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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을 감상하기 전 생각할 것들

박훈정 감독의 연출작들을 돌이켜 보면 <신세계> 이후의 작품들이 흥행이나 평가 면에서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겠다. <대호>도 그렇고 <브이아이피>의 경우도 그랬다. 그러다가 <마녀>가 제작비 대비 괜찮은 흥행을 했고 작품에 대한 평가 역시 전작들에 비해서는 긍정적인 편이었던 게 아마도 그다음 작품인 <낙원의 밤>을 위한 동력이자 탄력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배우 이야기도 비중 있게 할 수 있겠다. 엄태구 배우의 경우 <차이나타운>이나 <밀정>, 전여빈 배우의 경우 <죄 많은 소녀> 이후 드라마 [빈센조]에서 활약 중이며 차승원 배우는 <하이힐>에서도 강렬한 캐릭터 연기를 펼친 바 있다. 말하자면 선 굵고 색깔이 뚜렷한 누아르 장르의 연기에 최적화된 캐스팅이라고 <낙원의 밤>의 출연진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듯.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의 경우도 그랬고 지난 몇 해 동안 유사한 장르 혹은 톤의 영화들을 다수 접해왔던 것은 <낙원의 밤>을 만나기 앞서 어느 정도 우려할 만한 부분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또 범죄 영화냐”라고 반응할 수도 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어느 정도 예상하거나 짐작하는 바도 있을 것이며, 결국 관객들이 익히 알고 있거나 떠올릴 수 있는 도식적인 측면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기도 하다. 다만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낙원의 밤>에 대한 해외 관객과 평단의 반응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 궁금해지는 측면도 있다. <낙원의 밤>의 줄거리는 어떤 면에 주목해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기술될 수 있다. ‘조직의 타깃이 된 남자’ ‘태구’의 삶을 중심으로 볼 수 있으며 혹은 전여빈이 연기한 캐릭터와 ‘태구’의 관계에 중점을 둘 수 있다. 해외 시놉시스 등 자료를 보면 태구가 그의 아픈 동생과 사촌을 위해 새 삶을 살고자 하지만 그들이 태구를 노리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고 태구는 동생과 사촌을 살해한 이들을 향해 복수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이것들은 특정 국가나 특정 영화제에서 주목하여 기술한 부분이기도 하겠으나, <낙원의 밤> 역시 관객 각자가 기대하거나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만하다. (...) https://brunch.co.kr/@cosmos-j/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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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기억: 영화 '내 몸이 사라졌다'(2019) 리뷰

(...) <내 몸이 사라졌다>는 손의 ‘시점’에서 펼쳐진다. 정말 그렇게 묘사되진 않지만 손에 눈이 달려 있다고 가정해보고 그 손이 두뇌처럼 사고까지 한다고도 가정해보는 것. 냉장고를 뛰쳐나온 손은 사람의 눈을 피해 창문을 통해 건물 밖으로 탈출을 감행한다. 본능적인 것인지 특정한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인지 초반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손은 특정한 곳을 향해 여정을 이어간다. 처음엔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비틀거리지만 다섯손가락은 각자의 역할을 하며 사람처럼(?) 지능적으로 균형을 잡고 움직인다. 쓰레기 더미와 길 위를 지나서, 지하철역 플랫폼에서 자신과 체구가 비슷한 쥐들의 위협을 만나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반려견을 키우는 한 남자의 집을 거쳐 손의 여정을 여러 공간들을 만난다. 이 여정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손끝의 감각 자체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쓰레기 더미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손에 묻은 라비올리 소스에 쥐들이 반응하는 모습이나 ‘손’이 바라보는 피아노 연주자의 손끝 등에 <내 몸이 사라졌다>는 클로즈업을 통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관객 역시 그것을 눈여겨보도록 유도한다. 우리 몸의 특정 부위가 단지 뇌의 지시에 따라 혹은 본능적으로 감각만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 실사 영화였다면 그로테스크한 비주얼에 거부감부터 들었겠지만 애니메이션이라는 필터를 거쳐 이 이야기는 꽤 흥미롭고 기발하게 다가온다. ‘손’의 여정은 실은 자신의 주인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몸이 사라졌다>는 이 ‘손’의 이야기와 함께 그 손 주인의 과거 이야기를 교차해 전개하는 작품이다. 아니, 중반 어느 시점까지는 그게 주인의 과거인지 전혀 다른 누군가의 현재인지 알기는 어렵지만. 손이 단지 움직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애니메이션(Animation)이라는 이름 그대로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그 손의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까. 아니, 그 손이 스스로 존재한다는 자각을 갖고 있는 것이라면 그 기억과 역사는 어떤 식으로 만들어질까. (...) 넷플릭스 영화 <내 몸이 사라졌다>(2019)의 리뷰를 썼다. 브런치에 쓴 전문은 분량이 조금 긴 편이라 링크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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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스트 레터'(2020) 리뷰 - 이와이 슌지의 편지는 계속해서 쓰이는 중이다

(...) 감독 이와이 슌지의 고향 센다이에서 만들어진 이 이야기는 중국에서 먼저 영화(2018)로 만들어졌고 소설판으로도 나왔으니, 마츠 다카코와 히로세 스즈가 주연한 이 <라스트 레터>는 그러니까 세 번째로 쓰인 이야기다. 아니, 정확히는 다섯 번에 걸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만든 단편 영화(2017)가 기반이 되었고 영화에 등장하는 소설 '미사키' 역시 별도의 책으로 썼으니.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쓰고 또 쓰는 일. 과거가 된 이야기를 거기 내버려 두지 않고 계속해서 꺼내고 발신하고 수신하는 방식으로 쓰여온 이 <라스트 레터>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편지이자 소설의 형식을 닮았다. <라스트 레터>에서 무엇보다 핵심적인 것은 영화 속 모든 편지가 손으로 쓰인 물리적 실체가 있는 편지라는 점이다. 물성이 있음으로 인해 오히려 수신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읽히기도 하며 그것의 발신지(주소)가 존재함으로 인해 생겨나는 간과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기 때문이다.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2019)에서 20년도 더 지난 얼어붙은 과거를 편지가 녹여내었고 그것이 당사자의 딸을 중심으로 현재에 재소환되었듯, 과거의 '미사키'이자 현재의 '아유미'(히로세 스즈의 1인 2역), 과거의 '유리'이자 현재의 '소요카'(모리 나나의 1인 2역) 그리고 현재의 '유리'(마츠 다카코)와 현재의 '쿄시로'(후쿠야마 마사하루)를 오가는 이 이야기는 결국 2020년대에 와 편지라는 수단이 갖는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청량한 여름을 배경으로, <라스트 레터>는 "나는 나쓰메 소세키 소설을 좋아해. 너는 어떤 책을 좋아하니?" 같은 이야기, "잘 지내고 있습니까?" 같은 이야기, 그리고 "바람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같은 이야기가 어떻게 하나의 시절을 능히 지탱하는지를 보여주고 들려준다. (이 영화의 촬영과 음악, 음향은 꽤 중요하게 여겨진다) 성공하지 못한 소설가도 누군가에게는 사인을 받고 싶은 '히어로'가 되고는 한다. 지금쯤 다시 떠올려보는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 이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해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영화를 보기 전의 나'에게 쓰는 긴 편지를 써 내려가야 했다. 1995년 <러브레터>로 시작된 이와이 슌지의 서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 역시 그것을 계속 써야만 한다. https://brunch.co.kr/@cosmos-j/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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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 리뷰 (3월 3일 개봉)

(...) <미나리>의 첫 장면은 들판을 향해 들어오는 차 뒷좌석의 데이빗 시점 숏에 해당한다. 앞을 주시하는 제이콥과 주변을 살피는 모니카, 창밖 먼곳을 보는 앤을 번갈아 살피며 창 너머 풍경을 응시하는 데이빗. 이는 <미나리>가 가족의 이야기를 조망하되 유년의 시선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어린 정이삭 감독이 처음으로 마주하였을, 그리고 오늘날 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을, 그때 그곳의 이야기를 <미나리>는 2020년대의 스크린으로 소환한다. ⠀ 비중상 조연에 해당하는 순자의 캐릭터도 물론 그 자체로 생기와 활력을 지니고 있지만 전적으로 데이빗(그리고 앤) 시점에서 바라보는 '할머니'의 역할로 그려진다. 미국에서만 자란 데이빗은 처음에는 '한국 냄새' 난다며 순자와의 대면에서 모니카 뒤로 숨고는 했지만 그와 시간을 함께하며 서서히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 과정은 영화에서 꽤 중요해 보이는데, 순자가 미나리 씨앗을 심는 것을 (순자를 제외하고) 처음 발견하는 것이 데이빗이라는 점과 더불어 순자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을 처음 목격하는 것도 데이빗이다. 게다가 순자는 데이빗이 지금껏 하지 않았던 어떤 행동을 처음 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나아가 그것을 지속해야 할 동기까지 부여한다. ⠀ 영화 <미나리>는 꿈과 희망을 섣불리 낭만화하거나 지나치게 낙관하지 않으면서도, 사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저마다의 의미로 가 닿을 수 있을지를 아름답고도 따뜻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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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어웰'(2019) - 각자의 진실한 거짓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매일 실감하며 요즘을 지낸다. 명상 센터에서나 할 법한 말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사실은 매일 아침 양치질하며 명심해야 할 생활의 당부라는 걸 깨달았다. 모호하고 뜬구름 잡는 비유가 아니라 1 더하기 1은 2가 되는 것처럼 군더더기 없이 명백한 연산 같은 말이라는 것도, 위 아 더 월드 식의 낭만이 아닌 살벌한 경고의 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요조,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에서(마음산책, 2020)) ⠀ 거짓말을 하기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어떤 것에 관해서는 늘 거짓말을 하고 있는 주인공. 그것을 두고 그가 진실하지 못하다고 과연 단언할 수 있을까. 룰루 왕 감독의 <페어웰>(2019)은 쉽게 정의 내릴 수 없고 재단할 수도 없는 가족 구성원 각자의 '선의의 거짓말'과 그것의 전후 맥락과 사정, 그리고 결국은 사랑의 감정에 해당되고야 말 어떤 진실함을 곁에서 지켜본다. 울고 난 얼굴로 억지로 지어 보이는 웃음과, 모든 종류의 감정들이 한데 모여 이상하고 화목한 앙상블을 이루는 풍경. 우리는 결국, 언젠가 찾아오고야 말 상실감을 끊임없이 유예하며 어제와 내일 사이를 되새기고 거짓된 진실함과 진실된 거짓말 사이에서의 형언할 수 없는 머뭇거림으로 오늘을 버텨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페어웰>은 그래서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시작된다. "Based on an actual lie." 그게, 이 영화만이 아니라 인생 자체인 것만 같다. 인생의 모순을 가득 담고 있는 이런 종류의 영화와는 그래서 쉽사리 작별을 고할 수 없다. 이야기는 계속해서 시작된다. 인생이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일이어서. https://brunch.co.kr/@cosmos-j/1214

'승리호' - 한 사람의 힘만으로 세상을 구할 수는 없어서

"순이는 지금도 깜깜한 우주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오락 영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쉽고 명확히 전하고, 적당한 유머와 감정 안에서 세계에 속한 이들의 고단한 얼굴들을 주목하는 영화.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어떤 작품을 볼 때 그것이 구현하는 세계가 입체적이거나 현실적이거나 정교할 수 있는 건 제작비나 겉으로 보이는 세계의 규모만으로 판가름되지는 않는다. 세계관의 깊이를 알게 하는 건 전적으로 이야기의 흐름과 맥락, 그리고 캐릭터다. 그 캐릭터들이 저 세계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납득할 수 있는 일이며 그들이 어떤 행동에 나서는 일이 얼마나 마땅한 일인지. 다양한 언어들이 여전히 공존하는 <승리호>(2020)의 세계를 보면서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나 <엘리시움>(2013) 같은 작품들을 어렵지 않게 떠올렸고 속편이나 파생작이 나와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모방이나 참고의 측면으로 다가오는 것도 있었지만 전적으로 영화의 국적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충분히 갖춘 활극이자 나빠진 세계가 더 나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동화 같기도 하다. 한 사람이 세상을 망칠 수는 있지만 한 사람의 힘만으로 세상을 구할 수는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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