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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박정희 역사왜곡과 우리가 알아야 할 진짜 사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사회 역사적 논란이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특정한 목적으로 정치적으로 역사를 이용하려는 세력들- 대표적으로 뉴라이트 - 과 이에 반발하는 역사학계와 시민단체들의 반응과 주장들이 얽혀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기존에 새로운 연구성과와 시민 사회의 변화에 따른 논란이 아니라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뉴라이트는 이승만과 박정희를 각각 '건국의 아버지'와 '부국의 완성자'로 일컬으며 매우 도식적인 역사관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는 과연 역사적 사실일까요? 그리고 이는 과연 올바른 역사 인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번 화에서는 이 두 인물에 대한 논란을 통해 역사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의 아버지다? 먼저 이승만 대통령을 자유민주주의의 아버지라 일컫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보겠습니다. 1897년 독립협회는 만민공동회를 개최했습니다. 민중들은 이 대중 집회를 통해 국가 정책에 관해 구체적인 의지를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또 근대적 행정기관이었던 중추원을 의회로 만들려고도 했지요. 우리나라에 자유민주주의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었습니다. 만민공동회의 활동 가운데 청년 이승만이 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연사로 인기를 얻고 총대위원으로 선발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개인의 공을 따진다면 지도자였던 서재필이나 윤치호 등이 더 중요하게 언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민공동회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조선 민중의 자발적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1898년 서울 종로에서 열린 만민공동회의 풍경입니다. 만민공동회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조선 민중의 자발적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1917년에는 이상설, 신규식, 박은식 등의 주도로 주권이 황제에게서 국민에게 상속되었다는 내용의 대동단결선언문이 발표됩니다. 대한제국의 멸망이 일제강점기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국(民國)이 세워질 기초가 마련되었다는 의미임을 선언한 것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