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출산, 육아….
이런 말들이 유부녀를 정의하는 보편적인 단어였던 시절은 지나간 것 같지만 오늘날에도 이 몇 가지 단어의 폭 안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은 꽤 많다. 이런 몇 가지 단어들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 자신에게 불만족하거나 만족하거나와 상관없이 그 몇 개의 단어만으로도 버거운 이들 또한 여전히 많다.
그러나 그 버거움은 돈으로 수치화되지 않아서인지 그에 따르는 수고 또한 뭉뚱그려 추상화 되고는 한다. “집안일 힘든 거 알아. 다 알지.”라고 말하면서도 실은 하나도 모르는 거 같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래서 누군가 무슨 일을 하시냐고 물어보면(쇼핑몰 사이트의 회원가입을 할 때처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상황에서도) 속으로는 전업주부에 가깝다고 생각하면서도 ‘프리랜서’라고 말하고 다닌다. 부업으로 돈을 버니 거짓말은 아니나 프리랜서라는 용어가 없었다면 이 애매한 위치를 포장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는 ‘가정주부가 뭐 어때서’라는 오기 섞인 심경(이미 여기서부터 콤플렉스가 엿보인다)으로 부러 떳떳한 발음으로 ‘주부’라고 말해봤는데 그때마다 “아~네.” 정도의 싱거운 반응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면전에서 “겨우 주부야?”라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1,2초 간 드러났다가 아차차하고 사라지는 표정에서 그들에게 비춰진 나의 모습이 어떤지 대충 짐작 가능했다.
직장인들이 가정주부에 대해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로는 딱히 공감대를 찾기 어렵고 이해관계가 성립하기 힘들다는 점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내가 해주는 밥을 먹고 옷을 입는 가족이 아닌 이상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의 기브 앤 테이크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사회생활이라는 네트워크 안에서 인맥을 만들려면 자기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영향력이 있을 거라고 추정하게 만드는 근거가 있어야 유리한 법인데. 친구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낯선 사람과 어울리며 지인으로 만들어 나갈 때. 꼭 치밀하게 계산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인간관계 자체가 에너지 소모이고 기회비용이 사라지는 일인데 의미 없는 만남은 한두 번은 몰라도 세 네 번까지 이어지기는 힘든 법이다. 하다못해 조직 내에서 겪는 회사생활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쉽지 않아 감정적으로도 소통하기 어려운 대상인 가정주부와 만나서 뭘 어쩌겠나. 오래된 친구가 아닌 이상 주부는 주부끼리, 엄마는 엄마들끼리 어울리기 십상이고 그 만남만으로도 관계의 풀이 채워지기 마련이지.
때문에 가정주부에게 살갑게 다가오는 직장인들은 ‘학습지 교사, 우유 판매원, 마트 영업사원, 백화점 직원, 헬스장 트레이너’ 정도로 좁혀진다. 은근히 비위를 맞춰주는 이들의 접대는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사회적 정체성을 일시적으로나마 끌어올려 비로소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해주는 것 같은 착각을 일게 한다. 그래봤자 소비자지만. 소비자가 아니고서는 낄 자리가 없는 게 현실이라 혹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