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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순례길

Buen Camino #72. 까미노는 결국 내가 만드는 것 (피니스테레) (완결)
30/06/2014 Olveiroa > Finisterre (Day 34) 아침에 일어났더니 날이 좋지 않다. 그런데 이런 날씨라서 걷기는 별로겠군! 이라고 생각하기보단. 뭔가 판타지스러운 생각이 먼저 머리에 스쳤다. "아 최종 목적지에 가기 전에 늘 날씨가 안좋다가 목적지에 가면 화아아악- 하고 날이 개이겠군! 신난다" 였다. 이제 29km 만 가면 피니스테레다. 피니스테레를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Samos 라는 곳을 가는 순례객들도 있다. 보통은 피니스테레를 갔다가 Samos를 거쳐 다시 산티아고로 향하는 여행자들도 있다. 아니면.. 아예 포르투갈로 향하기도 한다. 기봉이와 나 프란체스카는 처음부터 각자 걷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다. 그리고 이 길의 의미를 정의할 시간이기도 하다. 다음 마을인 Cee로 가는길은 언덕을 하나 넘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길이다. 올라가는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그만큼 힘이 배로 들지만 날이 흐려 바람은 세차게 불고 땀이 바싹말라 걷기에는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길의 중간에는 우리를 응원해주는 쉘터도 하나 있었다. 리어카 하나를 두고 생수를 파는 아저씨. 물을 하나 들고 마시면서 걸으니 갈증도 없다. 정말 걷기 좋은 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언덕을 거슬러 올라갈때 즈음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댔다. 그 언덕의 끝에 다다랐을때, 사진과 같은 문구가 쓰인 방향석을 만났다. To THE END.. (마지막으로..) 이유는 모르겠지만, 산티아고 성당에 이르렀을때 왠지 끝난것 같지 않은 기분이 이 비석을 지나면서 끝이 다가오고 있음이 강하게 전해져 왔다. 아 진짜 이 길이 끝이나는구나 싶었다. 날이 천천히 개이기 시작하고, 나는 걸으면서 다시 처음 내가 까미노를 걸었던 그때를 떠올렸다. 첫날 생장드피르에서 만났던 친구들 중간에 만난 론, 그리고 만들어진 가족 와인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었던 까미노, 그리고 헤어짐. 또다시 만남 .. 곱씹어보면 이 길 위에 희노애락이 다 있었고 진짜 삶이 있었다. 피니스테레로 가기전 머무르게 되는 마지막 마을 Cee. 나는 이게 Sea라는 바다로 읽혀져서 바다가 있는 마을이라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진짜 바닷가 마을이었다. 도착해서 까페콘레체와 쇼콜라떼를 하나 베어 물어본다. 기봉이를 중간에 만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나보다 먼저 갔거나 나보다 뒤쳐져 있을 것 같다. 기봉이에게 일단 Cee에 도착했고 먼저 출발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기봉이가 근처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어 그럼 잠깐 기다리지 뭐!" 기봉이는 20분 뒤에 도착했다. 저멀리 파란색 방수주머니만 봐도 알 수 있는 기봉이의 존재감.. 기봉이는 간만에 언덕을 오르니 발목에 무리가 가는 것 같다며 조금 쉬다가기로 했다. 나는 슈퍼에 들러 음료수를 사들고 먼저 길을 나선다. 아기자기한 동네. 유럽의 동네는 어찌됐던간 시청이나 교회가 중심가다. 역시나 까미노는 그쪽을 가르켰고 천천히 도시를 누비다가 주택가로 들어선다. 약간의 오르막이 있는 주택가에서는 화살표가 무척 희미해 보이지 않는다. 내 앞에도 나처럼 전전긍긍하던 순례객이 있었다. "올라! 어디로 가야지 피니스테레인지 혹시 아세요?" "아.. 저도 몰라요..." "그럼 일단 주변 사람에게 물어봐야겠네요" 하고 나는 늘 그랬듯이 돈데에스따를 시전했다. '어디로가요?' 보통 길찾을때 자주 쓰다보니 입에 붙었다. 스페인 식의 특유의 발음 에---- 한번 해주면서 돈데에스따 피니스테레? 라고 물으니 친절한 꼬마는 우리에게 길을 알려줬고 가르키는 쪽으로 계속 걸으니 마을을 벗어나는 언덕이 보였다. 언덕에서 친해진 이 친구는 조금 얘기하다보니 나와 동갑이었고, 금방 친해지기 시작했다. 이름은 루이. 보르도 근처에 있는 마을에서 부터 까미노를 시작했다고 했다. "어어 그럼 집앞에서 온거네? 피레네쪽으로 온거야?" "아니.. 피레네를 넘는 길은 워낙 유명해서 조금 사람이 적은곳으로 가겠다고 선택한게 북의 길이었지 (북의길은 이룬에서 시작해서 부르고스로 합류-합류되지 않을 수도 있음)" 북의길을 걸으며 물론 다른 길보다는 인프라가 적지만 나름 캠핑도 하고 재밌게 지냈다고 했다 "그래서 내 가방은 대부분 캠핑도구야 하하 " "루이, 근데 너 혹시 저번에 버스정류장에서 자고 있지 않았어? 내가 엊그제 널 본거 같아서 그래!" "어! 맞아!!" 루이와 나는 금방 친해졌고 앞으로 남은 길들도 정말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한국의 경제상황.. 그리고 내 미래에 대해서 스스럼없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역시 타지에서는 남 눈치없이 내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하게 된다. 그가 나를 그 이야기로 평가하든 말든 나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나는 뭘하며 살게 될까. 취업 적정기였을때 난 위험을 감수하고 2년 영국을 가기로 결심했었다. 근데 생각해보면 그 위험을 감수할만큼 난 영국에서 목표를 야무지게 이뤘던 것 같다. 그게 아니면 지금처럼 이렇게 자유롭게 영어를 말하며 사람들과 친해질 수 없었을거다. 딱히 뭘 하겠다고 목표를 정하지 않았더라도. 한가지 확실한 건 뭘 하겠건간에 그걸 꼭 해낼 에너지와 기반은 제대로 얻었다는 것이다. "와아.. 백사장이다!"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드디어 피니스테레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같이 속도를 맞춰 루이랑 같이 걸었지만 나는 속도를 조금씩 줄였다. 서로 친구들에게 나눠줄 조개를 줍다가 수많은 발자국을 발견했다.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 발자국이 수없이 나있었는데 겹치는 발자국은 거의 없었다. 나와 루이는 아무것도 없는 백사장에 계속 발자국을 찍으며 걷고 있다. "루이! 지금 니가 너만의 까미노를 만들고 있단 느낌이 드는데!!? 뒤를 돌아봐봐" 이건 루이가 만들고 계속 나가고 있는 길. 그리고 나도 뒤를 돌아보니 내가 지금까지 나만의 길을 계속 찍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걸어온 길. 남의 이정표가 될수도 있고, 가장 나다운 방향이다. 그저 내가 걷기로 했다면 그 길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선택은 늘 선택한 이후에 내가 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루이도 나도 고향 친구들에게 줄 조개껍데기를 주웠다. 하나는 더 예쁜걸로 골랐는데 이건 나중에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면 만날 오리올의 엄마 테레사에게 줄 조개껍데기다. 약 1주일을 내가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인 오리올네 집을 방문했다가 아주머니께 "저는 꼭 까미노 다녀올거에요!"라고 했더니 "넌 분명 해낼거야!"라고 응원해주시면서 갔다오면 꼭 조개껍데기 가져오라고 당부하셨는데 여러개 주워갈 수 있겠다. 루이는 이런데 오면 반드시 수영을 해야한다며 갑자기 뛰어들었다. 시원하게 뛰어들면서 드디어 긴 여정의 끝이라는게 확 느껴졌다. 속으로 이건 셀프 세례인가 싶기로 했다. 루이가 신나게 뛰어노는 사이에 프란체스카도, 기봉이도 왔다 "어어! 준영 거기서 뭐해!?" 하면서 내려오는 프란체스카. 프란체스카도 바다에 푹 빠져들었다. 드디어 도착한 피니스테레의 시가지. 중간에 마지막 알베르게에 짐을 두고 홀가분하게 갈까도 생각해봤지만 역시 마지막까지 내가 짊어진 것을 가지고 있다가 피니스테레에 풀기로 했다. 시가지에서 한 3km정도를 더 걸어야 하지만 우리는 시원한 바다에 몸을 담궜다가 나왔기 때문에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굽이굽이 도로를 지나면 도로의 끝은 이렇게 피니스테레의 절벽이 보인다. 드디어 도착한 피니스테레! 0km 남았다니 감격이다! 피니스테레에 왔더니 반가운 얼굴들이 참 많았는데 그중 제일 반가운 건 바로 토마스였다 "오오오!! 토마스!!!!!! 잘 도착했구나!" 기봉이, 프란체스카, 토마스는 서로 부둥켜 포옹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이렇게 넷이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것에 참 감사했다. 길을 걷고 나서 드디어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드디어 완주를 했구나. 까미노를 모두 걸었구나 하는 생각이 제대로 든다. 보통 피니스테레에 도착하면 가지고 온 옷가지를 태운다고 하지만, 나는 태우지 않았고 절벽에 걸터앉아 대서양을 바라보았다. 길에서 뒤를 돌아보면서 천천히 걷는 방법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조급해 하지말고 내 길을 걷자는게 희노애락을 겪은 까미노에서 얻은 지혜이자 최종 결론. 일찍 알아서 더 친해졌으면 좋았을텐데 참 좋은 친구였던 루이. 다시 시가지로 돌아갈때는 크리스티앙 아저씨도 만났다. 너무너무 반가워서 뛰어가서 와락 안겼다. 숙소로 들어가니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다. 오늘 하루를 여기서 보내고 내일 아침에 피니스테레로 가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아일랜드에서 온 아저씨도 반가워서 이렇게 사진을 찍었다. 숙소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사람들과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서 영상을 찍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예전부터 준비해오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판도라'프로젝트. 각국의 언어로 나에 내 여행에 대한 응원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나는 프란체스카, 크리스티앙 아저씨 토마스까지 각국의 언어로 인터뷰 영상을 땄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 내용이 뭔지 모른다. 해석을 해봐야겠지만, 나중에 정말 응원이 필요할때 하나씩 해석해 볼 참이다. 근처 피씨방에 들러 비행기표를 프린트하고, 나는 바로 다음날 아침 바르셀로나로 떠나는 여정을 잡았다. 하루 더 머물고 싶지만 일정상 조금 서둘러야만 했다. 하루정도는 더 긴긴 밤을 함께 해야하는데, 어차피 또 다시 만날 친구들이니까. 아쉬움을 갖고 기봉이와 나는 버스에 탔다. 기봉이도 다음날 마드리드로 떠난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이 친구들을 창밖으로 보고 있자니 헤어짐에 익숙했어도 슬픔이 몰려왔다. 정말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이었다. 진심으로... 기봉이는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햄.. 왜 이렇게 먹먹하죠?? 갑자기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나만 남은 기분이에요.." "응.. 우린 까미노에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아..." 우리는 서로 아무말도 못하고 멀뚱멀뚱 캔맥주를 까먹었다. 다시 도착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시가지. 비가 세차게 내렸다. 비가 너무나 많이 와서 당황스러울 정도로 거의 폭우 수준이었다. 기봉이와 나는 숙소를 잡긴 했지만 위치를 몰라 조금 헤맸다. 게다가 너무 헤메이다보니 시간도 많이 늦었다. 오후 10시쯤 가까스로 도착해서 숙소를 배정받고 보니 알베르게가 아닌 약간 선수 합숙소 같은 곳이었다. 비에 젖은 옷가지를 말리고 샤워를 마친 후 다시 바깥으로 나와 마지막 한잔을 했다. 나는 아주 이른 새벽 다시 나와야 했기 때문에 기봉이와도 작별인사를 해야했다. "햄 정말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요. 까미노에서 햄 가방에 우리나라 국기 보고 아는체 한거 정말 제일 잘한 짓인거 같아요" "아니 나도 너한테 정말 많은 도움 받았어. 어차피 그때가 아니었어도 우리는 같이 걷고 있었을거야" 잠에 들기전 서로 다시 한국에서 보자는 약속으로 하고 잠들었고, 다음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 말렸던 옷가지를 챙겨 조용히 방을 나왔다. 기봉이를 보니 골아떨어져있다. 복도에 말려둔 옷가지도 모두 챙겨 밖에서 가방을 정리하고 나서려고 하는데 문 앞에 누가 서있었다. 기봉이였다. "햄 그래도 아침에 가기전엔 꼭 인사하려고 했어요"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쩌다 이런놈을 까미노에서 만났는지.. 참.. 그저 고마웠다. "한국서 보자!"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났다. 이른 아침의 공항. 생각보다 많은 인파가 있었다. 다들 까미노를 마치고 돌아가거나 까미노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부엔까미노를 외치는 것 같았다. 비행기가 떴는데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34일간의 그 여정. 그리고 사람들.. 따스한 말한마디 어쩌면 그렇게 다들 삶에 대해 긍정적인지. 삶에 대한 에너지를 한껏 얻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나는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1년 만이구나. 바르셀로나. 나의 까미노는 그렇게 다시 시작됐다. P.S. 지금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여행기를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이 연재 솔직히 언제 끝나나 했었는데 무려 1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까미노만 연재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네요. 작년만해도 겨울에 끝날 것 같더니.. 오늘 끝났습니다. 딱 3년전, 이맘때도 저는 까미노를 걷고 있었네요. 다이어리에 썼던 감정이랑 대화까지 복기하느라 시간이 더 많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 지루하게 느끼셨을수도 있지만. 저한테는 이것도 그때의 느낌을 잊기 싫어 열심히 임한 '기록'이자 노력이었네요. 그래서 더욱 제 자신이 뿌듯합니다. 아마 까미노 여행기만 놓고 본다면 300페이지는 족히 넘을 듯 하네요. 이제 제 여행의 반이 끝났습니다. 다시 시작해야죠. 이제 유럽을 누비다가 북유럽을 누비다가 러시아까지 가는 스펙타클한 여정이 되겠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까미노를 모두 걷고 나서 제가 받은 스탬프들 > <마지막날 토마스 인터뷰> <친구들을 떠나보내고 먹먹함에 맥주마시다가 찍은 사진 (?)> <기봉이는 마지막날에도 만나지 못한 론 아저씨를 마드리드에서 재회했다고 합니다> 다른 시리즈로 계속.! To Be Continued
Buen Camino #71 .나는 왜 피니스테라에 가려하는가
29/06/2014 Negreira > Olveiroa (Day 33) 전날 마신 와인때문에 머리가 조금 아프다. 그래도 아침 공기는 새벽 이슬을 머금고 뿜어대는 통에 정신이 맑아지는건 시간 문제인 것 같다. 이른 아침에 출발했다. 저 멀리 먹구름 하나를 강한 햇살이 끊어내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비춰주고 있는 듯해보였다. 나는 지금 왜 피니스테레에 가려고 하는 것일까? 가면 무엇이 달라질까? 피니스테레에는 내가 완주한다고 해도 누군가 주는 인증서는 없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었던건 가장 원초적인 .. 한국사람이라면 등산을 하고 나서 '야호-' 하듯. 내 속을 털어내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길의 가장 끝에서, 그냥 다 비워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기봉이와 프란체스카를 먼저보내고 나는 촉촉한 오솔길을 끊임없이 걷는다. 지나가다 버스정류장의 의자에서 잠든 순례자도 보인다. 다들 무슨 목적으로 피니스테레로 향하는 것일까? 굽이굽이 동네의 오솔길을 걸으며 그곳에 가고 싶은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마을의 오솔길을 걸으며 언덕쯤에서 뒤를 돌아봤을때 내가 왔던길을 철저하게 잊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솔길을 올때 그냥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난 별로 신경쓰지않고 기억하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앞만 보고 가다가 언덕 중턱쯤 아래를 바라봤더니 아, 내가 이렇게 먼길을 걸어왔구나. 하고 나 스스로 대견해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있다. 내가 잘 걷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확신을 가지고 걸었다면 그 길에서 나를 응원해주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30일 정도 걷다보면 이제 모든 풍경들은 내 눈앞에서 익숙해지고 흘려보내게 된다. 결국 풍경에서 건물이 남다가 건물도 익숙해지면 사람이 남는다. 그리고 결국 그 사람이 했던 '말'이 가장 끝에 남는 것 같다. 그게 내게 받아들여지면 내 인생에 큰 자양분이 되는 '지혜'로 남는다. 그래서 나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왠지 말을 걸어보고 싶어진다. 설령 상대방이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하더라도 까짓것 손짓발짓이면 다 통한다고 배웠다. 길에서 동네 아저씨를 만났는데 도끼를 들고 있었다. 순례자들도 흠칫 놀랐는데 그냥 어디론가 가시는 아저씨같아 경계를 풀고 물었다. 첫 대화니까. 유머러스하게.. "아저씨 집으로 가시나봐요?" 를 말하며 첫 대화를 튼다. 있는말 없는말 다 섞어서 걍 질러댄다. "까사? (가는포즈)" 이렇게 하면 대부분은 알아듣는다. 아저씨는 웃으면서 맞다고 했다. 그러면서 폭풍 스페인어를 구사하신다. 그런데 워낙 스페인어는 손동작과 표현으로 감정을 담아 얘기하기 때문에 팍팍 의미가 꽂히는 언어다. "아저씨는 집을 보수하러 가는데 요즘 너무 힘들다. "는 식으로 말씀하신다. 까사(스페인어로 집), 땀흘리는 시늉 대충 이정도 정보로 알아듣고 대답도 한다. 그러면서 초대할테니 한번 묵고 가라고 까지.. 이렇게 급 친해지는게 까미노의 어르신들. 워낙 동네 토박이 분들이라면 순례자들을 하도 많이 만나셨다보니 순례자에 대한 경계심도 별로 없으신 것 같다. 옆에 있는 순례자분은 아저씨와 내 대화를 들으며 신기하게 다 연결되서 이야기한다며, 그것도 내게 능력이라고 했다. 하하. 산전수전 여행으로 겪은 지혜지요. 저는 벨기에에서 말도 안통하는데 불고기감 목살 산 사람이에요. 비가 그치고 대지는 빠르게 말라갔다. 걸으면서 맥주 생각이 간절했다. 아마도 프란체스카와 기봉이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 싶은데, 마침 그렇게 이야기 할때 즈음 우리는 알베르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후 1시 언저리에 도착해서 꽤나 빨리 도착해서 푹 쉴 수 있음에 감사. 그러나 알베르게에는 키친도 없고, 뭔가를 먹으려면 마을의 펍을 이용해야 한다. 마침 생필품을 같이 파는 펍이 있었다. (마을이 작아 펍과 생필품을 같이 취급하는 것 같다.) 기봉이와 프란체스카가 마침 도착해서 방을 배정받고 바로 세르베사 하러 간다. 기다렸다는듯이 "햄! 세르베사 콜!?"이라는 말을 듣고 동네 펍에 가서 맥주를 시킨다. 그래도 작은 동네라 그런지 핀쵸스 인심은 좋다. 야외 탁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아일랜드의 톰 아저씨도 재회해서 그동안 잘 지냈냐며 인사를 나눈다. 그날 저녁은 역시 펠레그리노 메뉴를 먹는다. 식사를 하고 나서 밖을 보니 구름이 어느정도 사라진건지 별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조용한 동네에 얕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느낌 탓이겠지만, 스페인의 밤은 칠흙같지 않고 뭔가 따스하게 어둡다. 알콜이 살살 들어가니 밤이 감성적이다. 떠나고 싶지 않다. 아마.. 내일이 까미노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더 그런것 같다. 오늘 원탁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했다. "아- 내일이 마지막 날이 되겠네. 뭔가 아쉽다" "내일 만큼은 더욱 철저히 혼자가 되보려고." 내겐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 길의 의미, 그리고 완주의 의미... 내가 피니스테레까지 가야하는 이유. 그 의미를 찾을때, 나는 이제 많은 사람들을 추억에 뭍고 다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 계속.
Buen Camino #70. 이제 내가 가야할 길만 남았구나.
28/06/2014 Santiago De Compostela > Negreira (Day 32) 투둑투두두두두둑 쏴아아.. 비가 세차게 내리는 오전. 3층 방을 받았기 때문에 천장이 뻥 뚫린 방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잠이 깼다. 예전 같았으면 6시에 다른 사람이 나가는 소리나 벨소리로 나도 뒤늦게 출발하곤 했을텐데, 간만에 8시쯤 느즈막히 일어난다. 기봉이도 나도 간만에 푹 쉬어서 그런지 컨디션이 좋다. 프란체스카는 점심이 지나고서 출발한다고 했다. 잠깐 기념품을 사야될 일이 있다고 했다. "어 그럼 프란체스카, 잘하면 론도 만날 수 있겠네? 론에게 문자 했는데 우리가 묵었던 그 마을에 있을거라고 했거든" 프란체스카는 시간이 가능하면 꼭 론도 보고 출발하겠다고 했다. 우리도 론을 보고 출발하면 더 좋겠지만 기봉이는 발목때문에 천천히 걸어야했고, 내 경우에도 가방 무게가 상당해서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사실은 이런저런것 다 핑계고.. 그저, 첫 시작은 예전처럼 혼자 하고 싶었다. 암묵적으로 기봉이와 나도 아침 커피가 진하게 나오는 바에 앉아 카페콘레체를 하면서 천천히 자신의 길을 걸어보자고 했다. 우리는 이에 동의했고, 오늘은 정말 조용한 가운데 서로 시간차를 두고 출발한다. 산티아고 성당을 뒤로하고 언덕 하나를 넘었더니 이렇게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의 전경이 펼쳐졌다. 뭔가 짠한 기분이 들었다. "아.. 다시 시작인가?" 라고 생각할 무렵 기봉이도 보였다. 기봉이도 나도 이 광경을 눈에 담아두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리곤 이렇게 다시 길을 걷는다. 길 상태는 조금 애매하다. 표식이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하는지 헤멜 수 밖에 없던 이상한 도로. 그럴때는 일단 사람들이 많이 있는 마을 어귀를 어슬렁 거리면 찾을 수 있다. 예전 까미노를 걸으면서 배웠던 지혜라고나 할까. 눈 앞에 이상하게 순례객들이 적었는데, 이 마을을 지나고 나니 순례객들이 서서히 많아지기 시작했다. "올라~ 어디서부터 까미노 걷기 시작하셨어요?" 라고 묻자, 많은 순례자들이 콤포스텔라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고보니 여기는 포르투갈로 이어지는 포르투기스로드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다시 시작한 까미노는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연장선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사람도 그대로, 모든것이 그냥 어제와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갈리시아 주의 날씨는 영국처럼 비바람이 잦다. 다행스럽게 오늘 아침에 비가 그쳐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다. 가끔 고된 걸음이면 이런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탁, 쳐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Negreira 로 가는 도중에 만난 중세도시. 잠시 물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아본다. 으어어어 좋쿠나! 드디어 도착한 Negreira. 기봉이와 나는 여기서 머물기로 약속했었는데 기봉이는 도착했나 궁금했다. 마침 메세지를 남길만한 크레딧(돈)도 다 떨어져 연락을 하려면 와이파이를 찾아야만 했다. 인포센터는 씨에스타라 그런지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나는 와이파이를 찾으러 떠났다. 이리저리 휴대폰을 위아래로 움직여대며 와이파이 신호를 잡으려 하는데 도통 잡히질 않는다. 그렇게 한 30분을 헤메이다가 마을을 나서는 북문쯤에 왔다. 여기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길래 걸터 앉아 인터넷을 키니 와이파이가 잡힌다. 마침 연락된 기봉이는 먼저 알베르게에 도착해 있다고 연락이 왔다. "햄 제가 그리로 갈께요" "응 나올때 꼭 파란 옷 입구 나와라!" 동네가 그리 크지 않아도 골목이 좀 있어서 기봉이가 자주 입는 파란 옷을 입고 나오라고 특별히 부탁했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부르는 기봉이. "여어- 빨리 왔네 다리도 안좋은 녀석이!" 기봉이가 자리잡아둔 사설 알베르게는 가격도 괜찮고 무엇보다 조용해서 정말 좋았다. 마침 입장할 때 즈음 프란체스카도 1시간 뒤면 도착할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내가 제일 느릿느릿 걸었지 싶다. 딱히 생각을 가지고 걸었던건 아니다. 그날만큼은 잡생각을 비우고 걷고싶었고 그냥 닿는대로 걸었다. 프란체스카가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간만에 거하게 먹기로 했다. 일찍 도착했으니 슈퍼에 가서 다진고기를 사서 프란체스카가 독일식 동그랑땡을 하고, 감자를 볶고 심지어 큰 수박 하나를 사서 식사준비를 한다. 물론 와인도 빠질 수 없지. 간만에 먹는 식사에 즐겁다. 그전까지는 숙소에서 먹지 않고 종종 사먹기만 했는데, 우리끼리 오순도순 이렇게 먹는게 얼마만이냐며 서로 감격스러워하며 먹는다. 프란체스카의 요리는 크림파스타 이후로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 론은 만났어?" "응! 안그래도 기념품 살 때 만났어. 건강해서 보기 좋더라~ 론 아저씨 너희 둘 엄청 보고 싶어했는데!" 우리도 론을 정말 보고 싶은데, 론은 아무래도 콤포스텔라에 하루 더 머물것 같았고 끝까지 완주하지는 않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피니스테레까지 가고자 하는 내 일정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론이 무사히 완주를 했다는 것에 기뻤다. 이제 내 길만 조금 더 남았구나. 다음에 계속.
Buen Camino #69. 갑자기 목표를 잃은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27/06/2014 Santiago De Compostela (Day 31) 약 30일을 걸어서 도착한 산티아고. 우리는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섰다. 햇살은 짱짱했다. 사실 조금 더운 나머지 다들 그늘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 셋도 처음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앞에 서서 산티아고 역사가 있는 흔적이 보였다하면 인증샷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워서도 찍고, 서서도 찍고.. 아는 사람이 보이면 무조건 찍고 봤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정확히 두 부류의 순례자로 나뉜다. 기쁜 마음으로 서로 끝이 났음을 축하하는 순례자. 목표를 이루자 이제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민하는 순례자. 일단 어찌됐건 우리는 목표를 이뤘고,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섰다. 마침 아는 사람들도 조금씩 들어나 이렇게 자축의 사진을 찍는다. 서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어디서 무얼 했었는지 서로 안부를 묻기에 정신이 없다. 기봉이와 한 알베르게에서 만나 친해졌다는 독일인 부부(좌측), 그리고 프란체스카가 만나고 싶어했던 레온의 그 미국넘 (맨 왼쪽). "프란체스카 너도 참 신기해.. 저 넘한테 그렇게 뒷통수 당해놓고도 다시 헤헤 거리면서 받아주냐!" 프란체스카 왈 .. "성당앞이쟈나!" 드디어 끝난 대장정. 우리는 이 앞에서서 피레네에서 부터 울고웃는 그야말로 희노애락의 기억들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우리는 광장에서 아는 사람이 보일까봐 계속 기다렸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도착하진 않은 것 같다. 어차피 산티아고 성당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모여있을거니까 지나가다 마주치겠지라는 생각으로 기봉과 나 프란체스카는 성당 주변을 배회하기로 했다. 그러다 너무 반가운 무리들을 만났는데 바로 페드로 아저씨 패밀리. 아저씨와 함께 걷던 모든 사람들은 건강히 잘 도착한 것 같다. 마침 빨간 옷의 크리스티앙 아저씨도 보였다. "아저씨이이이! 우리 사진찍어야해요!" 다 일단 모여봐요!! 그렇게 찍은 역대급 가족사진 ^_^ 우리는 페드로 아저씨를 주축으로 마피아처럼 골목을 누비며 몸집을 불려나갔다. 어! 누구야! 일단 일루 붙어! 어! 엊그제 봤던 분이네요! 같이 맥주마셔요! 이런식으로 우리는 대규모 마피아가 되어간다. 마침 퀸도 지나가던 무리에서 발탁(?)되어 같이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기로 한다. 성당앞에 도착하고 나서 딱 10분이 지나서 갑작스레 목표가 없어진 것 같아 조금 우울했는데, 다시 좋은 기운이 충전되는 것 같았다. 배가 고픈 우리는 마지막 순례자 메뉴(마누델 펠레그리노)를 먹으러 간다. 스페인인 페드로 아저씨가 구글 맵을 통해 알아낸 시크릿 플레이스라며 우리를 데리고 갔다. 상호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와 진짜 여태까지 먹어본 펠레그리노 메뉴중에 가장 맛있었다. 와인도 맛있고, 빠에야도 맛있었다. 발렌시아 출신 빅터가 엄지척 했으니 뭐 본고장에서 인정받았다고 해야하려나. "이제 자네들은 어찌할건가" 페드로 아저씨가 물었다. (물론 아저씨는 영어를 못하시기에 대충 어림짐작!) 그래서 우리는 아마 피니스테레로 갈 것 같다고 했다. 페드로 아저씨도 그곳에 가고 싶지만, 일정을 무리해서 여기까지 완주했기에 다음 기회에 오겠다고. 페드로 아저씨 패밀리들은 모두 오늘이 마지막 일정이라고 한다. 매우 아쉽다. 아쉬운 마음에 아저씨들이 묵을 예정인 숙소를 우리도 예약할까 했으니 이미 풀 부킹 상태라고. 인연의 끈을 놓는건 정말이지 쉽지 않다.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성당 뒷편으로 인증서를 받으러 간다. 가는 도중에 프란체스카가 잠깐!! 을 외친다. "아 잠깐! 내가 듣기로는 크리스티앙 아저씨가 본당 옆, 작은 성당에 가면 인증서를 한장 더 준다고 했었어. 아마 어떤 성인 탄생 80주년이었나 그랬던 것 같아" 프란체스카 말대로 그 성당에 가니 자그마한 인증서를 발급해주었다. 이제 인증서 하나가 더 생길 것 같다고 좋아하는 프란체스카. 세상을 다 가진 것 표정이었다. 성당 뒤 인증서를 받으려고 줄을 섰다. 예전에 만났던 론 아저씨 패밀리, 그보다 더 전에 만났던 마이클 다 잘 걷고 있으려나 궁금했다. 아마 아무리 빨리 와도 우리보단 늦게 도착할 것 같다. 기봉이가 메세지를 해보니 내일 도착 예정이라고 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줄을 서있는데 저 멀리 클라우디오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는 인증서를 막 받고 나왔는데 날 보자마자 포효를 하더니 반가움을 한껏 표현하셨다. 역시 친근함이 갑인 브라질리언 답다. 아저씨는 이제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더 걷고 싶지만 나머지는 마음으로 채워야 한다고 하며 악수를 진하게 하고 우리와 이별했다. 그렇게 프란체스카와 나 기봉이는 인증서를 받았다. 인증서를 받기전에 여러 절차가 있는데 여태까지 받은 도장들을 확인하는 것. 그걸 쭉 펴보여주는데. 나 정말 열심히도 달려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에게 대견하다고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성당 앞에 처음 섰을때는 이런 생각 1도 안들었는데 말이지. 인증서를 받고 나와 터덜터덜 걷는다. 기봉이를 보니 다리가 안좋아졌는지 표정이 밝지가 않다. 이리저리 끌려다니다보니 그럴만도 하다. "햄 좀 쉬고 싶네요" 라고 해서 "너 좀 쉬어야 겠다" 했다. 그러나 그날 늦은 오후에는 미사가 잡혀 있었다. 프란체스카는 야무져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챙기는 스타일인데 기봉이에게 이거하자 저거하자 자꾸 이야기해서 기봉이가 매우 힘들어 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몸도 좋지 않았는데 미사를 꼭 같이가야한다고 옆에서 얘기를 하니 기봉이가 폭발을 했다. "아 그만해 진짜 안갈거라고. 나 혼자 그냥 가서 쉬겠다고!" 이 말 한마디에 프란체스카는 조금 서운해 울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광장에서 기봉이와 프란체스카는 서로 옥신각신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계속 쳐다봤고.. 여자애가 계속 울면서 "기봉이 너 왜 그래~ 같이 가고 싶단말야!"를 계속 반복하며 이야기를 하니 기봉이는 어쩔바를 몰라했다. 결국 기봉이는 사람이 많다며 성당밖에서 보고 들어가지 않겠다며 버텼고, 나와 프란체스카만 들어가 참석했다. 아무래도 우리 셋은, 의식을 보며 좀 오늘 하루를 곱씹을 필요가 있었다. 갑작스럽게 목표를 잃어버린 세명이었다. 지금까지는 노란 화살표만 따라가면 되었는데, 이제 그 화살표는 두갈래 이상이 되었다. 사리아로 가거나, 피니스테레로 가거나 집으로 가거나... 이제 각자 목표를 찾아내어야 했다. 오랜시간 진행되었던 미사는 생각만큼 거대했고 경건했으며 지금까지의 고생을 보상받고 모든 걱정거리를 잠시 잊게 만들만큼 멋졌다. 거대한 향로가 좌우로 향을 뿜어내는 것을 보며.. 나는 피니스테레까지 완주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바람이 세게 부는 그 벼랑 끝에서 소리를 치며 모든것을 털어 바람에 태워 내고 싶었다. 미사를 마치고 나와 기봉이는 밖에서 비 내리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프란체스카가 나오자마자 우리는 숙소를 찾아 떠났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골목을 누비며 방을 찾는다. 그리곤 정말 따듯한 안식처 한 곳을 찾았다. 주인 아주머니는 비 맞은 우리를 따스하게 맞아주었고 하늘이 보이는 다락방을 내주었다. 잘 씻고 하늘을 보고 누웠다. 기봉이는 무리한 발목에 파스를 뿌렸다. 프란체스카도 씻고 나와 삼자 대면을 했다. "프란체스카.. 미안." 기봉이는 아까 너무 발목이 아파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며 프란체스카에게 사과했다. 우리는 왜 상실감을 느끼고 아무것도 아닌것에 짜증을 냈을까. 그리고 왜 이렇게 공허했을까. 셋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니 우리는 갑자기 목표를 잃어서 불안했던게 아닌가 싶다. 꿈에 그리던 산티아고에 갔지만 우리는.. 목표를 달성하자마자 또 다른 시작을 꿈꿔야 했다. 알베르게가 아닌 호텔에서 처음으로 푹 쉬었다. 이제 이른 아침, 나는 다시 피니스테레로 떠난다. 다음에 계속.
Buen Camino #68. 드디어, 산티아고 길을 완주하다.
27/06/2014 Santa Irene -> Santiago De Compostela (Day 31) 이른 아침에도 사람들은 분주했다. 새벽에 일어났는데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콤포스텔라를 향해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잠이 덜 깬 게슴츠레한 눈으로 문을 열고 나섰더니 다들 초롱초롱한 눈과 기대에 가득 부푼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날씨는 매우 좋았다. 비가 그치고 숲에는 생기가 났고, 사람들은 그런 공기를 머금고 더 활기차게 걷고 있었다. 어떤 순례자는 목 좋은 곳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 묵어간 것 같다. 걷다보면 나오는 마을 Monte do Gozo. 400명이 넘는 순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이다. 여기서부터 콤포스텔라는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은 다음날 컨디션도 있고, 도착하자 마자 성당의 세레모니를 받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라 이곳에 머문다고 한다. 나와 기봉이의 경우에는 바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천천히 쉬어가고자 Saint Irene에 머물었던 것이다. "뭔가 이상해 분명 끝이긴 끝인데 뭔가 끝난거 같지가 않아!" 프란체스카가 낮게 읊조렸다. 갑자기 목표를 달성하게 되서 그런건지 아님 내 노력이 부족한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분명 콤포스텔라가 그렇게 가고 싶었고 내가 목표로 했던 곳이었는데 막상 오게 되니까 참 아쉽고 어색하다. 갑자기 목표가 사라져서 그런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분명 새로운 목표를 찾아야만 했던 것 같다. Monte do Gozo에 들어서니 확연히 많은 순례객들이 보인다. 이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어 이 까미노를 걸었고 그리고 이제 그 여정을 마무리 지려고 한다. 속으로 반문해본다. '니가 생각한 만큼 답을 얻어 가는거야?' 아무 생각없이 걸어가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길을 가던 도중 페드로 아저씨를 비롯한 패밀리를 모두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포옹을 하며 함께 까페콘레체를 한잔 했다. 다들 잘 지냈냐며 안부를 묻는다. 데니스 아줌마도 있고 보고 싶던 모든 사람들이 다 있다. 서로 고민을 나눈 사람들이 곁에 있고 그들이랑 함께 걷게 되서 참 든든하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까미노에서는 모든 진리를 깨우칠 수 없다. 인생을 길게 놓고 그에 대한 답을 단 30일 정도에 찾는 다는것은 사실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얻어가는 게 있다면 다음과 같다. 1. 나의 고민은 모두의 고민이라는 걸 깨달았다. 많은 순례자들과 고민을 나누며 우리는 공감할만한 고민들을 함께 지녔고 그걸 각자의 방법으로 찾고 풀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2. 비로소 비워낼 수 있었다. 길에서 나는 충분히 혼자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복잡하게 생각하고 해결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할 수 있었고 몇개는 해결 할 수 있었다. 3.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길에서 숱하게 고생하고 도움을 받았다. 우울한 마음이 들때면 옆에 풀어놓을 사람이 있어 정말 행복했다. 그게 알던 사람이든 아니든,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간에 나는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 내 삶의 속도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걸 알았다. 길에서 사람마다 페이스가 있다. 각자의 속도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의 속도를 따라가다보면 분명 몸에서 신호가 왔다. 나는 내 속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걸 남과 비교해서 굳이 서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5. 공감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길에서 만났고 그들의 삶을 들었다. 일방적으로 내 고민만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내 경험을 비추어 다른 사람의 아픔을 듣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나는 공감을 통해 비슷한 패턴의 문제가 있을때 어떻게 풀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까미노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격려를 하고 있다> Monte do Gozo에 들어서면 누구나 사진이 찍고 싶어지는 탑이 하나 있다. 우린 이 탑 근방에서 반가운 사람들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서로 잘 지냈냐며 안부를 묻고 마지막 여정이니만큼 모두가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자 이제 우리 지금까지 고생했으니 마지막 맥주 한잔하자. 프란체스카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초리쏘를 꺼내 안주를 준비했다. "야 우리 이제 거의 해냈구나!" <신난 사람들은 내리막에서 이렇게 세레모니를! > <마지막 알베르게> Monte do Gozo는 콤포스텔라에 이르기까지 만나는 언덕 중 마지막 언덕으로 이제는 계속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다리 하나를 건널때쯤 우리는 콤포스텔라의 초입에서 간판 하나를 만나게 된다. 찍지 않고서는 못배기도록 만들어놓은 간판. 드디어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 도시 초입은 성당하나 보이지 않아 제대로 도착했는지 갸우뚱했다. 곧 구도심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구도심으로 연결되는 골목을 지나자 중세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드디어, 산티아고 대성당에 입성했다. 다음에 계속
Buen Camino #67. 8부 능선, Santa Irene.
26/06/2014 Melide -> Santa Irene (Day 30) 이른 새벽 갈리시아 지방에는 비가 왔다. 늘 청명하고 볕이 잘 드는 스페인이지만 갈리시아 지방의 날씨는 흡사 영국과 비슷하다. 그리고 비가 와야 짙게 느껴지는 녹음이 참 좋다. Melide에서 시작하는 아침은 녹음이 짙게 녹아든 아침이었다. 순례길에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오늘의 목적지는 Santa Irene. 콤포스텔라에 도착하기 전에 만나는 작디 작은 마을이라고 한다. 나름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고 좀 서둘렀는데 그새 기봉이도 프란체스카도 이미 떠나고 없다. 늘 어쩌다보니 늦장을 피우는건 내 쪽이다. 드디어 길을 걷다가 만난 익숙한 뒷태의 프란체스카. "여어~ 프란체스카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 이렇게 외치며 뒤를 따라붙는다. "니가 젤 늦어!" 프란체스카가 거든다. "근데 기봉이는 어디갔어? 혹시 못봤어?" 기봉이가 우리보다 빨리 걸었거나 뒤쳐진 것 같은데 아침에 도통 보이질 않는다. 프란체스카가 모르겠다고 하는걸 보면 분명 어디서 카페콘레체 한 잔 마시면서 발 마사지를 하고 있을것 같다. 계속 발목 통증을 호소 괜찮았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나와 프란체스카는 기봉이를 걱정하며 걸었다. Santa Irene로 가기 전 작은 마을하나가 보였다. 지나가다보니 꽤 괜찮은 커피숍이 보여 화장실도 들를겸 프란체스카와 들어갔더니 왠걸 기봉이가 앉아있었다 "여어~ 형씨~ 오늘은 좀 늦었네요?" 우린 그 모습을 보며 합창하듯 외쳤다. "야아~ 너 이렇게 걸어도 괜찮은거야???" 기봉이는 이쯤이야 엣헴! 하며 이쯤이야 대수롭지 않은듯 했다. 그래도 발목의 통증이 아주 많이 진행되진 않은 것 같아서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Saint Irene로 가는 길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정말 많았다. 찢어진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브라질 신부님 실바 아저씨, 그리고 스페인 아저씨 패밀리까지 모두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고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물론 간혹가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관광형 순례자도 눈에 띄었다. 다들 이제 곧 대장정이 곧 끝나겠구나 하는 설레임과 아쉬움의 눈빛은 공통점이었다. 8부 능선이라고 해야하나 은근 언덕이 많은 길이었지만 다들 이쯤이야 하는 식으로 견뎌낸다. 나는 원래 일정보다 빨리 가고 있는터라 오늘은 무리해서 Monte do Gozo로 가는것보다는 Santa Irene에서 머물고자 한다. 기봉이 발목도 신경쓰이고 말이지. Santa Irene는 이 언덕을 지나면 바로다. 표지판으로 환호성을 지른다. 이제 500m정도만 가면 숙소니 말이다. "오늘은 산티아고 성당 가기전 마지막 날이니까 뽀지게(?) 먹을꺼야!" 라고 말하니 다들 거한 만찬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후 1시쯤 되었을까, 우리는 무난하게 Saint Irene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이곳에 작은 펍이 있는데 이곳에 페드로 아저씨가 있었다. "어어 모지 저 아저씨 분명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었는데!!" 페드로 아저씨는 실실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아저씨는 결국 조금 남은 까미노를 다 걷는걸로 결정하신 것 같았다. 남은 까미노, 아저씨랑 걷게 되서 참 좋다. 우리는 얼른 짐을 놓고나와 오늘도 무사히 잘 왔음을 자축하는(?) 맥주를 마셨다. 우노 세르베사! 포르파보르~~(맥주 한잔 주세요~~) 세르베사 한잔을 마시고 우리는 알딸딸하게 2차를 하러 떠났다. Santa Irene를 도착하기 전 얕은 언덕에 있는 식당들에서 만족할만한 순례자메뉴를 물색하다가 들어오게 된 이 곳. 사람이 적어 조용한 곳이었는데 조금 대기하다가 우리를 정원으로 안내한다. 참 순례자 메뉴가 좋은건 밥보다.. 와인이 무제한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개념없이 계속 달라는 편은 아니다. 본디 와인을 많이 먹으면 골이 무쟈게 아프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제를 하는 편이다. 거하게 만찬을 하며 기름진 음식에 모두가 흡족해했다. 고기가 조금 더 따땃했음 더 좋겠지만서도. 우리는 긴장이 풀려 헤헤거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아.. 벌써 내일이면 마지막이라니 아직도 믿겨지지 않아. 뭔가 후련한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뭔가 더 남은것 같은건 뭐지?" 우리는 이 느낌이 뭘 지 참 궁금했다. 800km 씩이나 걸었다. 그래도 채워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분명 걸으면서 고민도 털어놓고 울고 웃고 다 했는데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은 것이 있다니. 복잡한 감정을 지닌채로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빨래를 해서 볕이 잘 드는 곳에 말려두고 나는 창밖 테라스 같은곳에 나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인사도 하고.. 내일 모든 길을 완주하면 찾아올 아쉬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생각해본다. 젠장 벌써부터 아쉬움이 찾아오면 어쩌자는거냐... 다음에 계속.
Buen Camino #66. 갈리시아에 왔으면 뿔뽀를 먹어야지!
25/06/2014 Iraxe -> Melide (Day 29) 어제 와인을 많이 먹었는지, 아침이 찌뿌둥하다. 이럴 경우에는 와인을 물통에 채워서 마셔주며 걸어야 좀 나은데...(점점 알콜중독이 되어가는건가!) 눈을 떴더니 거의 일찍 출발한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페드로 아저씨께 인사라도 해드려야지 했는데 페드로 아저씨도 보이지 않는다. 일단 가방을 메고 출발했다. 땅이 살짝 수분기가 있는게 어제밤에 분명 비가 온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걸으니 부슬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온몸에 냉기가 돌면서 비를 맞게 되면 '아- 간단하게 까페콘레체 마시고 싶다' 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처음 나오는 마을 아무곳이나 찾아가 일단 혼자 쇼콜라떼와 카페콘레체 하나를 시켜 몸을 녹여본다. 창밖에 하나 둘 순례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아 나도 따라 나서야하는데 싶지만 까페안의 온기가 좋아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늘 가는 숙소는 수용인원이 대단위인 큰 알베르게라 서두르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조금 더 지체하면 감기에 걸릴 것 같아 힘겹지만 다시 출발한다. 터덜터덜 가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의 부엔까미노가 뒤에서 들려온다. "부엔까미노~ 로이~" 간만에 만나는 아냐다. "어라 아냐 같이 다니는 퀸은 어디에 있어?" "아 퀸 앞서가고 있는데 곧 만날꺼야!" 아냐도 퀸도 출발한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아마도 내가 묵은 마을인 이라체 다음 마을에 묵었던 것 같다. 다음마을에선 퀸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냐를 뒤에서 쫒아갈때마다 눈이 가는 무지개색 한국 수세미. 한국 순례자 한분이 친구들에게 나눠줬다고 하는데 너무 예쁘다. 다음 마을은 Melide가 될 예정. 퀸은 같이 다니던 일행과 멀어져 아냐랑 같이 다니고 있다한다. 난 둘이 커플인 줄 알았는데 정말 그냥 까미노 프렌즈라고... (과연!) 너네 늘 수상해. 남녀 관계엔... 친구란 없는거야..(읍읍) 암튼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 심심하지 않게 까미노를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더군다나 오늘 여정은 20km정도 되는 짧은 여정이라 부지런히 걸으면 12시 이전에도 도착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드디어 Melide 시내가 나타났다. 이 시내는 다른 곳과 거의 다름이 없었지만 한가지 특이한건 문어 그림이 있는 음식점이 꽤 많았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에 PULPERIA라고 써있어서 아냐에게 물어봤더니 PULPERIA는 문어요리를 파는 곳이라고 한다. "갈리시아에서는 문어가 꽤 유명해. 문어가 스페인어로 뿔뽀야! PULPO. 여기서 뿔뽀 안먹고 가면 섭하지. 내가 알기로는 Melide에 뿔뽀로 유명한 집이 있는 걸로 알아!" 급 궁금해졌다. 문어로 해봐야.. 얼마나 맛있길래 이렇게 극찬을 하는건지! 문어라면 우리나라도 안동에 문어 숙회가 있는데! 게다가 이놈의 뿔뽀라는 음식. 꽤 비쌌다. 메뉴판을 보는데 대부분이 10유로 안팎. 갑자기 깔라마리가 생각났다. 스페인에는 깔라마리라는 오징어 튀김이 있는데 이것도 왠만하면 4유로(당시 가격 6천원)정도였다. 우리집 앞에 장날에 가면 이보다 튀김옷 더 빵빵한 오징어 튀김 3천원에도 사먹을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뿔뽀도 궁금은 하지만 맛은 기대되진 않았다. 일단 숙소에 도착하는것이 먼저였다. 그런데 이 시내는 까미노 표시가 꽤 복잡하게 되어있어있다. 결국 스페인어를 좀 하시는 순례객들의 도움을 받아 뒷꽁무늬를 졸졸졸 따라가서야 길을 찾을 수 있었고 마침내 알베르게 위치 사인까지 찾아갈 수 있었다. 도착 시간은 12시 20분. 꽤 빨리 왔다. 내가 정한 일정에서 오늘은 좀 쉬어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알베르게로 향하려고 하는데 퀸이랑 아냐는 너무 적게 걸었다며 아무래도 다음 마을까지는 가야 무리가 덜할 것 같다고 했다. 다음 마을이여야 뭐 한 5km 더 가야하는 여정이었고, 많은 사람들도 이곳에 머무는것보다 다음 마을까지 이동하는 것 같았다. 나도 따라 나설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골목 저 끝에서 아픈다리를 절룩거리며 걸어오는 기봉이를 보고는 여기에 더 머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쉽지만 다음 마을로 먼저가~~" 아냐와 퀸을 먼저 보내기로 한 것이다. 왠지 모르지만 나는 까미노에서 만났던 사람에 대한 끌림이 있었다. 너무 좋은 사람들만 만났기 때문에 또 이들과 헤어지고나서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같이 사진을 찍기로 했다. "우리가 다시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사진 한 방 찍자!" 하나 둘 셋....! 찰칵!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기로 하고 각자 가던길로 헤어지기로 했다. 기봉이는 아직 발목이 좋지 않아 붕대를 하고 있었다. 조금 쉬엄쉬엄 걸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발목에 무리가가면 점점 나빠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순례자가 같은 절차를 반복했다. 무리해서 걷다가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에밀리도 그랬고.. 레온쯤에서 만났던 브라질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50킬로 남짓만 걸어가면 콤포스텔라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걸어도 완주할 수 있는 거리다. 아직 1시가 되지 않아 알베르게 앞에서는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줄을 서있었다. 처음 만났을때부터 유창하게 영어를 하며 말동무가 되어주더니, 말을 하다 이들이 바르셀로나 출신이라는 걸 알았다. 바르셀로나에는 내가 또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다가 아주 속사포로 나왔다. 역사가 꽤 복잡한 축에 속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까탈루냐어라는 다른 언어를 쓰는데, 지금도 독립을 해야한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고, 그만큼 스페인 내에서도 경제적으로 번영하여 꽤 목소리가 큰 곳이다. 대학 연구원 친구들이라는 이 학생들과 수다를 떨다가 드디어 알베르게 입장이 시작되었다. 늘상 숙소에 들어가면 챙기는 것이 부엌. 마침 프란체스카도 도착해서 부엌을 서로 돌아보았다. 하지만 오늘은 뿔뽀의 고향에 왔으므로, 문어요리를 한번 먹어보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전에 와인 한병 사와서 좀 여독을 풀어보자꾸나. 오늘은 뭔가 아침부터 피곤의 연속이었던데다가 좀 쉬면서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프란체스카가 가지고 다니는 도시락통(이라고 부르고 전날 먹었던 것이 남으면 가지고 다니는 짬통. 이번에는 스파게티가 있다)과 더불어 검은 올리브를 안주삼아 와인 한병을 깐다. 스페인에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올리브 구멍에 멸치를 끼워놓은 짭쪼름한 올리브 통조림은 저-엉말 와인 안주로써는 제격이다. 그렇게 주섬주섬 마시고 있으니 한 백만년만에 보는 아이리쉬 아저씨가 조용히 옆에 앉아 보카디요를 만들어 드신다. 쓰리를 트리로 발음하는 걸 보고 단번에 아이리쉬라고 판단한 이 아저씨는 아일랜드 더블린 세인트 페트릭 성당에서부터 출발하셨다고. "너 어딘지 모르게 영어 악센트가 영국 악센트가 섞여있어" 라고 단번에 알아맞추시던 아저씨였다. 아저씨와 한잔하고 싶었지만 내가 너무 피곤함을 느낀 나머지 샤워를 하러 먼저 일어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곤 이렇게 넉다운이 되어버렸다. 29일 내리 걸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잠을 조금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저녁시간. 프란체스카와 나, 기봉이는 걸어오면서 봐두었던 PULPERIA에 들렀다. 워낙 유명한 집이라고 까미노 가이드북에 써있다고 한다(독일 가이드북). 그래서 우리는 오프닝 시간에 맞춰 들어가기로 했다. 갈리시아 지방의 뿔뽀 요리는 이렇게 생겼다. 막 특별한 맛이 있는것은 아니었다. 삶은 문어에 올리브유와 고춧자루를 넣고 버무린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봉아 이게 9유로래.. 우리가 여기와서 문어장사해도 기본 이상은 할 것 같지 않냐?" 우리는 연신 고개를 흔들어댔다. "햄 우리 여기와서 장사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바게뜨빵으로 문어의 짭쪼름함이 섞인 올리브유를 찍어먹는것은 꽤 맛있었다. 경험삼아 뿔뽀를 한번 먹어보는거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무래도 문어횟집 오픈해야겠어 여기서" 다음에 계속.
Buen Camino #65. 우리는 절대 혼자 까미노를 걸을 수 없다.
24/06/2014 De Fereiros -> Iraxe (Day 28) 저녁 내내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치고, 습한 공기만 남았다. 걷는 내내 숲에서 생기 넘치는 공기가 뿜어져 나와 행복하다. 상쾌한 분위기를 느끼며 걷기에는 역시 이렇게 새벽이나 이른 아침이 좋구나. 숲안을 걷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십자가를 발견했다. 십자가를 보니 이곳을 지났던 순례자들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땀이 저려있는 옷가지, 수건, 추억이 담겨져 있는 누군가의 사진 등등.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순례길을 추억하려고 하는 것 같다. 아직 얼마 걷지 않은 것 같은데.. 덩달아 나도 아쉬워진다. 그런 마음으로 나무 연필 하나를 꽂아두고 온다. 이곳에 무언가를 두거나 흔적을 남겼던 사람들은 아마 이제 곧 끝나가는 까미노가 아쉬워서 일 것 같다. 아침 내내 무진기행은 계속된다. 한치 앞을 보기 힘들지만, 앞서 걷는 사람들의 발을 보며 무단히 따라다닌다. 그러다 보면 늘 안전하게 걷고 있다. 혼자 걷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모두가 함께 걷는 길.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서로 알게모르게 도움을 받는 길. 까미노다. 안개가 걷히자 눈 앞에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가 펼쳐졌다. 호수는 이렇게 큰 다리가 연결되어 있는데, 마치 인공섬으로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곳이 바로 포트마린이다. 중세의 느낌이 물씬 나는 이 곳. 아, 여기서 묵었어야 했나 할 정도로 꽤 맘에 드는 곳이었다. 실제로 대부분 전날 이곳에서 쉬고 대부분 출발하는 듯 했다. 성당 앞에서 잠시 쉬어가고자 레스토랑에 들어가 늘 그랬듯이 카페콘레체와 쇼콜라떼를 시켜먹는다. 내 뒤로 줄줄이 기봉이도 도착하고, 스페인 아저씨 무리도 도착했다. 그들이 레스토랑에 들어오자마자 소낙비가 우두두 쏟아지기 시작했다. "으익!!! 다행이네, 들어오자마자 비가 오네" 레스토랑에서 도장을 찍고 나서면서 기봉이가 "잠깐요!"를 외친다. 우리가 다음에 묵는 숙소는 아무래도 슈퍼가 근처에 없는 것 같으니 먹을거 마실거를 미리 사자는 이야기를 한다. 마침 포트마린은 꽤 규모가 있는 동네라 마트가 하나 있었다. 저렴한 와인 한병과 함께, 파스타를 조금 사둔다. 소스야 어차피 우리가 즐겨먹는 라면스프로 대충 버무리면 근사하게 차려지기 때문이다. 기봉이는 한손에 슈퍼마켓 봉지를 그대로 들고 (늘 그랬던 것 처럼) 다시 까미노 위로 올라왔다. 나는 와인담당으로 와인을 골라 가방에 얹었다. 오래 걸어도 이상하게 힘든 여정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렇게 덥지 않은 날씨와 적절히 찬 공기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포트마린 마을을 나오는 길에는 여전히 많은 순례자들이 병목을 이루고 있다. '부엔까미노'를 여러번 외치다가 포르투갈에서 온 신부인 클라우디오를 만났다. 구멍뚫린 바지를 입고 밝은 표정으로 까미노를 척척 걷고 있는 이 아저씨는 대화가 잘 통해서 재밌다. 한국의 문화에도 어느정도 관심을 가지고 계셔서 신나게 당시에 있었던 강남스타일 붐부터 시작하여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전 까미노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사리아(까미노 데 콤포스텔라 100km전)부터 많은 순례자들이 눈에 띈다는 것인데 이렇게 진짜 차려입고 순례하는 분들 부터, 관광지의 일부로 잠깐 당일치기로 하시는 분까지 다양하다. 덕분에 부엔까미노를 계속 외치며(?) 걷느라 정신이 없다. 슬슬 숙소에 도착하려고 하니 날씨가 조금씩 개이기 시작했다. 차가운 공기가 가시니 조금씩 목이 말라오기 시작했는데 도저히 물을 구할 자판기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30km쯤 되는 많은 여정이 있다보니 목이 마른게 당연하기도 하다. 중간에 작은 마을들을 지나 숙소로 지낼만한 곳을 찾아다닌다. 어느새 나와 기봉이, 그리고 프란체스카는 페드로 형제들을 주축으로 모인 스페인 아저씨들 무리에 껴서 가족처럼 다니고 있다. 생각해보면 페드로 아저씨는 프란체스카를 울렸던 아스트로가부터 만나 같이 까미노를 걷기 시작했다. 중간에 많은 분들이 합류하여 거의 10명이 넘는 대 집단이 되었는데 우리도 어느샌가 그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Irexe(이라체)에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아직 오픈전인 알베르게에는 프란체스카가 저렇게 대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작은 알베르게다보니 인원이 정해져 있었는데 다행이 나와 기봉이까지는 입장할 수 있었다. 방을 배정받고 들어가려는데 다른 알베르게와는 달리 이곳은 여권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게 바로 기봉이었다. 기봉이는 예전에 여권이 친구와 뒤바뀌는 바람에 대사관에 여권을 재신청 해둔 상태였지만 아직 받진 못한 상황이었다. 난감해하는 기봉이는 체념하고 다른 숙소에서 묵겠다고 돌아서려고 했는데, 마침 그때 페드로 아저씨가 지나가면서 무슨 문제가 있나 고개를 쭉 빼들었다. 그러더니 아저씨는 기봉이에게 어깨동무를 똭 하더니 호스피탈레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는 나랑 지금까지 계속 까미노를 걸었소. 만약 문제가 생기면 내가 개런티 하겠소!" 아저씨가 이렇게 쿨하게 말하니 호스피탈레로는 이번만 봐주는거라며 기봉이를 입장시켜주었다. 기봉이는 아저씨에게 너무 고마워하니 아저씨는 "가족!(패밀리!)"라는 단어 한마디만 강하게 내뱉으며 웃었다. 옷가지를 정리하고 긴 여정의 끝에 근처 바에 가서 맥주를 마시며 아저씨에게 대접하려고 했으나 아저씨는 이미 한잔을 거하게 비우신 상태. 안그래도 아저씨는 우리 음식을 좋아하시니까 이따가 음식을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할 지 계속 고민했다. 프란체스카와 나 그리고 기봉이가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호주 부부도 지나가고, 미국에서 온 Quinn도 지나가고 꽤 반가운 얼굴들이 이 동네에서 오늘 머무는 것 같다. 내일 출발할때는 꽤 익숙한 얼굴들과 같이 걷게 될 것 같고 다들 비슷하게 도착할 것 벌써부터 콤포스텔라에서 같이 사진찍을 날이 기다려진다. 맥주를 다 마시고 다시 숙소에 돌아와 우리는 저녁을 준비한다. 열심히 이고지고 온 와인을 꺼내고 올리브, 파스타.. 야무지게 준비했다. 마지막에 라면스프를 넣고 볶아 기봉이표 파스타가 준비되었다. 꽤 양을 넉넉하게 준비해 놓았는데 마침 프랑스 데니스 아주머니가 배가 고프신지 부엌을 두리번 거리고 계셔서 우리 음식을 조금 떼다 드렸다. 아주머니는 맛있다며 엄지척! 그러고 보니 이렇게 배고픈 영혼에게 한국의 맛(?)을 보여줬던게 토마스가 최초였는데 우리 토마스는 잘 걷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하하호호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우리의 영웅 페드로 아저씨가 배를 통통 두드리며 2층에서 식당으로 내려오신다. 우리가 너무 반가워 한잔 하시라고 와인을 권하는데 아저씨가 청천벽력같은 말을 했다. "아아 나는 아무래도 일정이 촉박해서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 인사하러 왔어~" "엥!!...." 나도 그렇지만 기봉이가 제일 아쉬워 하는 눈치였다. 영어가 잘 안통하는 아저씨 앞에서 온갖 스페인어를 되는 대로 써가며 아쉬움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다음에 인연이 되면 또 보겠지 하신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다. 아저씨랑 같이 걷다가 마주치면 늘 장난스런 표정으로 우리에게 부엔 까미노를 외쳐주셨는데 앞으로 많이 그리워질 것 같다. 우리는 와인을 마시며 까미노에서 만난 인연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너무나도 감사한 사람들만 만난 것 같다. 다들 처음에는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라는 생각으로 까미노에 왔지만, 곰곰히 여정을 되짚어보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른 순례자들의 도움을 엄청 많이 받으며 길을 걷고 있다. 막다른 길에서 깊에 패인 순례자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보면 결국 맞는 길을 가게 되었고, 앞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도 순례자들이 걷는 소리의 방향을 따라 걸으면 결국 옳은 길이었다. 음식을 먹으며 기봉이는 발목에 통증을 호소했다. "햄 왠지 자꾸 발목이 아프네요" 거의 다 왔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꽤 많이 걷다보니 무리가 간 것 같다. 프란체스카는 발목 이리줘봐 하면서 마사지를 시작했다. 조금 어루만지며 발목을 풀어줬더니 기봉이의 발목도 점점 치유가 되어갔다. "아 맞다! 프란체스카 간호사였지!" 프란체스카의 그날 저녁만큼은 정말 진지하게..나이팅게일 같았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도움을 받으며 까미노를 걷고 있다. 매일 같이 혼자 걷는 까미노 길이었다면 아마 우리는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거다. 다음에 계속.
Buen Camino #64. 행복한 길, 100km 사리아.
23/06/2014 Samos -> De Fereiros (Day 27) 이른 아침, 사모스 수도원을 나선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돈다. 마치 오늘의 길에서 느껴지는 아침이 매우 새롭게 느껴지는 느낌이다. 수도원 너머 언덕을 건너면 초록색이 우거진 오솔길이 나온다. 그 오솔길 중간에 물길이 얕게 지나가고 있는 숲을 보게 되었다. 햇살이 떠올라 나무 사이로 따스함을 전달한다. 그 광경에 사로잡혀 혼자 멍하니 배낭 어깨끈을 잡고 쳐다보고 있었다. 멈춰서서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오늘 정말 멋있죠?"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마드리드 출신 순례자 아저씨도 지나가다가 이 풍경을 보고 함께 말없이 서있었다. 그냥 좋다는 말 그 이상의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안정감이 들었다. 그 이후에 보는 풍경들은 전부 새로운 삶을 부여받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언덕을 넘어가면 드디어 SARRIA라는 곳이 나온다. 이곳부터 까미노 까지는 100km 남았다. 시간이 없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이곳부터 까미노를 시작한다고 한다. SARRIA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까미노 증서를 주는 것 같다. 언덕 햇살에서 얻은 에너지를 가지고 열심히 걸었다. 싱글벙글 거리면서 계속 걷는데, 뭔가 허전했다. 알고 보니 내 카메라의 커버가 없어진 것이다. 뒤로 100m를 돌아가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하도 사진을 많이 찍고 다니니 누군가 내 캡을 주워다 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SARRIA에 도착해서는 카메라 캡을 찾아야 하니 계단 위에 있는 까페에 자리잡기로 했다. 테라스로 자리 잡았더니 기봉이도 금방 만날 수 있었다. 까페 콘레체를 마시며 "기봉아! 혹시 내 카메라 캡 봤어?"라고 물으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래도 누군가 반드시 가져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멀리 프란체스카가 뒷따라 왔다. "프란체스카아아아!!! 내 카메라 캡 혹시 본 적 있어?" 그녀는 베시시 웃으며 내게 내밀었다. "요거 맞지? 히히"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누군가 내 캡을 기억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누군가 그걸 주워다 주다니 온몸이 찌릿해졌다. "역시이!!!! 누군가 가져올 줄 알았다니까!" 그러면서 프란체스카가 짐도 풀기전에 이 사진과 순간을 반드시 찍어야겠어서 그 순간을 사진에 담았다. 너무 고마운 나머지 그녀에게 까페콘레체 한잔을 샀다. 솔직히 예상을 했긴 했지만 소름이 끼쳤다. 아침부터 걷는 길이 뭔가 행복하더라니 오늘은 행복함이 아침부터 내내 감돈다. 그렇게 기봉이와 나 프란체스카가 히히덕 거리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아직도 가슴을 부여잡고.. 진짜 엄청난 경험이라고 신나했다. 신나게 까페콘레체를 다 비워내고 슬슬 출발하려고 하는데 저 멀리서 또 익숙한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 봤던 베트남 친구인 투위다. "어어 지금 출발하려는거야?"하면서 우리를 불러 세웠다. "사실 나 오늘이 마지막 까미노야." 트위는 일정때문에 다시 돌아가야 한단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나무 지팡이를 건네었다. 그 지팡이는 프란체스카가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잠깐 봤지만 너네 너무 첫인상이 좋았어. 완주할때까지 건강하길 바랄께"하며 투위는 안녕을 고했다. 언제나 이별은 익숙치 않다. 하지만 내가,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에게 인생에 있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것 자체는 참 감사한 일이다. 우리도 트위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잘됐음 한다며 인사했다. SARRIA의 마을 중심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다. 장난기 있지만 정말 독실한 신부님인줄 알게 된 포르투갈 신부님들도 만나 인사하며 서로 완주하자고 격려했다. 드디어 100km 남았다구!! 마을을 지나면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또 내가 지금까지 700km 나 걸었다니 스스로가 참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프란체스카와 함께 걸으면서 만났던 오른쪽의 친구는 미국에서 온 마이클. 어제 미사의 기도를 맡아서 했던 신부님이다. 평소에는 우리와 같은 순례자와 다름이 없었는데 아직도 그가 어제 미사를 진행하고 향로를 흔들면서 보여준 경건함과 진지함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아 - 마이클 어제 미사는 진짜 기억에 많이 남았어! 대단했어 정말!" "아 그래? 나도 기회가 되서 한거였는데,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 이렇게 대화를 하면서도 어제의 그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종교 혹은 신의 영향이 이렇게 대단한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걸으며 느꼈던 그에 대한 첫인상은 매우 쾌활하고 긍정적이었다. 날씨가 따듯하니 순례자들은 제대로 쉬면서 천천히 걷는다. 저 멀리 손을 흔들길래 봤더니 프랑스 데니스 아줌마와 크리스티앙 아저씨가 나무 그늘에 앉아서 쉬고 계신다. 오호라 보기 좋다. 오늘 걷는길은 정말 즐겁다. "프란체스카! 오늘 날씨 너무 좋다. 빨래하면 금세 마를 것 같어!" 프란체스카도 신이나서 오늘은 빨래나 할까? 하며 거들었다. 예전에 길을 걸었을때 근처 밭에서 뿜어대는 스프링쿨러가 있으면 얼굴을 대며 까르륵 거리고 싶어지는 그런 날씨였다. 이곳부터 시작하는 순례객도 많아서 조금씩 못보던 사람들도 많다.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다양하다. 처음에 내가 '올라'라고 인사를 하면 대꾸를 안하는 사람도 있고,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관광형 순례객도 있다. 그들의 특징은 '올라-''부엔까미노~'류의 인사에 인색하다는 것인데,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앗 페이크 펠레그리노!(가짜 순례객!)라고 했다. 뭐 그래도 여러가지 이유로 걷고는 싶지만 여기서부터 걸을 수 밖에 없을수도 있기 때문에 페이크 펠레그레노라고 부르는건 다소 무례한 표현이다라는 걸 깨닫기엔 그리 오랜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드디어 이 표지석 이후로 100km 그리고 곧 도착하게 된 De Fereiros. 이곳의 공식알베르게도 20개의 베드가 준비되어 있어 매우 비좁다. 씻고 들어오니 스페인 패밀리 페드로 아저씨를 비롯해 예전에 만났던 분들이 고대로 계셨다. 반가움의 포옹을 하고 우리는 기봉이와 함께 빨래를하고 말리며 식사준비를 했다. 식사를 준비하는데 만난 귀여운 꼬마친구. 우리 앞에서 씩씩하게 걷던 친구였는데, 바르셀로나에서 부모님과 함께 온 13살 친구였다. 사람들과도 곧잘 지내서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던 친구라서 우리랑 함께 라면스프 파스타 만들기에 동참했다. 기봉이가 가지고 다니는 스프에 파스타를 볶아내면 꽤 그럴듯한 맛이 나는데, 우리는 슈퍼가 멀리 있을경우에는 이렇게 해결하곤 했다. 이 꼬마친구는 우리 음식도 곧잘 먹고 우리를 정말 잘 따랐다. 붙임성도 좋고 성격도 좋은 친구라서 알베르게의 모든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 했다. 식사를 하고나니 갑자기 맑았던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소나기가 엄청 쏟아졌다. 우리는 완주기념 맥주를 마시지 못해 기봉이와 함께 알베르게 앞 가게에 가서 맥주를 시켰다. 마침 프란체스카도 합세하여 같이 빗소리를 감상했다. 알베르게가 꽉차 다른곳으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SARRIA 부터 시작하는 순례객들도 꽤 많다보니 부디 앞으로 알베르게가 충분하길 바랄 뿐이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도 서두르는 수 밖에 없으니까. 늘 800km 의 알베르게에는 약간의 경쟁도 피치못하게 감내해야 한다. 시간이 비가 도저히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디건을 껴입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하려고 하니 그 꼬마 친구가 우리 침대에 와서 마지막 인사를 한다. "부엔까미노-" 기봉과 나는 번갈아 이 꼬마친구의 순수함에 귀여워서 웃으며 "부엔까미노-"로 대답했다. 우리가 만나서 까미노에서 교감했던 이 추억이 그 꼬마아이의 인생에서 잊혀지지 않는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한다. 부디 아까 약속했던 것 처럼 건강히 완주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다음에 계속.
Buen Camino #63. 마음이 편해지는 사모스 수도원
22/06/2014 O’Cebreiro -> Samos (Day 26) 수도원은 산으로 빙-둘러 쌓여있었고 정말 적막했다. 오직 들리는 소리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 뿐 사람들의 소리는 왠지 모르게 자연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 곳이었다. 그간 까미노에서 마주친 수도원이 몇 있었지만 이렇게 베일에 쌓여있는 듯한 수도원은 처음이었다. 기봉이와 함께 사모스 수도원을 천천히 둘러본다. 둘러보는 내내 비가 왔다가 해가 쨍쨍했다가 날씨가 오락가락하다. 분명 날은 맑은데 소나기가 내린다. 그런데 그런 현상조차 역시.. 이곳은 초자연적인 뭔가가 있을거야 라며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감돌았다. 알베르게는 바로 이 안에 있다. 기부제로 운영되는 공립 알베르게라 그런지 침대는 한정되어 있다. 마침 기봉이와 나는 제시간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짐을 풀었다. 호스피탈레로는 일본 분이셨는데 이곳에서 봉사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이곳에서 나름 수련같은것도 같이 하신다고. 쉽지 않은 결정일텐데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제 이제 프란체스카만 도착하면 되는데 어디에 있는지 오늘 여정에서는 도통 본 적이 없다. 우리보다 앞서 갔을리는 없는데 아마 컨디션을 조절하려고 천천히 걷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한 1시간 쯤 지났을까 저 멀리서 많이 보던 실루엣이 등장하며 우리는 단번에 그게 프란체스카 인걸 알아챘다. "하아 너무 많이 걸었어어!!!!" 라면서 들어오는 프란체스카. 우리는 30km 넘게 소화한 우리를 자축하기 위해서 샹그리아 한잔을 마시기 위해 마을 레스토랑으로 갔다. 늘 그랬듯이 기봉이는 맥주한잔!을 외쳤다. 너무 자연스럽게 우리는 늘 그랬듯이 여정을 마치고 나면 맥주를 마신다. 냉장고에서 갓 내온 샹그리아는 과일이 가득했다. 한 잔 마셔보니 힘든 하루가 싸악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눈을 감으면 적막함이 감도는 수도원은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었다. 수도원 안에 입장하면 검은 옷을 입은 사제님들이 계시고, 수도원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친절히 설명도 해주신다. 수도원의 중앙에는 이렇게 동상이 있는데 이 수도원의 창시자 인 것 같다. 딱 봐도 수도원에 있는 많은 것들이 오래되었다. 하나하나 둘러보며 수도원을 살펴보며 수도원을 느껴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방은 가이드가 없어도 돌아다닐 수 있다. 물론 마침 신부님의 가이드가 있으면 살짝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하지만,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수도원을 느껴보기로 한다. 저녁에는 수도원의 미사가 진행되었다. 원래는 우리와 같이 걷던 순례자들이 전부 하얀색 옷을 입고 나타났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순례자들 중 신부님의 비율이 꽤 된다. 나는 사실 카톨릭에 대한 교리를 잘 모르지만, 미사를 돕는 신부 수행(?)이 필요한 것 같았다. 미사가 진행되며 자발적으로 순례자들이 신부 수행을 돕는다. 분명 장난기가 엄청 많은 순례자였는데 이 때 만큼은 수행하며 그 아우라가 달라진다. 표정부터가 싹 변하며 신부수행을 하고 마지막엔 향로를 흔들며 의식을 하는데 경외심이 들 수 밖에 없었다. 함께 기도를 하며 안전한 까미노길을 빌었다. 이제 사모스의 수도원을 거치면 콤포스텔라까지는 약 100km 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는 이 곳에서 미사에 참여한 사람들끼리 단체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봤던 카메라 상에서 봤던 우리의 표정은 한 없이 행복해보이고 편안해 보이는 그런 표정이었다. 스페인 테네리페의 신부인 아저씨가 찍어주셨는데, 아직까지 그 사진은 받지 못했지만. 아직도 내 기억속에서 우리의 표정을 아직 생생히 기억한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