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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선구자들④/ 위스키의 아버지
... #1.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여행 오래전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로 ‘위스키 순례여행’을 떠났다. 그가 방문한 스코틀랜드의 마을은 아일레이(Islay)라는 섬. 스코틀랜드의 서쪽 귀퉁이에 붙은 이 마을에서 하루키는 싱글 몰트 위스키를 제대로 맛보았다. 하루키는 여행을 다녀와서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もし僕らのことばがウィスキーであったなら)이라는 얇은 책을 내놓았다. 사진은 그의 아내가 찍었다. 하루키는 아일레이 섬에서 맛본 위스키의 감상을 이렇게 적었다. <아일레이 섬의 작은 펍 카운터, 7개 증류소에서 만든 위스키를 일렬로 세우고 맛을 서로 비교해보던 날. 그날은 기분 좋게 갠 6월의 어느 오후 1시였다.> 원문: アイラ島の小さなパブのカウンターに、7つの蒸留所のウィスキーを並べテイスティングした日。それは、気持ちよく晴れた六月の、午後の一時。 하루키 문체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하루키는 “또 아이가 태어나면 사람들은 위스키로 축배를 든다. 그리고 누군가 죽으면,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위스키 잔을 비운다. 그게 아일레이 섬”라고 적었다. 스코틀랜드 유학 다케쓰루 마사타카(竹鶴政孝) 일본 토종 양조 장인 도리이 신지로(鳥井信治郎) 1929년 일본 최초 위스키 산토리 시로후다 생산 #2. ‘도라지 위스키’는 이렇게 생겨났다 그런 하루키가 만약 이 위스키를 맛봤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한국의 ‘도라지 위스키’다. 이젠 어느 가수의 노래 가사에서만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추억의 술. 이 도라지 위스키엔 스카치 원액이 한 방울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물론 도라지도 없었다. 60~70년대 이 술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원래 부산의 한 양조장이 일본 위스키인 토리스(torys) 유사 상품을 제조, 상표를 ‘도리스 위스키’로 했다고 한다. 상표 위조 혐의로 구속됐다 풀려난 양조장 사장은 이후 이름을 ‘도리스 위스키의 자매품’이라는 문구를 내세운 ‘도라지 위스키’를 내놓았다고 한다.(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민속학 교수) 토리스 위스키가 도리스 위스키로, 다시 정체불명의 도라지 위스키가 된 것이다. 도라지 위스키를 태어나게 한 토리스는 일본 주류회사 산토리(Suntory)가 1946년 출시한 위스키다. 1950년대 이후 일본 고도 성장기가 시작되면서 토리스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게(bar)들이 속속 생겨나게 되었다. 토리스를 만든 산토리 위스키의 역사는 192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진=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다케쓰루 마사타카와 그의 아내 리타. 오른쪽은 '도라지 위스키' 탄생 배경이 된 산토리의 '토리스 위스키'.> #3.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 다케쓰루 마사타카 <사람들이여 깨어나라! 이미 수입품 맹신의 시대는 가버렸으니, 취하지 않는 사람들이여. 우리에게 국산 최고의 맛있는 술 산토리 위스키가 있다!>(醒めよ人! すでに舶来盲信の時代は去れり 酔わずや人 我に國産至高の美酒 サントリーウヰスキーはあり!) 1929년 4월 출시된 일본 최초의 위스키 ‘산토리 시로후다’(白札)의 신문 카피 내용이다. 희망적으로 출시 했음에도 불구하고 “맛이 강하고 마시기 어렵다”는 평판이 대부분이었다. 반품이 이어졌다고 한다. 위스키의 스타일을 두고 시로후다를 만든 두 장인은 서로 결별하게 된다. 한 사람은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다케쓰루 마사타카(竹鶴政孝:1894~1979), 또 한 사람은 그를 초빙한 고토부키야(寿屋: 현 산토리)의 창업자 도리이 신지로(鳥井信治郎:1879~1962 ). 양조장을 운영하던 집에서 태어난 다케쓰루 마사타카는 양조회사에 다니다 1918년 스코틀랜드로 양조유학을 떠났다. 캠벨타운(하루키가 위스키 순례한 바로 아랫동네)이라는 곳에서 실습을 하게 된 그는 만년필을 들고 다니며 증류소의 노하우를 일일이 노트에 적었다고 한다. 1920년 현지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 같은 해 귀국했다.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는 국제결혼이었다. 재정적 어려움으로 위스키 제조를 포기하고 중학교 교사 생활을 하던 다케쓰루 마사타카를 찾아온 이가 있었으니, 바로 도리이 신지로였다. 하지만 둘은 공장 입지를 두고 이견을 보였다. 다케쓰루 마사타카는 “스코틀랜드 풍토에 가장 가까운 홋카이도로 하자”고 주장했지만, 도리이는 “홋카이도는 오사카에서 너무 멀다”고 반대했다. 다케쓰루가 기온, 습도, 토양 등을 고려한 반면, 도리이 신지로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결국 오사카 평야와 도쿄 분지 접점인 안개가 많고 양질의 물이 솟아나는 야마자키(山崎)를 부지로 택했다. 1924년 11월 도리이 신지로는 야마자키 증류소를 건설하고 위스키 연구소 소장으로 다케쓰루 마사타카를 초빙했다. 그렇게 내놓은 첫 제품이 위에서 언급한 산토리 시로후다였다. 첫 제품의 실패는 두 사람이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줬다. 다케쓰루 마사타카는 유학 경험을 살려 정통 스코틀랜드 위스키를 재현하려 했고, 도리이 신지로는 일본인의 입에 맞는 일본산 위스키를 추구했다. 도리이 신지로의 곁을 떠난 다케쓰루 마사타카는 홋카이도 요이치(余市)에 증류소를 세웠고 닛카(日果) 위스키라는 별도의 회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정통 위스키를 추구하다 경영에 어려움을 겪게 된 닛카는 결국 1954년 아사히 맥주의 산하로 흡수됐다. 하지만 닛카 위스키는 여전히 정통 위스키를 사랑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상대적으로 재정이 넉넉했던 도리이 신지로의 산토리는 국내를 넘어 대규모 M&A를 성공, 세계 최고의 위스키 회사로 올라섰다. 일본이 위스키 강국인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 버금가는 기술력을 보유한 데는 이런 산토리, 닛카 두 회사의 경쟁 구도가 크게 한몫 했다.<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95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천재연구가 조성관 “도쿄는 '하루키'다”
<사진= 천재연구가 조성관 작가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했다. 김재현 기자> > 조성관 작가 '도쿄가 사랑한 천재들' 펴내 > 무라카미 하루키 등 일본천재 5명 이야기 > 15년 동안 전 세계 49명 천재 취재, 연구 #하루키가 즐겨 찾은 재즈바 “더그는 유명세에 비해 몹시 비좁았다. 듣던 대로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계단을 내려오자 담배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진토닉을 시켰다. 하루키가 더그에 오면 즐겨 마신 칵테일이다.”(‘도쿄가 사랑한 천재들’ p116~117)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골 재즈 바인 더그(DUG)에 들른 저자는 현장을 이렇게 묘사했다. 더그는 도쿄의 대표적인 유흥가인 가부키초에 있다. 저자는 “대로변에는 양판점 ‘돈키호테’가 있는데 돈키호테를 등지고 10시 방향, 야쿠스니 대로가 시작하는 지점에 더그가 있다”고 썼다. 하루키 팬들이라면 저자의 이런 세심한 배려에 공감할 만하다. 하루키가 좋아했던 진토닉을 함께 마시고, 하루키가 좋아했던 프로야구 구단(야쿠르트 스왈로스)을 함께 응원하고, 하루키가 좋아했던 달리기(마라톤)를 함께 하는 기분. 이 책이 주는 디테일한 묘미다. #5가지 재미...‘도쿄가 사랑한 천재들’ 하루키 단행본? 아니다. ‘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열대림)이라는 책 내용의 일부다. 책은 나쓰메 소세키(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작가), 구로사와 아키라(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애니메이션 거장), 토요다 기이치로(자동차왕) 등 일본의 다섯 천재들의 삶을 다뤘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저자의 방식이 이럴진대, 독자들은 마치 다섯 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저자는 천재들의 생가~활동 무대~묘지까지 찾아다니며 때론 길 안내자, 때론 맛칼럼니스트, 때론 인문학 여행가 등 각기 다른 잔재미를 전해준다. 조성관. 일간지에서 30년 기자로 일했던 저자는 이제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도시가 사랑한 천재 시리즈’ 책들을 15년 째 쓰고 있는 그는 빈, 프라하, 런던, 뉴욕, 페테르부르크, 파리(문인, 예술인편), 독일 편에 이어 최근 도쿄 편인 ‘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을 내놓았다. <사진= 도쿄 신주쿠 '소세키산방 기념관' 앞에 선 조성관 작가.(작가 제공)> #‘천재연구가’라는 직업 그런 조성관 작가를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동 근처의 한 커피전문점(코피발리)에서 만났다. 무릎이 트인 청바지와 청자켓 차림의 작가는 아담한 규모의 커피가게를 둘러보며 “이런 곳이 있었느냐”며 반가워했다.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을 시킨 저자에게 ‘천재연구가’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먼저 물었다. “(웃음) 직업이라고 하니까 좀 그러네요. 자랑 같아서, 좀 그렇습니다만.(조금 머뭇거리다) 이렇게 천재를 연구해 책을 쓴 사람은 우리나라엔 없습니다. 영국의 앤드루 로빈슨이라는 작가가 천재 연구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앤드루 로빈슨의 천재 연구와 조성관의 천재 연구는 결이 다릅니다. 나는 생애사의 관점에서 천재를 연구했습니다.” 조성관 작가가 천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뭘까. 2005년 겨울, ‘모차르트 탄생 250년’ 특집기사를 쓰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당시 ‘뭔가’를 느꼈다고 했다. “그때 모차르트 전문 가이드와 함께 교향곡(39~41번)을 작곡한 집을 찾아가는데 교향곡 40번이 귀에 들렸습니다. 일부러 생각한 게 아닙니다. 그 집 앞에 가니 교향곡이 더 크게 들렸습니다. 모차르트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때 분명 모차르트를 느꼈습니다. 그때 천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 가면 천재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천재들과의 지적 교감 저자는 지금까지 책에서 49명의 천재를 다뤘다. 그는 “한 평생의 성취로 인류사회를 윤택하게 만든 사람을 천재라고 정의한다”며 “범위를 좁히면, 어떤 국가에서 국민의 삶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풍요롭게 만든 사람을 말한다”고 했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천재가 많은 사회는 분명 뭔가가 다를 것이다. 작가에게 “천재가 많은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어떤 차이점을 보이느냐”고 물었다. “좋은 질문입니다.(웃음) 간단한 척도가 있습니다. 평화상을 제외한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천재입니다. 그러니까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나라는 천재를 많이 배출한 사회라고 보면 됩니다. 미국이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가장 많죠. 일본도 24명이나 됩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왜 미국 뉴욕이나 실리콘밸리로 갑니까? 미국 사회가 어느 나라보다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뉴욕이나 실리콘밸리에는 자극을 주고 배울만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천재는 그런 환경에서 꽃을 피웁니다.” 조성관 작가는 천재들의 삶을 찾아 15년 동안 외국 현지를 취재하고 연구했다. 그런 노력은 1~2년마다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쉽지 않은 일이다. 조 작가만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는 “천재와 나눈 교감을 잊지 못해서”라며 이렇게 말했다. “성적 쾌락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지적 쾌락, 지적 희열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미적 쾌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천재와의 교감은 지적 쾌락의 엑스터시입니다. 이것을 한번 맛보면 다른 건 시시해집니다.” # ‘조성관 작가 스타일’ 이번에 나온 ‘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은 작가에겐 의미가 남다르다. 저널리스트 30년을 마치고 나와 전업작가로 쓴 책이기 때문이다. 과거 현직에 있을 때 쓴 책들과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오로지 연구하고 취재하고 쓰는 데만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니 독자 입장에서 좀 더 읽기가 편하고 재미있지 않을까요.(웃음) 유럽과 미주를 돌아 처음 아시아권 도시로 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책 내용을 다시 들여다보자. 작가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묘지가 있는 가마쿠라에 가서 멸치덮밥을 먹으며 ‘아리가토 구로사와’라고 외친다. 무척 인상적인 대목이다. 작가는 천재들과 관련된 장소를 찾아가며 설명하는 부분이 ‘꽤나’ 친절하다. 저자는 “현장성을 가장 중요시한다”고 했다. 그에게 “이것이 ‘조성관 작가 스타일’이냐”고 물었다. 조 작가는 웃으면서 “그렇게 보셨다면 성공이다. 그게 ‘조성관 스타일’”이라고 했다. “여행을 하면서, 식도락을 즐기면서 그 길 위에서 천재를 보고 느끼게 하자는 게 집필 동기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한국인들이 세계를 여행하고 있지만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 가장 오래 남습니다. 그 사람이 나의 문화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천재들이라면 금상첨화구요. 성이나 궁전 같은 건물만 보는 여행은 조금 시간이 흐르면 남는 게 없어요. 아마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 일본의 천재들과 풍토 이웃나라 일본에는 수많은 천재들이 나고 죽었다. 저자는 이이토코토리(좋은 것을 가져다 배우기), 모노즈쿠리(장인 정신), 잇쇼겐메이(목숨을 다해 일하는 것), 오타쿠(마니아 기질) 등 일본을 정의할 수 있는 여러 표현들을 예로 들며 천재에 대해 설명했다. 기자가 가장 궁금했던 질문은 바로 이거다. “일본의 경우, 천재들이 지금의 일본을 만든 걸까요? 아니면 일본의 이런 풍토가 천재를 만든 걸까요?” 조성관 작가의 얘기를 들어보자. “일본의 풍토가 천재를 키웠고, 그 천재들이 일본을 만들었다고 봐요. 며칠 전 조선 도공(陶工)의 후예 14대 심수관이 별세했습니다. 여러 신문에 그의 부음기사가 실린 걸 보셨을 겁니다. 1980년대 중반, 14대 심수관이 주일한국대사관이 마련한 기자간담회에 나왔습니다. 그때 한 기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일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질문 앞에는 (1598년 14대조를 조선에서 강제로 끌고 온)이 빠져있었지요. 그때 14대 심수관이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일본이란 나라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우리 가문이 400년 가까이 이런 자부심을 갖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말은 현장에 있던 외교관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 이 말에 모든 게 들어있다고 봅니다.” # 일본을 배워야 하는 이유 일본에 대한 고민과 생각도 많아 보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선진국입니다. 국가의 역량은 결국 개개인 역량의 총합이라고 봅니다. 일본인이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하는지 알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일본인에게 배울 게 많습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커피가게의 대표가 특별한 커피 한 잔을 내왔다. 맛을 본 조성관 작가는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별로인가요?”(대표) “아닙니다. 단맛이 나는데, 깊은 단맛이 있군요.”(작가) 조 작가의 이런 품평 덕에 기자도 새로운 커피 맛을 보게 되는 ‘작은 즐거움’을 누렸다. 작가는 ‘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에 저자 사인을 해주면서 ‘도쿄는 하루키다’라고 적었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①천재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2005년 겨울, ‘모차르트 탄생 250년’ 특집기사를 쓰려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모차르트 전문 가이드와 함께 교향곡(39~41번)을 작곡한 집을 찾아가는데 교향곡 40번이 귀에 들렸습니다. 일부러 생각한 게 아닙니다. 그 집 앞에 가니 교향곡이 더 크게 들렸습니다. 모차르트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때 분명 모차르트를 느꼈습니다. 그때 천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 가면 천재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②지금까지 49명의 천재를 다뤘는데, 천재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한 평생의 성취로 인류사회를 윤택하게 만든 사람을 천재라고 정의합니다. 범위를 좁히면, 어떤 국가에서 국민의 삶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풍요롭게 만든 사람을 말합니다.” ③천재가 많은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어떤 차이점을 보일까요. 그런 케이스가 있다면 좀 설명해주세요. “좋은 질문입니다.(웃음) 간단한 척도가 있습니다. 평화상을 제외한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천재입니다. 그러니까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나라는 천재를 많이 배출한 사회라고 보면 됩니다. 미국이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가장 많죠. 일본도 24명이나 됩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왜 미국 뉴욕이나 실리콘밸리로 갑니까? 미국 사회가 어느 나라보다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뉴욕이나 실리콘밸리에는 자극을 주고 배울만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천재는 그런 환경에서 꽃을 피웁니다.” ④‘천재연구가’ 타이틀로 살고 계신데, 천재연구가라는 직업에 대해 좀 설명 부탁드립니다. “(웃음) 직업이라고 하니까 좀 그러네요. 자랑 같아서, 좀 그렇습니다만.(조금 머뭇거리다) 이렇게 천재를 연구해 책을 쓴 사람은 우리나라엔 없습니다. 영국의 앤드루 로빈슨이라는 작가가 천재 연구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앤드루 로빈슨의 천재 연구와 조성관의 천재 연구는 결이 다릅니다. 나는 생애사의 관점에서 천재를 연구했습니다.” ⑤천재연구가로서 강연에서는 무엇을 강조하고 계십니까. “강연에서는 관심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을 잡아 그들의 습관과 노력을 따라하라고 강조합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자주 보는데, 거기 보면 식당해서 돈 벌겠다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잘 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우겠다는 자세가 없어요.” ⑥천재들의 삶을 찾아 15년 동안 외국 현지를 취재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거라 봅니다. 1~2년마다 책을 낼 수 있는 작가만의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천재와 나눈 교감을 잊지 못해서입니다.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는 동물입니다. 성적 쾌락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지적 쾌락, 지적 희열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미적 쾌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천재와의 교감은 지적 쾌락의 엑스터시입니다. 이것을 한번 맛보면 다른 건 시시해집니다.” ⑦가장 인상적이었던 방문지는 어디입니까. “오스트리아 빈입니다. 손바닥만한 작은 도시에 천재들이 우글거렸으니까요. 조금 과장하면, 한 집 건너씩 천재의 흔적이 있었으니까요. 도시가 작으니까 다니기도 편하구요.” ⑧그렇다면 가장 다루기 힘들었던 천재는 누구입니까. “(웃음) 지금까지 강연과 인터뷰에서 많은 질문을 받아봤지만 이 질문은 처음입니다. (조금생각하다가) 니체였습니다. 니체는 정신질환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스위스 알프스 산중으로 들어가 자연에 안겨 치유를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상 알프스의 니체 흔적을 좇지 못한 채 책을 써야 했습니다.” ⑨<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은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과거 현직에 있을 때 쓴 책들과는 느낌이 어떻게 다릅니까. “이번 ‘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은 저널리스트 30년을 마치고 나와 전업작가로 쓴 책입니다. 오로지 연구하고 취재하고 쓰는 데만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니 독자 입장에서 좀 더 읽기가 편하고 재미있지 않을까요.(웃음) 유럽과 미주를 돌아 처음 아시아권 도시로 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⑩기자를 그만두고 1년 넘게 전업작가를 하고 있습니다. 전업작가의 삶은 어떤 겁니까. “전업작가는 연예인과 같습니다. 가수는 음반이 팔리고 공연을 계속 해야 살아남습니다. 전업작가 역시 꾸준히 글과 작품을 발표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디어가 주목하고 책도 팔립니다. 정해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⑪내년에 제10권 ‘서울편’을 펴내는 것으로 천재 시리즈 대장정을 마무리하실 것 같은데. 어떤 작가로 남고 싶습니까.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우리와 전혀 다른 인간으로 여겨졌던 천재들도 우리와 똑같은 흠결 많은 사람이었다, 다만 그들은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어마어마한 노력과 집중을 한 사람이다, 그 사실을 대중독자에게 알려준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⑫70세쯤에는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요. “(웃음) 글쎄요. 나는 15년간 세계를 떠돌며 요람에서 무덤까지 천재를 연구했습니다. 앤드루 로빈슨도 나처럼 천재를 연구하지 못했습니다. 49명의 천재는 내 인생의 스승입니다. 아마도 또다른 각도에서 천재 이야기를 쓰고 있지 않을까요?” ⑬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묘지가 있는 가마쿠라에 가서 멸치덮밥을 먹으며 ‘아리가토 구로사와’라고 한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천재들과 관련된 장소를 찾아가며 설명하는 부분이 꽤나 친절합니다. ‘조성관 작가 스타일’이라고 봐야 할까요? “(웃음) 그렇게 보셨다면 성공입니다. 그게 ‘조성관 스타일’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식도락을 즐기면서 그 길 위에서 천재를 보고 느끼게 하자는 게 집필 동기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한국인들이 세계를 여행하고 있지만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 가장 오래 남습니다. 그 사람이 나의 문화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천재들이라면 금상첨화구요. 성이나 궁전 같은 건물만 보는 여행은 조금 시간이 흐르면 남는 게 없어요. 아마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⑭<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에서 “천재들의 공통점은 자기 일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충실함과 집중력을 보인다는 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책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가장 특별한 천재’라고 표현했던데요. “책에도 썼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를 좋아해 만화를 그렸고, 처음에는 데즈카 오사무와 같은 만화가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애니메이터의 꿈을 키웠고 대학에 가서도 그쪽으로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토에이 애니메이션에서 들어가 뛰어난 선배들을 만나 조금씩 성장해갑니다. 그들은 나이 어리다고 하야오를 무시하지 않았고, 그의 재능을 이끌어내려 선배들이 기회를 주었습니다. 선배들이 하야오를 시기질투하지 않았습니다.” ⑮이이토코토리(좋은 것을 가져다 배우기), 모노즈쿠리(장인 정신), 잇쇼겐메이(목숨을 다해 일하기), 오타쿠(마니아 기질) 등 일본을 정의할 수 있는 여러 표현들을 예로 드셨습니다. 일본의 경우, 천재들이 지금의 일본을 만든 걸까요? 아니면 일본의 이런 풍토가 천재를 만든 걸까요. “일본의 풍토가 천재를 키웠고, 그 천재들이 일본을 만들었다고 봐요. 며칠 전 조선 도공(陶工)의 후예 14대 심수관이 별세했습니다. 여러 신문에 그의 부음기사가 실린 걸 보셨을 겁니다. 1980년대 중반, 14대 심수관이 주일한국대사관이 마련한 기자간담회에 나왔습니다. 그때 한 기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일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질문 앞에는 (1598년 14대조를 조선에서 강제로 끌고 온)이 빠져있었지요. 그때 14대 심수관이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일본이란 나라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우리 가문이 400년 가까이 이런 자부심을 갖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말은 현장에 있던 외교관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 이 말에 모든 게 들어있다고 봅니다.” ⑯대중적인 예술가(나쓰메 소세끼, 무라카미 하루키, 구로사와 아키라, 미야자키 하야오) 네 명과 대중적이지 않는 기업천재(토요다 기이치로) 한 명을 다뤘습니다. 너무 ‘인문계 예술가’에만 집중한 느낌도 듭니다만. “좋은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서문에 썼지만 마지막 한 자리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너무 문(文)으로 치우친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토요다 기이치로를 추천받았습니다. 그를 연구하면서 우리말로 번역된 자료가 없어 애를 먹었습니다. 현지 취재를 통해 힘들게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기이치로를 선택한 건 ‘신의 한 수’ 였다고 생각합니다. 토요다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토요타자동차가 세계 초일류가 된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생전에 자신의 롤 모델을 토요다 사키치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⑰<도쿄가 사랑하는 천재들>이 한국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지요.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선진국입니다. 국가의 역량은 결국 개개인 역량의 총합이라고 봅니다. 일본인이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하는지 알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일본인에게 배울 게 많습니다.” ⑱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일본을 이중잣대로 바라보고 판단합니다. 이런 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14대 심수관이 1974년 서울대 강연에서 한 말은 지금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14대 심수관은, “일제 식민지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일본이 저지른 죄가 큰 것이기는 하나) 거기에만 얽매일 경우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여러분이 36년을 말한다면 나는 370년을 말해야 하지 않겠나.”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10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놓치면 안되는 오늘 아침뉴스] 10월 4일
▲중국 국경절 연휴 기간인 3일 인천국제공항 도착장이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오는 10일까지 165만여명의 관광객이 인천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etoday.co.kr ◆ 이정현 단식 중단…새누리 오늘 국감 복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일주일만에 단식을 중단했습니다. 국감을 거부하던 새누리당은 오늘(4일) 국정감사에 복귀합니다. 새누리당이 국감에 전격적으로 복귀하기로 한 것은 이레간 단식했던 이정현 대표의 건강 상태가 직접적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대표는 2일 긴급 의원총회 이후 병원으로 이송돼 현재 회복 중입니다. 여당이 국감에 복귀하면서, 일명 '정세균 방지법'과 법인세 인상, 미르재단 등 여야가 대립하는 현안이 많아 충돌이 예상됩니다. ◆ 수도권 지하철 감축 운행…퇴근시간 불편 철도 파업 2주차를 맞는 코레일이 수도권 전동열차를 평소보다 감축 운행하기로 했습니다. 코레일은 정상운행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파업 복귀자가 적고 대체인력의 피로도도 쌓여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홍순만 코레일 사장이 지난달 27일 보고한 파업 장기화 여객열차 감축운행 방안을 보면 파업 8일차인 4일부터 대체인력들의 피로감을 고려해 90%대로 줄이고, 14일 이후인 11일부터 60%대로 축소됩니다. 특히 퇴근 시간에 운행률이 90%대로 떨어져 불편과 혼란이 예상됩니다. ◆ 아베 "위안부 사죄 편지, 털끝만큼도 생각 안 해" 아베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 편지를 보낼 의향이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어제(3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베 총리는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편지를 보내겠냐는 야당 측 질의에 "합의 내용의 밖에 있는 것, 우리 정부는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일본 시민단체가 내각부에 사죄 편지를 촉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했고, 이에 대해선 우리 정부도 최근 기대감을 나타낸 바 있지만 무시됐습니다. ◆ 노벨상 생리의학상에 오스미 요시노리…일본 3년 연속 수상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세포 내 불필요하거나 퇴화한 단백질을 재활용하는 현상을 연구해온 일본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에게 돌아갔습니다. 일본은 이로써 3년 연속 노벨상을 탔고, 지금까지 25명의 수상자가 나온 국가가 됐습니다. 노벨위원회는 오스미 교수가 1990년대 탁월한 실험들을 통해서 세포의 재생 매커니즘을 밝혀냈다고 평가하며 3일(현지시간) 생리의학상을 수여했습니다. 한편, 올해 노벨 문학상의 유력한 후보에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 '6살 의붓딸 시신 훼손' 양부모 구속영장 신청 6살 의붓딸을 학대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불로 태운 뒤 가짜 실종신고를 한 양부모에게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지난달 28일 이들은 의붓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온몸을 투명테이프로 묶은 뒤 17시간동안 방치했습니다. 다음날 의붓딸이 숨진 것을 발견한 양부모는 시신을 차에 태우고 인근 야산에 가 시신을 불로 태웠습니다. ◆ 뉴욕증시, 금리인상 관측·금융주 불안에 하락 마감…다우 0.30%↓ 뉴욕증시는 3일(현지시간) 하락했습니다. 다우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54.30포인트(0.30%) 하락한 1만8253.85로 마감했습니다. S&P500지수는 7.07포인트(0.33%) 내린 2161.20을, 나스닥지수는 11.13포인트(0.21%) 떨어진 5300.87을 각각 기록했습니다. 미국 경제지표 호조로 연방준비제도의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도이체방크 우려로 금융주가 여전히 불안한 것이 증시에 악재로 작용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습니다. ◆ 오늘날씨, 때아닌 늦더위 기승…제주·남해안 태풍 '차바' 영향 오늘(4일)도 전국에 늦더위가 이어지겠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 낮기온 30도, 수원·청주 29도, 인천·대전 28도, 춘천·대구 27도 등으로 어제와 비슷하겠습니다. 다만 제주와 남해안에는 제18호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오후부터 비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상 강우량은 50~150mm로 경상 해안과 제주 산간에는 250mm 넘게 오는 곳도 있겠습니다. 최대 순간풍속이 30m/s 정도의 강한 바람이 예상되는 만큼 시설물 관리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기정아 기자 jjonga1006@etoday.co.kr <저작권자 ⓒ 이투데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운명의 알레고리
새벽 잠결에 받은 전화로 '나'의 옛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모르는 사람이 던져놓은 소식에 잊고 지냈던 과거들이 덩달아 호출되고 잠은 안 온다. 평소에 살던대로 나에게의 유불리를 기준으로 주판알을 굴리고, 평소에 쓰지 않던 두뇌를 동원해 상황을 추리하고 변명한다. 그렇게 아닌 밤중에 죽은 첫사랑을 회고하는 내가 직면하는 건 그때 그녀를 데려갔던 지난 날의 불가항력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는 사실이다. 어쩔 도리 없이 그녀를 놓칠 수밖에 없었던 과거, 죽은 그녀를 위해 기도하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는 현재. 뭐가 달라진 것인가. 퍼시 페이스의 <A Summer Place>를 틀어놓고 그리워할 밖에. 운명이란 건 그렇게 언제나 느닷없고 끈질긴 것일지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여자 없는 남자들」의 주인공 '나'는 멀쩡히 살아있는 아내를 옆에 두고도 첫사랑이 죽었다면서 스스로를 '여자 없는 남자'로 포장하는 미친놈이기도 하고, 자신이 과거의 불가항력에서 벗어났다고 믿으며 살아왔지만 그때 그 팔자가 현재에 다시 찾아와버린 가련한 운명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마누라 옆에서 자던 잠 안 자고 옛날 여자 생각하는 게 내 기준으로 볼 땐 이거 보통 싹수가 노란 게 아니긴 한데, 우연이나 친숙한 소재들로 일상이 침범당하고 그렇게 눈에 안 보이는 틈으로 가득한 것이 삶-세계라는 알레고리를 잘 구사하는 하루키의 유비적 세계관을 고려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만한 단편이다.
소설가 하루키의 탄생
소설가는 현실을 그려내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의 증거를 수집하는 사람들이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것 말고 다른 현실성 있는 거대한 대안이 전멸한 이 시대의 제일 대표적인 작가 하루키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작품이랑 실제 인생이 서로 아다리가 은근히 잘 맞아 떨어진다. 하루키가 최근 텔레그래프와 리터러리허브닷컴에 기고한 글을 보면 1978년 4월의 어느 날, 대낮에 야구장 외야석에 자리 깔고 맥주 한 잔 빨면서 야구 경기 보고 있는데 갑자기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근자감이 뜬금없이 떠올랐다고 함. 초현실주의에 가까운 하루키의 스타일이 플롯의 결말이나 인물에 대해 윤리적 판단을 보류하는 챈들러와 도끼 성님을 즐겨 읽었던 하루키 본인의 취향 탓도 있겠지만 얘기 들어 보면 그가 삶에서 겪은 실제 체험 중에 그런 사건들이 진짜 많았던 것 같다. 재즈바 운영할 때 길바닥에서 마침 딱 필요했던 금액의 돈을 우연히 주웠다는 것도 그중 하나고. 하긴 스쳐 지나가면서 그냥 잊어 넘기느라 기억에 남지 않아서 그렇지 원래 삶에선 논리적인 전개보다 공교로운 사건들이 더 많지 않던가. 하루키 소설에는 체험성이라는 게 무지 중요한데 고가도로 비상 탈출 계단으로 나오니 시공간이 바뀌고 달이 두 개 뜨는 걸 목격하고 등등 그런데 그런 체험-증언의 문학적 순간에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진지를 빨면 아예 상황 전체가 우스꽝스러워진다. 인생이라는 게 남이 살아 줄 수도 없는 거고 삶이라는 것도 원래 각자가 겪는(느끼는) 만큼까지만 삶인 거라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다루는 문학에서의 리얼리티라는 기준은 객관적으로 박혀 있는 게 아니라 둥둥 떠다니는 거라능. 가령 폴 오스터는 어린 시절 비 오는 날 숲 속에 놀러 갔다가 바로 옆에 있던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걸 목격한 기억의 영향으로 자신의 작품에서 무엇이 현실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단정 짓지 않는다. 근데 그거 가지고서도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시비를 털면 이건 뭐 그냥 현피 신청 아닌가. 어린 시절의 폴 오스터를 덮쳤던 살벌한 죽음의 무작위성이 당시 그에게 부려 놓은 게 트라우마든 뭐든 간에 중요한 사실은 작가마다 리얼리티의 경계가 뒤틀린 지점들이 있고 그건 걍 말로 설명이 안 되는(설명할 필요도 없는) '체험'인 경우가 많다. 어릴 때는 하루키든 오스터든(가장 중요한 체호프도 포함해서) 처음 읽고 교훈 없는 이야기랑 애매하게 열려 있는 결말에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어쩌긴 뭘 어째 그냥 삶이라는 게 그렇게 생겨 먹었다는데. 이젠 그런 우연하고 돌발적이고 비논리적인 것들에 조금씩 공감이 가고 리얼하다고도 느껴진다. 인생의 계획이랍시고 기껏 세워 봤자 1년도 못 가 비틀리는 건 이젠 익숙하고 한 마디 설명도 없이 떠나간 사랑 앞에 그 아픔이 납득은커녕 실감도 나지 않아 눈물도 안 나던 기억을 수 천 번 머릿속에 돌려 보면 그냥 이 현실에 대한 어떤 파악이나 설명 같은 것들을 완전히 포기해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 무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허에 벌벌 떠는 인간이란 종족은 그들의 기대를 정면으로 짓밟는 무뚝뚝한 세상의 가치중립성을 견디지 못하고 매사에 필사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지만 원래 이 세계라는 건 먼지 같은 인간들의 만사에 아무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런 세계를 살아가는 닝겐들은 저마다의 확신으로 각자의 삶을 밀어붙이니 그 결과는 당연히 번번이 기대와 어긋날 수밖에 없고, 세상에 대한 환멸로만 빠지지 않아도 다행일 정도로 잔인하게 무관심한 이 세상의 매커니즘과 그 필연적으로 불리한 게임판 위에서 모든 인간은 결국 반복적인 실패 기계들이다. 피츠제럴드를 애정하고 미국의 재즈 시대를 동경하는 하루키도 체호프를 자주 언급하는 건 그런 연관성에서다. (레이먼드 카버와 체호프로 이어지는 기계적인 문학 계보도를 봐도 하루키가 체호프랑 애초에 무관하진 않다.) 하루키의 최고작이라 의심치 않는 『1Q84』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풍부하게 암시하듯, 살다 보니 어쩌다 지금이 되는 거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끝에서 내가 무엇을 찾았느냐가 아니라 그냥 내가 이만큼 변화를 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