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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사를 그만 두기로 했다.

작년 이 맘 즈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꿈꿨던 퇴사. 흔히들 빌어먹을 회사 때려치고 만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달고 살지만 , 정작 하루는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사람들 속에 변화는 그저 주어지는게 아니란걸 어렴풋 느끼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서른이 된다는 사실이 어색할때 즈음 서둘러 실행에 옮겼던 퇴사준비가, 서른이란 나이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지금에서야 끝났다. 일년이란 시간.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한 수많은 순간들이 있었고, 차마 감정에 복받쳐 공개하지 못한 글들이 있었지만 시나브로 지나가 버렸다. 아마 수험생 시절보다 잠은 덜 잤고, 취준생 시절보다 미래에 대한 압박을 더 받았을 듯 싶다. 그렇게 내게 일년이란 시간은 참으로 길었다. 퇴사가 별거냐? 묻기엔 내게 주어진 삶의 의무와 앞날에 대한 걱정은 너무 묵직했다. 꿈을 이룬다, 꿈을 찾아 훌쩍 떠난다는 얘기를 우린 너무 쉽게 듣곤 하지만 막상 그게 내 삶에 온다 생각했을때 가슴이 먹먹해지는건 비단 나뿐은 아니었을 거다. 그렇기에 목표와 방향성을 갖고 준비를 했다. 주어진 회사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시간을 아껴가며 돈을 모았고 기회를 찾았다.

나는 회사를 그만 두기로 했다.(D-28)

퇴사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할말이 참 많지만 다른 마음을 품은 상태로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기존 체재와 시스템에 반하는 내 일년의 준비기간은 그 어느 기간보다, 어떻게 보면 지난 수능보다 길게 느껴졌다. 얼추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올해. 2004년 대학 '새내기'로 꿈을 꿨듯, 2017년 '새내기 사장'으로 꿈을 키워가고 싶은 열망이 불탄다. 2003년 수험생이었던 내게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것이다'(끈기로 해야한다) 라며 , 대학에 못가고선 꿈을 이룰 수 없다 라고 설파하시던 '손사탐(손주은)'선생님이 재단을 설립하신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선생님이 말하길, 본인은 청년들에게 꿈을 얘기하며 부자가 되었지만 유명한 대학을 가고서도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 젊은이(20~30대)들을 보며 항상 '부채'를 떠안은것 같은 마음을 가지셨다고 한다. 더불어, 4차 산업혁명에선 기존의 산업형태보다 중요한게 '창의성'이라며 본인이 그 일선을 일궈나가고 싶단 포부를 밝히셨다. 손선생님의 의도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방식은 현재와는 맞지 않다' 이다.

나는 회사를 그만 두기로 했다.(D-43)

"부탁 좀 할게~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어??~"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면 종종 듣는 관용어 '좋은게 좋은거다'. 여러가지 상황에서 쓰일 수 있지만 사회에서는 [모종의 합의가 있거나 권력있는 사람을 통해 시스템 혹은 규칙을 배제 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통용된다. 그래서, 위 말투도 차갑게 하기 보단 약간 능글 거리는 모습이 더 어울리는 그런 관용어다. 이를 놓고, 한국인의 '情' 이라 감히 표현하는 이도 있겠지만, 사실 이 말은 우리나라가 아직 후진국임을, 시스템보다 권력과 인맥이 우선시 됨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표상이다. 물론, 이런 '인맥'을 무작정 나쁘다 볼수는 없다. 경제적으로 봤을때, 주위 평판이 좋거나 알던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일 하는 것이) 모르는 사람일 때보다 리스크가 적고, 또 인맥을 통해 불필요한 규칙을 따르는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신용을 쌓는데 드는 기회비용이 절약된다 볼 수 있다. 허나, 고인 물은 반드시 썩기 마련이듯 그 이면에서는 기회가 균등히 배분되지 않아 불평등을 초래하며 이는 결국 노력보단 기회(인맥/학연/지연)만을 찾는 분위기를 조장해 발전 대신 도태를 초래하게 된다. 분명 당사자들에게 이득일 수는 있으나, 사회적으로 보면 큰 손해인 셈인 것이다.

나는 회사를 그만 두기로 했다.(번외)

살면서 나는 내 권리를 남에게 많이 양보해왔다. 여당 과 야당 어떤것인지 대충은 알지만 막상 정치에 관해 논해보라 멍석을 깔아주면 말문이 막히는 사람으로, 정치는 내 삶과 크게 상관없다 살아온 루저였다. 선거철만 되면 형에게 의견을 물어 투표를 하고 여행을 떠나던 그런 부족한 사람 중 하나였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내 삶과는 크게 상관없다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독립을 하고 나서야 사회 전반에 걸친 원칙이 무시당하는 부조리함과, 본질보단 현상만 집중하는 주객전도된 시스템을 겪으며 개탄을 하기 시작했다. 작게보면 회사선배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반납하는 것이 기득권에 대한 당연한 수순이라 세뇌되어 있었고. 크게 보면 사회 또한 약자보단 기득권을 위한 시스템으로 견고해져 있었다.

나는 회사를 그만 두기로 했다. (D-64)

회사를 다닌 근 4년간 이 맘 즈음 되면 인사팀에서 남은 연차를 쓰라고 종용을 한다. 연차가 많은 팀에게 불이익을 준다고 엄포를 놓는다던가, 잔여 연차현황을 친절히 엑셀로 정리해 부서마다 내려주기까지 한다. 그 가운데 '나는 괜찮으니까 너네들은 휴가 다녀와' 라고 얘기하는 팀장들. 흡사, '나는 자장면, 너네는 먹고 싶은거 먹어'라고 얘기하던 중국집의 휴가버전 같다. 사실상 가지말라는 무언의 지시를 내리는 팀장을 욕할 것은 아니다. 누군가 하나 빠져버리면, 남은 동료의 업무 부담은 이젠 야근으로도 처리될수 없다는 걸 알기에 차마 가질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질적인 원인은 누누히 얘기했던 비효율적인 업무방식과 그걸 처리해야하는 부족한 직원수에 있다. 그렇게, 매년 채 절반도 쓰지 못한 내 연차 열댓개가 모여 벌써 반백개를 넘어선다. 정당한 휴식 대신 반강제 노역으로 채워진 슬픈 나날들이었다. 지난주 금요일 오랜만에 연차사용계를 제출했다. 어떤 드라마틱한 사유를 적어야하나 한참 고민하다, 천재지변이 아니면 연차를 못 쓴다는 인식을 갖는 내가 한편으러 불쌍하다. 결국, 심신의 휴식을 이유로 낸 연차에 동료를 향한 미안함이 가득하지만, 더이상 이 삶을 지속할 수 없을 것 같단 위기의식이 끝내 나를 움직였다. 이 위기의식의 이면에는 분명 버티기 힘든 내 이중생활이 원인 중 하나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허나 지난 날처럼 술과 잠으로 마치던 일상을 버텼을까 자문하면, 그 또한 지속할 자신은 없을거란 판단이 든다. 이래저래 내게 위기의식은 찾아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