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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구단 한화의 개막전, 그 명과 암

사진 (경기가 끝난 후의 반응, 2014 개막전 투수운용, 2015 개막전 투수운용) http://blog.naver.com/hgh4252/220313949884 김성근 감독의 복귀와 권혁, 배영수, 송은범이 가세한 스토브리그를 통해 겨우내 한화에게 쏠리는 관심은 가히 대단했다. 설레발로 유명한 세 팀 롯데, 엘지, 기아에게 상대가 안 될 정도였으며 어느 새 국민구단이 되버린 듯 했다. 타칭 국민감독이라는 김성근 감독의 후광효과 일까. (사실 김성근 감독은 단 한번도 국가대표는 맡은 적이 없다.) 덕분에 많은 2012년 부처님 코스프레로 시작된 한화의 인기는 어마어마해졌으며 팬들도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 2006년 데이비스의 삼진으로 끝난 마지막 한국시리즈를 기억하는 한화팬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팬들이 많아졌다. 원래 인기구단이 아니었기에 나만 알던 단골집을 잃은 듯한 아쉬움은 지울 수가 없다. 어릴 적 아이돌 가수들을 좋아하던 친구들이 '개인 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던 것이 기억난다. '개인 팬'이라 함은 이를테면 동방신기가 아닌 동방신기에서 유노윤호만을 좋아하는 소녀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동방신기의 팬들은 이런 유노윤호의 '개인 팬'들을 아주 싫어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때 당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이가 들며 그룹과 단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더 생기니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뭐 어릴 적 소녀들은 그룹이나 단체에 대한 이념적 차이라기 보다는 나는 다섯명을 좋아하는데 너는 달랑 한명을 좋아하냐의 개념에서 접근한 것 같기는 하다. 뜬금없이 '개인 팬'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인 것은 한화에도 그러한 '개인 팬'으로 의심되는 팬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최근 한화 관련 SNS나 스포츠 기사들을 보면 댓글에 정말 어마어마한 한화 팬들이 출몰한다. 한화의 팬이 된지가 햇수로 10년이 넘어가는데 그 10년 중 최대치라고 장담한다. 뭐 때문일까,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 아니다. 김성근 감독의 복귀효과일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구체적 통계치를 내세울 수는 없으나 야구를 좀 봤다고 하는 야구 팬들이라면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김성근 감독은 SK시절 엄청난 팬덤을 모았으며 그의 경질과 함께 SK의 민경삼 단장과 이만수 감독이 500살까지 살 수 있을 법한 욕을 먹은 걸 생각한다면 유추가 가능하다. 그 엄청났던 김성근 팬들이 하나 둘씩 한화로 모여들고 있다. 그래서 시범경기에서 12점, 15점씩 주며 대패를 하고 꼴찌를 해도, 개막전에서 패배해도 감독보다 선수들의 책임이 가중되고 있다. 한화 VS 김성근의 대결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말이다. 이른 바 김성근 감독의 '개인 팬'들의 출몰이 만들어 낸 기현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개막전 이후 각종 SNS와 스포츠 기사에 들끓고 있는 한화 팬들의 한화가 달라졌다라는 말을 당신들은 정말로 인정하는가? 오늘 경기 복기를 해보자. 탈보트의 우여곡절 투구로 한화는 6회까지 단 한점만을 내주고 스나이더의 도움과 모건의 활약으로 넉 점을 뽑아냈다. 지난해에 이은 개막전 승리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지난 해 후반기 대단했던 안정진 트리오에 권혁까지, 개인적으로 3점 차 3이닝 정도는 막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2009년 당시 Jolly V와 E.Via 그리고 2015년

최근 방영되고 있는 엠넷의 [UNPRETTY RAPSTAR]를 통해 졸리브이와 타이미(이비아)가 최대 이슈가 되었다. 가끔 졸리브이의 작업물이 듣고싶을때 듣던 라임어택의 W.W.W를 리뷰하다 보니 이야기하고 싶은게 길어져서 이렇게 따로 글을 쓰게 되었다. 2009년 당시 현재 디스전을 펼치고 있는 타이미가 이비아로 등장했고, 리미 역시 그때 즈음 등장한 것으로 기억하며, 오버클래스의 여성래퍼 Steady B(스테디 비) 역시 2009년 정규 1집을 발표했다. 그리고 명반의 해였던 2009년 당시 발매된 라임어택의 [Hommage]의 마지막 트랙에 Jolly V가 등장했다. 게을렀던 힙합인들이 갑자기 부지런해지며 장인들의 작업물이 쏟아져 당시 이비아였던 타이미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셋 다 큰 관심을 얻지는 못했다. 졸리브이는 단순한 참여곡이기에 언급될 것이 별로 없었고, 스테디 비는 기대감에 비해 현저하게 밑도는 작업물을 내놓아 씬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리미는 다음년도에 내놓은 정규앨범과 디스전으로 수명을 200살까지 늘렸다. 이비아의 경우 말도 안되는 컨셉으로 관심은 받았으나 말도 안되는 실력덕에 엄청난 반대파를 만들어냈다. 현재 당시의 컨셉이 김디지의 강요였다는 이야기, 그로 인해 이비아가 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그 컨셉에 대해서는 덧붙일 말이 없으나 당시 이비아의 랩이 별로였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아니 이비아뿐만이 아니라 스테디 비 역시 별로였으며 Jolly V는 작업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라이브실력 때문에 활발한 활동은 하지 못했고 리미는 유니크원과의 디스전 때문에 그냥 갑자기 너무 많은 욕을 먹었다. 2009년 중반부터 2010년 중반까지, 당시 등장한 네 명의 여성랩퍼는 후에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스테디 비는 이름과 달리 스테디하지 못하고 바로 사라졌고, 리미는 리미와 감자로 활동을 이어가는 듯 하더니 최근 그랜드라인에 합류한 모양새다. 과거와 같은 랩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졸리 브이 역시 그런저런 행보를 계속했으며, 이비아도 그냥 이비아로 활동을 이어가다가 소속사에 소송을 걸고 타이미로 다시 나타났다. 그 내막은 김디지와 이비아 당사자들만이 알고 있을 터이기에 따로 덧붙이진 않겠다. 그리고 이들 중 둘이 다시 수면위로 올라오게 된 계기가 바로 2년 전 힙합씬을 뜨겁게 달구었던 Control대란이다. 타이미 역시 이 Control대란에 참여했는데, 특정인을 디스했다기 보다는 Control에서 켄드릭 라마처럼 그냥 씬 전체를 디스했다. 물론 켄드릭은 하나하나 콕콕찝어 전체를 디스했으나 타이미는 그러진 않았다. 그리고 미국에서 켄드릭의 Control에 대한 다른 아티스트들의 반응처럼 우리나라에서 역시 타이미의 이 곡에 대한 반응으로 졸리 브이의 Bad Bitches가 탄생했다. 이 곡을 통해 점입가경에 이르렀고 타이미는 From Your Bitch로 맞대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