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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 김연수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드라마에서 나와 유명해진 이 문장을 보고 달달한 연애소설이겠거니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 문장에는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이 아니라 몇십년간 헤어진 딸을 기다려온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카밀라는 양모가 죽고 양부는 다른 여자와 만나게 되면서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유이치라는 연인의 영향으로 자신의 모든 물건들에 대해 정리한 글을 써보게 되는데 그 글을 보고 한 출판사에서 자신의 뿌리, 한국의 친모를 찾아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오고 카밀라는 한국의 진남으로 떠난다. 그 곳에서 자신의 어머니 정지은의 흔적을 찾아가던 그녀는 정지은이 이미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죽음과 얽힌 진실을 찾아가는 카밀라의 여정과 카밀라, 정희재를 낳기 전 정지은의 예전 이야기가 교차되며 책 속에서 펼쳐진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라는 문장에는 생각보다 더욱 묵직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노동 파업에 참여했다가 현실에 좌절해 자살해버리고 학교 교사와 연인 관계라는 소문이 돌고, 미성년의 나이에 한 임신과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오빠라는 이야기가 쑥덕거리며 퍼지는 상황에 진남의 여고생, 정지은은 놓여 있었다. 그렇지만 정지은은 삶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않았고 그것은 자신의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생명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사랑 때문이었다. 자신의 날개가 되어 줄 그 아이. 희재라고 이름 지은 그 아이. 그러나 그 아이마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모른다는 이유로, 미혼모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팔려가듯 입양되고 정지은은 진남 바다로 몸을 던진다. 그 검고 차가운 진남 바다 속에서 몇 십년을 기다려 찾아온 그녀의 딸, 카밀라이자 정희재에게 건넨 말인 것이다. 끊임없이 파도가 치는 바닷속에서 나는 바다에 파도가 치듯 너를 생각하였다고 말이다. 이 소설은 친모를 찾는 카밀라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머니, 정지은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오해와 악의가 쌓여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정지은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과연 누구였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정희재에게 진남여고의 교장, 신혜숙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꽤 용감하다고 생각하는군요. 카밀라 양은." 그만큼 정지은의 죽음과 얽힌 진실은 추악한 비겁함 속에 잠들어 있었다. 과연 그 진실이 정희재에게 어떤 것들을 가져다 주었을까. 진실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의 정희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소설 속에서도 진실을 알아가며 조금씩 달라지는 정희재의 모습이 나오긴 하지만 후반부의 이야기는 정지은에 얽힌 진실이 중점이라 정희재의 이후 이야기를 알 방법이 없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정희재의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작가의 말의 "부디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 이라는 마지막 문장처럼 독자가 숨겨진 이야기를 스스로 읽기를 작가는 원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유력한 두 명의 인물인 최성식과 이희재 중 결론을 내렸지만 추후에 이 소설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그 결론을 밝히지는 않겠다. 물론 그 결론이 틀렸을 수도 있고 말이다. 작가는 곳곳에서 힌트를 주고 있는데 이 소설이 워낙 화자도 자주 바뀌고 이야기도 시간 순이 아니라 뒤죽박죽으로 진행되기에 그것들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천천히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간대를 생각해보며 읽으면 스스로 결론을 내리기가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 마무리가 참 마음에 들었다. 2012년의 카밀라와 1984년의 정지은의 모습을 한 번에 담아내는 끝맺음이었다. 2012년의 정희재는 이희재와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작가는 더 이상 말해주지 않기에 우리가 그 뒤를 써 나가야만 한다. "부디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 작가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소설 속 한 문장 : 이로써 다시 나는 이 세상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는 완전한 자유의 몸으로 돌아왔다. 21년 전에 그랬듯이.
초크맨
'초크맨' / C.J. 튜더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저번에 읽었던 스티븐 킹의 미스터 메르세데스 이후로 인터넷을 찾아보다 스티븐 킹이 강력 추천한다는 평가가 있는 소설을 발견했다. C.J. 튜더 라는 작가의 데뷔작인 초크맨이라는 소설이었는데 저번 스티븐 킹의 소설을 매우 재밌게 읽었던 차에 주저없이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감상부터 말하자면 재미도 있고 나쁘지 않은 소설이지만 작가의 다음 작품을 찾아 읽을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이 소설은 에디라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과 학교 교사가 된 성인 시절이 교차되어가며 진행된다. 어린 시절 늘 네명의 친구, 개브, 미키, 호포 그리고 니키와 함께 다니던 에디는 마을 여기저기서 의문스러운 일들을 마주한다. 그 사건들의 마지막을 장식한 살인 사건은 당시에는 약간의 미심쩍은 점을 남긴 채로 종결되고 만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든 에디는 학교 교사로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와중에 어릴 적 친구 미키가 찾아와 과거 일어났던 살인사건의 진범을 알아냈다고 하며 그걸 토대로 글을 쓰려고 하니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그렇게 미키와 저녁을 먹고 헤어진 다음 날 미키는 강에 빠져 죽은 채로 발견된다. 어린 시절 죽은 미키의 형과 똑같이. 뭔가 이상함을 느낀 에디는 미키의 흔적을 찾다가 점점 어린 시절 일어났던 살인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게 된다. 일단 이 소설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자면 초반부 스토리가 흥미진진하다는 점이다. 미스터리 소설이자 스릴러 소설인만큼 의뭉스러운 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10대 소녀 일라이저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며 그 정점을 찍는다. 게다가 그 사건들의 주위를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는 초크맨 그림은 계속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호포의 개를 죽인 사람은 누구지? 미키의 형은 정말로 발을 헛디뎌 강에 빠진걸까, 타살은 아닐까? 갑자기 나타난 하얀 분필의 초크맨 그림은 도대체 누가 그린 걸까? 일라이저를 죽인 범인은 누구고 왜 토막을 냈을까? 일라이저의 사라진 머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이렇듯 수많은 의문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한 어린 시절의 사건을 수십년이 지난뒤 성인이 된 주인공이 해결해나간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전혀 다른 시간대의 같은 인물을 번갈아가며 이야기하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두 시간대의 에디가 서로를 통해 사건을 해결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단점이 너무 명확하다. 앞에 수없이 뿌려놓은 사건들의 진상이 드러나는데 그 진상들이 그다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초크맨의 특징은 앞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범인이 각각 모두가 다른 인물이라는 것이다. 호포의 개는 그때부터 이미 치매 증상이 조금씩 보였던 호포의 어머니의 실수에 의해 죽었고 미키의 형이 강에 빠져 죽게 된 것은 그의 자전거를 강에 빠뜨린 개브 때문이었다. 하얀 분필의 초크맨 그림은 에디가 그린 것이었고 일라이저를 죽인 범인은 자신이 임신시킨 여학생과 일라이저를 착각한 니키의 아빠, 마틴 목사의 짓이었으며 일라이저의 사라진 머리는 에디가 몰래 가져왔다. 이렇듯 마치 누군가 한 명의 일관된 범행으로 보였던 것들이 사실 각각 다른 사람들의 소행이었다는 것은 한 명의 범인을 상상하고 있던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각각의 사건들에 대한 모든 논리를 납득할만하게 제시하지 못하면 독자들이 결론을 받아들이기 힘들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 모든 사건들의 진상이 정교하게 맞아들어가며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아, 뭐야. 그냥 다 각자 다른 이야기고 결국 살인 사건은 목사가 착각해서 죽인 걸로 끝이잖아?" 라는 생각이 든다고 해야할까. 살인 사건에 얽힌 진상을 하나하나 파헤치고 그 속의 복잡한 관계를 해체해가며 얻게 되는 카타르시스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러한 부분에는 소설에서 주요 용의자로 몰고 가던 헬로런 이라는 인물의 너무 이른 죽음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스릴러 소설에서 너무 범인처럼 묘사하는 인물은 당연히 범인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에 혹시나 진짜 저 사람이 범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소설의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그 인물이 너무 이른 타이밍에 죽어버리면서 당연히 다른 누군가가 범인이겠지 하는 생각을 확고하게 만들었고 이는 소설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조금 더 살려두었으면 지금보다 흥미진진한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재미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초반부의 흥미로움에 비해 후반부에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오는 놀라움과 스릴러 소설 특유의 그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듯한 얼얼한 느낌은 부족하다. 다른 스릴러 소설과 다른 이야기 진행과 사건의 진상이 이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인 듯 하다. 전형적인 스릴러 소설에 지쳐있다면 한번쯤 읽어볼만 하지 않을까. 소설 속 한 문장 : 예단하지 말 것.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