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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Diary

(no title)
자신에 대해서 충분히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 많지는 못하겠지요. 그래서 우린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매순간 자신이 있는 곳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더 좋은 집과 차... 보다 여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다. 다행히 그 노력은 헛되지 않고 크고 작은 기쁨을 우리의 삶속에 가져다 줍니다. 그와 더불어 보다 성숙한 내면과 고귀한 정신을 갖기도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그 무게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온통 알수 없는 사건들로 꽉 차있기 때문입니다. 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해줄 도움이 될만한 수많은 책들을 뒤져보고, 보이지 않는 신이지만 신앙생활을 통해서 그 앞에 무릎을 꿇기도 하며 가끔은 고요한 시간을 통해 깨달은 자들이 가리키는 곳을 잠시나마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다 깊고, 높은 곳에 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희집은 식사 시간이면 그 음식을 준비한 모든 손길들을 위해 감사의 기도를 잊지 않습니다. 식사기도는 항상 아이들의 몫이지요. 막내는 기도중 '착한 아이가 되게 해주세요'라는 내용을 매번 빼놓치 않고 합니다. 어떨 땐,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치는 이 아이의 개그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허나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차마 건드릴 수 없어 말을 하진 않았지만 바람직한 기도 내용은 아닌 듯 보입니다. '착한 아이가 되게 해주세요' ...............??? 신에게 뭔가를 원할 때는, 그것이 내게 없거나 부족한 것인데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에는 자신의 한계가 분명할 때일겁니다. 자신이 능히 할 수 있는 것을 되게 해달라고 애원하지는 않습니다. 원하는대로 하면 그만이니까요. '착한 사람'은 어떤 사람을 두고 하는 지칭일까요. 한사람의 행동이나 성향을 구분지어, 단적으로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착한 행동을 하게 한 의지가 신이 개입한 의지라면 그 행동은 내가 한 행동이 아닌 듯 보입니다. 나의 의지가 자발적으로 한 행동만이 나의 행동이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착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고 있습니다. 그것은 착한 행동을 '하게' 해달라고 비는 것과도 ㅡ같아 보입니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라 여기지만 이것은 어린아이가 아닌 우리 어른들에게서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각자(覺者)가 우리의 본래면목이 불성이라 했으니 본성이 이끄는 그 경지를 흠모한 나머지 부처가 되기위해 불철주야 용맹정진하는 자들도 있고 나라는 개인적 중심을 내적 그리스도로 옮기는, 거듭남으로 태어나기 위해 말씀을 따라 오직 새사람이 되길 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길 원하고, 부처가 되길 원하고, 거듭난 자가 되길 원합니다. 부처로서, 그리스도로서의 삶, 바라보기에도 아득한 정신의 저 높은 고지 위에서의 삶은 어떤 것일까요. 깨달음을 득하면 세상사 뿐만 아니라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를 통달하고 높은 곳에서 세상을 굽어보며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평안을 누리고 살게 되는 것일까요. 아무리 봐도, 그는 우리가 보지 못한 것까지 볼수 있기에,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이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그 마음을 너무도 잘 읽을 수 있음으로인해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그들의 짐을 나누어 지기를 마다하지 않는 가시밭길을 택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자기 것을 나누며 그들을 섬길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갈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깨달은 자가 되면 삶이 짓누르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자유로운 영혼은 다른 이들의 더 큰 고통속으로 깊숙히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을지도, 자기 것을 먼저 챙기지 않기때문에 늘 부족한 삶을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물 좋고 경치 좋은 선방이나 산속에서 도사노릇 하지는 않겠지요. 거룩한 삶이란 어떤 살아있음일까요. 출석하는 교회를 잘 섬기고, 성도간에 교재도 잘 하며 수요예배, 주일예배, 십일조도 꼬박꼬박 빼놓지 않으며 목사님 설교시간에 졸지 않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사랑'이라 했습니다. 착한 아이가, 부처가, 그리스도가 되기 전에, 바라보는 그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것이 있다면... 행하는 그가 바로 착한 아이고 부처이며 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깨달음이나 천국은 없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것들과는 거리도 아주 먼 생활을 하고 있지요. 착한 아이, 부처, 그리스도가 된 후엔 뭐할 겁니까. 그런 것이 도무지 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엔 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 오지를 가서 잠시 봉사활동하는 이들이 적지는 않지만, 자신의 삶 전부를 헐벗고 굶주린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서 내어주는 이들은 드뭅니다. 악기를 연주하고 펜대만 잡고있던 그 여린 손들이 지금도 그들의 거친 손을 대신하고 있지요.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그들이, 안락한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질병과 가난이 전부인 그 곳에서 수십년을 살고 있어도 드러내지 않고, 선한 일에 전 생애를 다 바친 숭고한 분들은 선한 힘이 되어 우리 사는 곳곳에 있지만 눈에 잘 띄진 않습니다. 상상조차 힘든 일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어떤 이들에게는 일상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자기를 개발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노력은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성숙한 내면과 거룩한 정신을 가지고자 신에게 기댄다던지 골방에서 수행을 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자신이 닮고자하는 그대로 착한 아이처럼 행동하고, 부처처럼 자비를 배풀고, 그리스도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것만이 우리가 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치 '깨달음'은 있지만 '깨달은 자'는 없는 것과도 같은 이치일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기회는 단 세번이라고?
인생에서 기회는 단 세번이라고? 어릴때 나의 형은 항상 대박을 꿈꿨다. 고등학교때 꿈이 중국소림사에 유학 가는것이였는데 형이 돈 많이 벌면 유학 보내주겠다고 해서 철썩같이 믿고 또 믿었다. 사업이 될듯하면 또 다른 사업에 눈을 돌리고 그렇게 이 사업 저 사업 하면서 적잖은 실패를 했다. 빈털털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자주 이런 말을 했다. " 인생에서 기회는 세번이라는데 한번정도는 터질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데 한번도 터지지 않았다. ㅎㅎ 결혼을 하고나서 마음을 다잡고 살고자 했지만 하던 사업도 잘 되지 않았다. 평생 사업만 하던 사람이 40이 넘어서 거의 처음으로 회사생활을 하게 되었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큰병원에서 운전을 하는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지났으며 계약직이기 때문에 짤리는 것은 기정사실화 되었다. 다시 뭘해서 먹고 살지 고민이 많았다. 사실 대부분 인맥으로 들어가고 인맥이 있는 사람만 정규직이 되는 분위기였다. 운전을 아무리 잘하고 근무태도가 성실해도 인맥을 넘어서기에 한국 사회는 여전하다. 그동안 공공연하게 지인위주로 정규직 채용을 한 것이다. 병원 의사들이나 직원의 지인을 정규직으로 승격시켜주기 위해서 알력다툼이 벌어져버렸다. 서로 자기네 친인척이나 친구를 꽂아주기 위해서 병원내 다툼이 발생해 버린 것이다. 나갈날만을 기다리고 있던차에 아무도 상상할수 없는 행운의 여신이 형에게 찾아왔다. 자기네 인맥을 꽂아주려다가 문제가 발생하자 아무런 인맥이 없는 형이 졸지에 정규직이 됐다. 이렇게 운이 좋을수는 없다. 그렇게 형은 살면서 가장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물론 하루종일 운전을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투석환자들을 매일 병원으로 모셔다 드리는 일을 한다. 나름 만족하며 살아간다. 불확실한 사업만 하다가 안정적인 직장생활도 좋다고 한다. 운전을 하는 것도 엄청나게 스트레스 받는 일이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 전봇대 위에 올라가서 일하는 분들을 보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한다고 한다. 더운날 땀흘리며 일하는 것은 지옥 그 자체이다. 그 분들의 수고로움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간다. 당장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해서 그것이 행운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당장 나에게 안좋은 일이 일어났다고해서 그것이 불운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묵묵히 살아가면 그만이다. 너무나도 뻔한 말이지만 그것이 화를 복으로 바꿀수 있는 복이 화가 되는 것을 막을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도 기회의 문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 문은 정직한 땀을 흘리면 충분히 보상을 줄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고통을 받을수도 있겠지만 결국엔 내가 한만큼의 열매를 맺게 된다. 지금 경험해야 할 문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화려하고 쉽고 빠르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문으로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대박 행운을 기다리고 있는가? 산신령이 금도끼를 주기를 바라는가? 타인을 통해서 운을 잡으려고 하는가? 만약 기회가 3번이라면 나의 형은 이제 하나의 카드를 쓴 것이다. 남은 2장의 카드는 많은 시간이 지나면 나오지 않을까? 나도 그렇다. 20대 후반에 전 재산을 날리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할때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괴로웠다. 그때 내 손을 잡고 어둠속에서 끌고 나온 것이 나에게는 첫번째 카드가 아닌가 싶다. 여러분도 저처럼 이제 한장의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을지?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그 카드가 조커가 될수도 있고 윷놀이에서 도만 나와도 골인할수 있는데 재수없게 백도가 될수도 있다. 삶은 결코 내 생각대로 될수가 없다. 그러나 그 흐름속에서 묵묵히 현실을 밟고 살아간다면 불운을 행운으로 바꿀수 있는 카드는 영원히 내 손에 쥐어진다. 지금 다시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립니다. 내가 마음의 문을 열면 다시 우리는 갈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끝이란 존재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숨을 거두고 관에 눕는 그 순간까지 내 삶을 너무 쉽게 평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말 사람 인생 모릅니다. 김영국 행복명상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