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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작곡가 - 선우정아

사람은 가끔 과거로 돌아가 다시 산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있으면 무심코 예전처럼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전자담배로 바꾼 지 반 년이 넘었는데도 갑자기 연초 담배를 입에 문 후 불이 없어 곤란해하고 있고. 편의점에서 마일드세븐 한 갑 주세요, 라고 말하고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라는 감사하기까지 한 검사를 지나서 사천오백원이라는 거금을 치른 후 이 공원에 다다를 때까지 라이터 생각은 요만큼도 하지 않았다. 도로 돌아가서 사오기엔 귀찮고, 기껏 연초 물었는데 주섬주섬 전자담배를 꺼내는 건 또 맥빠진다. 그래서 불 안 붙인 담배를 물고 갈 곳 잃은 강아지처럼 멍하니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불 필요해요?" 어두운 밤에다 가로등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벤치에 앉은 사람을 알아보는 덴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여자가 후드짚업에 추리닝 반바지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쭉 뻗은 오른손에는 라이터가 들려 있어서 나는 우물우물 감사를 표하고 담배 끝을 갖다 대려 했다. 그랬더니 여자는 손을 약간 뒤로 빼고 괜히 라이터를 뱅글뱅글 돌린다. "저, 불 붙일 줄 몰라서." "아." 그랬지. 그녀는 담배니 라이터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이다를 시켜놓곤, 맥주 마셔봐도 되냐며 한 모금 얻어마시고선 이거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우뚱댔었다. 촌스러운 순진함. 그리고 눈치없음. 진절머리가 나도록 귀찮아서 거리를 뒀었다. 라이터를 건네받아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들이니 전자담배의 달짝지근하고 연한 연기에 익숙해졌던 뇌가 놀랐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진다.

우츠기식 피부관리 (피부단식)

우츠기식 피부관리라고 들어보신 분들 있으신가요? 저는 작년 12월 말부터 지금까지 삼개월 조금 넘게 지속하고 있습니다. 피부단식이란 색조화장과 파우더를 제외한 기초화장, 클렌징, 액체 제형 베이스 메이크업을 하지 않고 물세안(혹은 순비누 세안)만 하는 관리법을 말해요. 일본의 화상 치료 전문의 우츠기 류이치가 여러 번의 실험과 관찰을 통해 입증하고 이를 책으로 낸 <화장품이 피부를 망친다>를 읽고 시작하게 됐어요. 한달에 한 번 정도 과정샷을 찍었었는데 백업을 하기 전에 그걸 저장해둔 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보여드릴 수가 없네요 ㅠ 사진은 현재의 사진입니다. 제 체감으로 느낀 변화는 - 볼 부분의 붉은 기가 줄어들었다. - 트러블이 생겨도 예전보다 빨리 없어진다. - 최근 들어 피부가 탱탱하고 차오른 느낌이 든다. 정도입니다. 사실 이때까지 기초를 하루라도 안 바르면 큰일나는 줄 알았는데, 놀랄 정도로 아무런 일도 안 생긴다는 게 가장 인상깊은 부분입니다. 화장품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니까 아침에 화장할 시간을 확보하려고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고 세안도 물로만 하면 되니까 편하더군요. 돈도 훨씬 절약되고요. 여행갈 때도 칫솔 치약 수건이면 끝이고! 여러 모로 자유를 얻은 기분이에요.

무라카미 하루키 -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개인적으로 하루키는 소설보다 수필 같다. 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는 괜찮게 읽었지만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한때 여기저기 보였던 1Q84는 1권의 1/8쯤 읽다 더 이상 읽히지 않아서 덮어버렸다. 음식으로 치면 소화가 안 되는 건지 잘 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여튼 더는 못 먹겠다, 같은 느낌이었다. 그에 비해 수필은, 사실 수필이라기도 뭐한 잡지에 연재한 짧은 글(콩트라고 부르나?)을 모아둔 것들인데, 다양한 견문과 독특한 발상이 많이 보여서 꽤 재밌다. 글이 짧으니 술술 읽히기도 하고. 원래는 하루키를 읽으려고 이 책을 고른 건 아니고 좋은 감상문을 찾아오는 과제를 받았는데, 그런 건 어디서 찾아야 할까 고민하다가 → 작가가 쓴 거면 괜찮지 않을까 → 작가가 써놓은 감상문 없나 → 그런 건 수필집에 있겠지? 하는 생각의 흐름 끝에 평소에 수필이 재밌다고 생각했던(사실 하루키 수필밖에 읽은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루키에게까지 다다른 것이고, 두 편 정도의 감상문을 찾았으므로 대강 이것으로 과제는 때우기로 했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책을 찾다 보니 왠지 칵테일이 마시고 싶어졌으므로 몇 번 가본 학교 앞 바에 갔는데 자리가 하나도 없었으므로, 알바 뒷풀이로 딱 한번 와본 다른 바에 왔더니 왠걸 나밖에 손님이 없었으므로 자리 잡고 느긋하게 마시며 나머지를 읽고 있다. 너무 술술 읽혀서 남은 페이지가 아쉬울 정도다. 이 사람의 수필은 그냥 평소에 생각하는 시덥잖은 것들을 쓴 것인데, 그 시덥잖은 것들이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소 엉뚱하고 이상한 것들이라 재미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사람이 평소에 시덥잖지만 꽤 이상한 것들을 생각하지 않나? 적어도 난 그런데. 이런 생각은 이상해, 라며 자가 검열로 걸러내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남자친구 옆에서 자다가 꿈을 꿨는데 웬 알제리 유학생이랑 연애하는 이야기였다. 그 꿈을 꾸면서 나는 "이거 이따가 남자친구한테 얘기해 줘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다음엔 조인성이랑 연애하다 카페 갔는데 웬 결혼이주여성이 어떤 기복적인 신앙에 의거해 자꾸 내 물건을 가져가는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그 물건을 줬다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내용의 꿈을 꿨기 때문에 이 모든 게 너무 이상해 보일까 봐 남자친구한텐 얘기하지 않았지만. 남자친구 옆에서 자다가 알제리 유학생이랑 연애하는 꿈을 꾸며 그걸 남자친구한테 말하겠다고 생각하는 발상은 대체 어느 나라 식인지 모르겠다. 알제리식인가? 그러고보니 알제리는 어디에 붙어 있나요? 북아프리카였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때 세계지리를 안 해서 모르겠네.

비소유 세대

오늘 아침에 샤워하고 물기를 닦고 옷을 입으면서 생각한 게 마침 네이버 뉴스 메인 페이지에 떠 있어서 가져와 봤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469&aid=0000050869&sid1=001 정말로 요즘 세대는 예전 세대보단 소유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것 같다. 나눔이란 말도 많이 쓰이고, 중고거래도 활성화되어 있다. 나로 말하자면 중고로 사는 건 책밖에 없고, 재능나눔이라든가 나눔합니다~ 라는 말을 보면 이유 없이 돋는 닭살에 두 팔로 어깨를 감싸곤 하는 사람이다. 아마 그 알 수 없는 오글거림은, 나눠 쓰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고 모두들 좋은 마음으로 그런다는 것은 알지만, 내겐 익숙치 않은 상황이라 미묘한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최근 핸드폰을 잃어버린 후 새로 안드로이드폰을 살지 아니면 중고로 아이폰을 사 볼지 한참을 찾아본 일이 있다. 중고나라라는 카페를 둘러봤는데,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쓰던 걸 팔고 사고 하는 것을 보았다. 나도 집에 있는 것 좀 내다 팔까, 싶다가도 물건 험하게 쓰는 성격상 남에게 거저 주기도 미안한 것들뿐이었다. 그러면 저렇게 중고나라를 잘 활용하는 사람들은 새 물건을 사도 나중에 되팔 생각에 조심조심 쓸까? 하는 생각에 좀 으스스해졌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못 할 거다. 서재 결혼시키기라는 책에서, 저자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을 두 분류로 나눈다. 책에 커버를 씌우고 장갑 끼고 들춰보고, 독서용과 전시용을 두 권씩 사는 말 그대로 책을 받들어 모시는 사람들. 그리고 책을 여기저기 들고 다니고 책 보며 밥 먹다 음식물을 흘리기도 하고 모서리를 접고 펜으로 줄 긋고 메모해서 너덜너덜하게 하는 등 육체적으로(?) 사랑해주는 사람들. 그러니까 물건에 대한 태도에서 나는 후자에 가까운 것이다. 그것도 새 것을 때묻히고 헐게 하고 변형시켜서 딱 내 몸에 맞게 한 다음 오래오래 내 곁에 두는 게 나는 좋다. 나눔이란 말에 내가 그렇게 닭살이 돋는 또다른 이유는 바로 이래서이다. 새 물건(또는 헌 물건)을 사서 깔끔하고 흠 없이 잘 쓴 다음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되팔거나 나눠주는 것. 내겐 그게 너무 정 없이 느껴진달까.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한테도 그럴 것만 같다. 네 곁에 있을 동안 잘 데리고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건네줄게, 라는 건, 물론 이런 사랑을 선호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렇게 깔끔하고 끈기 없이 딱 떨어질 거면 함께했던 우리의 시간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 는 생각이 들 것 같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