸하지 않은 그런 이야기다. 이런 풍경 묘사가 좋다. "뭐랄지 부드러운 색깔이 내 몸을 쓰다듬을 것처럼 좁은 길이었다. 빽빽하게 들어서 집을 화재로부터 지켜 준다는 나무 숲 속을, 그 풍성한 나뭇잎의 색채 아래를, 우리는 시간의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천천히 걸었다." 상상해보자. 미풍이 부는 나무 그늘 아래를 천천히 걷는 풍경을, 멀리서는 조용히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바닷가를. 풍경과는 무관하지만 이 부분도 좋다. "인간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누가 없애 버리려 하거나, 일부러 획일화하려 해도, 아무리 억압해도 절대 없어지지 않는, 그런 힘을." 당신도 그러하다. 그 엄청난 힘을 당신도 품고 있다. |터키 - 이스탄불| 검은집 오르한 파묵 지음 | 민음사 펴냄 한 남자의 아내가 짧은 메모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남자는 아내를 찾기 위해 도움을 청하려던 사촌형도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남자는 두 사람이 함께 사라진 거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두 사람을찾아 온 도시를 다닌다. 아무리 아름다운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더라도 질투는 종종 추악한 모습을 드러낸다. 사랑을 빼앗겼음에서 오는 질투이건, 사랑을 빼앗아간 존재를 향한 질투이건 관계없이. 이스탄불의 풍경과 쉴새 없이 쏟아지는 이야기꾼의 이야기가 더해져 아름다운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작품이다. 머릿속에 그려보며 읽어보면 좋다. “하늘이 서서히 밝아 왔지만 도시는 별빛이 비추지 않는 어둠 속에 있는 것 같아서, 갈립은 밤이 끝나려면 멀었다고 생각했다. 갈립은 추위에 떨면서 아래로 보이는 사원, 콘크리트 흉물, 굴뚝 연기에 비치는 빛이 도시 밖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 새어 나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형태를 갖추어 가는 행성의 표면을 보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원의 돔으로 덮여 있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로 된 도시의 조각들, 콘크리트, 돌, 기와, 나무, 플렉시 유리가 천천히 열리고 그 틈 사이로 신비스러운 지하 세계의 불꽃색 광명이 새어 나올 것만 같았다.” 밝음과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 별빛을 잃은 밤하늘과 피로에 발목 잡힌 아침은 잠시 잊기를. <검은 책>은 외로운 풍경조차 아름다울 수 있음을 증명한다. 오히려 외로운 풍경이기에 그 풍경을 바라보는 이의 외로움이 위안을 얻는 것처럼. |오스트리아 - 멜크 수도원|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펴냄 지난 해 세상을 떠난 움베르토 에코의 대표작이다. 영화화 되기도 했는데, 소설 속 인물의 대사와 이동 거리가 실제로 재연했을 때 완벽하게 일치하는 등 세밀하고 정확해서 놀라움을 유발한 작품이다. 이야기 전체의 구성과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이. 작품의 무대는 중세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이다. 의문의 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데, 이유도 살해 방법도, 범인의 정체도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비밀 임무를 받고 수도원을 찾은 수도사 윌리엄이 의문을 풀어가는 이야기. <장미의 이름>의 배경이 된 수도원은 오스트리아의 멜크 수도원으로 알려져 있다. 빼어난 풍경이 많은 관광객을 부른다고. 9만 권의 장서를 보관하고 있는 도서관이 있다고 하는데, 소설이 아니라 실화였던 건 아닐지. 선문답 같은 표현들이 많은 작품입니다. “진정한 앎이란 알아야 하는 것, 알 수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야. 알 수 있었던 것, 알아서는 안되는 것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앎의 길이란 멀고도 험하다지만, 풍경은 다만 한 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으니 참 다행한 일입니다. |러시아 - 상트페테르부르크|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을유문화사 펴냄 가난하지만 뛰어난 재능과 가능성을 지닌 대학생,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니코프. 로쟈로 더 잘 알려진 그는 불평등한 세계에 대한 분노, 신념으로 전당포 노파를 잔혹하게 살해한다. 그러나 살해 현장을 목격한 전당포 노파의 무고한 동생을 살해함으로써 행위의 정당성을 잃고 영혼의 고뇌에 빠져든다. 19세기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무대인 작품으로 당시 러시아 빈곤층의 가난과 비참, 사회의 부조리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거리는 끔찍이도 더웠다. 게다가 후텁지근한 공기, 혼잡함, 도처에 널려 있는 석회. 건축장의 발판, 벽돌, 먼지. 별장을 빌릴 능력이 없는 페테르부르크 주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독특한 여름의 악취.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그렇잖아도 이미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청년의 신경을 더욱 불쾌하게 자극했다.” 로쟈가 헤메고 다니던 거리와 다리, 살해 사건이 발생한 전당포 노파의 집, 로쟈의 하숙집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을 집필한 집.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야말로 작품이 살아 숨쉬는 거리가 세기를 넘어 재현되고 있는 도시다. 빈부격차, 가난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사회의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로쟈가 그랬듯 우리의 영혼마저 망가지도록 버려둘 수는 없으므로. |프랑스 - 파리|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은퇴한 탐정의 이야기다. 탐정이 하는 일이란 불륜이 의심되는 타인의 아내를 좇는 일, 정보를 모으고 조사하는 과정을 통해 사건의 전후 진실을 밝히는 것이지만 이 은퇴한 탐정은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자기를 찾아가기로 한다. 그의 과거는 어떤 모습일까, 불안하고 두려울 수 있는 진실과 마주했을 때 그는 안도하게 될까, 후회하게 될까. 지금이 지나고 나면 안개처럼 흐려지는 기억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존재와 그 가치를 조용히 묻는다. “나는 건물의 문을 지나서 시간제한등을 켰다. 낡은 바닥돌이 검은색과 회색의 장미 무늬였던 복도, 쇠로 된 그물, 받침벽, 노란 벽의 우편함들, 그리고 여전히 풍기는 저 돼지기름 냄새. 내가 두 눈을 감고 내 열 손가락을 이마에 붙인 채 정신을 집중한다면 아마도 저 먼 곳에서 그녀의 샌들이 딸깍 거리며 층계를 오르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각적인 풍경은 물론, 후각적인 기억과 청각의 상상까지 더해진 묘사는 이야기와 독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효과를 만든다. ‘감각적’이란 말이 잘 어울린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이 작품의 첫 문장이다. 때로는 첫 문장이 이야기 전체를 함축하기도 하는데, 그 또한 나쁘지 않다. *댓글 링크를 통해 앱에서 볼 수 있어요! 글 | 서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