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에도 유행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돼지뼈로 국물을 낸 돈코츠라멘과 된장으로 맛을 낸 미소라멘, 간장을 넣은 쇼유라멘과 소금을 친 시오라멘으로 크게 분류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면을 소스에 찍어먹는 츠케멘이 유행을 하기 시작했고, 도쿄를 중심으로는 국물을 빼고 소스와 기름을 면에 비벼 먹는 아부라소바가 인기를 모았습니다.
최근 가장 ‘핫한’ 라멘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게 ‘타이완 마제소바(台湾混ぜそば)’입니다. 풀어 쓰자면 대만식 비빔국수 쯤 되겠군요. 타이완 마제소바는 TV프로그램에서 소개된 후로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름에는 타이완이 들어가는데, 정작 대만에서는 없는 음식이라고 합니다.
장어덮밥, 닭날개튀김, 된장돈까스 등 ‘나고야메시(名古屋飯,나고야 요리)’라는 장르를 구축한 나고야에서는 종종 재미난 명물 먹거리가 등장하곤 합니다. 타이완 마제소바가 등장한 것도 2008년 나고야에서였습니다.
나고야의 멘야하나비 타카하타 본점에서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대만풍 민치(고추와 마늘을 다져 간장으로 버무린 소스)를 사용해 국물 라멘을 만들려고 했는데, 막상 이 민치는 라멘에 그리 어울리는 맛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영 맛이 나질 않아 만들어 둔 소스를 버리려고 하던 찰나, 가게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이 “면에 얹어서 비벼 먹어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결과는 의외로 독특하고도 입에 착착 감기는 맛. 이후 개량을 거듭해 지금의 타이완 마제소바가 개발됐습니다.
대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 타이완 마제소바는 나고야의 명물로 자리 잡았고, 그 인기는 도쿄를 비롯해 전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에는 나고야 명물 요리를 겨루는 ‘나고야메시 총선거’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최근에는 도쿄에서도 타이완 마제소바를 심심차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타이완 마제소바의 원조인 멘야하나비의 도쿄 지점은 물론, 개성적인 레시피를 개발한 라멘가게들이 잇달아 이 라멘을 내놓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부추와 김, 양파, 계란 노른자, 민치소스와 맵게 볶은 다진 고기가 들어갑니다. 소스를 비벼 면을 먹고난 뒤 남은 소스에 밥 한 공기를 비벼먹는 게 정석입니다. 다진 마늘을 잔뜩 얹어 밥까지 비우고 나면 어쩐지 기운이 솟습니다. 마늘 냄새가 좀 신경이 쓰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