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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과 결혼. 어느 쪽이든 여자는 힘들다.

"내가 버린 다음의 인생도 괜찮지 않았을까?" 영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에서 퇴직 후, 결혼해 임신한 마이짱이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한 말이다. 여기서 ‘버렸다’는 쎈 표현을 쓴 ‘다음의 인생’은 결혼하지 않고 경력을 쌓으며 커리어 우먼으로 살아가는 것. 한때는 그토록 벗어나기 위해 애썼던 삶이었는데 돌아갈 수 없게 되자 갑자기 그리워지는 마음. 나도 겪어봐서 알 것 같다. 타인의 삶을 곁눈질하며 부러워하는 심리는 비혼과 기혼들 사이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남의 떡’ 현상이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자신이 못 가진 삶에 대한 상상력으로 충만하기 마련이라 비혼에게는 기혼의 삶이, 기혼에게는 비혼의 삶이 ‘가지고 싶은 명함’이 되어 남의 서랍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한때 마이짱에게는 대기업의 회사원이라는 명함이 있었다. 단순한 생계수단을 넘어 사회와 자신을 연결해 주는 번듯한 정체성이었던 일이 싫어진 건 역시나 사람 때문. 욕 나오는 상사며 되바라진 부하 직원은 일터에 놓인 지뢰였으니 출근하는 순간부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으로 날아들었다. “어제 피곤한 일 있었어? 피부가 푸석푸석하네. 역시 나이는 못 속여.” “나도 서른 넘기 전에 얼른 시집이나 가야지.” “혹시 알아? 마이짱도 재벌이랑 사귀게 될지.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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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루의 통쾌함

시스루룩을 즐겨 입지는 않는다. 막상 사더라도 클럽이나 파티장을 가지 않는 한, 입고나갈 장소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회사든 동네든,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시스루룩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는 장소는 많지 않다. 대신, 거리에서 브래지어가 그대로 드러나는 시스루룩을 입은 여자를 만나면 대리만족을 느끼며 남몰래 통쾌해하고는 한다. 나에게는 없는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다 내가 왜 이 지경이 됐나를 돌이켜보면 이미 십대 시절부터 브래지어를 드러내지 않는 '조신한 여자'로 길들여져 온 기억들이 떠오른다. 한창 브래지어라는 존재에 예민하던 십대 시절. 얇은 하복이나 흰 반팔티 안에 나시티를 입지 않고 브라만 입은 아이를 보면 뒤에서 수군거리는 분위기였다. 한번은 나도 나시티를 입지 않았다가 뒤에 앉은 언니에게 "애, 너 안에 다 보여."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여자들 사이에서 나시티는 '조신함'이자 '예의'의 상징이었고, 흠잡히지 않아도 되는 방어벽이었다. 당시엔 나시티를 입지 않은 내가 마치 공공의 규칙을 위배하고 '문란한 분위기'를 조성한 것 같아 죄책감까지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공공의 시선에 피해를 입은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나시티 문화'가 흠 잡은 건 그러니까 내 신체의 일부인 가슴인 셈이었으니까. 더운 한여름에도 브래지어의 존재를 나시티에 가려 놓으려는 문화에는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확대해석하는 시선과 성적인 것이니 '민망해서 가려야 한다'는  압박이 동시에 공존했다. 모순이었다. <재윤의 삶>이라는 웹툰에서는 브라를 해야 하는 여성의 고충을 이렇게 적었다. "가슴이 있어서(속옷으로) 그 가슴을 가렸는데, 속옷을 보임으로써 가슴을 가렸다는 걸 남들이 알게 하면 안 된다." 10대였던 우리는 한층 더 했다. 가슴이 있든 없든 가슴이 있을 만한 자리를 가려야 했고, 가린 걸 또 잘 가려둬야 했고, 브라를 가리는 일을 깜빡하면 굳이 그 사실을 남들 앞에서 큰 소리로 폭로하며 적극적으로 망신을 주는 사람마저 일상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중에서 시스루의 유행에 힘입어 브래지어가 살짝 비치는 정도는 흠도 아니게 된 요즘시절에 생각하면 답답하고 무례한 참견이 남발하던 시절이었다. 그 충고라는 것의 무게감도 뒤바뀐 패션 유행 한 방으로 일갈될 정도로 가벼운 오지랖이었을 뿐, 기준의 대단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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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맥스> 공존을 위한 폭력

SNS를 떠돌던 한 영상을 봤다. 여자가 남자에게 엘리베이터에서 무차별적으로 맞는 영상이었다.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담배를 피자 아이와 함께 있떤 여성이 항의 했고, 남자는 다짜고짜 여자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잠깐 영상을 보다가 몸이 떨려서 스크롤을 내려버렸다. 생생한 공포와 무력감을 느꼈다. 얼얼해진 몸을 추스르다가 불쑥 분노가 올라왔다. 만약 엘리베이터에서 담배 피는 걸 제지한 사람이 남성이었다면 그 남자는 손쉽게 주먹을 휘두를 수 있었을까? 일면식 없는 사람을 때릴 수 있는 폭력은 언제나 공평하게 발휘되는 걸까? 남자가 담배를 핀다고, 혹은 자신이 담배 피우는 걸 제지했다고 주먹을 휘두르는 여성은 얼마나 될까. 폭력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조심하고 사근사근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내게 주어진 유일한 처방전이었다. "야, 서봐!"라며 치근덕대던 술 취한 남성에게 맞서지 못하고, 모르는 남자에게 갑자기 욕을 들어도 못 들은 척 피하고, '바바리맨'을 보면 도망치고, 함부로 내 몸을 침범하는 남성에게 더 화를 내지 못하고, 데이트폭력을 저질렀던 남자친구에게 더 따지지 못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내가 더 큰 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다. 폭력성의 유무는 성별화된 자연스러운 차이일까? 남성뿐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폭력성은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남성에게 유독 폭력이 권장되는 시스템이 문제라고 봐야 하는 걸까. 최근에는 여성이 평화의 상징이라는 기존의 틀을 깨고, 여성에게도 폭력성이 있으며 그것을 적절하게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렇지만 여전히 폭력을 논할 때 성별에 따라 적용하는 기준은 큰 차이를 보인다. '사근사근'하게 말하지 않으면 폭력적이라는 말을 듣고 칭찬을 '고분고분'듣지 않아도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라고 불리는 현실에서, 나와 그들이 인식하는 폭력의 차이를 한동안 고민했다. 나의 폭력성은 어디까지 확장되고 발현되어야 할까. 여성학자 임옥히는 영화 <매드맥스>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폭력성을 '대항폭력'이라고 말했다. 그녀들이 보여주는 폭력의 창조성은 폭력을 위한 폭력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것이다. 서로의 나약함과 그로 인한 고통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연민으로 인해, 그들은 폭력을 위한 폭력으로 끝 간 데까지 치닫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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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월드> 로봇의 기억.

얼마 전 시즌 1이 종영된 화제의 미드 <웨스트 월드>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한 테마파크, '웨스트월드'에는 겉모습으로만 봐서는 사람과 구별이 되지 않는 로봇들이 살고 있습니다. 인지 능력이나 정서적인 부분도 사람과 다를바가 없죠. 똑같이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분노와 후회까지 경험합니다. 한 가지, 로봇에게 프로그래밍 되지 않은 능력이 있는데 바로 '기억력'입니다. 아무리 끔찍한 일을 당해도 다음 날이 되면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시나리오 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사람들은 거액을 주고 이 테마파크에 놀러가 로봇들을 때리고, 살인하고, 강간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애초에 이 테마파크는 현실세계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잔인한 본성이 마음껏 펼쳐지도록 설계된 곳이니까요. 일회용 노리개나 다름 없는 로봇은 죽거나 다치면 직원들에 의해 수거되어, 회사 내에 위치한 수술실로 들어가 아무런 흔적 없이 완벽하게 복원 됩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요. 수술을 마친 로봇은, 다음날 자기 침대에서 일어나 비슷한 하루를 반복합니다. 결국에는 강간 당하거나 살해 당해 죽게 될 하루를 말이죠. 그렇게 수백 번  죽다 회생한 로봇들에게 어느날, 문제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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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비혼주의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도쿄대 명예교수, 우에노 지즈코와 워킹맘으로서 기혼여성들의 고충에 절감하는 사회학자 미나시타 기류. 일본의 대표 페미니스트인 두 명의 지식인이 나눈 이 시대 비혼들에 대한 공감어린 토크가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에 담겨있습니다.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가 사회적인 통계를 짚어가며 비혼과 결혼에 대해 생생한 토크를 전했다면, 영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실제 비혼들의 삶을 그리며 그들의 다양한 고민을 다루었는데요, 오늘은 이 영화를 살펴보며 오늘날 비혼들의 현실을 짚어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홀로 쓸쓸히 죽는 걸까?_ 수짱(34세) 카페에서 일하며 취미인 요리를 살려 메뉴개발에도 힘쓰는 등 성실한 수짱. 일에는 의욕이 넘치지만 연애에는 다소 소극적이라 마음에 둔 남자조차 동료에게 빼앗겨 버리고 맙니다. 수짱은 이렇게 일만 하면서 혼자 사는 삶에 회의를 느끼며 '나중에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면 이렇게 쓸쓸히 죽는걸까?'하고 불안해하지만 곧 마음을 정리합니다. "모두가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는 것"이며 "나에게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며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것이죠. 수짱의 고민은 비혼들만의 고민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고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과 사람이 있어도  외롭고 고독한 것이 인생이니까요. 결국 비혼이든 기혼이든 인생에서 한번은 직면해야 하는 문제인데, 수짱은 지혜롭게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긍정적인 결론을 도출한 것 같습니다. 임신가능진단서 받아줄 수 있을까?_사와코상(39세) 프리랜서로 일하며 엄마와 함께 병든 할머니를 돌보고 있는 사와코상. 우연히 만난 동창과 사귀게 되면서 결혼까지 약속할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는데... 부모님을 뵈러가기 전, '임신가능진단서'를 받아달라는 남자친구의 말에 기분이 상했지만 침착하게 "그럼 함께 받아 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자신은 문제 있을리가 없다며 발뺌해 버리고... 사와코상은 깊은 상처를 받고 결별 후, 다시 엄마와 함께 할머니를 모시는 삶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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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 월드> 로봇의 기억.

얼마 전 시즌 1이 종영된 화제의 미드 <웨스트 월드>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한 테마파크, '웨스트월드'에는 겉모습으로만 봐서는 사람과 구별이 되지 않는 로봇들이 살고 있습니다. 인지 능력이나 정서적인 부분도 사람과 다를바가 없죠. 똑같이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분노와 후회까지 경험합니다. 한 가지, 로봇에게 프로그래밍 되지 않은 능력이 있는데 바로 '기억력'입니다. 아무리 끔찍한 일을 당해도 다음 날이 되면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시나리오 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사람들은 거액을 주고 이 테마파크에 놀러가 로봇들을 때리고, 살인하고, 강간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애초에 이 테마파크는 현실세계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잔인한 본성이 마음껏 펼쳐지도록 설계된 곳이니까요. 일회용 노리개나 다름 없는 로봇은 죽거나 다치면 직원들에 의해 수거되어, 회사 내에 위치한 수술실로 들어가 아무런 흔적 없이 완벽하게 복원 됩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요. 수술을 마친 로봇은, 다음날 자기 침대에서 일어나 비슷한 하루를 반복합니다. 결국에는 강간 당하거나 살해 당해 죽게 될 하루를 말이죠. 그렇게 수백 번  죽다 회생한 로봇들에게 어느날, 문제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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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실증을 다룬 영화와 책

'알츠하이머에 걸린 살인자'라는 설정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주인공은 가정폭력을 저지르던 아버지를 시작으로 평생 '세상의 쓰레기들을 청소한다'는 명목 하에 수많은 살인을 저지른 병수(설경구 분)입니다. 이제 나이들어 병약해진 그는 같은 메뉴를 깜박하고 또 먹지 않기 위해 녹음기를 붙들고 "짜장면을 먹었다."고 녹음해야 할 정도로 일상적인 생활조차 힘겨운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또 다른 연쇄살인범, 태주(김남길 분)가 나타납니다. 마을에서 연이어 시체가 발견되면서 연쇄살인을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병수는 우연히 태주의 차에 접촉사고를 내게 되죠. 열린 트렁크에서 떨어지는 핏방울. 같은 살인자끼리 알아볼 수 있는 태주의 눈빛... 병수는 그가 범인임을 확신하고 신고하는데 태주는 다름아닌 경찰이었습니다. 태주에 대한 신고는 동료들의 우스개 농담으로 묻혀 버리고... 태주는 병수의 하나뿐인 딸, 은희(설현 분)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며 병수를 협박해 옵니다. 딸을 지키기 위해 살인자와 맞서야 하지만 이내 태주의 존재조차 잊어버리는 병수. 태주와 함께 있는 은희를 찾기 위해 영화관에 들어왔다가 자신이 무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 채, 자리에 앉아 영화를 감상하는 식입니다. 영화는 점점 병수의 왜곡된 기억이 드러나며 반전을 맞게 되고, 종내에는 연쇄살인범이라고 확신했던 태주의 존재조차 의심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죠. 이 영화는 잘 알려진대로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비교적 원작의 느낌을 잘 살렸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왜곡된 기억과 살인의 방법이 뒤엉킨 영화는 또 있습니다.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에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 레너드의 짧은 기억을 역추적하는 독특한 구성으로 극찬을 받았습니다. 집에 침입한 괴한에게 아내를 잃고 후유증으로 10분 이상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 레너드는 복수를 다짐하며 살인자를 찾아 다니지만 쉽지 않습니다.  기억의 왜곡을 막기 위해 사진을 찍고, 몸에 문신을 새길 정도로 처절하게 싸우죠. 그러나 밝혀진 진실은 차라리 고장난 기억력으로 가려두고 싶은 끔찍한 상처였습니다.

학교라는 시대착오적인 공간

개개인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길들여지며 갖추게 된 편견은 어느날 갑자기 시행되는 제도나 정책처럼 전면적으로 바뀌기가 힘듭니다. 구호는 구호일 뿐,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버리고 그 뒤로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편견이 실질적인 문화로 군림하는 경우가 많죠. 덕분에 다음과 같은 편견이 아직도 남아 학생들을 재단하는 잣대로 쓰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편견1)  여자는 얌전해야 하고, 외모를 가꾸되 티 날 정도로 과하게 꾸며서는 안 되며, 늘 남에게 친절해야 한다. 편견2) 남자는 울거나 삐치면 안 되고, 언제나 씩씩하고 강인하며 활발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남녀평등'을 목표로 한 교육방침은 꽤 오래전부터 시행되어 왔습니다. 아이들은 남녀 할 것 없이 가정 시간에 함께 요리를 배우기도 했고, 여자반장과 남자반장을 한 명씩 뽑아 성비를 맞추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시대착오적인 보수성이 학교라는 폐쇄적인 공간 속에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학생들의 번호를 부를 때 아직도 남학생의 이름부터 시작하는 학교가 많고, 아이들을 훈계할 때 남성성과 여성성의 틀에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자애가...' '남자애가...'를 들이밀며  나무라는 선생님들도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의 저자는 다양합니다. 페미니스트 교사, 페미니즘 연구가, 작가, 기자 등등. 그들에게 학교는 평화의 공간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닙니다. 폭력이 만연하고, 혐오와 차별이 비일비재한 억압의 장소였습니다. 그 공간에서 여전히 상처 받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좀 더 다양한 의견 속에서 평화로운 공간이 되기를 바라며 이 책이 집필되었습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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