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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안내표
누가 작성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제목은 "민족 안내표(Völkertafel)"이고 18세기 초 오스트리아 Steiermark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위에는 각 민족을 대표하는 사람들 일러스트가 있고, 밑에는 민족들마다 특성이 어떤지 표로 작성되어있다. 몇 가지 카피본이 있기는 한데, 어느 것이 원본인지는 불명확하다고 한다. 물론 글자는 18세기 초답게 지금 비-서구인 눈으로 잘 안 보이는 서체인데, 말 자체는 18세기 초에 오스트리아와 남부 독일에서 사용된 고지독일어 문어(Oberdeutsche Schreibsprache)라고 한다. 소장처는 오스트리아 빈의 민속박물관(Österreichisches Museum für Volkskunde). 사실 이 표는 18-19세기 유럽 백과사전에 나와있는 한국(조선) 이미지에 대한 빈 대학 논문을 찾다가 발견했는데, 표 자체가 너무 재밌어서 정작 논문은 안 읽었... 당연히 오스트리아의 누군가가 제작했을 듯 하다. 독일에게 매우 유리하게 작성되어있기 때문이다. 일단 언급해야 할 것은, 민족성 개그, 혹은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건 옛날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거라는 점이다. (가령 영국의 패션 란을 보시라.) 그런데 표를 보시면 현재의 스테레오타입과 이전의 스테레오타입이 일치하는 면도 있고, 일치하지 않는 면도 있음을 아실 수 있다. 이를테면 "곰"은 이 시대에서는 폴란드를 가리킨다고 나와있다. 지금은 다들 러시아를 떠올리지만 말이다. 동물 상징은 지금과 죄다 다르기는 하다. 스페인은 코끼리, 프랑스는 여우, 독일은 사자 등등. 당연히 번역본을 준비했다. 아래 참조 4번 링크인데, 나의 독일어 해석이 잘못됐을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시라. (그래서 원어도 밑에 병기해 놓았다.) 현대 독일어본에 대한 도움은 역시 독일어판 위키피디어에서 빌려왔다. ---------- 참조 1. 18-19세기 유럽 백과사전에 나와있는 한국(조선) 이미지에 대한 빈 대학 논문: http://othes.univie.ac.at/43685/1/45319.pdf 2. 오스트리아 민속박물관의 설명: https://www.volkskundemuseum.at/onlinesammlungen/oemv30905 3. 짤방은 위키피디어(독일어): https://de.wikipedia.org/wiki/V%C3%B6lkertafel_(Steiermark) 4. 엑셀 표: https://1drv.ms/x/s!AsoWoXdtxZlCh1DFqk-HdarEj0ij?e=ccIpz3
We need to talk about Kevin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말할 필요가 있다. 아니, 그 영화(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 이야기가 아니다. 주말 특집으로서 프랑스와 독일에서 Kevin이라는 이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다. 한 마디로, 안 좋다. 그것도 매우 안 좋다. 이유가 있다. 특히나 프랑스와 독일에서 영어식 이름을 갖는다는 의미를 사회적 맥락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케빈은 1980년대 미국 드라마가 범람하면서부터 유행을 타기 시작했고, 1991년에 14만 명이나 되는 아기들이 케빈이라는 이름을 가졌다(참조 1). 평소에 집에서 나가지 않고(무직일 가능성이 크다) 수당으로 살아가면서 텔레비전만 계속 보다 보니 자식들에게도 영어식 이름을 지어준 상황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케빈을 위시하여, 스티븐이나 딜런, 브랜든, 조던, 신디와 같은 영어식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다. 발음은 물론 자기들 마음대로 해서, 우리가 아는 영어식 발음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바깔로레아 시험의 이름별 성적 분포표(참조 2)를 보면 케빈이나 딜런, 사만다나 제시카와 같은 영어식 이름은 주로 왼쪽에 몰려 있음이 보인다. 그러므로 영어식 이름을 가졌다 싶으면, 보통 미국에서 거론되는 레드넥, 화이트 트래시와 같은 개념도 등장한다. beauf라는 개념인데, 매형이나 처남을 의미하는 beau-frère에서 따온 말로서, 뭔가 시골스러운, 뭔가 보수적이면서 엉뚱하고, 무식하면서 정은 또 있고, 살 수 없는 걸 사려고 하지만 스타일은 또 없고, 편견이 아주 많으면서 극우파에 투표하는 이미지를 가리킨다. Kevin이라는 이름은 바로 저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kéké라는 슬랭(beauf보다 좀 더 의미가 좁다)하고도 어울린다. “케빈했다/faire son Kevin”이라는 표현도 존재한다. 그래서 한 기사(참조 3)에 따르면 케빈이라는 이름으로 이력서를 제출하는 경우, 아르튀르에 비해 10-30% 기회를 “덜” 가졌다는 통계도 있다고 한다. 이름이 케빈이면 이미 사람들 머리 속에 편견이 생긴다는 의미다. 바로 짤방(참조 4)과 같은 이미지다. --------- 독일에는 이런 말까지 있다. Kevin ist kein Name, sondern eine Diagnose / 케빈은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진단이다(참조 5). 독일도 마찬가지로 영어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거나 무직인 가족에서 나온 사람들이리라는 편견이 있다. 독일인들답게 그런 편견까지 조사한 통계도 있다. 케빈(남자)이나 샹탈(여자)이라는 이름을 가진 경우, 초등학교 선생님들부터가, 얘네들은 문제가 좀 있겠거니 하고 여긴다는 결과다(참조 6). 그런데 독일의 경우는 지역적 특성이 좀 강하다. 전반적으로 사회적 지위나 소득수준이 낮고 실업률이 높은 곳이 어디다? 구 동독 지역이다. 실제로 구 동독지역에서 인기 있는 이름 중 하나라는 얘기다. 케빈 외에 대표적으로는 Ronny가 있는데(참조 7) 로니 역시 케빈과 정확히 동일한 편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마 주위에 로니라는 이름을 가진 동독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아마 노동계급이거나 AfD에 투표하는 성향을 가졌을 가능성이 꽤 있다는 얘기다(참조 8). 하지만 여기서 의문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구동독 지역에서 미국 드라마를 봤을리가 없는데? 여기에는 좀 딱한(그러나 증명할 수는 없을) 이유가 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구 동독 지역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서유럽이나 미국스러운 이름을 지어줘서 나중에 세상에 나갈 수 있도록 했다는 가설이다. Enrico나 Silvio, Ricardo, Yves 같은 이름을 가진 동독 지역 출신 사람들이 꽤 있다. 이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마찬가지의 “편견(?)을 조장하는 영어식 이름”의 문제는 그 외 나라들에도 있긴 하다. 가령 스웨덴에서는 베니, 해리, 헨리, 찰리, 로니(!), 케니 등의 “-y”로 끝나는 영어식 이름의 문제(Y-namn라 부른다. 참조 9)가 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마이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은데 부모가 마이클 철자를 몰라서 Maicol로 이름 붙인 사례도 있다고 한다. 덴마크도 “브라이언”이라는 영어식 이름에 편견이 존재한다(참조 10). 물론 계속 거론했지만 편견은 편견, 배너티 페어 프랑스어판은 케빈이라는 이름을 가졌어도 성공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며 특집 기사(참조 11)까지 냈다. 그러나 기사에 나온 인물들 중에 프랑스인은 한 명도 없었다. -------------- 참조 1. KEVIN: https://prenoms.doctissimo.fr/KEVIN-10174.html 2. Le nuage des prénoms: http://coulmont.com/bac/nuage.html 3. La malédiction des Kevin(2015년 4월 1일): https://www.lepoint.fr/insolite/la-malediction-des-kevin-01-04-2015-1917538_48.php 4. 자동차에 “나 싱글임”이라 쓰여 있고 밑에 휴대폰 번호가 나와 있다. (프랑스의 경우 06으로 시작되면 휴대폰 번호다.) 그 외에도, 팔찌를 찬다든가 조니 홀리데이를 좋아한다든가, 요새 같으면 코로나19 치료제 관련, 라울트 교수를 숭배한다든가… (먼 산) 출처는 영화 “캠핑”이다., Camping 2 : Regardez Franck Dubosc en célibataire plus beauf et hilarant que jamais !(2010년 3월 9일): https://www.purepeople.com/article/camping-2-regardez-franck-dubosc-en-celibataire-plus-beauf-et-hilarant-que-jamais_a51586/1 5. Was soll das heißen?(2012년 10월 31일): https://www.zeit.de/2012/45/Karriere-Erfolg-Namen/komplettansicht 6. "Kevin ist kein Name, sondern eine Diagnose”(2009년 9월 18일): https://www.zeit.de/wissen/2009-9/vorurteile-namen-grundschullehrer 7. Ronny: https://www.beliebte-vornamen.de/8185-ronny.htm 8. 실제로 이름 “Ronny”의 분포와 AfD의 득표율은 정말 놀랍게도 일치한다. 물론 이건 흥미로운 결과일 뿐이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고 보기에는 인과관계가 없다. Mit gutem Gewissen gegen die bösen Bildungsfernen(2017년 10월 11일): https://www.cicero.de/kultur/paternalismus-mit-gutem-gewissen-auf-die-boesen-bildungsfernen 9. -y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남자들의 감옥에 갇힐 가능성은 안데르스나 요한에 비해 2.5배나 많다고 한다. (연구결과 링크는 현재 연결이 안 된다.) Pojkar som fått y-namn hamnar oftare i kriminalitet(2011년 10월 11일): https://offerstenen.blogspot.com/2011/10/pojkar-som-fatt-y-namn-hamnar-oftare-i.html 10. DANISH NAMES: WHY IT’S BAD TO BE BRIAN(2013년 4월 13일): https://www.howtoliveindenmark.com/stories-about-life-in-denmark/danish-names-why-its-bad-to-be-brian/ 11. Ils s'appellent Kevin et ils ont réussi dans la vie(2015년 9월 16일): https://www.vanityfair.fr/culture/people/diaporama/les-10-kevin-qui-ont-reussi-dans-la-vie/22479#les-10-kevin-qui-ont-reussi-dans-la-vie-spacey
프랑스의 동성애 합법화
뭔가 아쉬워서 또 쓰는 주말 특집, 유럽, 특히 프랑스의 동성애 합법화 연도다. 이런 그래프(참조 1)를 보면 프랑스가 참 쿨하다고 느껴지는데, 합법화된 연도를 보시라. 1792년이다. 당연히 뭔가 좀 이상하다 생각하실 수 있을 텐데, 1789년 대혁명 직후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겠다. 대혁명 직후, 모든 적폐를 없애는 과정에서 과거 왕정 하에서 단죄(처벌은 화형이었다, 참조 2)됐던 범죄들을 몽테스키외의 죄형법정주의 정신에 따라 법률(형법)에 적시하기 시작했을 때가 바로 저때부터였다. 이게 무슨 말이냐, 대혁명 직후 제헌의회는 왕정 시절의 형법을 완전히 바꾸기로 한다. 보통은 “르 플르티에(Le Peletier)”로 알려진 Saint-Fargeau 후작, Louis-Michel le Peletier(참조 3)가 형법을 재작성했는데, 그는 “진정한 범죄(vrais crimes)”만을 법에 따른 범죄로 규정했다. 즉, 앙시앙 레짐에서 범죄로 간주했던, 전제왕권이나 조세, 봉건제, 미신에 따른 “모조 범죄(délits factices)”를 형법에서 제외시켰다. 자세히 보셔야 할 것이, “미신”은 프랑스 대혁명에서 곧 종교를 뜻하며, 신성모독을 형법상 범죄에서 뺀 것과 동일했다. 그러므로 동성애도 이제 처벌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다만 첫 번째 영웅인 “르 플르티에”는 루이16세 사형에 찬성표를 던진 후, 바로 그날 저녁 전-근위대원에세 암살당한다. 그렇다면 1791년 완성되고 1792년 공표된 이 형법이 그대로 이어졌을까? 여기서 두 번째 영웅(?)이 등장한다. 다름 아닌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이 유럽에, 아니 전세계에 미친 영향은 바로 법전이었는데, 나폴레옹 법전의 형법은 1792년의 형법에 손대지 않고, 그 대신 죄형법정주의(Nulla poena sine lege)를 더 강화시킨다. 원래는 1789년 대혁명 직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에 반영(제5조 및 제8조)되어 있던 것을, 1810년 나폴레옹 형법(code pénal) 제4조에 명문화시킨 것이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차례로 점령하면서 나폴레옹 법전도 퍼졌고, 그에 따라 베네룩스 3국과 모나코 등이 동성애를 형법에서 지웠으며, 그 형법이 계속 유지된다. 여기까지 보면 굉장히 프랑스가 진일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뿌리 깊은 혐오가 법으로 없어진다면 오산이다. 경찰은 공공질서 확립이라는 목표로, 동성애자들을 파일로 만들어서 관리했었다. 법도 교묘해진다. 비시 정부는 합의연령을 집어넣어서 이성간에는 13세, 동성간에는 21세로 조건을 붙인다. 이걸 어기면 범죄였다. 얼핏 봐도 두 연령을 좀 조정해야 하잖나 싶은 생각이 드실 텐데, 비시 정부의 이 형법 조항은 꽤 오랫동안 유지된다. 바로 이 논란에 불을 붙인 장본인이 미셸 푸코다. 모두들 판옵티콘만 기억하시겠지만(…) 그 자신이 동성애자였던 미셸 푸코가 이 동성애와 이성애 사이에서의 의제강간연령(Majorité sexuelle)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바로 “수치심의 법(La Loi de la pudeur, 1978)” 논쟁이다. 그러나 지식인이 뭔가를 주장한들 그 실행은 정치인이 한다. 여기서 세 번째 영웅, 프랑수아 미테랑이 등장한다. 미테랑은 1981년 대선 유세를 하면서, “동성애 처벌이 이성애 처벌보다 과하다, 이건 이상한 일”이라 선언한다. 미테랑은 당선 이후, 형법 수정을 위해 법무부장관(Robert Badinter)을 의회로 내보낸다. “영국 법정은 더글라스 경을 유혹했다 하여 오스카 와일드에게 유죄를 선고했었다. 프랑스 법정은 17세의 랭보를 유혹했다 하여 베를렌을 처벌할 수 없었음을 안다. 더군다나 실제로는 랭보가 베를렌을 유혹했었다."(참조 4) 이 연설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표결 끝에 이성이든 동성이든 의제강간연령이 15세로 조정된다. 물론 더 자세한 이야깃거리들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 관점에서 15살이 낮아보이기는 한데 이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참조 5). -------------- 참조 1. 레딧에서 가져왔지만, 대체로 사실에 맞다고 판단된다. https://www.reddit.com/r/europe/comments/hhub6i/legalization_of_homosexuality_in_europe/ 2. 칙령에 따른 처벌이기는 했는데 정말로 화형당한 인물은 별로 없어서, 18세기 전체에 걸쳐 5명이 안 된다고 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베르사이유”에서 동성애자로 나오는 루이 14세의 친동생이 양성애자였으니… 3. 나폴레옹 법전 작성에 참여한 Parme 공작, Jean-Jacques-Régis de Cambacérès가 동성애를 합법화시킨 인물로 오해받을 때가 있는데, 그 개인이 동성애자였고 그 성향을 숨기지도 않아서, 항상 나폴레옹의 놀림감이 됐던 사실은 맞다. 하지만 그는 민법 작성자이지 형법 작성자가 아니었다. 4. DÉPÉNALISATION DE L'HOMOSEXUALITÉ : ROBERT BADINTER, INTERVENTION À L'ASSEMBLÉE NATIONALE LE 20 DÉCEMBRE 1981(2018년 5월 24일): http://culture-et-debats.over-blog.com/article-511880.html 5. «LA MAJORITÉ SEXUELLE À 15 ANS, UNE SPÉCIFICITÉ EN DROIT FRANÇAIS»(2014년 11월 25일): https://next.liberation.fr/sexe/2014/11/25/la-majorite-sexuelle-a-15-ans-une-specificite-en-droit-francais_1150503 PS 1. 1858년의 터키가 튀어보일 수 있는데 탄지마트 개혁(1839-1876) 당시의 오토만 투르크제국은 프랑스 법을 들여왔었다. 그래서 동성애가 처벌 대상 범죄에서 사라진 것. 참조: http://faith-matters.org/images/stories/fm-publications/the-tanzimat-final-web.pdf PS 2. 의외로 1890년의 바티칸도 튀어보이실 수 있다. 비밀은 생각보다 단순한데, 바티칸이 이탈리아 형법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도 오토만투르크처럼 나폴레옹 형법을 그대로 들여왔었으나 시칠리아와 이탈리아왕국의 형법을 통일시켰던 때가 1890년(Zanardelli 형법)이다.
독일 헌재 vs. ECB의 촌극
https://www.handelsblatt.com/meinung/kommentare/kommentar-loesung-nach-ezb-urteil-das-ende-einer-schlechten-komoedie/25963030.html 절찬리에 연재하는, 오랜 친구들이라면 그동안 써왔던 독일헌재 vs. ECB의 연재 시리즈(참조 1)를 잘 알 것이다. 게다가 5월 5일 어린이날 독일헌재(이하 BVerfG)가 ECB와 유럽사법재판소(CJEU)를 난도질하는 판결을 한 것도 기억날 것이다. ECB의 자산매입 프로그램이 독일 기본법 조건부 불합치라고 말이다(참조 2). 당시 BVerfG는 ECB에게 비례성 테스트에 대한 보고서를 다시 제출하라고 했었다. EU의 기관이 회원국 재판소의 명령에 따라야 할까? 애초에 논란이 많았고 ECB도 고자세이기는 했는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유럽사법재판소와 EU 회원국 최고재판소의 결정이 “다르게” 나올 경우 어떻게 하라는 지침이 현재 없다.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이라는 얘기다. 안그래도 헝가리와 폴란드가 사법 시스템을 유린하고 있는데, 사태를 더 키우지 말자고 한 것인지 몰라도 ECB가 보고서를 제출했다! (단, 이 보고서는 BVerfG 및 독일 분데스탁에서만 열람이 가능한 모양이다.) 그래서 양측이 만족해 하는 걸로 이 이상한 촌극(eine Farce)이 끝날 듯 하다. 그런데 ECB가 보낸 보고서의 의미를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신통한 계책은 천문을 헤아리며 묘한 꾀는 지리를 꿰뚫는구나. 싸움마다 이겨 공이 이미 높았으니 족한 줄 알아서 그만둠이 어떠하리…”(참조 3)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애초에 BVerfG가 섣부르게 EU에 맞서고 EU를 훈계하는 식의 판결을 내리면 안 될 일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ECB가 내놓는 보고서는 5월 재판 심리기간 중에 ECB가 제출했던 자료와 거의 대동소이하다고 한다. 심지어 질문답변 파트는 독일어가 아닌, 영어로 작성됐다(참조 4). 거의 독일 헌재/의회를 놀리는 꼴이다. 게다가 지금이 언제냐, 7월 초다. 여름 휴가 직전이기 때문에 특히나 분데스탁 의원들의 불만(참조 4)이 드높다. 의원들은 고사하고 독일 헌재는 이걸 과연 이해하고 판결을 내렸을까? AfD는 당연히(!) ECB에 대한 새로운 소송을 준비 중이다(참조 5). 그렇지만 일단은 어른의 사정으로 문제를 덮어두자. 항상 그런 식으로 EU가 발전해 왔… -------------- 참조 1. 독일연방헌재의 은행연합 판결(2019년 8월 5일): https://www.vingle.net/posts/2653223 2. 독일 헌재와 CJEU의 충돌(2020년 5월 7일): https://www.vingle.net/posts/2942859 3. 당연히 을지문덕이 수나라군에게 보낸 희롱조의 오언시, 여수장우중문(與隋將于仲文)이다.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4. Plötzlich gibt es den Freibrief für die EZB im fragwürdigen Eiltempo(2020년 7월 2일): https://www.welt.de/finanzen/article210827511/Anleihekaufprogramm-der-EZB-Freibrief-vom-Bundestag-im-Eiltempo.html 5. Bundesbank-Chef Weidmann sieht nach Karlsruher Urteil EZB am Zuge(2020년 6월 18일): https://www.handelsblatt.com/finanzen/geldpolitik/streit-ueber-die-geldpolitik-bundesbank-chef-weidmann-sieht-nach-karlsruher-urteil-ezb-am-zuge/25928626.html
땡땡의 모델, 팔레 훌
뭔가 아쉬워서 하나 더 남기는 주말 특집, 쥘 베른의 소설로부터 덴마크의 한 소년, 그리고 벨기에의 아니 세계적인 만화 땡땡의 모험의 주인공 땡땡의 이야기다. 결국은 땡땡의 기원, 실제 모델이 (자기 동생 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주제다. 때는 19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쥘 베른의 생일 100주년을 맞이하여 덴마크의 한 신문사(Politiken, 지금도 있는 신문사다)가 기념 대회를 하나 개최한다(참조 1). 세계일주 대회다. 다만 참가자는 젊어야 했고, 소설 속의 필리어스 포그보다 더 빠르게 세계일주를 완수해야 했다. 비행기는 당연히 안 된다. 배와 기차, 자동차만 허용됐다. 우승자는 덴마크 보이스카웃의 팔레 훌(Palle Huld, 1912-2010)이었다. 아직 15살이었으며, 45일만에 세계일주를 완수했는데, 사실 그는 베른의 소설과는 좀 다르게 여행을 했었다. 덴마크에서 영국 런던으로 간 다음 글래스고로 향한다. 거기서 SS Montcalm(SS는 증기선을 뜻한다)을 타고 캐나다로 건너갔다. 세인트존스에서 벤쿠버로 기차를 탄 다음…? Empress Canada호를 타고 일본으로 갔다. 다시 구대륙으로 건너가야 했기에 그는 일본에서 당시 일제 치하였던 한반도로 건너갔고, 그 다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그는 폴란드와 독일을 거쳐 다시 덴마크로 돌아왔다. 물론 소설 속의 필리어스 포그는 온갖 모험을 거치고 부인도 얻고(…) 난리법석을 떨었기 때문에 오래 걸린 것이었고, 세계 일주만을 노린 그가 더 빠르게 일주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덴마크 인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한다. 당연히 그의 이야기는 전유럽에 퍼졌고, 여행기도 여러 나라 판으로 출판됐다. 불어판도 1928년 10월에 나온다. 그리고 석달 후, 벨기에의 천주교계 신문인 “20세기(Le vingtième siècle)”에 땡땡이 등장했다. 처음 등장한 땡땡은 소련을 방문했고, 그 외에도 전세계를 돌아다녔다. 2억 5천만 권 이상 팔려나가는 고전만화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훌과 땡땡의 관계는? 훌은 15세, 땡땡은 16 혹은 17세였다. 훌은 보이스카웃이었고, 땡땡의 작가 에르제(Hergé)가 보이스카웃이었다. 훌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으며, 땡땡도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에 가까운 기자다. 훌의 빨간 머리와 플뤼푸(Plus fours) 바지, 롱코트(참조 2)는 금발머리(나중에 갈색화되기는 한다) 땡땡도 똑같이 입었다. 그래서 땡땡 전문가들은 아마도 에르제가 훌의 사례로부터 땡땡의 영감을 받았으리라 지적한다(참조 3). 만화 속의 땡땡이 소련에서 벨기에 브뤼셀로 돌아왔을 때, 벨기에 사람들은 훌을 맞이한 덴마크 사람들처럼 일종의 “코미콘” 행사를 역앞에서 치렀었다. 그런데 중요한 흠결이 하나 있다. 에르제의 유품 중에 훌의 책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가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책이야 빌려서 읽을 수도 있고, 팔레 훌에 대한 이야기는 에르제가 근무했던 “20세기”를 포함, 여러 신문 기사에 숱하게 나왔었다. 게다가 훌과 에르제의 땡땡이 밀접한 관계일 수 있다는 지적은 80년대 말부터 나왔었다. 에르제의 부인과 결혼했고 당시 에르제의 작품관리도 하고 있던 닉 로드웰(Nick Rodwell)은 사실 훌이 사망하기 1년 전인 2009년, 자기 변호사를 데리고 은밀히 코펜하겐을 방문한다. 아직 늦기 전에, 팔레 훌 경(2005년 1등급 기사 작위를 받았다)과 만나서 좀 물어봐야 했기 때문이다.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팔레 훌은 땡땡을 읽어본 적이 없었고, 에르제를 만나본 적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자신에게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하니 놀랍고 기쁘다고 했다. 결론? 기사에서 읽고 영감을 받았으면 어떠랴, 훌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으며 땡땡과 훌의 이야기는 많이 다르기도 하다. 훌은 지구일주 후, 친구와 함께 한 번 더 오토바이로 이란까지 여행을 다녀온 다음(세계대전 전이니 가능한 얘기다), 배우로 평생을 지냈고, 땡땡은 만화 속에서 세계를 누볐다. 에르제 재단은 사실, 2009년 땡땡 80주년을 맞이하여 팔레 훌을 기리는 글을 재단 홈페이지에 올렸었다(참조 4). 물론 팔레 훌만 땡땡에게 영감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워낙 제국주의 시대의 특징대로 여러 모험가들이 있던 시대(가령 아라비아의 로렌스)니까 말이다. -------------- 참조 1. Tintin avant Tintin : Le Tour du monde d’un adolescent danois(2020년 6월 17일): https://www.retronews.fr/sports-et-loisirs/long-format/2020/06/17/tintin-avant-tintin-palle-huld 2. 한 번 훌의 책 표지를 보시라. “팔레의 세계일주 44일”, 심지어 에르제 재단(!)의 페이스북에 있다. https://www.facebook.com/Tintin/photos/a.470328576499/470328586499/?type=3&theater 3. Tintin en eventyrerefter dansk forbillede(2012년 12월 22일): https://www.berlingske.dk/kultur/tintin-en-eventyrerefter-dansk-forbillede 4. Tintin turns 80(2009년 1월 15일): http://en.tintin.com/news/index/rub/0/id/3646/0/tintin-turns-80 5. 짤방 출처는 여기. Is this the Real-Life Tintin?(2017년 7월 11일): https://www.messynessychic.com/2017/07/11/meet-the-real-life-tintin/
레오폴드 2세
미국에서 일어난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유럽을 넘어섰다. 영국에서 노예무역의 대표자 동상이 쓰러지고, 벨기에(안트워프)에서 전 국왕 레오폴드 2세의 동상을 군중이 쓰러뜨렸기 때문인데, 사실 역사적 유물을 없애거나 없애자는 주장이 나오면 마음을 정하기가 좀처럼 어렵다. 자랑스러운 과거는 물론, 치욕스러운 과거 또한 사실은 사실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https://www.rtbf.be/info/regions/detail_demonter-les-statues-de-leopold-ii-necessite-une-demande-un-permis-d-urbanisme?id=10518813 벨기에가 더욱 더 그러한데, 원래 콩고는 국왕 레오폴드 2세의 개인 영지였다. 19세기 중반, 열강들 합의에 따라 독립한 신생 벨기에 왕국은 식민지 개척에 매우 소극적이었고, 국왕이 나서서 자신의 치부를 위해 개인영지 확보를 노력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콩고 지역이 관세가 없는 무역 지대가 될 것이며, 노예 무역을 멈추겠다고 약속한 덕분에, 독일 및 프랑스와 영국으로부터 개인영지를 허락받을 수 있었다. 이게 이른바 콩고 회담, 정식으로는 베를린 서아프리카 회담(Kongokonferenz, Westafrika-Konferenz, 1884-1885)이다. 콩고 지역이 묘하게 중북부 아프리카와 남부 아프리카 사이에, 프랑스와 영국, 포르투갈, 독일 식민지들의 중간 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레오폴드 2세는 이 땅을 개인 영지로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콩고 지역은 야만 통치 지대가 되어버렸고, 19세기 말-20세기 초 기준에서도 너무나 잔혹했기 때문에, 결국 벨기에 정부가 나서서 국왕으로부터 통치권을 빼앗는 것이 1908년, 레오폴드 2세가 사망하기 1년 전 일이었다(게다가 당시 국왕에게는 여자 문제도 있었...). 어차피 국왕은 콩고 지역을 단 한 번도 직접 방문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콩고에 대한 식민지배 행위를 벨기에 정부가 공식 사과해야 하느냐, 여느 식민지배국/피통치국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복잡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고, 벨기에 정부는 콩고 초대 대통령 암살 및 어린이 납치사건만을 공식 사과했을 따름이다. (르완다 문제하고는 또 다르다. 이건 나중에...) 다만 최근, 베를린 올림픽 시절, 당시 나치 정권이 올림픽 경기장 이곳 저곳에 만들어 놓은 석상을 없애야 하느냐는 난상 토론이 있었는데, 당연히 이 레오폴드 2세 동상과 동일한 성격의 문제는 아니지만 공통점을 갖는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역사의 기록을 어디까지 지워야 하느냐의 문제다. 일단 원칙적으로는 이 기사에 나오는 벨기에 브뤼셀 도시계획/유적보존국장 말마따나 콩고 출신을 포함한 전문가 위원회가 토론을 해야 하고, 실질적으로는 철거 요청 공문이 있어야 하기는 하다. 당연히 시간이 필요한 일이며, 현재는 BLM에 따른 분위기에 취한 동상 무너뜨리기에 맞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기사에 나오는 국장은 수도 브뤼셀 내에 탈식민 기념관을 만드는 편을 선호한다고 한다. 모두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리히텐슈타인 이야기
리히텐슈타인이 스위스에 붙어 있는 조그마한 공국이라는 사실 하나만 알아도 리히텐슈타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 자그마한 나라에 재미나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우선 리히텐슈타인 자체를 설명해 보자면 올해로 태어난지 301년째 됐다. 의외로 역사가 깊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1719년 1월, 한스 아담스 리히텐슈타인 공작이 해당 지역을 매입한 다음, 신성로마제국 카를 6세 황제로부터 공증을 받아서 공국을 세운 것이 처음이다. 역시 부동산이 먼저인 겁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0여년 후에?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을 무너뜨렸고, 나폴레옹 몰락 이후의 빈 체제는 라인연맹(Rheinbund) 대신, 독일 연맹(Deutsche Bund)을 성립시키면서 리히텐슈타인은 진정한 독립을 이룬다. 그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간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리히텐슈타인은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라기보다는 재정 부담으로 80여명 있었던 군대를 해체(1866년)한다. 그후 세계대전 때에는 중립을 지키는데, 오스트리아의 역사에 휘말려서 좋았던 적이 없었던 리히텐슈타인은 스위스와 급속도로 친해진다(참조 1). 1923년 스위스와 관세동맹을 체결하면서 화폐도 스위스프랑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진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아무래도 스위스의 리히텐슈타인 침략일 것이다. 국경을 구분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국경을 지키는 초소도 없다 보니 의도치 않게 스위스군이 리히텐슈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잦다. 기사에 2007년의 사례(참조 2)가 나오는데, 스위스 군의 실수(?)는 처음이 아니었다고 한다. 물론 다음 날 전화로, “미안” 하고 끝. 하지만 스위스 군의 전술 훈련은 좀 골치아픈 일이다. 기사에 나오는 1968년 사례 외에, 리히텐슈타인 기록(참조 3)에 따르면, 1956년과 1960년, 1985년에 스위스군의 훈련 때문에 리히텐슈타인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심지어 1992년에는 리히텐슈타인 땅인지 모르고 스위스군 5명이 초소를 세우는 사건도 발생한다. 이 정도 일이 발생하면 위의 미안 전화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스위스 외교부 대변인에 따르면, 그 정도의 사건일 경우 포도주 한 박스를 보내서 해결한다(참조 4). 주된 수출품이 의치(false teeth, 참조 5)인 리히텐슈타인에서 제일 재미나는 점은 아무래도 전임 공작이신 한스-아담스(Hans-Adam) 2세의 이야기일 것이다. 현재 공작에서 퇴임한 그는 UFO 신봉가로 알려져 있다(참조 6). 프랑스의 UFO 연구가 Jacques Vallée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지구상에 외계인이 존재하고 있으며, UFO 연구의 주요 후원가이기도 하다. 한스-아담스는 자기가 어렸을 때 Vaduz 성 정원에서 UFO를 목격한 적이 있으며, 이 UFO는 잠깐 나타나더니 스위스 쪽으로 날라갔다고 한다. 게다가 친척도 1950년대 뮌헨에서 UFO를 본 적이 있으며, 사촌 또한 UFO와 조우한 적이 있었다. 이쯤 되면 집안 내력이다. 그래서 한스-아담스는 공작에 오른 후 특히 미국의 UFO 연구가들을 후원했으며, 90년대에는 외계인에게 납치됐다는 미국인들 연구에 20만 달러를 쾌척했었다. 개인적으로는 UFO의 엔진과 추진 방식에 대해 알고싶어 한다고 한다. 그러나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이 공휴일인 리히텐슈타인은 상당히 가톨릭 국가다. 외계인이 인류의 우주 정복 노력을 지켜보고 통제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전적으로 타락한 외계인종이 지구로 와서 치료를 위해 건강한 사람을 납치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스위스인포의 질문에 대해 리히텐슈타인 공작 비서관실은 당연히 노코멘트 했다. -------------- 참조 1. 어느 정도냐 하면 실업보험이나 연금제도까지 스위스와 공유하고 있으며, 의료보험제도도 스위스와 같기 때문에(모든 시민들에게 민간의료보험 가입을 강제시킨다), 병원도 같이 사용한다. 또한 해외에서 여권에 문제가 생긴 리히텐슈타인 국민들은 체류지의 스위스 대사관에 가서 문제를 해결한다. 한편 오스트리아와 리히텐슈타인 국경은 스위스 국경순찰대(Grenzwachtkorps)가 위탁(…) 수행 중이다. 2. Liechtenstein, the country that’s so small it keeps being invaded by its bigger neighbour(2017년 3월 24일): https://www.news.com.au/travel/destinations/europe/liechtenstein-the-country-thats-so-small-it-keeps-being-invaded-by-its-bigger-neighbour/news-story/08eee6f0d3dab6467c8c1dd8566c2514 3. Schweizer Armee(2011년 12월 31일): https://historisches-lexikon.li/Schweizer_Armee 4. Liechtenstein Gets Even Smaller(2014년 8월 16일): https://www.wsj.com/articles/liechtenstein-gets-even-smaller-1397700444 여담이지만 기사에는 백포도주 박스를 보낸 것만으로 해결했다고 나오는데, 스위스도 포도주 생산 국가이다. 5. 아마 치의학과 치기공술에 관심 있는 분들은 스위스에서 창업했지만 본사는 (아마 세금 문제로?) 리히텐슈타인에 있는 Ivoclar Vivadent를 알고 계실 것이다. 6. 공작이 살고 있는 Vaduz 성 사진도 아래 기사에서 가져왔다. Der Fürst von Liechtenstein und das UFO, das Richtung Schweiz verschwand(2020년 5월 26일): https://www.swissinfo.ch/ger/ufo-forschung_der-fuerst-von-liechtenstein-und-das-ufo--das-richtung-schweiz-verschwand/45769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