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프레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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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열광, 도쿄 로커빌리 축제의 뜨거운 열기
프랑스 태생의 포토그래퍼 ‘로랑 라포르테(Laurent Laporte)’의 사진 시리즈, ‘The Strangers’는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의 ‘로커빌리(Rockabilly)’ 축제의 뜨거운 열기를 온전히 담고 있습니다. 사진 속 로커빌리 축제는 1950년대 초반, ‘엘비스 프레슬리(Elivs Presley)’, ‘척 베리(Chuck Berry)’,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 등의 스타들의 활약으로 엄청난 유행을 이끌었던 ‘로큰롤(Rock’N’Roll)’과 컨트리음악의 한 장르인 ‘힐빌리(Hillbilly)가 믹스된 독특한 형태의 음악인데요. 마치 딸꾹질 소리를 연상케 하는 특이한 추임새, 단순한 코드의 심플한 멜로디, 에코가 강조된 음향 등의 특징으로 마니아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로커빌리라 하면, 음악적인 특징 이외에도 비주얼적인 부분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요. 비비드한 컬러의 의상, 포마드를 활용한 단정하고 매끄러운 헤어스타일, 롤업 진(Roll-up Jean) 등의 상징적인 아이템으로 패션과 문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에 일본에서는 로커빌리 지난 50년대에 붐을 일으켰던 로커빌리 문화가 80년대에 다시 부활하며 옛 추억을 되살리고 자신들만의 색깔을 입혀 독특한 문화로 재탄생 시키게 됩니다. 로랑 라포르테가 일본 최대의 공원이자 도심의 휴식처인 ‘요요기 공원(Yoyogi Park)’에서 촬영한 사진은 80년대 당시 도쿄의 젊은이들이 자유롭고 반항적인 로커빌리 축제의 현장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흑백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분위기와 광적인 열기는 그대로 드러나는데요. 하나같이 단정히 빗어 올린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의상, 타투, 등을 통해 각각의 개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파생된 음악 장르이지만, 도쿄의 젊은 이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끔 ‘일본식 로커빌리’로 재해석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했는데요. 음악적 뿌리가 어디든, 그 누가 만든 음악이든 관계 없이 하나된 모습으로 즐기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자유, 히피, 펑크라는 키워드가 엿보입니다. 1960년대 초, 비틀즈의 등장으로 로큰롤의 판도가 바뀌고 세계적인 음악 트렌드가 변화를 맞이하며 로커빌리의 인기는 점차 쇠락하게 되는데요. 시간이 지난 현재, 이제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자취를 감추게 된 로커빌리 음악이지만, 당시의 향수를 기억하는 마니아들이 벌이는 간헐적인 이벤트, 몇 몇 아티스트들의 노력으로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에 울리고 있습니다. 국내 정서와는 크게 부합하지 않던 탓에 우리 나라에서는 뚜렷한 행사 또는 족적을 찾아보기는 어려워 마니아들 간의 제한된 정보교류와 해외 소식에 기댈 수 밖에 없던 로커빌리 문화인데요. 로랑 라포르테의 사진은 로커빌리 마니아들의 향수를 다시 한 번 자극할 단비 같은 소식이 될 것 같습니다. 도쿄 로커빌리의 축제를 담은 포토 시리즈 ‘The Strangers’에 대한 자세한 정보 및 작가의 더 많은 작품은 로랑 라포르테의 공식 홈페이지를 참조해보세요.
[음악상식] 어이 신병, 간지는 사회에 두고온다 실시!
반갑다 얘들아! 너희들에게 안진지하게 클래식, 락, 팝 등등 음악 상식을 떠먹여줄 진지한박사라고 한다. 오늘은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한 6번째 수업이구나. 5번째 카드를 복습하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누르렴 엘비스 프레슬리 5번째 카드 - 엘비스의 인기가 미쳐날뛰고 있습니다. 지난 수업에서 말했듯이 당시 미국은 징병제 국가였고 엘비스는 '연예사병 복무 제안'을 거절, 1958년 육군 전투병으로 입대를 한단다. 입대해서 기초훈련을 마친 엘비스는 서독의 미군기지에 배치되어 1년 6개월간의 군생활을 하게되지. 물론 군인이 된 이후에도 엘비스의 인기는 식지 않았단다. 저 사진속 저 여자의 눈빛을 보렴. 저 눈빛... 군인을 보는 눈빛에서 저렇게 꿀이 떨어질수도 있다니...ㄷㄷ 민간인의 하트 쏟아지는 눈빛 말고도 엘비스의 인기를 보여주는 사례는 더 있단다. 이 기간 중 엘비스의 노래 중 두곡이 빌보드 차트 1위 ㄷㄷ (가수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노래가 빌보드 1위.. 그것도 두곡이나ㄷㄷ)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군대에서 1위 찍을 수 있는 가수가 있지 4,5월의 장범준이라고...) 첫번째 영상인 Hard Headed Woman 두번째 영상인 A Big Hunk O' Love가 이 두 곡이 바로 엘비스가 군대에 갔는데도 빌보드 1위를 찍은 곡들이란다. 아, 이 두 곡의 스타일을 잘 기억해두렴! (엘비스, 요즘 잘 지내나? 예! 지난주에 빌보드 차트 1위 했지 말입니다!) 될놈은 군대에 가서도 될놈인 것인가... 엘비스는 군대에 가서 이미지도 좋아지고 인기도 유지하고 연인까지 겟! 서독에서 근무하면서 미래에 배우자가 될 연인 프리실라 블라우도 만나게 된단다. 뭐 언뜻 보기엔 꽤 괜찮은 군생활이지만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었단다. 먼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엘비스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단다. 엘비스가 음악을 시작한 것도 어머니에게 LP녹음을 선물해주기 위해서 였다는 얘기를 했었지? 그만큼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었고, 또 군대에 있느라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때문에 엘비스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있었단다. 하지만 미국도 국방부 Clock은 거꾸로 매달아도 가는 법. 엘비스는 1960년 마침내 제대를 했고, 프랭크 시나트라 쇼에 출연하면서 화려하게 복귀의 신호탄을 쏜단다. 위에 있는 영상이 1960년 방송된 프랭크 시나트라 쇼에 출연한 엘비스 컴백 영상이란다. 재생하기전에 명심하렴 [소녀팬들 절규주의] 하.지.만. 군대를 다녀와도 변함이 없는 사람이 있고 군대를 다녀오니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은... 사람이 있는데 엘비스는 두번째 케이스. 즉 군대를 갔다오니 뭔가가 잘못되어가는 느낌의 케이스였단다. 군대에서 돌아온 엘비스가 추구한 이미지는 더이상 반항기 넘치고 거친 소년의 이미지가 아닌 성숙하고 완성된 '어덜트 팝 아티스트'로서의 이미지이었지. 그래서 제대한 엘비스의 음악 스타일은 확 바뀌게 되었단다. 첫번째 영상 It's Now or Never 혹은 두번째 영상 Are You Lonesome Tonight 을 들으면 제대 이후의 바뀐 엘비스의 스타일이 어떤지 알 수 있을게다. 이 노래들은 사실 대중들이 엘비스에게 바라는 스타일은 아니었지. 아까 기억해두라고 했던, 군대에 있는데도 빌보드 1위를 달성한 엘비스 스타일들. 거칠고 뭔가 미완성인 것 같지만, 신선하고 매력있는 엘비스만의 음악! 그런 음악과 이미지를 엘비스에게 바라왔던거지. 이후로 엘비스의 인기는 급격히 시들시들해진단다. 이제 20대 후반에 접어든 엘비스에게 붙게된 딱지는 '퇴물' "엘비스... 이제 한물 갔구나" 하는 여론이 생기게 된단다. 거기에 엘비스가 제대한지 3년 후 음악의 판도가 완전히 뒤집히는 거대한 센세이션이 일어나는데 그건바로... Hi~ 1963년 '비틀즈'가 데뷔한단다. 원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름앞에 붙던 수식어들. 센세이션, 음악적 혁명, 새로운 대세, 거부할 수 없는 흐름. 이러한 수식어들이 순식간에 비틀즈의 이름 앞에 자리하게 됐단다. 하지만 밴드음악만 음악이겠니? 초기 락의 영향력도 엄청나지만 엘비스가 확립한 로큰롤도 굉장한 음악 아니겠니? 비틀즈는 비틀즈만의 강점이 있지만, 엘비스도 엘비스만의 강점이 있지 않겠냐는 말이다. 그래서 엘비스는 그만의 강점을 살려서 승부하기로 하고 결심하고 이제부턴 정말 영화뿐이야! ㅇㅇ 엘비스만의 강점인 얼굴을 살리기로 함 ㅜㅜㅜ 1961년부터 음악적 활동은 거의 놓아버린 엘비스는 60년대에만 20편이 넘는 영화를 생산... 영화공장공장장은 엘공장장 이라고 외치듯이 영화를 찍어낸단다. 그리고 영화촬영을 제외하고는 엘비스의 거대저택. Graceland에 칩거하면서 보내지. 그리고 '멤피스의 마피아'라고 불리는 '엘비스 친위대'라고 할 수 있는 본인의 친구들이랑만 어울려 다니게 된단다. 이 친구들이 미디어로부터 엘비스를 차단, 내지는 보호했는데 멤피스의 마피아 멤버들과 엘비스들의 부적절한 행동들로 구설수에 여러번 오르게되지. 그리고 1967년 프리실라와 결혼. 이후 1968년 컴백 스페셜 공연을 통해 화려하게 재기하는 데 성공! 하는 듯 싶었다가 하지만 1972년 프리실라와 파경에 이르고 약물중독으로 몸은 엄청나게 망가지게 된단다 1973년 하와이 공연에서는 인공위성 생중계되는 단독 공연을 열고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면서 아직 엘비스의 영향력이 건재함을 입증했단다. 하지만 30대인 엘비스의 몸은 전혀 30대의 몸이 아닌, 심각하게 망가진 상태. 각성제로 시작했던 엘비스의 약물남용은 여러 약물을 섞어먹으면서 더욱 강렬한 자극을 찾는 치명적인 단계까지 이르렀고, 하와이공연을 한 1973년에만 해도 네번씩이나 쓰러지면서 죽을 고비를 겨우겨우 넘기는 상황이었지. 그리고 1977년 8월 16일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엘비스는 병원으로 이송되는 중 사망하게 된단다. 사인은 '심장마비'. 정확한 사망 원인에 대해선 엘비스 쪽에서 말을 아끼는 상태지만 지속적인 약물 오남용이 사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많단다. 로큰롤의 제왕. 'King' of the Rock'n Roll 20세기 문화사에 한 획을 그은 아티스트 그가 남긴 엄청난 업적들에 비하면 실로 허무하고 아쉽기만한 죽음이었지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엘튼존, 마돈나의 음반 판매기록 각 3억장 마이클잭슨의 음반 판매기록 4억장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반 판매기록 약 6억장 허무하고 안타까운 마지막을 남긴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하지만 기록과 환호와 박수가 가득했던 '인류의 아이돌' 엘비스 프레슬리의 삶은 실로 주목할 가치가 있었던 삶이었던 것 같구나. 엘비스 프레슬리가 어머니에게 드리기 위해 녹음했던 이 LP판. 엘비스 프레슬리를 세계적인 가수로 만들어 준,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이 LP판의 제작비용은 단돈 4 달러였단다. 4달러짜리 LP판은 2015년 1월 엘비스 탄생 80주년 경매에서 30만 달러(약 3억 2500만원)가 되었고 로큰롤의 황제가 남긴 사라지지 않는 음악들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인류의 재산이 되었지. 앞으로도 아마 수없이 듣게 될 로큰롤의 황제의 목소리를 들을때마다 인간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더 감동적인 음악감상이 될 것 같구나. 짧은 인생을 살다 간 엘비스의 이야기를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구나 워낙 짧고 굵게 산 양반이라... 무튼 엘비스 이야기는 여기까지구나! 다음 시간에도 꾸르잼 음악얘기 들고올테니 댓글 많이 남겨 주렴>_</ 출석을 잘못불렀구나ㅜㅜ 잘못 소환한 학생들 미안하단다 (그렇지만 온김에 댓글을 준다면 그것은 더 러브랄까...)
[음악상식]엘비스의 인기가 미쳐날뛰고 있습니다.
반갑다 얘들아! 너희들에게 안진지하게 클래식, 락, 팝 등등 음악 상식을 떠먹여줄 진지한박사라고 한다. 조금 오래 쉬었지만, 엘비스 프레슬리 5번째 수업을 시작하자꾸나 지난 카드를 보고싶다면 아래 링크를 눌러주렴 '엘비스 프레슬리 4번째 카드 - 엘비스 : 홍철아 엉덩이는 이렇게 흔드는거야' 보러가기 지난번 카드에서 말했다시피 연달아 흥행에 성공한 엘비스 프레슬리는 요즘 아이도루 못지 않은 어마무시한 인기를 누렸단다. 'Love Me Tender'라는 노래를 부르고 'Love Me Tender'라는 영화로 영화계에도 진출한 엘비스 영화 트레일러를 한번 보면 영화에서 엘비스를 얼마나 밀어주려고 하는지 느낄 수 있단다 영화만 보면 뭔가 엘비스가 주인공 인 것 같고 엘비스 분량 낭낭할 것 같고 내용은 또 띵가띵까 신나는 음악얘기인 것 같지 않니? 근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따로있고, 영화 내용은 '미국 남북전쟁'이라는거.. 엘비스의 인기가 워낙 쩌니까 엘비스 위주로 트레일러를 짰겠지 요즘으로 치면 검사외전 예고편에 강동원 붐바스틱만 한 30초 넣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구나 엘비스 프레슬리는 주인공인 '리처드 이건'의 동생으로 나오는데 형의 여자를 좋아하는 역할이란다ㄷㄷ 전쟁에 나가있는 형이 죽었다는 소식이 집에 잘못 전해지자 형의 여자와 덜컥 결혼을...하게되지 (이자식... 인기많으면 다인게냐!) 엘비스가 맡은 역할은 빵터지는 인기로 흥행시키기와 빵 하고 총 맞고 죽는 역할이란다. (화내서 미안하구나 엘비스 ㅜㅜㅜ) 내용은 뭔가 막장 스멜이 느껴진다만 따란~ 영화 Love Me Tender는 잘 돼서 그 해 박스오피스 20위에 들었고 노래 Love Me Tender는 5주연속 빌보드 1위 달성ㄷㄷ 생애 한번 하기도 어려운 영화 대박과 노래 대박을 한 해에 몰아친 엘비스 프레슬리! 엘비스 인생에 이런 성공을 언제 다시 할 수 있을까? 는 바로 다음 해 1957년 Too Much 로 소녀팬들 실신잼ㅋ 빌보드 1위 직행잼ㅋ 에 이어서 같은해 1957년 All Shook Up 으로 돌고래 비명 소환잼ㅋ 역시 빌보드 1위 직행잼ㅋ 참고로 'All Shook Up'은 엘비스 프레슬리를 주제로 한 뮤지컬의 이름이기도 하단다. All Shook Up은 외국버전도 있고 한국버전도 있는데 외국버전과 한국버전의 같은 씬(박물관 가이드 꼬시는 씬)을 비교하면서 보면 재밌을 것 같구나. 첫번째 영상 - All Shook Up 'Teddy Bear / Hound Dog' 두번째 영상 - 우리나라 버전 All Shook Up 'Teddy Bear / Hound Dog' 이렇게 엘비스의 음악과 생애에 대해서 알고나서 뮤지컬을 본다면 더 재미있을 것 같구나 (참 유익한 수업일세 그려 껄껄!) 무튼 1957년 Too Much와 All Shook Up으로 연타석 히트를 친 엘비스. 근데 연타석이면 뭔가 3연타석이 어감이 좋지 않겠니? 그래서 한곡 더 히트 1957년 Jailhouse Rock까지 빌보드 1위를 달성하면서 1957년 한 해에만 빌보드 1위곡을 세곡이나 뽑아내는 위엄ㄷㄷ을 보여준단다. 특히 이 Jailhouse Rock은 엘비스를 스타로 만들어 준 곡 'Hound Dog'을 써준 작곡가 스톨러의 또다른 작품이기도 하지. 스톨러가 엘비스를 직접 만난것은 Jailhouse Rock 녹음 작업을 함께할 때가 처음이었단다. [녹음 당시] 스톨러 : OK! 키야 역시 잘하는구만 다음부분 가자 엘비스 엘비스 : ㄴㄴ 스톨러 : ?? 엘비스 : 방금거는 feel 이좀 안살았어요... 다시 갈게요 스톨러 : ? 그.. 그래 다시간다 ... 스톨러 : 크~~ 역시 엘비스. 이제 다음부분 가자? 엘비스 : ㄴㄴ 스톨러 : ... 스톨러 : 이제 다음 부ㅂ.. 엘비스 : ㄴㄴ ... 70번 반복 ... 스톨러 : 야 됐고. 쫌만 쉬고 하자 엘비스 : 넵 엘비스 : 흠흐흐므!!hmmmhmmm흠흐므ㅡ흐흐ㅡㅇ흠흥 (허밍으로 연습중) 스톨러 : 쟤 뭐야...무서워ㅜㅜㅜㅠ 이 노래를 녹음할 때 엘비스는 똑같은 노래를 백번도 넘게 녹음하면서 완벽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노력했단다. 쉬는시간에도 허밍을 하며 연습을 하는 엘비스를 보고 스톨러는 "정말 미친듯이 노래하는구만" 이라는 평을 남겼지 타고난 사람이 노오오력까지 하게된다면 정말 엄청난 결과가 만들어 지는 것 같구나. 무튼 Jailhouse Rock도 대박이 난걸 느낄 수 있는게 일단 빌보드 1위 찍은 것도 있지만 이것도 영화로 만들어졌단다. 감옥록... 한자인줄 ; 무튼 Jailhouse Rock이라는 영화에 출연한 엘비스 이번에는 주연을 꿰차면서 열연을 펼쳤단다. 엘비스의 인기가 어마무시 했지만 엘비스의 연기가 어마무시 한건 아니었단다. 엘비스는 31편이나 되는 영화에 출연하지만 (필모 보소...) 연기력이 좋거나 명배우는 아니라서 영화는 말아먹기도 많이 말아먹었지. 또 영화는 대부분 뮤지컬, 아니면 어쨌거나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사실 엘비스가 '본격 춤'에는 능한타입은 아니었지. 그래서 영화를 찍을때에도 안무가가 알려준 안무를 잘 소화하지 못하거나 까먹어서 쿠사리를 먹... 음 매우 난처해 했단다. 끼 넘치는 춤동작으로 월드 탑스타가 된 엘비스지만 본격 춤에는 약했다는게 재밌지않니? 무튼 한 해동안 빌보드 1위곡 세개 찍는 이 청년 영화 31개를 찍을정도로 인기 절정인 이 청년 넘나 잘생기고 넘나 세쿠시한 이 청년!! 이 청년의 탄탄대로를 막을 수 있는게 있기는 할까? 트위터나 페북도 없어서 헛소리하다가 매장될 일도 없고말이다. 톰 파커 : 그렇다! 엘비스는 천년만년 잘나가는 무적의 캐릭터인 게다!!! 하하하하하 엘비스씨 편지왔습니다ㅋ 빳샤 "Huh?? 무슨편지지? 어디보자... 소집 장소??... 충남 논산시 연무읍 죽평리...?" 그렇단다 징집영장을 받은게지 당시 미국은 징병제였기 때문에 엘비스도 국방의 의무를 피할 수 없었단다. 1957년.. 한창 잘나가던 해에 징집영장을 받게되었지. 완전 핫한 친구를 완전 핫한 때에 데려가는 게 좀 미안했는지 국방부는 '연예사병'으로 복무할 것을 제안한단다. 하지만 이를 거절하고 일반 전투병으로 복무하기로 결정하지 (갑자기 상추를 7개 먹고싶어지는구나) 그리고 1958년 3월에 바로 입대 ㄱㄱ! 군대가려고 머리 깎는데 투블럭 간지가 나... 오 화보 괜춘하네요 옷 브랜드가 처음 보는 브랜드인데 유.. 에스.. 아미...? ㅇㅇ화보 아님 그냥 군인. 군 복무시절 엘비스프레슬리 사진임. 엘비스에겐 국방의 의무 말고 간지의 의무라도 있는걸까? 군복무 중에도 간지 터지는 엘비스. 엘비스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다음화는 어떨지 다음 카드에서 좀 더 지켜보자꾸나. 휴강이 길어져서 미안하구나 요새 카드 쓸 짬이 잘 나지 않았단다 ㅜㅜ 오랜만에 쓸 카드지만 댓글 많이 달아주면 좋겠구나! 특히 저번 수업에 출석했던 @Astrollabe @kimisu501 @bethnumber9 @hoj55m @HanseulKims @lovenai @kdw002 @gave1 @lhj010716 @binilee5 @parkwon1 @coocoo99 @qndk88 @skdud5260 @marbark @kyx2007 @lia1111 @JoeyHyun @lys1325 @redsonia @AshtheReborn @slah9977 @rla8447 @ninkuk92 @cucw5291 @globaltopa @coolnikikr @cosmosnabi32 @seoyunVeronica @namidaholic @leesn0126 @t01032460370 @dutnrhdeb @min0young @essimist @ardo @hfh9903 @zahwasang1 @ihy09 @SohoLee @JinJiHan @rkdduf84 @rty5374 @livertyetw @hg3150017 @nooryrang21 @cjs9541045 @hjh0363 @Denum @banitop7749 @kkuyu @gotjd171 @jenniferdoit @bounce99 @slimshadyksw @tmdgus1735 @hojejung1 @j94495876 @tyg05055 @eegg1009 @hellohk07 @sonasd123 @syfkjs @doTTob @HyejooLee3 @eoqkr0301 @bsh9002 @KTH2606 @cksdnd0480 @seen1226 @Ingyum @BackKyungTack @JongMookShin @berfamily @ekfrkekfrk @glgldisi 학생들! 지켜보고있단다.
[음악상식] 엘비스 : 홍철아 엉덩이는 이렇게 흔드는거야
반갑다 얘들아! 너희들에게 안진지하게 클래식, 락, 팝 등등 음악 상식을 떠먹여줄 진지한박사라고 한다. 지지난주부터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에 대해 얘기해주고있지 Heartbreak Hotel로 대박을 내 대중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빌보드 1위로 꺼져버린 엘비스가 정규 1집까지 대박나면서 인기 터진 얘기까지 했었구나. (지난카드 보러가기 - [음악상식] 엘비스? 그거 망할 예정인 가수 아님?) 오늘은 그 이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꾸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성공은 음악적 성공이기도 하지만 '상업적 성공'이기도 했단다. 당시 엘비스의 음악은 새롭긴 했지만 엘비스가 처음 시도한 음악은 아니었지. 엘비스가 등장하기 전 1950년대의 유명 라디오 DJ였던 엘런 프레드가 '문도그의 로큰롤 파티'라는 라디오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로큰롤'이라는 용어도 이미 널리 쓰이고 있었단다. 1950년대 초반 빌 홀리 & 히스 코멧츠 - Rock Around The Clock과 같이 블루스, R&B, 스윙 재즈에서 파생된 흑인 음악의 흥겨운 리듬 + 백인 음악인 팝과 컨트리 느낌을 결합한 새로운 유행 = 로큰롤은 이미 전국적 유행을 맞이하고 있었지. 이런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의 결합이 전국적인 유행에다가 흑인노래를 기막히게 부르는 기막히게 생긴 백인을 끼얹으면?? 이건 뭐 대박이 안터지고 싶어도 안터질 수가 없는 각ㄷㄷㄷ 게다가 당시엔 'TV'가 보급되어 '시각적 만족'이라는 새로운 욕구가 만들어졌고 그 새로운 욕구를 채우기에 엘비스는 너무나도 적절한 인물! Heartbreak Hotel로 이때까지 존재 하지 않았던 폭풍같은 대유행을 만들었고, 그 폭풍의 여파가 끝나기도 전에 더 큰 임팩트를 선사할 준비를 마친 엘비스는 단일 곡 임팩트류 갑 오브 갑!! Hound Dog을 바로 출격시킨단다 모르는 노래일 것 같다면 한번 재생해보려므나 You ain’t nothin’ but a hound dog Cryin’ all the time You ain’t nothin’ but a hound dog 이부분 듣자마자 아 그노래! 하는 Hound dog 무려 60년전에 엘비스가 부른 노래란다ㄷㄷ 심지어 이노래는 1956년에 엘비스가 '리메이크'한 곡이고 원곡은 1952 빅마마 쏜튼이 부른 재즈곡이지 빅마마쏜튼이 부른 원고 버전! 듣자마자 멤피스 목사아재와 슈퍼마켓 아줌마가 떠오르는 흑인삘 오지구요~ 재즈삘 지리는 곡이란다. 훌륭하면서도 전형적인 매력적이면서도 익숙한 이 버전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당시에는) 넘나 세련된 '로큰롤 버전'으로 재탄생되어서 음악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센세이셔널 했는데 NBC TV쇼 ‘밀턴 벌 쇼’에 출연! 32초부터 시작되는 엘비스 무대의 관전포인트는 1. 재즈 필을 완전히 날려버리는 허스키한 보이스 2. 42초부터 절정을 이루는 엘비스의 골반춤 + 기관총같은 드럼작렬 + 김상중... 이 아닌 스코티무어의 기타솔로 작렬 3. 1분 30초부터 1/2배속 재생으로 박자를 레알 문란하게 가지고 도는 쇼맨십! 특히 저 골반춤은 그야말로 대박히트를 쳤단다. 기존에 있던 모든 것을 뒤집는 파격은 새로운 문화의 시대가 열렸고 그 문화를 이끄는 것은 '로큰롤'임을 알린 노래가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Hound Dog이었던거지. 물론 파격이 항상 환영받는 것은 아니겠지 엘비스의 음악은 기성 음악인들에게는 상당한 거부반응을 불러일으켰는데 Hound Dog 원곡(쏜튼이 부른 재즈버전)의 공동 작곡가인 스톨러의 리버는 엘비스버전의Hound Dog을 “경직된 듯하고, 너무 빠르며, 신경과민적” 이라고 지적했을 뿐만 아니라 “다량의 소음” 이라고 평하기도 했단다. 그리고 대중들도 이노래를 부른 엘비스에게 제발 닥치고... 제발 닥치고 내 돈이나 받아가요!!! 라며 열광. Hound Dog는 또다시 빌보드 1위를 달성하게 된단다. 그와 동시에 미국 전역은 엘비스 열풍에 휩싸이고 당대의 최고 인기 쇼 프로그램이던 CBS TV쇼 ‘더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 젊은 세대들에게 혁명, 그리고 감각적인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게됐단다 설리번 쇼에 출연해서 빅히트를 친 엘비스. 엘비스가 다음에 설리번쇼에 재출연했을 때 설리번 쇼의 시청률은 무려 82.6...% ㄷㄷㄷ 문화혁명급인 이 놀라운 모든 일들이 RCA와 계약한 첫 해에 일어난 일이라는거ㄷㄷ 이쯤되니 RCA에 엘비스 계약시킨 톰 대령 뿌듯지수 올라가는 소리 들리는구나ㅋㅋㅋ 하 데뷔 첫 해에 이정도 활약 했으면... 그만 쉬어도 될법한데... 그 해가 가기전에 으쓱으쓱하던 톰대령의 어깨가 거의 뿌러질정도로 올라가도록 또 대박을 쳐버린 엘비스 프레슬리! 바로... Love Me Tender 발표! 모두가 아는 전설의 명곡인 Love Me Tender는 데뷔 1년도 안돼서 Heartbreak Hotel과 Hound Dog으로 초대박을 친 '신인' 엘비스 프레슬리가 낸 노래라는거 ㄷㄷ 팝 음악의 판을 바꾸고 세계 음악의 흐름을 바꾼 엘비스. 82.6%의 시청률을 만든 엘비스 프레슬리를 잡기위해 방송국들은 혈안이 되었고 그야말로 섭외 전쟁이 벌어졌단다. 이쯤에서 퀴즈. 대박 히트를 친 가수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 것 같니? 영화계 진출! (톰파커 어깨 대기권 돌파!!!) 영화판까지 진출한 엘비스 과연 영화로도 성공할 수 있을까? 또 음악으로도 계속 승승장구 할 수 있을까? '닥치고 내돈을 받아요'라는 외치는 대중들의 돈을 흡입하고 있는 엘비스! 다음 카드에서 계속 이야기하자꾸나ㅎㅎ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렴! @hoj55m @ihy09 @seyang42 @kimje13211 @Denum @Kgoltong @ninkuk92 @sonasd123 @gave1 @coolnikikr @skdud5260 @JongMookShin @binilee5 @parkwon1 @leesn0126 @Astrollabe @qndk88 @namidaholic @hellohk07 @doTTob @lys1325 @July1213 @gp2302 @rty5374 @tmdgus1735 @graycells01 @jk6250 @SohoLee @kim84562 @lhj010716 @rkdduf84 @JoeyHyun @slimshadyksw @seoyunVeronica @hfh9903 @lovenai @dutnrhdeb @redsonia @castalia @HanseulKims @BackKyungTack @HyeriAhn @ardo @lia1111 @alsrbs159123 @KyungMiChoi78 @zahwasang1 @qwerty7667 @kshlm5453 @cosmosnabi32 @kdw002 @PeterLee2 @marbark @cucw5291 @seen1226 @min0young @s949794 @fpswm28 @t01032460370 @kyx2007 @jelry2000 @rla8447 @cjs9541045 @bounce99 @nooryrang21 @hizenio7 @Ingyum @daria0115 @pinenine @gotjd171 @livertyetw @kimisu501 @ose5184 @j94495876 @jenniferdoit @CheongUngKim @tyg05055 @bethnumber9 @cksdnd0480 @LinaH @feverm @eoqkr0301 @banitop7749 @GinjiGaiger 학생들같이 출석해주는 학생들은 더많이 받으렴!!
[음악상식] "안녕하세요 엘빗..." "꺄아아아아아!!!"
반갑다 얘들아! 너희들에게 안진지하게 클래식, 락, 팝 등등 음악 상식을 떠먹여줄 진지한박사라고 한다. 지난번 첫번째 엘비스 프레슬리 카드에선 어디까지 얘기했지? 아, 엘비스의 자작 녹음을 주의깊게 듣던 (그리고 얼굴을 주의깊게 보던) 여직원이 엘비스를 사장에게 추천한 얘기까지 했구나 (지난카드 보러가기 - [음악상식] 레전드 : 거기 젊은이, 왁스좀 빌려주게) 여직원의 추천을 받은 선 레코드 사장 새뮤얼 필립스는 바로 시작 한단다! 밀당을 말이지. 새뮤얼 필립스는 여직원의 추천을 받고도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전혀 연락을 하지 않는단다. 어머니 드리려 음반 녹음했을 뿐인 엘비스는 당연히 연락이 올거라고 생각도 안하고 있었고 말이야. 일상으로 돌아간 엘비스. 낮에는 트럭운전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밤에는 식당이나 클럽에서 기타치고 노래하며 예전처럼 지내게 되지. 밀당을 언제까지 하냐고? 새뮤얼 필립스는 엘비스가 선 레코드를 다녀간지 1년이 지나도록 연락을 하지 않는단다. 키야 나쁜남자 스멜 제대로 나는구나 사장님 나빠요 무튼 그렇게 1년이 지난 1954년 여름 엘비스의 연락처로 전화를 건 새뮤얼 필립스! "나랑 일하나 같이하자" ...는 아니고 "흑인 창법으로 노래하는 백인 가수'가 필요한데 엘비스 자네가 딱일듯 우리 회사에서 노래하지 않겠나??" 오! 대박기회를 맞이한 엘비스 근데 가오가 있지 1년동안이나 밀당하고 연락도 없더니 대뜸 가수하라는 제의를 그냥 넙죽 받을 수가 있나 시크하게 "콜ㄹㄹ코ㅋㄹ콬콬ㄹ!! 개콜!! Dog Call!!!!" 밀당따윈 버리고 개콜 외친 쉬운남자 엘비스ㅜㅜ 무튼 사장님과 엘비스의 계약이 성사되었단다. 엘비스가 호구잡히지 않을까 걱정도 되는데... 하지만 사장님은 밀당의 고수! 밀당의 가장 중요한 원칙 밀 때는 확실히 밀고 당길 때는 확실하게 당긴다 엘비스의 첫 레코딩에 새뮤얼 필립스 본인이 직접 프로듀서로 나서고 기타리스트는 롤링스톤지 선정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인'의 29위에 랭크 Rock n Roll 명예의 전당에 등재, Memphis Music 명예의 전당에 등재된 위대한 기타리스트 김상중! (사진 위) 이 아니라 스코티 무어! 베이시스트는 Bill Black's Combo의 리더이자 Rock n Roll Music의 선구자로 칭송받는 베이시스트 임원희! (사진 아래) 가 아니라 빌블랙! 그리고 보컬은 엘비스 프레슬리 ㄷㄷㄷ 이렇게 난다 긴다 한 사람이 다 모여서 만든 노래 'Thats Alright (Mama)'. 이 노래가 7월 10일 밤 9시 30분 라디오에 첫 전파를 타고... 청취자들 반응 폭발! 라디오국 전화 러쉬! 청취자들 엽서 폭주! 그리고 새뮤얼 필립스 사장 미소 폭발 (씨익)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가 첫 전파를 타자마자 열광적인 반응이 터져나왔고 레코드 주문량도 쏟아졌단다. 레코드사를 운영하고 프로듀싱도 하고 암튼 이바닥에서 짬밥 깨나 먹은 양반이니 단번에 대박을 직감했겠지. 그리고 사람들이 이렇게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좋아해주자 흐뭇해하면서 이렇게 생각했을꺼야. 'ㅋ 아직 얼굴은 보여주지도 않음ㅇㅇ 목소리만 듣고 반응이 이정도니 얼굴 보여주면 만수르 필립스로 이름 바꿔야할듯ㅋㅋㅋㅋ' 그렇단다... 엘비스는 아직... 라디오에 노래만 나온거였어. 지금으로 치면 얼굴도 모르는 신인가수가 본인이 라디오에 나온것도 아니고 음원만 라디오에 한번 재생됐는데 멜론 지니 차트 지붕킥 때리고 씨디 재고 오링난 정도 될듯ㄷㄷ 그리고 1954년 미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KWKH, Radio의 'Lousiana Hayride'라는 컨트리 뮤직 쇼에 출연한단다. 위의 영상을 통해 당시에 라디오에 출연한 엘비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단다. 이 라디오 쇼에 출연은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전국민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었다는 엄청난 의미 외에도 또다른 행운을 가져다주지 바로 훗날 엘비스는 평생의 매니져가 되는 톰 파커를 만나게 된거란다. 톰파커는 당시 최고의 컨트리 뮤직 스타인 Eddy Arnold와 Hank Snow등의 거물급을데리고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지. 암튼 이제 목소리는 전국민이 다 알게 되었고 이제 얼.굴. 좀 여기저기 비춰볼까? 멤피스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퍼진 엘비스의 인기. 걷잡을 수 없는 뜨거운 불길처럼 순식간에 확산된 엘비스의 인기는 1955년 가을까지 순회공연으로 더욱 고조되지. (1955년에도 소녀팬들 스크림은 장난없구나) 소녀팬들이 저럴 수 밖에 없는 것도 이해가 간단다. 당시 공연이라고 하면 정장차림의 뮤지션들이 정숙하고 품위있게 연주하고 노래하는게 정석이었는데 웬 잘생기고 노래도 잘하고 옷도 멋있게 입고 (한번 더) 잘생긴 오빠가 저렇게 눈앞에서 공연을 한다니 ... 소리를 안지르는 쿨녀가 있을 수 있겠니. 유명해지고 인기를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이때부터 엘비스는 음악계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단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음악으로 미국전역을 사로잡기 시작한 게지. 당시 음악계는 엘비스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더불어 어디서도 들은 적 없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과 어디서도 들은 적 없는 새로운 퍼포먼스에 놀랐었단다. 당시 인터뷰를 들어보면 (영상은 1955년 엘비스의 인터뷰 내용이란다) Mae: Elvis, uh, you are sort of a be-bop artist more than anything else. Arent you? Is that what they call you? (엘비스씨, 엘비스씨는 음 모던재즈? 가수라고 보면 되나요?) Elvis: Well, I never have given myself a name, but a lot of the people call me, uh, uh, boppin hillbilly and be-bop. I dont know what they call me . . . (음 딱히 저를 규정한 적은 없지만 사람들은 저를 재즈하는 백인 뭐 이렇게 부르더라고요) Mae: Sort of a combination of things. But i've seen you perform and you're a terrific performer (장르의 혼합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근데 엘비스씨 공연하는걸 봤는데... 진짜 엄청난 퍼포먼스던데요) 이런식으로 새롭고 신선한 엘비스의 음악과 퍼포먼스에 사람들은 점점 매료되고 있었지. 이렇게 데뷔 초부터 엄청난 반응을 받은 엘비스. 점점 대박의 스케일은 커지고, 공연이 끝난 1955년 더 대박을 치게 되는데! 그 얘기는 1년 후에 들려주마. (Feat. 새뮤얼의 '밀당은 이렇게 하라') 는 드립이고 다음 카드에서 계속 얘기하자꾸나. 카드 쓸 시간이 요즘 많지 않아서 분량 이해해주면 고맙겠구나 ㅠㅠㅠ 오랜만에 카드 썼는데 댓글 많이 달아주면 좋겠구나! 특히 저번에 댓글 달아준 @gksdyd950407 @sonsational @essimist @kimisu501 @MHeeKim @slimshadyksw @castalia @vovl12 @MizyChae @hongly @SeungYongJang @ardo @sonasd123 @rlagydnjs601 @cksdnd0480 @namidaholic @hellohk07 @qndk88 @PeterLee2 @skdud5260 @hfh9903 @gave1 @lia1111 @JoeyHyun @LinaH @cucw5291 @goguma03012 @parkwon1 @prigia @Denum @raesogood @ose5184 @gp2302 @bounce99 @tmdgus1735 @lhj010716 @JinJiHan @gotjd171 @kim84562 @lovenai @seyang42 @coolnikikr @DanA627 @jelry2000 @nooryrang21 @ksy71004 @banitop7749 @s949794 @berfamily @Groovelikeme @Tikita @tlatjqls0606 @Kgoltong @kshlm5453 @seen1226 @dnlqor91 @o122634 @lgdnjswo @AshtheReborn @asdfgh8846 @HyeriAhn @rty5374 @SohoLee @MoonJamie @JaekongYou @ihy09 @KyungMiChoi78 @exious0513 @serin789 @seoyunVeronica @chan0911 @globaltopa @ninkuk92 @BackKyungTack @WankeePark @lys1325 @odm391622 @redsonia @id4hero4 @feverm @jk6250 @kyx2007 @SooChengChang @jnhee1234 @noeyco @tyg05055 @cjs9541045 @pinenine @doTTob @j94495876 @HanYoonje @glgldisi @eoqkr0301 @July1213 @jackpot94 @Ingyum @binilee5 @rockee88 @ignore28 @nw5421 @ChoSeoHyeon @do2blej @bsh9002 @hizenio7 @hoj55m @hogi5003 @sadadak @jenniferdoit @graycells01 @fustnghd @Astrollabe @dyddnss @jonghuinoh @minhee1122 @marbark @huny1906 @dutnrhdeb @livertyetw @alsrbs159123 @hitennis @hjh0363 학생들! 나랑 댓글 하나 같이달자
[Part2] Memphis-02(그레이스랜드)
엘비스 프레슬리, 1950-60년대 로큰롤의 전성기를 이끌며 미국 내 1억 장 이상, 전 세계 약 10억 장 이상의 음반 판매를 기록한 '로큰롤의 왕'. 그의 안식처인 '그레이스랜드(Graceland)가 바로 이곳 멤피스에 있다. 1977년 사망한 이후에도 연간 5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그는 멤피스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그레이스랜드로 향한 것은 당연한 순서. 짐도 풀지 않은 채, 캐리어를 끌고 나는 엘비스를 만나러 갔다. 그레이스랜드는 엘비스가 살던 집을 보존하고 가공해 기념관으로 만든 곳이다. 그가 자던 침대, 저녁식사를 하던 식탁, 손님과 파티를 즐기던 응접실 등 그의 모든 것을 샅샅이 들여다 볼 수 있다. 40달러에 가까운 입장료에 혀를 내두르며, 나는 '본전'을 뽑기 위해 신혼집을 보듯 집안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피고 기록했다. 숫자를 세는게 무의미한 플래티넘, 골드 레코드 컬렉션, 딸 생일선물로 줬다는 전용기, 자동차 박물관이라 해도 좋을 그의 애마들. 한 시대를 풍미한 월드 슈퍼스타의 스케일 앞에서 나는 그저 조용히 셔터만 눌렀다. 입구에서 나눠준 가이드 레코더에서는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그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새로웠다. 사실 나는 <Hound Dog>이나 <Love Me Tender>같은 몇 가지 대표곡을 제외하곤 그의 음악에 익숙하지 않았고, 그래서 주의깊게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저 하나의 상징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그의 집에 방문해 그가 살았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며,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가 왜 '제왕'이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