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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2022)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이상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2022)를 아직 보지 못했지만 디즈니플러스에서 지난 며칠간 의식의 흐름처럼 MCU 영화 몇 편을 내리 감상하고 끼적거리는 기록) 가끔 앨런 실베스트리의 'Portals' 스코어가 나오는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의 이 장면을 찾아보는 편이다. 유튜브에는 (극장 관람 문화의 차이가 일부 있다고 해도 애초 극장 안에서 카메라를 꺼내는 것 자체가 저작권 침해이기에 마음에 들진 않지만) 각종 'Reaction' 영상들이 상당수 돌아다닌다. 여기저기서 "마블 영화보다는 DC 영화를 좋아한다"라고 말하고 다녔었는데, 이때(2019년 4월)를 돌이켜보자면 거의 미쳐 있었던 시기인 것 같다. 엔딩 크레디트 무렵의 삽입곡 'It's Been a Long Long Time'이 그 여운을 배가해주기도 했었고, 이때까지는 일 년에 한두 편 개봉하는 MCU 신작을 팔로우하는 일이 별로 버거운 게 아니었다. ⠀ 어쨌든 그때의 감흥이라는 건 당연히 전적으로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단독 공로가 아니라 10년 동안의 스물두 작품이 합쳐서 만들어낸 것일 텐데, 불과 3년 사이 인피니티 사가는 너무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지게 되어버려서 이런 종류의 경험이 마블에서 또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평준화된 작품들 안에서도 거의 걸작에 가까운 영화가 언젠가 무심코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이 세계관은 너무 방대해져 버려서 인피니티 사가 때와는 결이 달라졌다. 회차당 러닝타임이 보통의 TV시리즈보다 약간 짧다고는 해도 그래도 디즈니플러스에 이미 공개된 시리즈가 몇 개인데, 그걸 언제 다 보지? 물론 상업영화를 만드는 범주 안에서 과도한 진입 장벽을 쌓는 일은 디즈니와 마블에서도 지양하겠지만 과연 한 영화 안에서 한 캐릭터의 어떤 행동을, 그 영화 안에서 온전히 설명해내지 못하고 다른 영화나 드라마의 레퍼런스가 참조되어야 하는 일이 온전한 시네마틱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앞으로의 마블 신작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거의 숙제하는 기분으로 디즈니플러스를 기웃거려야 하게 될 것이다.

영화 '완벽한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2020)

(...) <완벽한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의 87분이라는 짧은 상영시간 중에서도, 영화 속에서 실제로 흘러가는 시간은 '아드리앵'의 플래시백과 방백을 제외한다면 실질적으로 넉넉히 잡아도 불과 몇 시간이다. 한번의 저녁식사와 한번의 축사. 밥 먹는 일도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는데 두 사람과 두 가정이 만나는 결혼식이 짐작한 대로 흘러갈 리가 있을까. 관계에 소심하고 연애에 서투른 주인공 '아드리앵'이 쏟아내는 '벌어지지 않은' 시나리오들 중 실제로 일어날 것은 결국 하나일 것이고 그중 어떤 것들은 무수히 반복된다. '소니아'와 '아드리앵'이 공원에서 보았던 그 아이는 앞으로도 여러 번 넘어지고 다칠 것이다. 인생도 보조 바퀴가 없는 자전거와 다르지 않아서, '아드리앵'에게도 그리고 결혼을 앞둔 그의 누나와 매형에게도 좋을 날들만 있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거기 사랑이 있다면. 사랑을 찾기를 그 사랑을 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넘어지는 것쯤은 별 일 아니라고 여길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아닌 것 같아서' 혹은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 목 안쪽까지 올라왔다가 차마 입밖으로는 발화하지 못했던 말들이 누구에게나 몇 개 있을 것이다. "잘 지내"냐는 문자 한 단어도 쓰고 지우기를 거듭해 본 적 있겠다. 그런 마음은 전적으로 더 잘 표현하고 싶고 더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은 뜻에서 비롯한다.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2006), <꼬마 니콜라>(2009), <꼬마 니콜라의 여름방학>(2014), <업 포 러브>(2016) 등 유쾌하고도 가족적인 영화들로 필모그래피를 채워온 로랑 티라르 감독은 분명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있는 필름메이커로 여겨진다. 완벽하지 않기에 실수하고 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넘어져 본 만큼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어쩌면 넘어지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겠고 실수처럼 보이는 것도 지나고 보면 꼭 필요했을 경험으로 남을지 모른다. 그러니 <완벽한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의 '아드리앵'은 영화의 경계를 넘어 관객들에게도 이렇게 말해주는 게 아닐까. 아직 넘어지지 않았는데 미리부터 넘어질 걱정을 하느라 페달을 밟길 멈춰선 안 되겠다고. 브런치에 쓴 영화 <완벽한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리뷰 중에서. (5월 19일 국내 개봉, 87분, 15세 이상 관람가.) https://brunch.co.kr/@cosmos-j/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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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수학자의 태도 :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2022) 리뷰

3월 9일 개봉을 앞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2022)의 예고편을 처음 보면서 떠오른 건, 허진호 감독의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2019) 속 ‘장영실’(최민식)의 모습이었다. 과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꿈꾸었던 그로부터 기억에 주로 각인된 건 작중 ‘세종’(한석규)과의 관계도 물론이지만 하늘 위 별을 올려다보며 그가 내내 꾸었던 어떤 순수한 꿈이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도 ‘이학성’(최민식)은 수학이라는 학문을 더 자유롭게 연구하고자 하는 갈망으로 남한에 내려왔으나 정체를 숨긴 채 일상을 보내는 인물이다. 최민식 외에 김동휘, 박병은, 박해준, 조윤서 등의 협연이 돋보이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시사회에서 조금 일찍 만났다. 최민식이라는 이름의 깊이 최민식의 필모그래피에서 관객들에게 주로 강렬하게 각인된 건 김지운의 <악마를 보았다>(2010), 박훈정의 <신세계>(2013), 아니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박찬욱의 <올드보이>(2003) 같은 작품들에서의 굵직한 연기일 것이다. (혹은 윤종빈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또한 포함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내 경우 좀 더 선호하는 쪽은 상술한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포함해 <꽃피는 봄이 오면>(2004)이나 <파이란>(2001) 같은 드라마 쪽이다. 규모도 장르도 관객 수도 다른 수십 편의 작품을 거쳐 그는 대사를 발화하지 않는 순간에도 그저 가만히 책상에 앉아 있는 순간에도 내내 영화의 얼굴이자 메시지가 되는 엄숙하고도 진실한 배우가 되었다(고 느낀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도 중후반으로 갈수록 점차 사연이 밝혀지지만 처음에는 비밀스러움을 잃지 않아야 하는 ‘이학성’이라는 캐릭터에 그가 아닌 다른 캐스팅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탈북 수학자’와 ‘자사고 수포자’ 캐릭터 설정의 조화 한국의 상업영화에서 소재이자 배경으로서 북한을 빼놓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태극기 휘날리며>나 <강철비>, 혹은 <공작>이나 <백두산> 같은 숱한 작품들이 있지만 전쟁영화로서든 혹은 정치 갈등을 조명하는 것으로서든 정치와 이념을 빼놓고 영화에서 북한을 다루는 경우를 찾기 어려운데 어쩌면 (둘을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이상)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도 후반부에 이르러 ‘이학성’이 탈북하게 되었던 계기와 그에 관련된 어떤 사건이 다뤄지기는 하지만, 영화의 제목이 말해주듯 그의 출신은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는 동훈고등학교에서 다른 인물들과 구분되는 ‘이방인’과도 같은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에 더 큰 역할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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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그'(2021)

“이 냄새를 맡아보시오.” 검은 빵 덩어리를 잘라내면서 빵집 주인이 말했다. “퍽퍽한 빵이지만, 맛깔난다오.” 그들은 빵냄새를 맡았고, 그는 맛보라고 권했다. 당밀과 거칠게 빻은 곡식 맛이 났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데, 그 빛이 마치 햇빛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레이먼드 카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대성당』 (문학동네, 2014) 요리에는 취미로도 소질로도 거리가 멀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음식에 관해서라면 레이먼드 카버의 위 대목을 떠올린다. 원제가 ‘A Small Good Thing’인 위 단편에서 빵집의 주인은 아이를 잃은 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만히 빵을 내어온다. 별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마도 빵집에 들어선 부부는 저 사소한 맛을 꽤 오래 기억할 것이다. “난 내가 직접 요리를 준비한 모든 시간들을 기억해요” 영화 <피그>(2021)는 요리사를 주인공으로, 재료를 다듬고 손질해 정성을 담은 요리를 내어오는 일과 한껏 차려진 음식과 와인을 음미하는 일을 소재로, 상실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혹은 도망쳐) 은둔하던 이가 자신과 타인의 내면을 진정 새롭게 들여다보는 과정을 관찰한다. 유명한 셰프이자 직원들이 존경하고 선망하는 인물로 살던 ‘롭’은 더 이상 아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도시를 떠난 지 15년째였다. 오두막에 살며 돼지 한 마리를 데리고 트러플을 채취하는 은둔의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돼지가 사라지고 ‘롭’은 자기가 떠나왔던 포틀랜드에 다시 발을 들여놓아야만 한다. 단지 돼지를 찾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떠나왔고 외면했던 가장 아픈 순간을 다시 마주하기 위해. (…)

'결말 포함 리뷰'에 대한 생각들

최근에 블로그 댓글로 나눈 대화 중에 그런 게 있었다. 읽고 싶고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것/곳들이 나날이 쌓여가는데 늘어나기만 하는 위시리스트를 우리는 다 소화할 수가 없고 앞으로도 그렇다는 것. 지도 앱에 체크해둔 장소가 얼마 뒤 폐업하고 기억해둔 신작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하며 하트 표시해 두었던 시리즈를 시작도 못 했는데 얼마 뒤 그 작품의 새 시즌이 나온다. 관심을 두는 것의 범주와 범위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현상이라 어쩔 도리가 없다. 요즘의 흔한 화두 중 하나는 "요즘에는 '결말 포함 리뷰'로 그 영화를 다 봤다고 생각하더라"라는 것이다. 일단 이 범주의 영상들이 영상의 소스가 되는 저작권 문제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영상을 편집하는 데 드는 수고를 제외하면 크리에이티브 콘텐츠로서의 가치는 거의 전무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러한 소비 패턴 변화는 단순히 '사람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집중력과 참을성이 떨어져서'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집중력과 참을성이 떨어진 경향성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플랫폼에서 콘텐츠가 연일 쏟아지고 그것들 중 상당수는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어 놓치기 아쉬운 마음을 나 또한 가지고 있다. 볼 것은 많은데 시간은 한정적이고 저마다의 일과 관심사로 우리는 충분히 바쁘니까. 그런데 문제는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즉 정해진 속도대로 보지 않으면 그건 '간접 경험'이 아니라 그냥 '정보'에 불과해진다는 것이다. '그 영화에 누가 출연한다'라든가 '주인공은 죽는다' 같은. (그러고 보니, 디즈니+에는 배속 재생이 없네?) 삶은 요약될 수가 없고 그건 삶을 투영한 스토리와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앞에 언급한 대화 중 내게 특히 기억에 남았던 건, 그가 '끝까지 보고 나오기 때문'에 극장에서 영화 보는 일을 좋아한다는 대목이었다. 창작자의 의도를 존중하고 헤아리기 위한 노력이 제대로 된 작품 감상에 필요하다고 믿는 내 입장에서는, 창작자가 의도한 속도대로 보지 않는 건 그 작품을 존중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극장은 영화를 만든 이들이 뜻한 바대로 그것을 감상하는 것에 최적화된 공간이자 환경이다. 몇 장면을 건너뛰거나 편집된 채로 영상을 보면 어떤 말을 하기까지 캐릭터가 하는 고민과 그 전후의 맥락 등을 무시하게 된다. 잘 만든 작품일수록 단 한 프레임도 필요하지 않은 대목이 없다.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능동적으로 감상하는 일은 경험이 되지만, 줄거리 요약은 단순한 정보를 넘어서지 못한다. 누가 "ㅇㅇㅇ 봤어?"라고 물을 때 "ㅇㅇㅇ 하더라"라고 답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요즘에는 외국어로 되어 있지 않은 영상 콘텐츠도 국문 자막을 지원하는 경우가 늘었다. 조금 나아가면 이것도 배속 재생을 선호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 아닌 배려가 아닌지 짐작되기도 한다. 쓰면서 보니 넷플릭스와 같은 OTT가 많아지고 독점적으로 공개되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늘어날수록 그걸 향유하는 입장에서는 마냥 행복한 고민만은 아닌 것이다 싶기도 하다. 쓰고 보니 이건 거의 "요즘 애들은 책을 안 읽어" 류의 말에 그칠지도 모른다. 콘텐츠 감상과 소비의 양태도 나날이 바뀌는데 전통적 의미에서의 '극장에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다는 것'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극장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생각을 바꿀 생각은 없고, 극장에서 계속해서 영화를 볼 수 있으려면 극장 경험이 주는 가치를 옹호해야 한다고 아직 믿는다. 정보는 경험과 동의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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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가가의 '하우스 오브 구찌'(2021)와 '스타 이즈 본'(2018)

<하우스 오브 구찌>(2021)에서 레이디 가가가 연기한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는 사랑과 탐욕과 집착 사이 어딘가에서 내내 줄타기한다. 실존 인물과 배역의 사이에서도 그는 캐릭터가 조금 더 입체적이고 양면적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줄타기를 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이 이탈리아인을 연기하는 동안, <하우스 오브 구찌>의 인물 관계는 파트리치아를 중심으로 다층적으로 구축된다. 이 이야기에서 파트리치아는 단연 극의 중심에 있고, 여러 상황과 선택지를 두고 그는 리액션보다는 적극적인 액션으로 일관한다. 심지어 마지막 어떤 장면에서까지도, "세뇨르 구찌라고 불러줄래요?"라며, 자신의 말을 통해 주변의 리액션을 이끌어내는 인물이다. <스타 이즈 본>(2018)에서 레이디 가가가 연기한 '앨리 메인'은 작곡을 한다는 점 외에는 대부분 수동적 리액션의 대가다. '잭슨'(브래들리 쿠퍼)을 처음 대면한 상황에서의 표정 변화. 그의 손이 자신의 눈썹과 코에 닿을 때의 떨림. 마트 주차장에서 불렀던 노래를 '잭슨'이 편곡하고 그 무대에 자신을 끌어들였을 때 그 당황스러움 가득한 걸음. 함께 부른 곡 'Shallow'가 유명세를 타고 나아가 자작곡 'Always Remember Us This Way'가 유명 프로듀서의 눈에 들었을 때의 그 어리둥절함과 벅참. 그러니까 '앨리 메인'은 자신의 본래 성인 '캄파나' 대신 스스로를 '메인 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유일한 장면을 제외하면 언제나 직접 상황을 만드는 인물이기보다 만들어진 상황에 반응하는 인물이다. 팝스타이자 어떤 무대도 소화하는 정상의 퍼포머인 레이디 가가가 브래들리 쿠퍼의 감독 데뷔작에서 스타로 거듭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 그 자체로 유니크한 캐릭터를 남긴 <스타 이즈 본>에 이어, <하우스 오브 구찌>는 연출 장인 리들리 스콧과 다수의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 배우들 가운데 레이디 가가라는 이름이 '배우'로서도 돋보일 수 있음을 능히 증명하는 작품이다. 북미를 비롯한 글로벌 극장 개봉 10주차를 맞아 <하우스 오브 구찌>는 이미 순 제작비의 두 배 이상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 비슷한 시기 공개된 스콧 감독의 <라스트 듀얼>(2012)에 비하면 다섯 배의 흥행인데, 이걸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하우스 오브 구찌>는 레이디 가가를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리며 노래하지 않는 그의 연기로도 수긍할 만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고 보여주었다. 지금 기다리는 것은? '배우' 레이디 가가의 다음 작품이다. 파트리치아가 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구찌의 이름으로"를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건 각본이 아니라 레이디 가가의 애드리브다. https://brunch.co.kr/@cosmos-j/1375 https://brunch.co.kr/@cosmos-j/446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2021)

화려함 이면의 쓸쓸함과 사랑 뒤의 다툼과 앙금들, 그리고 돈과 욕망에 얽힌 이야기를 2020년대 극장 관객들이 그동안 만난 적이 없었던 건 아닐 것이다. 동명의 논픽션 원작이 2001년에 나왔고 리들리 스콧 감독이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이것의 영화화에 눈독을 들였던 것을 고려하더라도 (그동안 여러 감독과 배우들이 이 프로젝트를 거쳐갔다) <하우스 오브 구찌>(2021)는 아마도 영화사에 손꼽아 기억될 만큼의 걸작으로 남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2021년에 나온 스콧 감독의 두 작품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와 <하우스 오브 구찌>가 고르게 양호한 반응을 얻은 건 연출 장인으로서 스콧의 이름에 걸맞은 영화들이었다는 이야기겠다) ⠀ 레이디 가가 외에도 연기에 관한 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배우들이 소화한 군상들의 활약을 담아내면서도 <하우스 오브 구찌>는 해석과 시선을 배제한 듯 원작의 기록을 스크린에 재현해내는 데 충실하다. 구찌 가문의 명운을 바꾼 사건과 그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엔딩 무렵 각 인물들에 대한 법정 선고를 기술한 자막은 건조하기까지 한데, 같은 장면에 쓰인 루치아노 파바로티, 트레이시 채프만 등의 ‘Baby, I Can Hold You Tonight’을 비롯해 시대를 반영한 사운드트랙이 한 발 물러나 총성이 지나간 뒤의 적막을 대신한다. ⠀ 인간과 인간 세상을 향한 시각을 크게 희망과 냉소로 이분화할 수 있다면 리들리 스콧 감독의 다수의 연출작들은 주로 후자 쪽에 가깝다. (원작이 있지만 <마션>(2015) 같은 경우가 정반대의 입장에 해당될 것이다) <하우스 오브 구찌>와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도 후자이기는 마찬가지인데, <카운슬러>(2013)가 그랬듯 <하우스 오브 구찌>는 문이 닫히는 그 순간까지 냉소와 허망함을 남긴다. ‘마우리치오 구찌’(아담 드라이버)와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레이디 가가)가 사랑에 빠지는 초반부가 빠르게 전개되는 것도 괜한 맥락이 아니다. 제국은 쉽게 허물어지고 영원히 화려할 것만 같았던 삶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21세기의 ‘구찌’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영속되고 있지만 현재의 경영진에 창업주 가문의 일원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https://brunch.co.kr/@cosmos-j/1375

2021년 12월 31일과 2022년 1월 1일, 극장칸

이를테면 12월 31일 23시 59분의 잠금 화면과 1월 1일 0시의 잠금 화면을 나란히 찍어두는 일과 같이, 한 해의 마지막과 그다음 해의 시작 사이에서는 언제나 유난하게 마음에 축포를 울리고는 했다. 적어도 한두 해 전까지는. 이번에는 너무나 무감했고 이미 2022년이 되어 있었던 것처럼 시계에 이따금 눈길을 주었고 바깥이 조금씩 어두워지는 걸 바라봤다. ⠀ 극장 몇 군데의 상영시간표를 뒤적이다 결국 아무 데도 가지 않고 한 해 영화 기록을 돌아보고 좋아하는 시인의 산문을 꺼냈다. 넘기고 싶은 만큼만 넘기고 싶을 때는 책들을 쌓아놓고 넘길 수 있는 기운이 없을 때는 영화관에 가거나 영화를 재생하게 되는데, 오늘의 경우라면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도 조금 더 능동적인 게 필요했다. 요즘은 할 일이나 하고 싶은 것을 자주 미룬다. ⠀ 이른 저녁에는 좋아하는 서점에 있었다. 원래는 다른 책을 사러 간 것이었고 한동안 그것을 읽었는데, 서가를 둘러보다 눈에 띈 게 『극장칸』이었다. 책 뒤표지에 적힌 '셀린'과 '이엘린'이라는 이름이 각각 <비포 선라이즈>(1995)와 <렛 미 인>(2008)의 인물임을 알아챈 순간 곧장 계산대로 향했다. "사장님, 이 책 혹시 읽어보셨어요?" 그러면서 손대중으로 대강 펼친 곳에는 '켈리 라이카트'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 감독의 <퍼스트 카우>(2019)를 아트나인에서 본 게 불과 크리스마스의 일이었으니까 이건 꼭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우연한 연결이었다. 이것이, 2021년에 마지막으로 사서 펼친 책이자 2022년에 처음으로 읽고 있는 책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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