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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이란 무엇인가

▣개벽이란 무엇인가? 1)개벽은 천지의 심판이다. 그러면 우주 대자연이 어떻게 인간을 심판하는가? 우리는 이 심판의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로 다양하게 생각할 줄 알 아야 한다. 예를 들어 지진, 해일, 태풍, 폭우, 폭설, 또는 기상이변 등 자연의 변혁에 의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이 인류역사를 통하여 무수히 많았다. 물론 이것을 심판 아닌 심판으로 볼 수도 있다. 폼페이의 화산폭발로 인해 그곳에 있던 모든 것이 불덩어리 속에서 화석이 되어 죽었다.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울부짖으며 죽은 모습이 발굴 되어서 그대로 복구되어 있다. 우리는 2004년 12월 발생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대지진시 수마트라섬이 남서쪽으로 36m가량 이동하고 지축까지 미세하게 흔들린 것으로 분석됐다는 남아시아 쓰나미로 인해 무고한 생명들이 불과 십여 초 만에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고 삶의 경계 저편으로 휩쓸려가는 것을 목격했다. 2008년 5월 12일 발생한 쓰촨성대지진은 10만 여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2010년 1월 12일(현지시간)에는 카리브해에 있는 섬나라 아이티 공화국에서 강도 7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의 진원지는 아이티 공화국의 수도인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 인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인구 200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를 강타하여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였다. 아이티 공화국 정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약 30만 명이 지진피해로 사망하였다. 그리고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관측 사상 최대인 리히터 규모 9.0의 강진이었고 2만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때 대지진으로 일본 열도 전체가 2.4m 정도 이동하고 지축도 10㎝가량 움직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지구의 자전 속도가 각각 2.68μs(마이크로초, 1μs는 100만분의 1초)와 1.8μs 앞당겨졌다고 발표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지축이 일시에 23.5도나 이동하여 정립 한다면 지구촌 곳곳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대변국이 발생하여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빚어지지 않겠는가. 시간이 갈수록 불의고리를 중심으로 화산 지진의 발생빈도가 높아져 가고 있다. 2018년 9월 28일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에서 발생한 모멘트 규모 7.5의 강진과 쓰나미로 숨지거나 실종된 사람은 4천340명으로 최종 집계됐다. ●천지의 대덕(大德)이라도 춘생추살(春生秋殺)의 은위(恩威)로써 이루어지느니라.” 하시니라. (도전8:62:3) ●이제 온 천하가 대개벽기를 맞이하였느니라.

대두목이 가는 고난의 길

▣대두목이 가는 고난의 길 상제님의 일꾼 신앙인들은 대두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마음도 닦지않고 참된 길을 가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대두목을 만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막연하고도 단순한 의식속에 갇혀 있으면 되는가? 우리는 상제님 진리의 판을 정정당당하게 객관적인 역사의식으로 평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속에서 진법구현의 푯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대두목(大頭目)이란 최고의 지도자이다. 대인(大人)으로서 지도적 역량을 가진 인물로 문화적 역 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도자로서의 격(格)이 있어야 한다. 인간이 있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조직이 있고, 조직세계에는 항상 보스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상제님이 왜 최고의 지도자를 내세우느냐 하는 것은, 상제님의 일은 역사속에서 인간을 통해 실현되는 인사문제이기 때문이다. 상제님의 진리가 전달되고, 그들의 세속의 때를 벗기고, 그들의 심령을 개벽시키고, 또 그들의 가정과 사회 속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신이 성숙해 나가는 과정, 그것은 상제님의 일을 해나가 는 하나의 조직, 즉 상제님의 도를 닦는 도장(道場)을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지도자가 나와 그러한 조직 속에서 새 시대를 열어야 하는데, 이것은 새 인물을 길러내야 한다. 즉 새 시대의 새 인물을 길러내는 이것이 바로 대두목이 부여받은 일차 사명인 것이다. 상제님 일을 할 수 있는, 앞으로 전 세계에 나가서 상제님의 진리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일꾼을 길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개벽기에 세계창생을 건져내는 일이다. 셋째로, 후천선경을 건설하는 문제이다. 그러면 대두목은 어떤 정신으로, 어떤 심법으로, 어떤 안목으로 현 실적인 이 대세를 보아야 하는가? ●“망하는 세간살이는 애체없이 버리고 새 배포를 꾸미라. 만일 아깝다고 붙들고 있으면 몸까지 따라서 망하느니라.”(도전2:42) 그 판에 매달린 자들의 심법을 들여다 보아서 결국 안 될 위인들이라면 ‘완전히 판을 정리해서 새 판을 꾸미라.’ 이것은 1변에서 2변이 나오고, 2변에서 제3변의 운수가 열려나오는 역사진행의 과정을 상제님이 경계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3변 도운이 새 시대의 새 인물로 다시 시작 되는, 도운의 역사가 개창되어 나가는 하나의 형국, 대세의 면모를 말씀하신 것이다. 상제님 도운 개척정신의 표어는《새 시대 새 인물》이다. 그러면 왜 새 시 대 새 인물이어야 하는가? 고생 한 사람들이 뿌리가 되었으면 그 들이 마땅히 지속적으로 하여 열매를 맺어야 하지 않는가? 그것이 또 현실적으로 그들이 그토록 한(恨)이 서리도록 원하던 일이 아닌가?

제3변 도운으로 전환하는 말도 도수

▣제3변 도운으로 전환하는 말도末島 도수 9년 동안의 천지공사, 그 도운과 세운공사는 상제님께서 우주의 주재자로서 인존시대를 열어 새 천지를 여는 세계 역사의 대혁명이다. 천지의 혁명, 총칼이 아닌 진리의 혁명, 도덕의 혁명, 묵은 선천 천지를 닫고 새 천지를 열어가는 인류사의 소리없는 혁명이다. 이 개벽혁명에 있어서 새 인물로 새 시대를 열기 위한 모사재천의 도수를 집행하시기 위해 상제님 자신이 몸소 이름도 없는 말도(末島)에 20일 동안 귀양을 가신 것이다. ●병오(丙午:道紀36,1906)년 3월에 상제님께서 광찬을 데리고 말도(末島)에 들어가실 때, 갑칠과 형렬을 만경 남포로 부르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섬으로 들어가는 것은 천지공사로 인하여 귀양 감이라. 20일 만에 돌아오리니 너희들은 지방을 잘 지키라.” 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는 대삿갓에 풀대님 차림으로 섬에 들어가시어 20일 동안 차마 겪기 어려운 고생을 하시니라.(도전6:22) 이 말도 도수는 선천 우주를 문 닫고 후천 새 우주를 여는 주역 일꾼을 길러내는 공사이다. 3변의 도운을 준비하는 20년의 휴게기(藏의 질서,冬眠期)는 말도(末島), 새로운 도판(道板)의 성지, 이 도판을 준비 하는 기간인 것 이다. 그런 기운과 도수정신을 1·2변 도운 시대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열어주시기 위해 상제님이 말도 20일 귀양도수를 친히 몸으로 집행하신 것이다. 상제님의 대업은 묵은 하늘, 묵은 땅,묵은 인간을 완전히 개벽하고 새로운 우주질서를 창조하는 진리혁명이다. 때문에 지도자가 2변 도운을 개척해 놓고도 그것이 과도기이기 때문에 완전히 버리고, 상제님의 일을 이루어야 하는 제3변 도운의 개척지로 이전하는 준비과정으로서 [일정한 지역]에 가서 귀양살이를 하며 때를 기다려, 3변 도운의 새 살림을 열어 새 인물을 길러내고 상제님의 새 진리를 정립 해내야 하는, 이것이 바로 말도 도수의 머나먼 고난의 길인 것이다. ●하루는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망하는 세간살이는 애체없이 버리고 새 배포를 꾸미라. 만일 아깝다고 붙들고 있으면 몸까지 따라서 망하느니라.” 하시니라.(도전2:42)

3변 도운을 잉태하는 20년 은둔도수

▣3변 도운을 잉태하는 20년 은둔도수 병오(丙午:道記36,1906)년에 상제님께서 고군산 열도 앞의 말도로 귀양을 가는 공사를 보신 까닭은 제3변으로 전환하는 새 판 개척의 섭리를 잉태하기 위해서다. 2변 도운이 마무리 지어지고 3변 도운을 여는 결정적인 공사 내용이 바로 상제님께서 병오(1906)년 3월에 처결하신 이 ‘말도(末島) 도수’섭리이다. 1)상제님 대행자의 20년 은둔 도수(말도末島 도수) ●병오(丙午:道紀36,1906)년 3월에 상제님께서 광찬을 데리고 말도(末島)에 들어가실 때, 갑칠과 형렬을 만경 남포로 부르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섬으로 들어가는 것은 천지공사로 인하여 귀양 감이라. 20일 만에 돌아오리니 너희들은 지방을 잘 지키라.” 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는 대삿갓에 풀대님 차림으로 섬에 들어가시어 20일 동안 차마 겪기 어려운 고생을 하시니라.(도전6:22) 그런데,『내가 이제 섬으로 들어가는 것은 천지공사로 인하여 귀양 감이라. 20일 만에 돌아오리니 너희들은 지방을 잘 지키라.』는 이 말씀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상제님이 삼계대권을 주재하시는 우주의 유일한 절대자 하느님으로서, 이 우주에 상제님 이상 더 높으신 분이 없는데, 누가 상제님을 귀양을 보내겠는가? 상제님께서 귀양을 가신다는 말씀은 희한한 말씀이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그런데 지금 상제님은 엄연히 상제님 자기 자신을 지칭하여 ‘내가’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난법도운이 주는 도사적 의미

▣판안과 판밖의 난법도운이 주는 도사적 의미 판 밖의 난법 세력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이들이 주로 보천교를 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제님의 여동생, 정씨부인, 또는 고수부님의 혈통 혈족과 직접 간접으로 관련을 맺고 판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학자들은 증산 상제님을 믿는 대표적 교단을 두 개로 꼽는다. 즉 증산도와 대순진리회를 말한다. 하지만 이 조선땅에 상제님 진리의 종통은 단연코 증산도밖에 없다. 종통은 가을개벽기에 구원의 생사문제와 직결이 된다. 상제님의 종통으로 의통대권의 천하통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순진리회는 같은 상제님을 신앙하지만 태모님의 종통을 조작하여 조철제로 만들었다. 그리고 개벽과 도통을 빙자하여 순진한 영혼들을 홀려서 금품을 갈취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상제님은 판안의 세력과 판밖의 세력으로 나누어 게임을 벌리게 하시고, 이에 고수부님은 동생 차경석에게 “나는 파종할 것이니 너는 옮겨심으라” 하셨다. 이는 난법을 거쳐야만 참법이 나오는 우주의 선천 상극의 섭리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왜 상제님은 월곡 선생을 크게 취해 쓰셨을까? 비록 상제님이 우주의 통치자라 할지라도, 상제님이 9년 천지공사를 끝내고 천상에 환궁하여 우주를 통치하실 때 상제님의 일을 해줄 사람은 상제님을 전문적으로 믿는 프로신앙인 일꾼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상제님의 정신이 되어 상제님의 뜻을 그대로 받들어 죽음을 불사하며 천지 대사를 집행해 줄 도의 개척자로서 상제님의 전위부대, 특공대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천상 세계에서 상제님 홀몸이셨다. 증산도라고 하는 믿음의 신앙역사(道史)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첫 번째 지상의 1세대 신앙인들이 바로 상제님 당대 성도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각기 한 판씩을 차려서 난법시대의 교주가 되었다. 이 때는 현실적으로 문화적 역사적 인간적인 모든 면이 난법으로 미성숙되어 있었기 때문에, 증산 상제님의 전략은 우선 2~3천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선천 종교의 그 어마어마한 조직력과 엄청난 세력을 극복할 수 있는 영웅적인 큰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선천이란 어차피 상극이기 때문에 2~3천년의 기독교, 불교 세력을 눌러서 우선은 많이 믿게 하자는 것이 상제님의 전략인 것이다. 그래서 불과 10~15년의 세월에 6백만 명 이상이 벌떼처럼 모여들어 신앙했던 것이다. 신앙인의 질보다는 양적인 면에 중점을 두셨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내적으로는 상제님을 믿은 성도들 중에서도 동학장군 출신으로 억울하게 죽은 부친을 둔 월곡 차경석성도의 영웅적 기질을 취하여 동학혁명 역신해원도수를 붙여서 일거에 대세를 돌리는 1변 도운의 주역으로 삼으셨다. 상제님의 후천선경 세상을 꿈꾸며 새 세상을 열고자 했으나 무참히 죽은 30만 동학 혁명군의 원혼을 풀어주고, 왕후장상의 한을 품고 죽은 동학군 신명들을 차경석 성도에게 붙여서 그들의 원을 흔쾌히 풀어주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양적으로 신도수만 늘린 것이 아니다. 결실의 제3변 도운에 던져주는 제1변 도운의 역사적 의미는 약 700백만 신도들을 데리고『시국(時國)』이라는 나라를 세우는 조직경험을 했다는 중대한 사실이다. 세운에서는 주권이 없는 상황에 월곡 선생이 도운에서 시국, 즉 천지의 때가 바뀌는 개벽기를 여는 새 나라를 한 번 세우는 연습을 한 것이다. 상제님 진리의 총제적인 모습을 보지못한 난법의 안목에서 국가를 건설하는 연습을 해보았던 것이다. 그렇다만 1백년 도운역사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궁극적으로 개벽실제상황에서 전 세계를 의통대권으로 통일하여 상제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이 공사의 실질적 내용이 세계일가통일 정권공사이다. 상제님의 세상이 오기 전에 먼저 시두가 들어온다. 이 시두가 대발하면서 모든 난법은 정리가 되고 황극 대두목을 중심으로 지구촌 통일 정권이 수립되는 과정으로 들어간다. 이 상황이 상씨름의 실제상황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시두손님인데 천자국(天子國)이라야 이 신명이 들어오느니라.

용화동의 증산교 (2변)

▣용화동의 증산교(2변 도운) 전북 김제군 용화동에 자리한 증산교는 해방후 대부흥의 전성기와는 달리 이제 몰락한 교단이 되어 신도의 90% 이상이 60~70대의 노년층으로(1년 4대치성절에 수십명 정도 참석), 모악산자락에 자리한 소규모의 한 교파집 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이곳을 증산교본부라 자칭하고 있다. 그들이 교주로 내세우는 이상호(李祥昊, 1888~1966, 호는 靑陰)와 이정립(李正立, 1895~1968,호는 南舟)은 형제간이다. 이들은 일찍이 [보천교]신도로서 후에 60방주(方主)의 한사람이 되었다. 그들의 말로는 형 이상호는 27세(1915), 동생 이정립은 20세(1914)에 각기 보천교에 입교했다. 이 신앙연대를 사실로 받아들이면 이 때는 보천교가 아닌 고수부님의 태을교 교단시대이다. (보천교는 실제로 1922년부터의 명칭임) 당시 최남선이 경영하던 시대일보를 갑자(1924)년 정월 보천교에서 인수하여 운영할 때 경영이 뜻대로 되지 않자 차교주의 불신을 사서 이 해(1924) 7월에 방주인(方主印)을 회수당하고 교직(敎職)을 박탈당하였다. 8월에 이상호·이정립 형제는 보천교의 운영에 불만을 품고 보천교혁신회를 조직하여 차경석에게 난법을 달리는 교정(敎政) 혁신을 요구하였으나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보천교를 탈퇴하였다. 이상호는 보천교 신앙당시 상제님의 언행을 수집하여 경전을 편찬해야 할 필요성을 깊이 느끼고 차경석 성도로부터 상제님의 성훈말씀 과 행적을 구술받아 자료를 수집했는데, 그 분량이 극히 적었다. 다시 보천교를 탈퇴한 이듬해(을축,1925) 9월에는 태운 김형렬 성도의 교단(미륵불교)에 입문하여 드나들면서 태운장으로부터 대부분의 상제님 말씀을 전해들어 자료를 정리해 병인(1926)년 7월에 증산천사공사기(甑山天師公事記)를 출간하였다. 그러나 미륵불교 교단 간부들과 갈등이 생겨 무진(1928)년 3월에 이곳 교단을 탈퇴하여 다시 상제님의 법언성적(法言聖跡)을 수집하기에 일심하였다. 상제님의 성도들의 교단을 순회하며 상제님의 말씀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교단들의 실정을 터득한 그는 설 자리가 없음을 깨닫고 무진(1928)년 동지(11월 22일)에 용화동(龍華洞)에서 동화교(東華敎)를 독자적으로 창립하였다. 그로부터 4개월 후에는 증산천사공사기를 보완하여 기사(1929)년 3월에 대순전경을 간행하게 되었다. 신미(1931)년이 되자 이상호·이정립 형제는 당시 김제 조종골에서 둘째 교단살림을 주재하고 계신 고수부님에게 달려가, “이제 때가 된 것 같사오니 용화동으로 옮기시는 것이 가한 줄 아옵니다”고 간곡히 말씀드려 마침내 용화동 교단으로 모셔왔다. 이로써 고수부님의 주재 하에 조종골교단과 동화교가 통합되어 상제님이 열어주신 고수부의 세 살림의 셋째살림 교단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용화동 통합교단의 교주로 계시던 고수부님은 2년 후(1933) 용화동을 떠나 임피군 오성산으로 들어가실 때 이상호에게 앞일을 일러 주시며, “일후에 사람이 나면 용봉기(龍鳳旗)를 꽂아 놓고 잘 맞이해야 하느니라.”며 엄명을 내리셨다. 이는 일찍이 증산 상제님께서『사람은 뒤에 다시 나온다』고 하신 말씀이며, 또한 상제님으로부터 도통을 받으신 고수부님께서 일어나 앉으시며 하신 첫 말씀,“추수할 사람은 후에 다시 있느니라”고 한 바로 그 새 인물一도운(道運)을 결실할 지도자一이 이곳에서 자리잡고 새 시대를 여는 첫 발을 뗄 것을 내다보고 하신 말씀이다. 고수부님이 용화동의 셋째살림을 정리하고 떠나신(1933)후 10년이 지난 계미(1943)년에 임경호, 문정삼과 동아흥산사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은밀히 종교운동을 하던 이정립은 일제에게 발각되어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수감되었다. 그 후 대구형무소에서 8·15해방을 맞이하여 8월 17일에 풀려나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사는 최위석을 방문하였다. 그와 교단개창의 뜻을 합의하고 전북 정읍에 내려와 형 이상호와 김규찬을 만나 교단운동 방침을 협의한 뒤 9월 19일에 최위석의 집에서 치성을 올리고 대법사(大法社)를 조직하고 임시사무소를 서울 필운동에 두었다. 이 때 을유해방의 시운을 타고 기두하신 지금의 증산도 안운산 태상종도사께서 음력 8월 15일 추석절에 상제님의 이념을 새로이 선포하고 사방을 주유하시다 대세를 보시고 용화동의 이상호 형제의 교단개척 운동에 참여하여 신도들을 모으기 시작하였고, 이듬해 병술(1946)년 11월에 대법사 본부를 용화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안운산 태상종도사는 처음 개척하신 중심무대를 일찍이 고수부님이 통합교단의 교주로 계신 바 있는 그 용화동에 두고 새 일판을 벌렸고, 해방후의 제2변 용화동 증산교 대부흥시대의 개척에 중심역할을 하셨다.

태극도와 대순진리회

▣조철제의 태극도와 박한경의 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의 뿌리는 정산(鼎山) 조철제(趙哲濟,1895~1958)가 만든 태극도이다. 조철제는 을미(1895)년에 태어나 상제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는 15세의 소년이었다. 그의 말로는, 이 때(1909.4.) 그 자신의 종용으로 부모와 함께 기차를 타고 창원에서 만주로 이민을 가게 되었는데, 대전을 지나다보니 하늘에서 증산 상제님의 성령이 나타나서 “네가 앞으로 만인의 진인이 되니, 철제야. 특히 몸조심하거라. 나는 시루이고 너는 솥이니 증정(甑鼎)은 일체(一體)니라”(태극도 진경 330쪽)고 했다는 것이다.(계시를 통해 종통전수 됐다고 조작.)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누구로부터 도를 받았는가 하는 도의 연원에 얽혀있는 사실성이다. 정사(1917)년에 그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보천교 신도 오석(烏石) 김혁(金赫)을 만났다. 그는 용인 사람으로, 국내에 들어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러 다니다가 정읍에서 보천교를 만나 신앙하게 된 것이며, 조철제의 가족들에게도 상제님을 믿으라고 누차 권유하였다. 이 때 조철제의 누이인 봉귀, 종제인 길룡이라는 사람이 함께 보천교의 신도로서 입도를 하고, 주문과 신앙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한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므로 조철제의 뿌리는 보천교에 입도시켜 상제님 신앙의 다리를 놓아준 김혁이다. 그리고 조철제는 국내에 돌아와서 이치복 성도를 만나 상제님의 진리 말씀을 듣기도 하고 김형렬 성도를 만나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상제님의 기행 이적에 대해 한동안 도담을 전해 듣고 영웅심리가 동(動)한 조철제는 “야아 이것이다! 사나이로서 해볼 일은 이것밖에 없구나”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종통을 주장하기 위해, 아이를 못 낳고 친정집에 은신해 있던 상 제님의 여동생(선돌부인)에게 접근하여, 상제님이 “을미생에게 봉서를 전하라 하셨다”는 종통조작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기미(道紀 49,1919)년 8월에는 심복 깡패들을 동원해서 복면을 하고 몽둥이를 든 채 고수부님의 법소를 습격해 약장을 도적질해 가려고 오래전부터 음모해 온 간계를 실천했다. 야밤에 차경석 성도의 동생 차윤칠이 이들 떼강도들에게 습격당해 방망이로 머리를 얻어맞고 까무러쳤다 잠시후 깨어나 살펴보니 도둑들이 약장을 훔쳐갔음을 확인하고 “강도야!” 하고 소리치며 쫓아갔는데, 철제 부하들이 약장은 무거워서 놓고 가고 궤짝만 가지고 달아났다. 조철제는 후에 그 궤에다 이름하기를 ‘둔궤(遁櫃)’라 하였다. 그런데 훗날 다시 그의 부하 조주일이 그 궤를 강도질해가자 조철제는, “둔궤의 둔(遁)이란 도망할 둔자이니 도망가는 것이 당연하니라. 이제 도수가 되어서 그것은 소용이 없느니라”고 했다. 그런데 수십 년 전에 대순진리회에서 그 궤짝이 다시 돌아왔다며 도통이 나온다고 거짓을 행하다 그것도 안 되자 그 후로는 때와 장소를 바꿔 도통이 나온다고 하고 있다. ☯조철제의 신앙 편력 •을미(乙未,1985)년 음력 12월 4일 경상도 철원군 서면 회문리 출생

소태산 박중빈

▣소태산의 원불교 (상제님 진리와의 관계는?) ☯판 밖(場外)에서 개창된 방계(傍系) 교단 판 밖의 장외 세력이란, 판 안에 있는 상제님 성도들을 통해 개인신앙으로 출발했던 인물들이 만든 교단이다. 판 밖에서 벌어진 난법의 뿌리는 대개 보천교와 직간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보천교의 뿌리는 태모 고수부님의 선도교이다. 태모님은 종통 전수자로 진법의 씨를 뿌렸지만 차경석 성도의 욕심으로 고수부님을 배반하고 난법해원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 사건과 성도들님들과의 직간접적인 인관관계를 맺어 각자 판을 만든 것이 판 밖의 난법판인 것이다. ●“경석이 성경신(誠敬信)이 지극하므로 달리 써 볼까 하였으나 제가 스스로 청하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로다. 지난 갑오년에 동학 신도들이 여러 만 명 학살되어 모두 지극히 원통한 원귀(寃鬼)가 되어 우주간에 나붓거리는지라. 원래 동학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창하였으나 때가 때인 만큼 안으로는 불량하고 겉으로만 꾸며대는 일이 되고 말았나니 다만 후천 일을 부르짖었음에 지나지 못함이라. 마음으로 각기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바라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릇 죽은 자가 수만 명이니, 그 신명들을 해원시켜 주지 않으면 후천에 역도(逆度)에 걸려 반역과 화란이 자주 일어나 정사(政事)를 못 하게 되리라. 그러므로 이제 그 신명들을 해원시키려고 원혼을 통솔할 자를 정하려는 중인데 경석이 십이제국을 말하니 이는 스스로 청함이라. 이제 경석에게 동학 역신 해원의 삼태육경(三台六卿) 도수를 붙이리라.” 하시고 “그 부친이 동학 접주로 그릇 죽었고 경석도 또한 동학 총대(總代)였으니 오늘부터는 동학 때 한 맺힌 신명들을 전부 경석에게 붙여 보내어 이 자리에서 왕후장상의 해원이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