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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은 닛폰산교(日本産業)의 약칭
... <사진= 얼굴 사진은 닛산 창업주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 ... 닛산 자동차는 도요타, 혼다차와 다르게 창업자의 이름을 따지 않았다. 지금의 브랜드명 닛산은 ‘닛폰산교’(日本産業)라는 회사의 약칭이다.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는 누구? 닛산(日産)자동차는 1933년 12월 도바타주물(戶畑鑄物)을 이끌던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1880~1967)라는 이가 설립했다. 이때의 이름은 ‘자동차제조주식회사’이다. 1934년 6월, 통칭 닛산으로 불리는 닛폰산교(日本産業)의 전액 출자를 받아 회사 이름을 닛산자동차주식회사로 바꿨다. 아유카와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도쿄 제국대학 공과 대학을 나온 그는 신분을 속이고 직공으로 일했다. 야마구치 현 야마구치시에서 태어난 그의 집안은 평범하지 않다. 그의 외할머니가 유력 정치인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1836-1915, 조선 주재 공사 역임)의 누나다. 아유카와는 1910년 이노우에의 지원을 받아 도바타주물(현 히타치 금속)을 설립했다. 아유카와는 1928년 ‘구하라 광업’이라는 회사를 인수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닛폰산교’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아유카와는 닛폰산교를 중심으로 일본광업, 히타치제작소, 일본수산, 닛산자동차를 거느렸다. 신흥 재벌 닛산콘체른(Konzern)이었다. 닛산콘체른의 중심인 닛폰산교는 1937년 만주국으로 이주해서 만주중공업개발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과 만주에 걸쳐 콘체른을 형성하려 했다. 당시 아유카와를 만주를 불러들인 이는 현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56-57대 총리)였다. 일본 상공성의 유능한 관료였던 기시는 만주국의 산업차장으로 발탁돼 1936년 부임했다. 패전으로 닛산콘체른 해체...닛산자동차 독립 당시 만주에서 일했던 기시 노부스케, 아유카와 요시스케, 남만주철도(만철) 사장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 세 사람을 ‘만주의 3스케’로 부른다. 아유카와의 닛산콘체른 야망은 태평양 전쟁 패전으로 좌절됐다. 전후 연합국에 의해 콘체른이 해체되면서 닛산자동차가 독립했다. 이후 닛산은 1966년 스포츠카를 만들던 프린스자동차와 합병하면서 기술력을 한층 더 높였다. ‘판매의 도요타, 기술의 닛산’이라는 말은 이런 이유 때문에 나왔다. 1966년 닛산은 써니...도요타는 코롤라 출시 닛산은 1966년 2월 기존 ‘블루버드’를 대체할 신형 대중차 써니(Sunny)를 출시했다. 그해 10월 도요타의 코롤라(Corolla)도 세상에 나왔다. 코롤라는 라틴어로 ‘화관’(花冠)을 뜻한다. 당시 도요타는 라이벌 닛산의 써니를 의식, 코롤라의 배기량을 갑자기 바꾸면서 신형 엔진 코드에 Z자를 새겨 넣었다. Z는 러일전쟁에서 연합 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가 발틱 함대를 격파했을 때 걸었던 깃발을 상징한다. 도요타의 ‘타도 닛산’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자동차공업회(JAMA:Japan Automobile Manufacturers Association)는 도요타와 닛산이 경쟁을 벌이던 1966년 그해를 일본 ‘마이 카’ 시대의 원년(The first year of My Car)이라고 표현한다. 아유카와는 태평양 전쟁 이후 어떻게 됐을까. 그는 닛산그룹 각사의 출자를 받아 ‘중소기업 조성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중소기업 진흥에 힘썼다. 말년까지 정치인(참의원)으로 살다 1967년 사망했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25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창업 가문은 도요다...회사는 도요타
... <사진= 작은 사진은 도요타의 실질적 창업자인 도요타 기이치로.> ... 도요타(TOYOTA)자동차도 혼다차와 마찬가지로 창업주의 이름을 회사명으로 쓰고 있다. 하지만 도요타차는 사정이 좀 다르다. 창업 초기, 브랜드명이 도요타(TOYOTA:トヨタ)가 아닌 도요다(TOYODA:トヨダ)였다는 걸 알고 있는가? 창업 가문의 성(豊田)은 도요다(トヨダ, とよだ)라고 읽는다. 창업의 토대를 마련한 도요다 사키치(豊田佐吉:とよだ さきち)와 실질적 창업주인 그의 아들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とよだ きいちろう)가 그렇다. 그래서 처음에는 창업 가문의 성을 따서 도요다(トヨダ)라고 했다. 영문명도 TOYODA가 됐다. 창업 당시인 1935년 7월 TOYODA로 상표등록을 했다. 1년 뒤인 1936년 도요타 최초의 양산형 승용차 AA형엔 알파벳 TOYODA 엠블럼이 장착됐다. 하지만 미국 수출을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TOYODA 발음이 문제였다. 창업자 도요다 기이치로는 외국인이 영어 회사명을 발음하기 어렵다고 해서 TOYOTA(トヨタ)로 바꾸도록 지시했다.(아사히신문 특별 취재반 저 ‘도요타시 1번지’) 도요다에서 도요타로 바꾼 이유 도요타 사사(社史)에 따르면, TOYODA(トヨダ)에서 TOYOTA(トヨタ)로 바꾼 다른 이유 3가지가 더 있다. ①‘상업,미술적으로 봐서 촉음을 붙이지 않는 것이 상쾌하고, 말의 음색(소리의 울림)도 좋다(商業美術的に見て、濁点を付けないほうが、さわやかであり、言葉の調子(音の響き)も良い)는 것이다. 또 ②일본어 도요타(トヨタ)의 획수가 8이라 재수가 좋다.(画数が8で縁起が良い)는 점도 작용했다. 끝으로 ③도요다라는 (가문의) 이름에서 멀어지게 돼, 개인 기업에서 사회 존재로의 발전적 의미를 담고 있다.(トヨダ<豊田>という人名から離れることにより、個人的企業から社会的存在への発展の意味を含める)고 한다. 그렇게 자동차는 도요타(トヨタ)가 정식명칭이 됐다. 그럼, 도요타가 진출해 있는 도시 풍전시(豊田市)는 도요타라고 읽을까, 아니면 도요다라고 읽을까. 도요타(トヨタ)로 읽는다. 고로모시가 도요타시로 ‘상전벽해 ’ 도요타차가 훗날 도요타시가 되는 고로모쵸(擧母町, 이후 고로모시)에 공장을 짓고 진출한 것은 1938년이다. 이 지역은 원래 양잠업이 번성했다. 1959년 1월, 고로모시 당국은 도요타차의 회사명을 그대로 시 이름으로 삼았고 도요타 본사의 소재지에 ‘도요타시 도요타쵸 1번지’라는 행정상의 선물까지 안겨줬다. 물론 ‘고로모’라는 이름을 지키자는 의견도 상당수였다고 한다 도요타차의 본거지인 도요타시는 이후 인구가 종전보다 3배 가량 늘어나는 등 크게 발전했다. 양잠업을 하던 그 시골 동네는 이름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것이다. . 도요타차의 뿌리는 자동직기를 만드는 등 ‘발명왕’이라 불린 도요다 사키치(1867~1930)에서 출발한다. 자동직기에서 자동차로 사업 영역을 바꾼 것은 장남인 도요다 기이치로(1894~1952)였다. 도요다 사키치~도요다 아키오로 이어져 기이치로는 1929년 아버지와 개발한 자동직기 특허를 당시 세계 최대였던 영국 직기회사에 10만 파운드(당시의 100만엔)에 팔았다. 이를 자본으로 1933년 도요타자동직기제작소 내에 ‘자동차부’가 만들어졌다. 도요타차의 탄생이다. 회사는 1937년 8월, 현재의 이름인 ‘도요타자동차주식회사’가 되었다. 창업 가문은 도요다 사키치(豊田佐吉),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 도요다 쇼이치로(豊田章一郞)를 거쳐 현 회장 겸 사장인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로 이어진다. 참고로 도요타의 주력 차종 렉서스(LEXUS)는 독일어 LUXUS(사치, 일류를 뜻함)에서 만든 조어다. LEXUS는 6개 후보작(차종명) 중에서 2위에 올랐다. 하지만 고급스러움이 느껴지고, L과 X가 들어간 5문자는 발음하기 좋으며, 기억하기 쉽다는 이유로 최종적으로 선택됐다. 1986년 10월의 일이다. (하세가와 요조 저 '렉서스, 도요타의 도전')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24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FT “닛산, 한국 철수 검토”...닛산은 “억측 보도”
> 8월 닛산차 한국 신규 등록 전년 대비 87% 감소 > 영업이익 4분기연속 감소에 1만 2500명 감축 예상 > 닛산 담당자 “억측 기사에는 코멘트 하지 않겠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한 ‘닛산 한국시장 철수 검토’(Nissan weighs pulling out of South Korea) 기사에 일본 언론들이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FT는 6일 “한국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닛산의 현지 판매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며 “철수를 위한 논의를 가속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8월 신규등록 된 닛산 브랜드 자동차는 전년 동월 대비 87% 감소한 58대에 그쳤다. 산케이신문은 7일 오후 관련 기사를 온라인 톱으로 처리하면서 “불매운동으로 판매가 90% 감소했다(不買運動で販売9割減)”고 보도했다. 산케이는 “닛산은 2020년 3월기까지 연결영업이익이 4분기 연속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심각한 실적 부진에 빠져있다”며 “7월에는 세계에서 약 1만2500 명의 인원 감축 방침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산케이는 “이런 닛산이 효율성을 위해 한국 사업을 재검토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동안 닛산이 한국시장에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배임 혐의로 기소된 카를로스 곤 전 닛산르노회장은 르노삼성자동차 부산 공장에 닛산의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로그’ 생산을 위탁하는 등 한국 사업을 강화해 왔다. 하지만 그의 몰락과 한일 관계 악화는 닛산의 한국 사업 철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닛산은 FT의 보도를 전면 부인했다. 산케이는 7일 닛산 홍보담당자를 인용 “억측 기사에는 코멘트를 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74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열흘 만에...‘한숨’ 돌린 닛산
#피아트, 열흘 만에 르노 합병 철회 철회는 했지만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개입주의적 산업정책’이 도마에 올라 있다. 르노에 합병을 추진(5월 27일)했던 이탈리아 자동차메이커 피아트·크라이슬러(FCA)가 그 방침을 돌연 철회한 건 지난 6일. 철회 배경에는 “프랑스 정부가 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ᐅ관련기사 르노&피아트 합병 추진...닛산 ‘아닌 밤중에 홍두깨’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97 르노의 대주주는 프랑스정부로, 주식 15%를 소유하고 있다. 르노는 그동안 경영진에 관료 출신이 많아 보수적인 회사로 평가받아 왔다. 르노에게는 ‘흑역사’가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에 협력했다는 비난을 받았던 것. 1945년 당시 드골 대통령은 이런 르노의 모든 주식을 몰수해 회사를 국유화했다. 프랑스정부가 사기업인 르노의 대주주가 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정치적 요구와 경제논리 사이 ‘균형 잡기 한계’ 이번 철회는 정치적 요구와 경제 논리 사이에서 프랑스 정부가 보여준 ‘균형 잡기의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경제학자 엘리 코헨은 미국시사주간지뉴스위크(8일)에 “프랑스정부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것처럼, 통합에 의한 비용 절감을 추진하는 동시에 일자리를 지키려는 모순을 범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뉴스위크의 분석이다. “프랑스정부는 앞으로도 전략적인 국내 산업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발언권을 포기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르노처럼 국가를 대표하는 기업이 관련된 ‘대형딜’이 생각대로 되지 않을 경우, 그 정치적 위험을 무시할 여력이 없다” #알스톰 인수한 GE의 인력감축 계획 '선례' 이미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동부 지역에서 고용 유지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2014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알스톰의 가스 터빈 사업을 인수하면서다. 뉴스위크는 “당시 GE는 프랑스정부에 일자리 창출을 보장했었지만, 그후 수요 감소에 대한 약속 철회로 인력감축이 부득이한 상황이 되었다”고 전했다. #르노 합병으로 또다시 고용문제 불거지면? GE의 인력 감축 계획에 ‘앗 뜨거’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마크롱 대통령으로서는 르노 합병으로 또 다른 고용문제가 촉발될 경우, 정치적 데미지가 클 수밖에 없다. 프랑스정부가 당초 르노 합병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가 방향을 튼 이유다. 물론 르노·닛산·미쓰비시 3각 연합의 한 축인 닛산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아무튼 닛산은 FCA의 철회로 한 숨을 돌리게 됐다. <김재현 기자>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03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르노&피아트 합병 추진...닛산 ‘아닌 밤중에 홍두깨’
닛산자동차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다.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회장의 ‘실각’ 이후 최대주주인 프랑스 르노가 경영통합을 타진해 오고 있는 시점에서 사건이 터졌다. 구미자동차그룹 FCA(피아트·크라이슬러·오토모빌스)가 5월 27일 르노에 깜짝 합병을 제안하면서다. FCA는 2009년 피아트그룹이 파산보호중인 미국 크라이슬러를 인수한 후 2014년 양사 합병(Fiat Chrysler Automobiles)으로 탄생한 회사다. 르노는 현재 동맹(alliance)이라는 이름으로 닛산·미쓰비시와 연합 체계를 이루고 있다. 르노가 닛산의 지분 43.4%를, 닛산이 르노의 주식 15%를 소유하고 있다. 지난 4월 르노 측이 닛산 측에 합병을 제의했다. 하지만 닛산은 이를 거부했다. 그런 긴장 상태가 계속되는 상태에서 FCA와 르노간의 합병 이야기가 흘러 나온 것이다. FCA는 통합 제안에 대한 보도자료를 내고 “합병은 50대 50, 네덜란드에 지주회사를 두고 그 산하에 르노와 FCA가 포진하는 형태”라고 발표했다. FCA는 통합으로 “연간 50억유로(약 6조6000억원)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보도자료 내용: In excess of €5 billion estimated annual run rate synergies incremental to existing Renault-Nissan-Mitsubishi Alliance (Alliance) synergies)고 했다. FCA(484만대)와 르노 연합세력(르노, 닛산 미츠비시 3사 1075만대)의 통합이 실현될 경우, 세계 자동차 판매 대수에서 독일의 폭스바겐(1083만대)과 도요타(1059만대)를 제치고 톱자리(1559만대)에 오르게 된다. ① 통합의 시너지 효과는? 통합 추진에는 르노 연합세력과 FCA 사이에 복잡한 이해관계와 득실이 얽혀있다는 분석이다. 일본과 외국 언론들의 보도의 요점은 통합에 따른 효과와 닛산의 스텐스 2가지다. 니혼게이자이는 “4개사의 세계 판매는 총 1500만대를 넘어 선두가 된다”며 “미국 중국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강점을 가진 기업들이 손을 잡는 것”이라고 했다. 산케이신문은 “FCA는 수익의 대부분을 북미에 의존하고 있고, 유럽이 주력 시장인 르노와 보완 관계에 있다”며 “고급차 브랜드를 보유한 FCA가 대중차 위주인 르노에게 효과적인 파트너가 될 것으로 보여진다”고 했다. ② 닛산의 스텐스는? 아사히신문은 “르노가 FCA와의 경영통합을 우선하면, 닛산에 대한 압력은 일단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ルノーがFCAとの経営統合を優先すれば、日産への圧力はいったん弱まる可能性もある)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르노가 FCA와의 통합을 통해, 닛산과의 합병 협상을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닛산은 지금까지 르노의 통합 제안을 거부해 왔지만, 르노측의 규모가 확대되면 협상력이 약화 수도 있다”고 했다. SBI 증권의 한 수석 에널리스트는 블룸버그에 “르노와 FCA가 가지지 않은 새로운 기술을 닛산이 제공할 수 있다”며 “다만, 닛산은 통합에 반대할 것이다. 철저하게 항전하고 있는 닛산을 힘으로 통합하려고 하면 잘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③ 르노와 FCA엔 카리스마 경영자가 없다? 그런데 아사히신문은 다른 시각에서 통합 제안을 바라봤다. 이 신문은 “이 두 그룹(르노와 FCA)에는 공통점이 있다”며 “그룹을 좌지우지 했던 카리스마 경영자가 돌연 사라진 것”(この2グループにはある共通点がある。グループを引っ張ったカリスマ経営者が突然消えた、ということだ。)이라고 전했다. 아사히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보도하지 않았다. 아사히의 보도대로, 르노와 FCA에는 지난해까지 카리스마 CEO가 존재했었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전 회장과 FCA의 세르지오 마르치오네(Sergio Marchionne) CEO다. 하지만 곤 회장은 회사 자금 등을 유용한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장 도미니크 세나르 르노 회장이 뒷수습을 하고는 있지만, 카리스마가 곤 전 회장에는 미치지 못한다. 곤 전 회장의 구속 여파로 닛산의 회사 이미지는 치명타를 입었고, 이는 경영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일본 언론들은 최근 “닛산의 2018회계연도(2018년 4월~2019년 3월) 순이익이 전년도 대비 57.3% 줄어들었다”고 보도했다. FCA의 경영자 상황은 어떨까. FCA는 2018년 7월 21일 마이클 멘리(Michael Manley)를 새 CEO로 임명했다. 마이클 멘리는 2009년부터 FCA 지프(Jeep)부문 수장을 맡아왔다. 마이클 멘리의 CEO 지명 이전, FCA에는 ‘그 유명한 경영자’ 세르지오 마르치오네(Sergio Marchionne)가 있었다. 2004년 CEO에 오른 그는 14년간 FCA를 이끌었다. 세르지오 마르치오네는 이탈리아 출신 캐나다 사업가다. 가족들이 캐나다로 이민해 오면서 캐나다, 이탈리아 이중 국적을 가졌던 그는 유창한 영어, 불어, 이탈리아어 실력을 경영에 이용했다. 피아트그룹이 크라이슬러를 인수(2009년)한 것도 그의 CEO 재직 시절 일이다. 세르지오 마르치오네는 자동차 산업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인물로 평가된다. 크라이슬러 인수(2009년)를 주도했고, 페라리 사업을 분사(2015년)했던 그런 세르지오 마르치오네는 돌연 지난해 7월 25일, 어깨 외과수술에 따른 심각한 합병증으로 사망(66세)했다. 해외언론들은 그의 업적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예를 들면, 블룸버그는 당시 “세르지오 마르치오네가 회사 가치를 10배 이상 향상시켰다”고 보도했다. 미국 비즈니스 채널 CNBC는 세르지오 마르치오네를 ‘자동차 산업의 전설’(legend of automotive industry)로 묘사했다. 또 영국 파이낸셜타임즈는 ‘그의 세대에 가장 과감했던 비즈니스 리더 중 한 사람’(one of the boldest business leaders of his generation)이라고 지칭했다. ①+②+③ 3가치 측면에서 르노와 FCA의 통합 제안을 종합해 봤다. 아직까지는 실현 여부가 미지수다. 일본의 한 매체(response.jp)는 “통합 제안이 닛산에 길(吉)이 될지, 흉(凶)이 될지는 미묘하다”고 전했다. 르노의 인수 제안에 강하게 버텨왔던 닛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김재현 기자>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97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재팬올 서포터즈가 본... ‘닛산 사태 그후’
재팬올 서포터즈 선설아씨가 일본 경제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 후,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선씨는 다이어트&피트니스 관련회사 ‘다노’의 글로벌비즈니스팀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일본에서 사회경험을 먼저 시작한 ‘재팬 덕후’입니다. 이번 회는 ‘가이아의 새벽’(ガイアの夜明け)편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매주 화요일 밤 TV도쿄에서 방송되는 경제 다큐입니다. 3월 마지막 주인 26일에는 카를로스 곤 사태를 빚은 닛산자동차와 부실시공 의혹을 받고 있는 부동산회사 레오팔레스를 조명했습니다. 선설아씨는 ‘가이아의 새벽’이 이날 방송한 닛산자동차 부분을 정리했습니다. <편집자주> 닛산 자동차의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이후 4번째로 체포(보수 허위기재, 회사자금 유용 의혹)돼 구속 수감 중이다. 곤 회장의 부정 사태로 닛산자동차의 브랜드는 큰 상처를 입었다. 10년간 장기 집권했던 곤 전 회장이 닛산 회장직을 공식 사임한 건 지난 1월 말이다. 르노그룹은 타이어 제조사 미쉐린의 CEO인 장 도미니크 세나르(Jean-Dominique Senard)를 르노의 새 회장으로 선임했다. 곤 전 회장의 사임과 세나르 회장의 선임으로 르노-닛산-미쓰비시 3각 연합(Alliance)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전 세계 자동차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8일 닛산자동차는 임시주총을 열고 곤 전 회장의 이사직 해임안을 가결시켰다. 이로써 곤 전 회장은 닛산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날 르노 세나르 회장의 닛산 이사직 취임안도 가결됐다. ‘가이아의 새벽’ 취재진은 곤 전 회장 이후 닛산의 판매 시장, 3각 연맹, 직원들의 반응을 조명했다. 먼저 판매시장이다.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중고차 판매점에서는 한 때 잘 나가던 닛산의 미니밴이 최근 1,2개월간 전혀 문의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 닛산차 전체로는 작년 12월 이후 10~20% 문의가 줄었다고 한다. 시장에 남아도는 자동차가 많아지면서 당연히 가격도 하락했다. 닛산 공장에도 변화가 몰아치고 있다. 닛산차 공장은 작년 대비 생산율이 크게 감소하면서 3교대 근무체제가 2교대로 바뀌었다. 하청업체들도 종업원의 잔업과 휴일 근무를 줄여 나가고 있다. 닛산은 2019년 3월기 최종 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약 45% 감소했다. 북미 시장의 판매 대수는 8.5% 줄어들면서 수익이 악화됐다. 3월 12일 닛산・르노・미츠비시 자동차간의 연합 이사회(Alliance Board)가 신설됐다. 의사회의 의장은 세나르 회장이 맡았다. 일본 미디어로는 처음으로 ‘가이아의 새벽’ 취재진이 르노 본사에서 세나르 회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세나르 회장은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자신감의 배경엔 3사의 자본관계가 존재한다. 이미 알려진대로 닛산이 르노에 15%를 출자했고, 르노는 닛산에 43%를 출자한 대주주다. 또 프랑스 정부는 르노의 대주주(15%)로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세나르 회장은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르노의 주주이며, 나는 비즈니스를 함에 있어서 주주를 엄격히 존중할 것이다. 정부와의 관계는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이며, 정부 또한 내가 책임자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취재진이 이사회를 언급하면서 “이것이 경영통합을 위한 단계가 아닌지”를 물었다. 그러자 세나르 회장은 르노와 닛산의 경영통합에 관해서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은 3사의 연합을 강화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세나르 회장의 이런 발언에 취재진은 일본 자동차 애널리스트의 의견을 담았다. 이 애널리스트는 “세나르 회장이 닛산의 보호자인 양 자세를 취하고는 있지만, 경영자로서 최후에는 얼라이언스(연합)를 성공시키고, 이를 불가역적으로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에서는 닛산 직원들의 반응도 전했다. 3각 연합의 새로운 체제에 대해 현장 사람들은 어떤 생각일까. 한 직원은 “당장 두려움이나 불안함은 없지만, 뒤로 미루어진 것일 뿐, 언젠가는 불거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직원은 르노와의 경영통합을 불안하게 느끼면서도 세나르 회장에게 기대하는 눈치였다. ‘가이아의 새벽’(ガイアの夜明け)이라는 프로그램 제목처럼 닛산도 새로운 새벽(夜明け)을 맞고 있다. 연합 이사회(Alliance Board)가 닛산의 거버넌스(경영체제)를 어떻게 개선할 지가 주목된다. <선설아 재팬올 서포터즈, ‘다노’ 글로벌비즈니스팀 근무> 기사출처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49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월급쟁이 사장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
최근 일본 사회는 두 외국인 CEO의 엇갈린 명암(明暗)을 착잡하게, 놀랍게 지켜봤다. ‘암’(暗)은 익히 알려진대로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다. 도쿄검찰청이 곤 전 회장을 전격 체포한 건 지난해 11월 19일이다. 구속기간 만료 석방→재체포→구속 기간 연장→추가기소 등을 통해 ᐅ보수 축소 신고 혐의 ᐅ공금 유용 혐의 ᐅ회사법 위반(특별 배임) 혐의 ᐅ금융상품 거래법 위반(유가증권보고서 허위 기재) 혐의가 적용됐다. 나락으로 떨어진 ‘인기 CEO’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흉흉했다. 다케다약품의 웨버 사장 채무까지 8조가 넘는 M&A 성사 도박일까? 아니면 결단일까? 또 다른 사람. 곤 회장과 정반대 ‘명(明)’의 인물은 다케다약품(武田薬品)의 크리스토퍼 웨버(Christophe Weber‧52) 사장이다. 프랑스 태생인 그는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 프랑스 회장 등을 거친 후 2014년 다케다약품의 첫 외국인 사장으로 영입됐다. 그런 웨버 사장은 지난해 봄, 놀라운 일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일본 역사상 전례가 없는 7조엔 M&A였다. 먹잇감은 아일랜드계 다국적 제약사 ‘샤이어’(Shire:희귀질병 전문 의약품 회사). M&A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두 회사 내부에서 모두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인수가 표면화 된 것은 지난해 3월 말. 다케다측이 제시한 인수 가격과 조건에 대해 샤이아 경영진은 연이어 ‘노(NO)’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거듭된 협상을 거쳐 5월 초에야 합의가 이뤄졌다. 해가 바뀌어 지난 1월 7일 인수 설명회에 이어 다음 날인 8일 정식으로 M&A가 성사됐다. 웨버 사장의 이번 인수는 곤 회장만큼은 아니지만, 일본 업계에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7조엔도 감당하기 힘든 금액인데, 여기에 샤이아가 안고 있는 약 1조 5000억엔의 부채까지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이재우 기자>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46 )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부산IN신문] 자동차 부품 생산용 프레스(PRESS) 금형 설계·제작 전문기업, 인스텍(INNS) [부산창조기업지원센터 ⑤]
인스텍(INNS), 프레스(PRESS) 금형 개발로 뭉친 젊은 엔지니어들의 도전 인스텍(INNS)은 자동차 부품 생산용 PRESS 금형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기업으로 현재 자동차 부품 분야의 금형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금형은 기계에 들어가는 부품 모양을 떠내는 ‘틀’ 개념으로, 자동차 분야는 물론 조선기자재, 중장비 등 부품 생산을 위한 모든 PRESS 금형을 만든다. 과거 사람의 손으로 만들던 금형부품의 특성상 국내 금형 분야의 오너는 대부분 나이가 많은 장인들로, 타고난 손재주를 바탕으로 꼼꼼하고 완벽하게 금형 작업을 해냈다. 그러나 산업의 발전으로 기계의 부품이나 재료도 다량생산이 가능해지고 소비자의 기대에 따라 자동차의 종류와 기능이 많아지면서 PRESS 공법을 통해 초고속으로 제작하고 있다. 인스텍의 윤종화 대표는 “1998년부터 2016년까지 자동차 엔지니어로 일하며 자동차 개발, 품질, 원가 등의 경력을 쌓아 가는 동안 엔지니어계의 장인들을 많이 만나왔다.”며 “그러는 동안 언제나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금형 개발에 대한 꿈이 있었다”고 밝혔다. 인스텍은 좀 더 창의적이고 발전된 금형 기술 설계와 개발을 실현시키고 싶은 마음을 가진 젊은 엔지니어들의 의기투합으로 만들어진 신생기업으로, 해외로 진출해 한국의 우수한 금형기술을 알리는 것이 목표다. 인스텍은 IN New Solution의 약자로 ‘IN’은 금형 설계를 위한 창의력, 도전정신 등 모든 해결 방법이 우리 안에 있다는 뜻이다. 기업이 항상 마음속에 창의성과 끈기를 담아 고객을 대하고, 사업에 임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스텍의 주요 고객은 현대, 기아, 닛산 등 자동차 기업의 협력사로, 부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틀의 형태를 뜨고 만들어 주는 것이다. 협력사는 차종의 종류가 다양하며 금형의 생존 주기가 평균 2~3년이기 때문에 일정한 텀을 두고 지속적으로 작업에 들어가고 있다. 인스텍은 효율적인 작업으로 작업 일정의 지연을 막고, 샘플 금형의 품질 수준이 높아 호평받고 있다. 프로젝트를 의뢰하면 3D 모델링으로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며 고객이 원하는 모형에 가장 가까운 금형 제작을 시도한다. 나날이 변화하는 소재 변경을 성형해석을 통해 분석해 금형을 제작하는데 금형 기술은 전기차, 수소차 등 가솔린 구조에서 변화되는 사업에서도 지속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한편, 인스텍은 최근 자체적으로 자동차 브랜드를 생산하기 시작한 베트남에 한국의 우수한 금형 기술이 앞으로 많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며 베트남 현지 공장 설립과 기술협약으로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부산창조기업지원센터 #인스텍 #프레스 #PRESS #자동차부품 #금형설계 #금형제작 #3D모델링
닛산은 닛폰산교(日本産業)의 약칭
닛산 자동차는 도요타, 혼다차와 다르게 창업자의 이름을 따지 않았다. 지금의 브랜드명 닛산은 ‘닛폰산교’(日本産業)라는 회사의 약칭이다. 닛산(日産)자동차는 1933년 12월 도바타주물(戶畑鑄物)을 이끌던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1880~1967)라는 이가 설립했다. 이때의 이름은 ‘자동차제조주식회사’이다. 1934년 6월, 통칭 닛산으로 불리는 닛폰산교(日本産業)의 전액 출자를 받아 회사 이름을 닛산자동차주식회사로 바꿨다. 아유카와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도쿄 제국대학 공과 대학을 나온 그는 신분을 속이고 직공으로 일했다. 야마구치 현 야마구치시에서 태어난 그의 집안은 평범하지 않다. 그의 외할머니가 유력 정치인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1836-1915, 조선 주재 공사 역임)의 누나다. 아유카와는 1910년 이노우에의 지원을 받아 도바타주물(현 히타치 금속)을 설립했다. 아유카와는 1928년 ‘구하라 광업’이라는 회사를 인수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닛폰산교’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아유카와는 닛폰산교를 중심으로 일본광업, 히타치제작소, 일본수산, 닛산자동차를 거느렸다. 신흥 재벌 닛산콘체른(Konzern)이었다. 닛산콘체른의 중심인 닛폰산교는 1937년 만주국으로 이주해서 만주중공업개발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과 만주에 걸쳐 콘체른을 형성하려 했다. 당시 아유카와를 만주를 불러들인 이는 현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56-57대 총리)였다. 일본 상공성의 유능한 관료였던 기시는 만주국의 산업차장으로 발탁돼 1936년 부임했다. 당시 만주에서 일했던 ...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이재우 기자>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7 )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전처의 폭로가 시발점…예고된 곤의 몰락
(마크롱 대통령(왼쪽)과 카를로스 곤 회장. Photo=CNN 영상 캡처) 카를로스 곤(닛산, 르노, 미츠비시 자동차 3사 회장)은 희생양일까, 아니면 카리스마를 내세운 폭군이었을까. 곤 회장은 버블 붕괴 이후 일본에 진출한 ‘흑선 경영자’(黒船経営者: 서방 세계에서 온 경영자)의 상징적인 존재다. 그는 부채 2조 엔을 떠안은 닛산 자동차를 부활시켜 전세계 자동차 메이커의 거물로 거듭났다. 그런 그는 보수 축소 신고로 체포돼 닛산 부활의 일등공신에서 순식간에 ‘역적’으로 내몰렸다. 도쿄상공회의소는 19일 “곤 회장이 지난 9년 동안 받은 보수가 90억900만 엔(한화 902억)에 달한다”고 밝혔다.(일본은 2010년 3월부터 1억엔 이상 받는 상장기업의 임원 보수를 공개하고 있다.) 도쿄상공회의소의 자료에 따르면, 곤 회장은 1년에 100억원을 받았다는 것이 된다. 이번 사건으로 곤 회장의 ‘공’(功)은 물거품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일본 전방위에서 뒤늦게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곤 회장은 가는 곳마다 인정사정 없이 비용 줄이기를 감행해 ‘코스트 커터’(Cost Cutter)라는 별명이 붙었다. 닛산에서만 2만 명에 달하는 직원을 잘라냈다. 일각에서는 “비용 줄이기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경영자로서의 독창성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말도 나온다. 경제 매체 비즈저널은 경영 측면의 ‘코스트 커터’를 곤 회장 사생활과 결부시켰다. 이 매체는 11월 22일 “(곤 회장이) 사생활에서도 ‘코스터 커터’의 모습을 발휘하고 있다”(私生活においても「コストカッター」ぶりを発揮している)고 꼬집었다. 전처와 이혼 수속 당시 “너에게 줄 재산은 없다”(お前に与える財産はない)고 주장하면서 재산 분할의 권리를 포기하도록 종용했다는 것... <김재현 기자>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4 )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재현 기자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