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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배트맨 시리즈중에서 명작으로 꼽히는 다크나이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법>이라는 질서의 문제에 갈등이라는 요소를 첨가함으로써 그 것들을 어떻게 다루어 내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줍니다. 여기서 핵심은 <법>의 문제가 들어갑니다. 슈퍼히어로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를 꼽는다면 대부분 배트맨을 선택할 것이다. 인간이고, 수트가 없을 때는 우리와 동등한 조건이다. 물론 그의 뛰어난 무술 실력은 노력으로 얻은 것이다. 또한 햄릿형 히어로라고도 불린다. 끊임없는 인간적 갈등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수많은 배트맨 영화 중에서 단연코 최고의 작품은 바로 이 <다크 나이트>라고 생각한다. 시나리오의 내용도 그렇고 갈등의 내용도 다른 작품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다크 나이트라는 작품을 통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있다. 인류사의 위대한 작품과 어느 정도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것도 관찰이 될 수 있다. 공통점은 부친 살해와 여성에 대한 행위, 그리고 연적에 대한 경쟁심에 노출되는 위대한 작품 세가지를 꼽아보자. 소포클레스의 외디푸스 대왕 셰익스피어의 햄릿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영화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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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윌 헌팅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서 영감을 얻곤 한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영화중에서 꼽자면 이 영화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윌은 수학천재로 등장한다.그러나 그는 그 천재성을 전혀 살리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다.분명히 아는 사람이라면 그를 알아보고 등용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다.그런 영리한 머리를 노동에 썩힐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까. 그러나 지식이 뛰어나고 영리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그것이‘인정’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그 영역에서 기능하는 것들을 생각한다면 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영감을 던져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이 영화를검색해보니까 주인공 윌의 문제를 죄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양부에 대한 트라우마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었다.이런 영화 해석에 나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다.트라우마로 그의 모든 행동이 설명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인간행동을 그렇게 편협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조금 문제다. 윌을 신경증자로 볼 수는 없다.그는 현실에서 충분히 선택하고 기능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이런 까다로운 유형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를해야 할까?단순히 그가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해고 착각이다.본질은 전혀 다른 데에 있고 트라우마는 단지 드러나는 덮개일 뿐이다.정신분석은 그 덮개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아닌가? 특히 이 영화가 정신의학에서 설명이 제대로 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뇌에 문제가 있어서 신경증에 걸린다는 정신의학에서는 이것도 뇌 문제로 설명하려고 할 것이다.그러나 천재를 어떻게 뇌가 잘못되어서 그렇다고 설명할 수 있을까?프로이트가 고안한 정신 장치의 문제는 이 내용을 좀 더 탁월하게 설명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영화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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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빙글은 실로 오래간만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차기작과 더불어서 여러가지일이 있어서 빙글은 그렇게 신경을 쓰지 못했네요. 현재도 임상사례를 준비하고 있다가 불현듯 들어와서 글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이렇게 카드를 남기게 되네요. 이 영화는 제가 출간한 책의 내용중 일부이기도 합니다.(브런치에 모두 공개 되어 있지만...)그럼 시작하도록 해보죠.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은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가상이긴하지만우리는 마츠코의 일생을 탐색해 볼 필요가 있다. 소설 속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이런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분명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츠코는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그녀를 혐오스러운 삶으로 내몰게 만든 것일까? 우리는 그녀의 정신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지살펴볼수있다면,우리는그정체에한걸음더다가갈수있을것이라고생각한다. 그것을찾아가는과정이 우리의 삶에 어떤 통찰을 안겨줄 수있다면좋은일일 것이다. 마츠코는 중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대로 살아갔다면 아무런 탈 없이 선생님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다. 수학여행에서 제자 류의 허물을 덮어 주려다가 일이 커져서 학교를 그만두어야만 했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그렇게 환영받지 못했다. 몸이 약한 동생에 대한 질투와 더불어 그런 동생만을 신경 쓰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은 마츠코의 가출을 부추겼다. 이 것이 마츠코에게는 불행의 시작이었을까? 그녀는 집을 나와 어느 작가와 동거를 하게 된다. 마츠코는 순수한 남자라고 하며 신뢰를 보내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 결과는 폭력이었고 경제적인 갈취였다. 돈을 요구하는 남자의 명령에 동생에게 돈을 얻어다가 주었다. 가족의 연을 끊으면서 까지.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심지어 그는 마츠코에게 마사지 걸로 일해서라도 돈을 벌어오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그녀가 그를 정말 사랑해서 그랬을까?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다른 사람에게 자기 몸을 맡겨도 괜찮은 것일까? 여기서 마츠코의 어린 시절에 조금의 관심을 더 가질 필요가 있다. 그녀의 삶에서 일어난 일들을 살펴볼 수 있다면 행동의 의미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녀가 정신질환을 진단받게 되는 것 역시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어떤 이상 현상이 발견되면 그것을 증상의 <초기>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경증의 초기는 <잠복기>라고 보아야 한다. 그것이 내면에서 형성되고 있는 중이라는 말이다. 삶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형성된 이후에야 직접적으로 삶에 간섭하게 되는 것이 증상이다. 그때는 이미 중기 이상이 지나있는 상태라고 보아야 한다. 어쩌면 마츠코는 일생 내내 <사랑>이라는 허울로 뒤집어씌워진 <신경증>의 영향력 아래에서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녀의 삶에 지속적으로 신경증의 영향력이 미쳐있다면 우리는 그녀에게 <운명 신경증>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경증의 반복 강제가 쌓여서 마치 운명처럼 삶의 형태를 구성하는 것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신경증적 불행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신경증자는 어떤 경우에라도 자신의 신경증적 경험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것에 대해서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신경증적 불행을 일반 불행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심리학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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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주의 : 본 글의 내용은 영화의 강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증상'에 대한 내용입니다. 영화보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드디어 저의 초안 마지막 공개할 내용을 결정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쓰고 있는 원고 마무리를 한다고.. 좀 정신이 없었네요. 아직 표지를 못 만들었지만... 이 영화는 조현병에 대한 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신분석과 정신의학의 진단체계는 다르기에 분석가는 정신분열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봐 주세요. 1] 망상은 비논리적일까? 슈퍼맨은 특이한 사람입니다. 그는 언제나 사람을 돕고 지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말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행동도 합니다.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슈퍼맨은 묵묵히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사람을 돕습니다. 그는 바보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불행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을 돕는 '임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날마다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만족감을 얻습니다. 그는 '쇠문을 열 수 있는 건 힘이 아니오, 작은 열 개지'라는 이야기를 곧잘 합니다.길가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주는 것은 물론, 학교 앞에 출몰하는 바바리맨도 잠복해서 잡아냅니다. 어린아이들을 좋아하는 슈퍼맨의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바바리맨은 꼭 잡아야 하는 범죄자이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학자인 라캉은 자신의 연구에서 정신질환자들이 곧잘 모이는 세 집단을 언급합니다. 그것은 정치집단, 종교집단, 자선단체로 구분됩니다. 정신병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세 집단에 끌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 있을까요? 슈퍼맨이 무엇을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단서가 되어줍니다. 위의 세 집단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박의 두 얼굴

얼마 전이었다. 디지털 정신분석원 카페에서 어떤 회원이 대화를 신청했다. sbs 방송작가였다. 그녀는 나에게 강박증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해서 인터뷰를 요청했었다. 물론 나는 응했다. 한 시간 남짓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내 전자책도 두 권 선물했다. 그러나 방송 내용에 나와 인터뷰한 내용은 전혀 적용이 안 된 것 같아... 좀 씁쓸하긴 했다. <디지털 정신분석>에서 발견한 임상은 '강박'에 그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그리고 <영화 속 치유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에서도 강박증에 대한 임상들이 나온다. 플랜맨이다. 이것은 초안을 공개해둔 상태다. 관심 있으신 분은 읽어봐도 좋을 거 같다. 빙글에 플랜맨의 카드가 있으니 읽어보셔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방송의 내용을 세심하게 들어가 보자. 난 개인적으로 방송을 통해서 스스로를 공개하신 분들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자밀 킴과 같은 유명인들의 이야기는 좀 활용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외의 분들에 대해서는 최소한도로만 다루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증상은 개개인별로 형성 과정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화해서 딱!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위의 내용들에서 우리가 뽑아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단문의 내용이라서 뭘 특히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뽑아낼 수 있는 단서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거부할 수 없는 속삭임이라든가 혹은 죽고 싶은 생각도 많이 했다는 것은 강박 임상에서 중요한 점을 차지하기도 하는데 강박에서도 환청이 종종 들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환청 들리면 조현병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꼭 그렇지는 않다. 환청은 히스테리에서도 들리고 혼합된 다른 증상들을 통해서도 기능할 수 있다. 그리고 죽고 싶은 생각. 혹은 <죽음>생각이라는 것은 강박이 끌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죽고 싶다>라는 생각은 강박 기제의 움직임을 뜻하고 <죽음>생각은 강박에서 등장하는 불확실성의 종착지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의 구분은 강박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이 두 가지를 구분 짓지 않는다면 혼란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생각은 행동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오해영

로맨틱 코미디의 특징은 서로 호감이 없는 사람 둘이 어쩌다 보니 함께 행동을 하게 되고 서로를 알고 끌리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남녀 모두에게 흥미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돕는다. 과연 무엇이 사랑으로 끌리게 만드는 지를 탐구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얻는다. 다만 현실에 활용되는 경우는 적다. 이유는 단순하다. 남자는 여자를 알 수 없다. 물론 여자를 안다고 주장하는 남자들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에게 '난 널 알아!'라는 주장을 하게 된다면 끔찍한 상황이 연출될지도 모른다. 연애 중이든, 여자 사람 친구든 이는 동일하게 적용이 될 것이다. 정신분석은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서 정확하게 어떻게 헤어지는 지를 탐구하게 해준다. 여자를 유혹하는 방법은 정신분석의 소관이 아니다. 헤어지는 방식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탐구한 사람이라면 다음 이별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강박적으로 연애하던 사람의 이별 방식이 강박적이라면 분석은 그 강박의 틀을 바꾸는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 연인이나 아내에 대해서 정신분석을 실시하고 있다는 남편들의 문의를 받을 때면 되도록이면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남편들은 병원 가도 상담소 가도 안되니까 책 몇 권을 읽고 아내를 직접 분석하고자 한다. 물론 아내는 처음에 만족스러울 수 있다. 남편은 좀 더 진행하고자 하는 욕심을 보인다. 그때, 내가 던지는 질문은 공통적이다. "이혼하실 준비가 되셨나요?" 프로이트도 논문에서 이런 언급을 한다. "신경증에 걸린 아내를 데리고 온 남편이 '치료해서 다시 행복한 결혼생활로 돌아가게 해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경우"에 결과가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아내는 분석과정에서 주체화가 되고 더 이상 남편에게 소속되지 않으려 하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이 어떤 식으로 두 사람이 맺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은 따로 필요가 없다. 드라마는 그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는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한 남자의 세계가 한 여자로 인해서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한 여자는 그 남자의 세계에 어떻게 생명을 불어넣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드라마적인 특징들도 있다. 우스꽝스러움이 담보되어 있는 지원군이 있다. 감시의 역할을 하는 시선을 거두어들인다. 그래서 '이상'에 가까워 보인다.
의료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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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았다 - 진정으로 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강남살인남과 짝 지워진 해시태그는 #살아남았다 이다. 여자라서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 범죄는 여성을 혐오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대한 강한 공감이 일어났다. 그리고 여성들은 집단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분노하고 애도하는 과정에서 여혐과 남혐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싫다는 주장을 한 여중생을 폭행하는 여성분도 있었다. 이 사태는 과연 어떤 식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할까? 조금 삐딱선을 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흑백논리 차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모두 적대적이다. 남혐이든 여혐이든. 괴벨스가 이런 식으로 선동을 잘했다고 한다. 아마 기업의 마케팅 전문가들은 이익을 위해서 여혐을 통해서 과대 포장하고 호신용 무기를 판매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업은 개인과 감정을 공유하기보다는 이익을 위한 집단이니까. 나는 이 사건을 여혐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피해자를 여러 번 찔러서 살해했다. 여러 번을 찔렀다는 것은 그동안 쌓인 게 있었다는 말이다. 둘은 일면식도 없었다. 쌓일게 없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서 조금 더 탐구해야 한다. 이와 같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정치적인 프레임은 일단 내버려두자. 여혐 범죄라고 주장해도 임상적인 기록들에 대해서는 '여혐'이라는 단서를 들이밀지 못할 것이다. 정신분석은 이미 이와 같은 범죄사례에 대해서 단서를 추측할 수 있는 임상을 가지고 있다. 나는 간략하게 나마 오늘 그 임상도 잠시 언급할 것이다. 조현병에서 나타나는 임상이 아니다. 학파별로 임상의 강세가 있는데 정신분석은 편집증에 대해서는 연구가 많이 되었다. 정신분열은 융 학파에서 연구가 많이 진행이 됐다. 프로이트는 개인 사무실에서 연구를 했고 융은 병원에서 연구를 했다. 환자들이 모이는 차이에 따라서 정신분열은 입원이 불가피했다. 따라서 융은 분열 연구를 많이 할 수 있었다. 편집증은 초기에, 즉 급성기에는 정신분열과 혼동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증상이 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사회생활을 오히려 더 잘할 수도 있다. 사회생활을 더 잘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떤 경우 의처증과 데이트 성폭력에도 편집증이 연결될 수 있다. 배우자가 연인이 바람 피고 있다는 확신은 폭력의 문제로 이어진다. 그것도 단 둘이 있을 때 일어나는 폭력이다. 발병은 눈치챌 수 없다. 그만큼 조용히 현실에 등장한다. 따라서 정신병 발병의 문제도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결과적으로는 치료의 문제도 이야기해야 한다. 과연 약물로 치료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문제다. 대중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상담도 받고 약도 먹으면 되는 것 아닐까? 이 내용이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약물의 작용은 증상을 묘하게 위장시킬 수도 있다. 정신의학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완고한 태도다.
철학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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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unki1313남자는 태어나서 성인이 될때까지 여자라는 이성에 대한 인식이 지금까지 잘못 자리 잡혀 옴. 여자는 약한 사람.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는 보호해야 되는 대상. 반대 급부로 여자는 피동적인 동물. 남자에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 불가피한 존재. 더 나아가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남자와 여자의 각기 다른 성역활에 대한 교육 및 고정관념. 수도 없이 많은 성차별에 대한 무지한 인식과 교육. 적어도 대한민국에 태어 나서 성인이 되고 사회라는 밀림의 언저리 까지 가본 사람이라면 여성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 약자 또는 보호, 배려 해야 되는 대상 쯤으로 여기며 살아 감. 이는 여자들도 마찬가지임. 세상에 태어나서 남자와 같이 생활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자신은 남자에 비해 약한 존재 곧 남자의 배려를 받아 마땅하고 또 자신을 보호 해줄 수 있은 이성에게 자연스레 호감을 느끼고 성에 대한 마음이 발생하는건 자연스런 현상 임.(자신을 보호 하는 그 기능이 신체적 물질적 정신적인 모든 것을 망라함) 2000년대 접어들어 이러한 여성인권 신장에 대한 수많은 운동과 사회적 인식 개편에 대한 노력이 많이 이루어 졌으며 또한 아직까진 걸음마 수준이긴 하나 많이 개선 되어진것 또한 사실임. 성평등에 관한 인식이 당연히 자리 잡히고 성숙해져야 하는 사회임에도 불구 하고 그렇게 되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의 사회는 남자들에게 책임과 동시에 권리 또한 부여 했었다면,(가장의로서의 책무와 그에 따른 존경심 또는 특권의식 등등) 현대의 사회로 갈수록 책임 내지 의무는 존재하나 그에 따른 권한과 특권은 사라져 가고 있음.. 남녀 평등이라는 주제 아래 행해지고 있는 남성들이 느끼는 역차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싸늘함.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남성들이 존재함. 여기에는 아주 사소한 데이트 비용에서 부터 결혼비용 또는 군입대에 관한 평등은 존재 하지 않음을 남성들이 부르짖는 슬러건임. 반대로 여성들이 소리 높여 부르짖는 평등에는 출산 육아에 따른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부당함을 말하고 있음. 시대가 진보함에 따라 이와 같은 서로에 대한 성차별의 간극은 갈수록 줄어 들것이라 확실함. 남자들은 여성이라는 존재를 자신의 소유물 내지 나보다 미약한 존재라는 인식을 고쳐야 되며 여자 또한 여자라는 이유로 평등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됨. 지금 이시대에 팽배해 있는 여성혐오 또는 남성혐오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임. 남성과 여성의 성평등 그것 뿐임. 여성의 사회적 약활과 출산 육아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 해야 됨과 동시에 연약한 존재라고 남자에게 기대려는 무의식을 고쳐야 하고 남자가 하는 것은 동이일하게 하면됨 그냥 간단함. 군대가고 결혼 데이트 비용 무조건 품빠이 하고 무거운거 들고 남자는 반대로 여자를 소유 하려 하지 말고 여자에 비해 자신이 우월 하다는 근거 없는 생각 버리고 집안일 육아 당당하게 반반 맡아서 하고 똥기저귀 갈고 아이 업고 댕기고 식당에서 밥 나눠 가면서 먹고 먹이고, 설거지 잘하고 뭐 그러면 서로에 대한 불평등이 햐소 될 것임.. 진정 그러한 사회가 되었을 때에도 이성 혐오를 가진 사람은 바로 장신 병원 고고씽 하면됨. 아주 간단한 문제임 오늘날 이성 혐오를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음. 자신은 생활 속에서 실로 상대방이 혐오할 행동은 하지 않는지...

강남살인남 - 그는 <어떻게> 여성을 선택했는가?

신경증으로 인해서 범죄가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현실에서 후퇴하는 작용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초자아의 비난은 그가 조그만 잘못도 그냥 건너뛸 수 없게 한다. 초자아의 명령에 자아는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병의 경우는 좀 다르다. 초자아를 무시하는 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자아는 나르시스와 함께 손을 잡고 초자아에 대항할 수 있다. 증상이 자리가 잡히기 전에는 자기관리도 안 되고 하는 모습이 정신분열증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리가 잡힌 증상은 망상을 통해서 현실에 참여한다. 약물로 눌러 두는 데는 한계가 있다.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강남살인남. 묻지마 살인사건이다. 피해자를 기억하기보다 가해자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해자는 그 기억에 시달릴 수 있다. 정신분석 과정은 여기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들추고 싶지 않은 기억이 얼마나 내담자를 힘들게 만드는지 아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 이슈'로 자리 잡히게 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더욱이 이번 사건 같은 경우는 가족이나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시달릴 수 있다. 그래서 가해자를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인권 타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명예의 멍에를 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삶에 부과된 과제다. 강남살인남이란 명칭이 그의 체면을 얼마나 깎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말이 유족의 가슴에 못 박는 말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신질환과 정신질환 범죄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정신질환의 문제는 삶의 효율을 많이 떨어뜨린다. 그래서 일상이 괴로워진다. 그러나 정신질환 범죄는 효율이 낮지 않다. 범죄는 효율이 낮은 행동이 아니다. 익숙하다고 할지라도 초자아는 언제나 우리를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자아를 무시할 수 있다면, 도덕이나 윤리나 법 등을 어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짚고 넘어가게 되면 뭔가 께름칙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여혐'이라고 단정짓는 것 역시 위험하다. 그가 지닌 정신질환의 문제는 제 3의 피해자 집단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외면받는 소수자가 있다는 말이다. 강남살인남. 그에 대해서 알려진 내용은 별로 없다. 뉴스를 뒤져봐도 신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과 과거에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고 4차례 입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해 동기는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했기 때문이라는 말과 애초에 아무나 찔러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여성으로부터 구체적인 피해사례가 없었다는 것을 근거로 '여혐'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 여자를 혐오하기 때문에 일으킨 범죄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는 도망가지 않았다. 여성을 혐오하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가 진정 여성 혐오로 인해서 범죄를 각오한 것이었다면 그는 도망가야 하는 게 맞았다. 그리고 빠른 시간 안에 범죄를 더 저질렀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여혐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 이 사건에 대한 탐구는 묻힐 것이다. 대중은 '여혐'이란 프레임으로 범죄자를 설명하고 정신질환자와 남성에 대한 위기만 가진채 이 사건에 대한 연구는 마무리 지어질 것이다. 오히려 위험한 것은 이쪽이다. 겉으로는 가장 좋은 방법 인척 '가장'하는 것이다. 쉽고, 단순하게, 그리고 선입견을 만들면 그만이다. 그럼 아무 일 없는 듯 넘어갈 수 있다. 저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미리 조심하자. 그런 인식만 심어줄 수 있으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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