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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 스토리 3>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에게 웃음과 눈물을 전하는 영화

따뜻한 추억을 함께 하며... 떠나야 할 때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도록. 안녕하세요. 최종병기입니다. 여러분들 좋아하시는 '닥터구'를 아시죠? 호핀을 자주 방문해주시고 유심히 보신 눈썰미 있는 호피니언이라면 '닥터구'가 요 한 두달 뜸해서 의아하셨을 것입니다. 닥터구는 sk 입사 이후 호핀 런칭 이전 초기 준비단계부터 참여하여 2011년 호핀을 성공적으로 런칭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 '호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분이랍니다. '호핀의 아버지'라고 해서 나이 많은 중년 이상의 아저씨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진 않습니다.(최종병기보다 1년 후배에요. 최종병기도 아저씨 아니냐고 하신다면... 웁니다.) 어쨌든 닥터구는 그 출중한 능력을 인정 받아 회사 내 다른 미디어 사업을 위해 작년 10월 말 팀을 옮기셨답니다. 그것을 말씀을 드리지 않은 것은 그래도 본인이 운영은 안 하지만 '오늘의 추천'을 통해서 계속 호피니언 여러분들과 만나고자 하는 의욕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호핀의 아버지'로서 만 3년을 넘게 영화 운영하며 고생하시다가 떠나는 쓸쓸한 뒷모습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너무 슬퍼하지는 마세요.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여유가 생기시는 대로 오늘의 추천을 통해서 여러분을 만날 거니까요.(왠지 압박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오늘은 최종병기가 드리는 닥터구 헌정 오추(오늘의 추천)입니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이후 두번째 헌정 오추네요. 실은 몇 분 더 나가셨지만-_- 원하신다면 사내 쪽지를 날리시라능.

<엘리자베스타운> 한 남자가 자아를 찾아 여행하는 이야기

가족과 사랑, 그리고 웃음 요즘 들려오는 뉴스는 당최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기 힘든 참혹하고 암담한 얘기가 많은데요, 그 중 특히 답답한 것은 가족 간의 살인 사건인 것 같아요. 사랑으로 가족이 되었던 남편과 아내가, 열 달을 품고 낳은 자식과 부모가, 태어날 때부터 옆에 있던 형과 아우가, 피의자와 피해자가 되어버린 요즘이네요. 영화보다 훨씬 더 현실성 없는 현실에 지친 여러분께, 제게 작은 위로가 되었던 <엘리자베스타운>을 소개드려요. 8년이라는 시간을 쏟아부은 프로젝트의 참패, 그것도 자그마치 10억 불. 드류는 자살을 준비합니다. 죽음의 문 앞에 선 찰나, 전화가 울리고 그 전화는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요. 실패의 무게가 그를 죽일 만큼 짓눌렀지만 진짜 죽음 앞에서라면 아들의 도리는 해야죠. 그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를 때까지만 자살을 유예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 당신의 고향 엘리자베스타운을 향하죠. 드류를 있게 한 드류 이전의 가족이 있고, 그 가족들이 공유하는 따뜻함과 정겨움이 있고, 그들이 사랑했던 드류 아버지 미첼의 웃음이 남아있는 곳, 엘리자베스타운. 잘 웃고 긍정의 기운을 뿜는 사람들이 있죠. 의지의 긍정이 아니라 낙관의 긍정이라고 해야하나. 물 흐르듯이 무리없는 자연스러움, 당당하지도 주눅들지도 않게, 그저 편히 어울어지는 사람이랄까? 이 느낌적인 느낌 같이 느껴지시나요? -_-;;? 이 영화가 제게 작은 위로가 되었던 건 딱 그 느낌 때문이에요. 아버지의 시신을 마주한 드류는 '천진난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려요. 마흔만 되어도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각자 살아온 그 세월 그 시간 만큼 여러분의 얼굴에 고스란히 얹혀지고 있어요. 사랑했던 미첼을 보내는 엘리자베스타운의 가족들은 시종일관 웃으며 행복해합니다. 사람은 떠났지만 그를 추억하고 같이 공유하며 그의 웃음을 기억하는 거죠. 이 영화의 압권은 미첼의 추도식인데요, 드류의 어머니이자 미첼의 아내 홀리가 남편을 보내는 마지막 추도사. 그리고 아름다운 탭댄스. 죽이 잘 맞는 반려자를 만난다는 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행운은 아니겠죠. 아무리 길게 연애를 했다한들 십여 년이겠지만, 부부는 평생을 함께 하는 공동 운명체잖아요. 그 긴 시간을 각자의 밑바닥을 내보이며, 서로의 실수를 눈 감아주며, 개인의 온전한 우주를 침범하지 않고, 상대의 가족을 더 사랑하며, 우리의 아이들을 키워내는. 미첼과 홀리는 그런 부부였을 거에요. (부럽다)

<아메리칸 셰프> 눈이 즐거워지는 푸드 코미디 영화

유쾌하고 맛있는 힐링 무비! 주방이라는 작은 세계. 아기의 이유식을 만드려 가족 모두 잠든 야밤 조용히 야채를 다듬는 엄마의 책임감인 그 곳, 아내의 부재로 난생 처음 가스렌지에 직접 냄비를 올려 라면을 끓이는 내 아버지의 미지의 그 곳, 명절 내내 쏟아지는 그릇 세례에 설거지 머신이 된 며느리의 한숨이 차곡차곡 적립되는 그 곳, 우리의 보통 주방이죠.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생활이 있는 곳. <아메리칸 셰프>는 프로의 주방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메뉴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재료에 대한 엄격한 기준과 같이 일하는 스탭과의 두터운 신뢰와 셰프로서의 온건한 권위 그리고 통제. 칼 셰이퍼는 잘나가는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입니다.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과 노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그런 그가 우리로치자면 파워블로거, 유명 음식 평론가에게 전에 없던 처참한 혹평을 듣게 됩니다. 프로의 자존심은 땅으로 추락해요. sns에 서툰 그가 의도치않게 그에게 결투를 신청하게 되고, 재평가의 기회를 갖게 되지만, 레스토랑의 오너는 칼의 뜻대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너의 주방이 아니라, 나의 레스토랑이라며. 칼은 쫓겨납니다. 과연 그는 다시 어떤 주방을 맞게 될까요. 프로 요리사로서 칼은 늘 새로운 맛, 새로운 요리를 선보이고 싶었어요. 그저 매출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음식 그 자체로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요리사가 되고 싶었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상황이 자기에 요구하는 순응에 굴복하지 않는 프로의 자세죠. 내가 사랑하는 일에 대한 예의와 책임을 지키는 자세. 그러나 또 한편, 일에 바빠 아내와 별거를 하고 아들에 소홀했던 아버지 칼이에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란 쉽지 않죠. 사랑하는 가족과 아끼는 내 일. '빈속으로 절대 보지 말 것'이라는 영화 카피 문구가 경고했듯이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음식이 등장합니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베이컨, 육즙이 베어나오는 스테이크, 우아함이 얹어진 초코릿 케이크, 반가운 고추장에 볶아진 쭈꾸미 볶음까지. 그렇지만 영화를 보고 가장 먹음직스러웠고 따라해보고 싶은 메뉴는 그의 프로 주방에서의 거창한 요리가 아니에요. 사르르 녹는 치즈와 알맞게 노래진 식빵. 프로의 노련함에 부성애가 얹어진 아들을 위한 브런치. 칼은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한 주방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헝거 게임 : 판엠의 불꽃> 여주인공의 액션과 카리스마가 눈부시는 영화

<헝거 게임> 그 시리즈의 서막 12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진 독재국가 ‘호핀'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생존 전쟁 ‘독거게임’. 최종병기의 독재국가인 '호핀'의 각 구역이 모두 힘을 합쳐 항거를 할 경우 '호핀'이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최종병기 : 그래서, 일단 둘로 나눴지. (씨익~) 크게 윗동네, 아랫동네 둘로 나누고, 그 다음 다시 여러 조각으로 쪼개어 그들끼리 이간질을 통해 서로의 옳고 그름, 실리, 정치적 견해 차이,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정책 방향 등... ..과는 전혀 상관 없이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힘을 합쳐 독재국가 '호핀'에 반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먼저 위와 아래로 나눈다. 이념, 이데올로기가 뭔지 잘 모르는 무식한 민초들은 그네들 가족을 사랑하고 함께 먹고 나누며 어우러져 살아가는데 관심이 많을 뿐이다. 그들에게 색깔로 이루어진 심플한 구호와 좁은 땅덩이 안에서의 싸움을 부추겨 상호 의심을 자극하고 끝없는 증오를 키운다. 독재국가 '호핀'에 반대하는 자는 색깔을 칠해 제거하고 대중들은 이 '독거게임'을 TV를 통해 시청하며 열광한다. 어떤 자는 직접 참여하여 반대하는 자들에게 돌을 던지라 선동한다.

<파수꾼> 일그러진 우정이 빚은 비극을 그린 영화

서툰 소통이 빚은 비극, 우리들의 그 시절 어느 날 갑자기 '이제훈'이라는 배우가 등장했죠. 제가 처음 그를 본 건 고지전이라는 영화에서였어요. 그 때의 이제훈은 어리바리한 신참 병사였는데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꽤 비중있는 역할을 맡았고 인상 깊은 연기를 해내어서 저 배우는 누군가 했었더랬죠. 지금이야 (최근 작품은 좀 말아먹..) 이름 석자만 대도 누구나 아는 대배우가 되었지만, 그 때 이제훈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일부러 그의 필모그래피를 뒤져 찾아보게 된 <파수꾼>입니다. 그리고 두둥. 전 남고출신이 아니라서(당연하죠-_-) 남자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잘 몰라요. 응칠에서처럼 에쵸티에 열광하고 치마를 둘둘 말아 입고 공중 화장실 핸드드라이기에 머리를 셋팅하는 여고생 문화는 거쳐왔어도, 짱이라든가 다구리라든가 야리라든가 들어서 아는 이야기는 좀 낯설어요. 이 영화를 보고 리얼하다라는 평이 많던데 그건 제가 잘 모르는 분야니깐 패스. 그런데 고2, 불안하고 아슬아슬했던 그때. 그건 남녀 불문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기태, 동윤, 희준. 셋은 가장 친한 친구였어요. 매일 철도에서 야구를 하며 다져진 우정이죠. 그런데 사소한 오해와 질투로 그 우정이 위태로워집니다.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서툴렀던 그때의 모습 기억들 하시나요. 기태도 동윤이도 희준이도 다 서툴러요. 자기 안의 불만과 분노와 애정과 후회를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 모르는 거죠. 눈빛만으로 상대를 안다는 얘기따윈 믿지 않아요.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초코파이뿐이고요. 개떡같이 말하면 절대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사람과의 대화, 그 관계라고 생각해요.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내뱉는 문장에 숨은 뜻 같은 건 없어요.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만 쥐고 있기보단 알아들으라고 똑바로 얘기해요. 이것이 제가 지난 망가뜨린 관계들에서 얻은 교훈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일이지만, 학창시절엔 친구라는 존재가 엄청나잖아요. 중학교 3년 내내 붙어다니던 베프 친구가 있었는데, 다른 고등학교 배정 받게 되었어요. 그 친구도 저도 잘못한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된 거 였는데, 서운함이 커졌고, 괜히 ​새로운 친구들 사귀는 걸 질투했고 새로 사귄 친구들을 뽐내고 그런 유치한 시간들을 보냈고 오해와 서운함이 쌓여 멀어졌어요. 시간이 지나 우리가 만들었던 그 시간이 너무 아깝고 그리워서 매년 크리스마스때, 그 친구 생일때 카드를 보냈었는데, 나중에 어쩌다 만난 (장소도 기억나) 신촌 어느 2층 커피집에서. 그 친구가 매년 받았던 그 카드가 참 어처구니 없었더란 얘길 했었어요. 쨍- 대화라는 건 이렇게 하는 게 아니구나. 일방적으로는 대화가 될 수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