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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산에 중국시인 '도연명 미술관'이 왜?
중국 시인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모티브로 한 시가현의 '미호 미술관(MIHO MUSEUM) 전경. 작은 사진은 미술관 설계자 중국계 건축가 이오밍 페이. 일본 최대 호수 비와코 남쪽에 ‘코난 알프스’(湖南アルプス) 이 산 기슭에 ‘미호 뮤지엄’(MIHO MUSEUM) 자리 잡아 도연명 ‘무릉도원’ 모티브...미술관 설계 중국계 건축가 별세 교토 인근 시가현(滋賀県)에는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와코(琵琶湖, 비파호)가 있다. 비와코 호수 남쪽 지방에는 여러 산들이 미니 알프스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를 ‘코난 알프스’(湖南アルプス)라고 부른다. 이 코난 알프스의 산중에 한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최고의 자연 친화적 미술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호 뮤지엄’(MIHO MUSEUM)이다. 이 미술관은 5월 17일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미호미술관(MIHO MUSEUM)을 설계한 건축가 I.M. 페이씨가 5월 16일 102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삼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I.M. 페이(I.M. Pei)는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이오 밍 페이(Ieoh Ming Pei, 貝聿銘)를 말한다.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Louvre Pyramid)’는 알 것이다. 그걸 설계한 이가 이오밍 페이다. 중국 광저우 태생(1917년)인 페이는 193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마지막 모더니즘 건축가’로 불리며 1983년엔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터널과 다리를 지나면 신사모양의 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photo=교토트래블닷컴(kyototravels.com) 그런 이오밍 페이는 일본에서는 미호 미술관의 설계자로 유명하다. 이 미술관은 주변을 둘러싼 자연 경관을 살리기 위해 건축 용적의 80%를 지하에 매설했다. 페이는 여기에 기하학적 무늬가 만들어내는 유리 지붕을 설치, 밝은 자연광이 쏟아지도록 했다. 그는 생전에 “내 작품의 열쇠는 빛(光)”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호 미술관의 또 다른 특징은 컨셉트에 있다. 다름아닌 무릉도원(桃源郷). 시가현 박물관협회에 따르면, 중국 동진(東晋)의 시인 도연명의 시집 ‘도화원기’(桃花源記)를 모티브로 했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터널과 다리에 무릉도원의 이미지를 담았다고 한다. 이 미술관이 개관한 건 1997년 11월. 특이한 건 미술관을 만든 주체가 신주슈메이카이(神慈秀明会, 신자수명회)라는 종교단체라는 것. 이 단체를 이끌던 코야마 미호코(小山美秀子)라는 사람이 수집한 전 세계 국가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코야마 미호코는 1987년 건축가 페이와 만나 미술관 구상에 착수(1991년), 1997년에 결실(개관)을 맺었다고 한다. 2017년 루이비통이 ‘크루즈 패션쇼’를 여기서 개최하면서 미호 미술관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5월 17일, 중국 언론을 인용 “페이가 맨해튼에 있는 그의 집에서 사망했다”며 “그의 죽음은 아들인 건축가 리 청 페이(Li Chung Pei)에 의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90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비즈니스북 한 줄/ 돈이 열리는 나무
30년 간 수많은 실패기업을 성공으로 이끈 바 있는 일본의 저명한 경영평론가이자 컨설턴트. 책은 1940년생 저자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부하를 키워 자신도 성장한다’ 등 20여 권이 넘는 경영서적을 펴낸 사이토 구니유키(斎藤之幸)라는 사람입니다. 이번 ‘비즈니스북 한 줄’은 그의 책 ‘바보사장의 머릿속’을 골랐습니다. 책엔 ‘지금껏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거꾸로 읽는 사장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①저자: 사이토 구니우키(斎藤之幸) ②출판사: 더숲 ③옮긴이 및 출판년도: 천재정, 2009년 10년 전 한국에 번역, 출간된 책이지만, 효용 가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경영인의 자세와 관련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의 가치조차 모르면 삼류 경영인, 눈에 보이는 것의 가치를 알면 이류 경영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알아야 비로소 일류 경영인.’ 저자 사이토 구니우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아는 일류 경영인’의 마음가짐으로 ‘사람’을 중시합니다. 책 제목(‘바보사장의 머릿속’)을 빗대어 말한다면, 바보사장은 ‘돈이 열리는 나무’인 인재를 말라 죽게 한다는 겁니다. 저자는 “‘돈 버는 비결’에만 관심을 둔 사장은 ‘돈이 열리는 나무’의 근간인 사람을 시들게 하면서 돈이 안 열린다고 투덜거린다”며 “그런 사장은 ‘인재 활용의 비결’을 중시하는 경영인의 발바닥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수많은 성공 사례와 더 많은 실패 사례를 보며 깨달았다”는 사이토 구니유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돈을 벌기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은 사람을 알고, 사람을 기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사람의 의욕을 이끌어내서 있는 힘껏 행동하도록 시키는 것이다.> 삼류 경영인으로 끝날지, 일류 경영인으로 끝날지는 속된 말로 ‘한 끗’ 차이가 아닐까요. 저자의 마지막 멘트를 기억해 두면 어떨까요. “사람보다 돈을 좋아하는 사장의 뜰에는 ‘돈이 열리는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김재현 기자>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91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중국계 자본에 속속 넘어가는 일본 전자기업들
일본 전자기업들이 중국계 자본에 속속 넘어가고 있다. ①파이오니아(홍콩펀드) ②샤프(대만 홍하이) ③도시바의 백색가전(중국 메이디) ④도시바의 PC부문(대만 홍하이) ⑤파나소닉 자회사 산요전기 백색가전(중국 하이얼)⑥ 가전양판 라옥스(중국 쇼녕전기) 등이다. ᐅ파이오니아(2018년)/ 홍콩펀드 가장 최근의 사례는 파이오니아다. 일본 음향기기 제조업체 파이오니아는 3월 27일,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서 상장 폐지됐다. 지난해 12월부터 홍콩펀드에 매각되는 수순을 밟으면서다. 파이오니아는 1938년 마츠모토 노조미(松本望:1905~1988)라는 사람이 설립한 회사다. 고베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마츠모토 노조미는 1937년 일본 최초로 다이나믹 스피커 Aー8개발에 성공했다. 이듬해인 1938년에는 ‘복음상회전기제작소’(福音商会電機製作所)를 설립했고, 1947년에는 ‘복음전기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꿨다. 1961년에는 회사 이름을 Aー8의 상표였던 ‘파이오니아’로 다시 바꿔 오늘날에 이르렀다. 파이오니아는 세계 최초로 50인치 대형 플라즈마 TV를 만든 회사이기도 하다. 2004년에는 NEC(일본전기)에서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사업을 인수하면서 사업 확장을 꾀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 그 인수는 소니에 디스플레이 공급을 염두에 둔 것이었는데, 소니는 LCD 액정TV에 집중하고 플라즈마 TV에서 철수해 버렸다. 그러면서 파이오니아는 돌연 공급처를 잃게 됐다. 또한 플라즈마와 LCD액정 싸움에서 액정이 우위를 점하면서 플라즈마에 주력하고 있던 파이오니아의 실적은 급격하게 악화됐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파이오니아는 샤프, 혼다, 미쓰비시화학의 자본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실적을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지난해(2018년) 12월 홍콩펀드인 ‘베어링 프라이빗 에쿼티 아시아’(BPEA)의 완전 자회사가 되는 운명을 맞았다. ᐅ샤프(2016년)/ 대만 홍하이 해외매각 사례 중 샤프의 경우는 일본으로서는 뼈아팠다. 샤프는 텔레비전 사업 부진으로 2012년부터 경영위기에 빠졌다. 샤프 측은 당초 일본 민관합동펀드 운영사인 산업혁신기구(産業革新機構)가 회생을 시켜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대만의 홍하이(鴻海精密工業: 통칭 폭스콘)가 산업혁신기구보다 더 많은 인수 금액을 제시했다. 당시 홍하이는 ᐅ사업체를 팔지 않고 ᐅ직원 고용을 보장하며 ᐅ경영진은 그대로 둔다는 제안을 하면서 샤프 인수에 성공했다. 2016년 3월의 일이다. ᐅ도시바 백색가전(2016년)/ 중국 메이디 비슷한 시기인 2016년 6월, 도시바(東芝)의 백색가전 사업이 중국 가전업체 메이디(美的, Midea)에 넘어갔다. 메이디는 하이얼(海爾)), 하이센스(海信)와 더불어 중국 가전업계 3강이다. 샤프와 도시바의 매각엔 이런 배경도 있다. 당시 산업혁신기구(産業革新機構)는 도시바의 백색사업과 샤프의 백색사업을 통합하는 플랜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대만 홍하이가 샤프를 인수하면서 도시바의 백색부문은 공중에 뜬 상황이 돼 버렸다. 부랴부랴 급하게 정해진 인수 파트너가 중국 메이디였다. ᐅ도시바 PC 사업(2018년)/ 대만 홍하이 대만 홍하이의 매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홍하이 산하의 샤프는 2018년 6월, 도시바의 PC 사업 인수를 발표했다. 4개월 뒤인 10월에는 절차를 완료했다. ᐅ파나소닉 산요전기 백색가전(2011년)/ 중국 하이얼 중국 최대 백색 가전업체 하이얼(海爾)도 손길을 뻗쳤다. 2011년 10월 파나소닉 자회사의 산요전기(三洋電機)는 하이얼에 백색가전부문을 매각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듬해인 2012년 1월 매각이 성사됐다. 현재 하이얼은 ‘아쿠아’라는 브랜드로 일본시장에서 영업 중이다. ᐅ가전양판점 라옥스(2009년)/ 중국 쇼녕전기 10년 전엔 일본 가전양판점도 중국 손에 떨어졌다. 라옥스(LAOX)다. 2000년대 이후 일본 가전양판점업계의 경쟁이 심화됐다. 결국 라옥스는 2009년 중국 전자제품 유통업체 소녕전기(蘇寧電器)에 매각되고 말았다.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중국인 사업가 뤄이원(羅怡文)이 사장으로 취임했다. 라옥스는 중국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양판점에서 면세점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때마침 전례없는 중국인들의 일본 여행 붐이 불면서 ‘바쿠가이’(爆買い: 싹쓸이 쇼핑)가 성행했다. 라옥스가 중국인들의 싹쓸이 쇼핑 원조가 된 셈이다. 업종 변경과 ‘바쿠가이’로 라옥스의 실적은 그 이후 급상승했다. <김재현 기자>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77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홋카이도-도쿄 10] 다자이 오사무를 찾아가다2 – 사양관(斜陽館), 쓰가루 샤미센 회관(津軽三味線会館)
(HB-E300계 리조트 시라카미 부나 リゾートしらかみ 橅) 가나기(金木) 역에서 사양관까지는 500미터밖에 되지 않습니다. 조용한 마을을 가로질러 사양관(斜陽館)에 갔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기념관 ‘사양관’ (太宰治記念館「斜陽館」)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1948)가 태어난 생가입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1909년 태어난 해부터 1923년 중학교 진학으로 아오모리 시에 갈 때까지 14년간 이 집에서 살았습니다. 1907년에 건축되었으며, 근대 일본식 주택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정받아 2004년 국가 중요문화재에 지정되었습니다. 1950년에 료칸 사업자가 이 집을 사들여서 ‘사양관’이라 명명하고 1996년까지 료칸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후 지방자치단체(당시 가나기 초)에서 구입하여 새롭게 단장한 후 1998년부터 지금과 같은 다자이 오사무 기념관 ‘사양관’으로 오픈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양관은 목조 2층 건물로 택지 680평 규모의 대지주 저택입니다. ‘사양관’이란 이름은 1947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사양’에서 따왔습니다. ‘사양’은 출판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다자이 오사무는 인기작가가 되었습니다. 이 책의 영향으로 ‘몰락해가는 상류층 사람들’을 나타내는 ‘사양족’이라는 유행어가 당시 생겼다고 합니다. 또 ‘저녁 때의 저무는 햇빛’이라는 뜻의 ‘사양(斜陽)’이란 단어에 ‘몰락’이란 의미가 사전에 추가될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양관을 나와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쓰가루 샤미센 회관(津軽三味線会館)에 갔습니다. 샤미센은 일본의 전통악기 중에서는 비교적 역사가 짧은 편에 속합니다. 중국의 ‘싼시엔(三弦)’이 류큐왕국(현재 일본 오키나와 현)에 전해져서 ‘산신(三線)’이 되었고, 이것이 16세기에 다시 일본으로 전해진 후 개량되어 ‘샤미센(三味線)’이 되었다고 합니다. 샤미센을 개량하고 발전시킨 이들은 주로 시각장애인들이었습니다. 토도자(当道座 とうどうざ)라는 남성 맹인조직과 고제(瞽女 ごぜ)라는 여성 맹인예능인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쓰가루 샤미센(津軽三味線)의 시조는 니타보(仁太坊 1857~1928)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고제(여성 맹인예능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자신도 8세에 실명하게 됩니다. 이후 고제를 따라다니며 샤미센을 익혔고, 나아가 샤미센을 개량하고 연주법을 독창적으로 개발하였습니다. 니타보로 부터 시작된 쓰가루 샤미센은 바치(撥. 은행잎 모양의 현을 퉁기는 도구)로 두드리듯이 퉁기는 타악기적인 연주법과 빠른 템포가 특징적입니다. 쓰가루 샤미센의 시조인 니타보(仁太坊)가 샤미센을 만나 혁신적인 연주법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그린 애니메이션이 2004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영화 「NITABOH 仁太坊-津軽三味線始祖外聞」 * 니타보 독주 (4분3초) https://youtu.be/ncqm2ANTqss * 니타보 영화 풀버전 영어자막 (100분) https://youtu.be/WnN0-h1DKzM 아오모리로 돌아갈 때는 리조트 시라카미 부나(リゾートしらかみ 橅)를 탔습니다. 시라카미 부나(橅) 3호차에는 오라호(おらほ) 카운터가 설치되어 있고 지역 특산품, 기념품, 도시락, 지역 사케 등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에키벤과 지비루(지역 맥주)를 먹으면서 시라카미 부나를 만끽하며 아오모리로 갔습니다. * HB-E300계 리조트 시라카미 부나 주행 동영상 (계속) [오늘 탄 열차] 08:10 아오모리(青森) - 09:26 고쇼가와라(五所川原) (키하48형 리조트 시라카미 쿠마게라 リゾートしらかみ くまげら) 09:35 쓰가루고쇼가와라(津軽五所川原) - 09:55 가나기(金木) (쓰가루 철도 津軽鉄道) 11:48 가나기(金木) - 12:07 쓰가루고쇼가와라(津軽五所川原) (쓰가루 철도 津軽鉄道) 12:12 고쇼가와라(五所川原) - 13:29 아오모리(青森) (HB-E300계 리조트 시라카미 부나 リゾートしらかみ 橅) 16:45 아오모리(青森) - 16:50 신아오모리(新青森) (오우본선 奥羽本線) 17:22 신아오모리(新青森) - 18:10 모리오카(盛岡) (신칸센 하야부사 新幹線はやぶさ) (여행일 2017.08.14.)
중국계 자본의 ‘먹잇감(일본 기업) 길들이기’?
히타치-도시바-소니 3사가 연합해 만든 재팬디스플레이 5년 연속 적자-자기자본비율 제로대-감원까지 결정 자본 투입 결정했던 '800억 엔' 중국계 자본은 늦어져 파산 직전이다.(5년 연속 적자) 곳간도 텅텅 비었다.(자기자본비율 0.9%) 직원들도 짐을 싸야 한다.(1000명 감원) 진두지휘하던 장수도 말에서 내렸다.(회장 과로로 퇴임) 온다던 ‘왕서방들’의 돈도 감감 무소식이다.(중국계 자본 투입 연기) 이런 기업이라면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좀 낯선 이름인 ‘재팬디스플레이’(이하 JDI)라는 회사의 현주소다. JDI는 미국 애플사에 중소형 액정 패널을 제공하는 대기업으로, 점유율에서는 세계 최고다. 하지만 JDI는 애플 부진 영향과 수익성 악화가 겹치면서 사실상 링거를 꽂고 있는 상태다. # 히타치-도시바-소니 3사 연합체 일본 언론들이 JDI에 주목하는 이유는 ‘상징성’ 때문이다. JDI는 히타치, 도시바, 소니의 중소형 액정패널 사업을 통합해 2012년 4월 출범한 회사다. 3회사의 연합체라는 의미에서 ‘히노마루액정연합’(日の丸液晶連合)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일본 국가대표급 액정회사라는 것이다. 민관(국부) 펀드인 INCJ(구 산업혁신기구)가 2000억 엔의 자금을 출자하면서 국책기업의 성격도 띠고 있다. 그런 JDI가 5월 15일 3월기 결산(연결결산)을 발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이 회사의 최종 손익은 ‘1094억 엔 적자’였다. 5년 연속 적자에 자기자본비율은 0.9%(2018년 3월말 13.1%)로, 채무 초과 직전까지 떨어졌다. JDI는 이날 1000명 규모의 감원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전체 직원의 20%가 조기퇴직을 하게 된 것이다. 또 경영재건을 지휘하다 과로로 입원, 요양 중이던 히가시이리키 노부히로(東入来信博, 70) 회장도 퇴임했다. # 800억 엔의 중국대만 연합 자본 투입 자금난에 허덕이던 JDI는 앞서 4월 긴급 처방책을 내놓았다. “800억 엔에 달하는 중국대만 연합 자본을 지원받아 그 산하로 들어간다”고 발표했던 것. 중국대만연합이 의결권의 49.82 %를 갖고 민관 펀드인 INCJ를 대신해 최대주주에 오르게 됐다. 아사히신문은 이와 관련 “‘일장기액정’으로 불리던 정부 주선의 국책기업이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중국자본 산하에서 재건을 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경제매체 비즈저널은 “중국대만연합 자본에 사실상 팔리게 되었다”(台中連合に事実上の“身売り”となった)고 보도했다. JDI가 자금을 수혈받기로 한 중국대만의 자본 실체는 어딜까. 3곳이다. 대만 전자부품 제조 업체 TPK 홀딩스(宸鴻光電科技)와 대만 금융대기업 부방(富邦)그룹 그리고 중국 최대의 자금운용사 가실기금관리(嘉実基金管理)그룹이다. JDI에 대한 자본 투입은 종전에 중국계로 넘어간 다음과 같은 일본 전자회사들과는 그 형태가 다르다. ᐅ샤프(대만 홍하이) ᐅ도시바의 백색가전(중국 메이디) ᐅ도시바의 PC부문(대만 홍하이) ᐅ파나소닉 자회사 산요전기 백색가전(중국 하이얼) ᐅ파이오니아(홍콩펀드) 모두 중국계 자본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위 기업들은 중국, 대만, 홍콩 각각의 단독 자본에 넘어갔다. 반면, JDI엔 중국대만이 연합해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형태다. 지원을 발표하기 했지만, 관련 기관들이 지원 결정을 연기하면서 JDI는 애가 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 늦어지는 자본 수혈 연기 배경엔? 일각에선 ‘중국계 자본이 일본기업을 길들이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회사의 힘이 완전히 빠지고, 정부도 손을 떼는 순간까지 몰아가면 중국계 자본이 손쉽게 ‘접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성향과 달리, 대만은 일본에 우호적인 측면이 있다. 다른 성격의 두 중국계 자본이 섞이면서 여러 추측을 낳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JDI의 자산을 평가 한 결과, 경영 상황이 예상보다 더 악화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중국대만 연합이 새로운 출자자를 추가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이번 JDI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정부가 주선을 하고 보증까지 선 유력 기업이 파산 직전까지 몰린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닛케이 기자와 투자펀드운용사 등에서 일했던 경제평론가 카야 케이이치(加谷 珪一)는 포털 익사이트재팬에 이렇게 기고했다. <액정패널 사업은 일본, 한국, 대만 업체들이 점유율 다툼을 하고 있었지만, 한국과 대만 메이커들이 가격 경쟁력을 강화했다. 그런데 일본 메이커들은 각사가 소규모 사업을 소유하는 상황이었으며,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한국과 대만에 뒤쳐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국부 펀드인 산업혁신기구가 출자하고, 각사의 사업을 통합해 출범한 것이 재팬디스플레이(JDI)다. 그러나 출범 초기부터 회사 사업에 대해 의문의 소리가 높았다. 가장 큰 관심사는 매출 대부분을 미국 애플 한 개사에 의존하는 기형적 사업 구조에 있다. 일본의 국책기업이 미국 기업 애플 한 개에 의존한다는 도식 자체가 상당한 위험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말하면, 액정패널이라는 것은, 이미 범용제품이라 가격 하락이 두드러진 분야였다. 기술력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애플 등 완제품 제조업체들에게 관건은 ‘가격’이었다. 실제로 JDI는 샤프(대만 홍하이 소유)와 끝없는 고객 쟁탈전을 펼쳤고, 스스로 실적을 악화시키는 상황을 초래했다.> 카야 케이이치 평론가의 분석에서 한국기업들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핑계 없는 무덤 없고, 이유 없는 실패 없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89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소프트뱅크vs 라쿠텐...차량공유 시장의 '돈줄'
손정의의 소프트뱅크는 우버(Uber)의 최대주주 우버 라이벌 리프트(Lyft)의 최대주주는 라쿠텐 일본 이동통신시장 이어 차량공유 시장 대리전 세계 최대 차량호출 서비스업체 우버(Uber). 그 우버를 쫒아가는 라이벌 리프트(Lyft). 두 회사는 출자 면에서 공통점이 하나 있다. 회사 형태는 글로벌이지만 중심 돈줄이 ‘일본’이라는 것. 우버의 최대주주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로, 지분 15%을 갖고 있다. 리프트는 우버(2008년) 보다 4년 늦은 2012년 로건 그린(최고경영자,35)과 존 짐머(사장,34)가 공동 창업했다. 대학 캠퍼스를 이동하는 카풀이 모델이다. 당시 로건 그린은 다른 도시의 대학에 다니는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차를 얻어 탔던 경험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차량 공유업체 2위 리프트는 그동안 우버에 가려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 우버가 소프트뱅크, 도요타 등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리프트는 돈을 끌어오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가운데 로건 그린과 존 짐머은 2015년 일본 전자상거래업체 라쿠텐(楽天)과 접촉했다. 이와 관련, 닛케이 아시안 리뷰(Nikkei Asian Review)는 “라쿠텐은 2015년 이래 리프트에 7억 달러를 투자했고 지분 13%를 보유하고 있다”(Rakuten invested $700 million in Lyft since 2015 and held a 13% stake)고 했다.(4월 1일자) 미키타니 히로시가 이끄는 라쿠텐이 리프트의 최대주주가 된 것이다. 지분 5%가 넘는 리프트의 주요 주주로는 ᐅ라쿠텐(13.1%) ᐅ제너럴모터스(7.8%) ᐅ피델리티(미국 자산운용사, 7.7%) ᐅ앤드리센 호로위츠(실리콘밸리 IT 벤처 투자사, 6.3%) ᐅ알파벳(구글 모회사, 5.3%) 등이 있다. 리프트에는 현재 150여 투자자(사)가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프트뱅크와 라쿠텐이 우버와 리프트의 최대주주라는 점에서 손정의와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은 우버와 라쿠텐을 앞세워 ‘차량공유 대리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전자상거래 업체로 힘을 키운 라쿠텐은 이동통신업계에도 진출해 소프트뱅크, NTT도코모, KDDI와 함께 '빅4'를 형성하고 있다. 창업은 뒤졌지만, 기업공개는 리프트가 먼저 했다. 리프트는 3월 29일 기업공개(IPO)를 통해 뉴욕증시 나스닥에 상장했다. 첫날 주가는 공모가(주당 72달러)보다 8.74% 뛴 78.29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리프트의 시가총액은 222억 달러(약 25조원)로 추산된다. 상장 3일 뒤인 4월 2일 ‘비즈니스인사이더 재팬’은 “라쿠텐은 리프트의 주식 3140만주(13%) 가까이를 보유하고 있다”며 “그 가치는 26억 달러에 달한다”(楽天は3140万株近く、約13%を保有、その価値は26億ドル)고 전했다. 리프트의 성공적 상장으로 라쿠텐은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됐다. 일본 영자매체 재팬투데이는 5월 10일 “리프트의 지분 이익이 반영돼 라쿠텐의 1분기 영업이익이 4배 뛰었다”고 보도했다. 반면, 우버는 주식시장 데뷔에서 주춤했다. 우버는 리프트 상장 40여 일 뒤인 5월 10일, 예상했던 주당 50달러보다 낮은 45달러의 공모가로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리프트와 달리 첫 거래일에 우버는 공모가에서 7.62% 하락한 41.57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상장 시점 기준, 우버의 시가총액은 697억 달러로 평가됐다. 우버와 리프트의 주가 행진에 따라 소프트뱅크와 라쿠텐, 두 경영자의 희비가 엇갈리게 됐다. <김재현 기자>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87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서울 성수동 블루보틀과 도쿄 롯본기 블루보틀
서울 성수동의 블루보틀 커피 전문점 #서울 성수동의 블루보틀 ‘그 호들갑스런 대열’에 합류해 보기로 했다. ‘그 비싼 커피를 굳이’ 마시러 갔다. 몇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릴 인내심은 노(NO). 주말과 휴일은 피해 평일로 택했다. 애플 신상품을 ‘득템’하기 위해 밤을 새거나 장시간 기다리는 장면은 종종 들었다. 하지만 기껏 커피 한 잔인데.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까 싶었다. 아니었다. 오픈(3일)이후 그런 광경은 내내 벌어졌다. ‘커피계의 애플’. 스페셜커피 블루보틀 매장으로 찾아간 건, 8일 오전 8시. 오픈 시간에 맞춰 지하철 뚝섬역에 내렸다. 역에서 불과 50미터. 큰 붉은 벽돌 건물보다 무리지은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 저기구나.’ 입구에 들어서자 50여 명이 4겹 줄을 서서 대기 중. 건물 내부는 특별할 게 없다. 성수동 특유의 거친 콘크리트 벽과 천장. 1층에서 대기하고 계단을 통해 지하1층 매장으로 내려갔다. 커피 데스크에 핸드드립기가 6개. 바리스타가 순서대로 즉석에서 ‘핸드드립’ 중. 아메리카노 기본(블렌드)을 주문했다. 5000원. 스타벅스의 숏사이즈(3600원) 톨사이즈(4100원)와 비교하면 꽤 비싼 편. ‘5’자가 주는 부담감도 크다. 평일임에도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려 정확히 9시에 커피 한잔을 손에 들었다. ‘득템’. 커피 양은 스타벅스 숏사이즈의 절반. 한 눈에 봐도 끈적할 정도로 진하다.(재팬올의 정희선 객원기자는 ‘한약’같다고 했다.) 맛을 잠시 음미하는 사이, 누가 불쑥 말을 걸었다. 커피 취재를 온 잡지매체의 기자란다. 연배 어린 후배기자에게 인터뷰 당하는 영광을 누렸다. 블루보틀 맛에 대한 평가는 짧은 인터뷰 내용으로 대신한다. “(‘커피 맛이 어떠세요’라는 질문에) 매일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스벅마니아’는 아니지만 습관처럼 한 잔씩. 스타벅스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맛이다. 쌉싸름한 맛이 나쁘지 않다. 와인으로 치자면, 샤르도네(화이트 와인용 포도 품종) 같은 적절한 산미가 느껴진다. 가격이 부담스럽지만 줄 서는 일만 없다면 다시 찾을 것 같다.” “(‘블루보틀 커피가 유명한 건 왜일까요’라는 질문에) 성수동에 1호점을 낼 것이라는 입소문을 낸 게 오래됐다. 금방 매장을 열 수도 있었겠지만 상당히 뜸을 들였다. 그러면서 커피팬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유발시켰다. 파란 병 로고에는 굳이 블루보틀이라는 이름을 적지 않았다. ‘파란 병=블루보틀’이라는 인식이 커피 팬들을 줄 세웠다고 본다.” 30분 동안 매장을 지켜본 후 나왔다. 밖엔 여전히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놀랍다. 더 놀라운 건 한 시간 뒤. 블루보틀 잔향이 혀에 그때까지 머물렀다. 오전 11시, 혀를 헹구러 스타벅스로 향했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편집인> (아래는 도쿄에 거주하는 정희선 객원기자의 롯본기 블루보틀 ‘맛 평가기’입니다. ) 도쿄 롯본기의 블루보틀 커피 전문점. #도쿄 롯본기의 블루보틀 <정희선 객원기자=일본기업 분석 애널리스트>커피 맛은 호불호가 강하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선호가 갈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내 생각에 블루보틀은 더하다. 내 경우, 유학 때문에 몇 년 미국에서 지냈지만 커피를 델리키트하게 느낄 정도의 ‘혀’는 갖고 있지 않다. 다시 ‘커피 대국’ 일본에 와서 몇 년 째 살고 있지만, 여전히 ‘커피 혀’는 그대로다. 내 혀보다는 커피 맛을 잘 아는 친구의 말을 빌려 블루보틀을 평가하는 게 나을 듯하다. 그 친구는 쓴맛과 신맛이 강한 커피를 좋아한다. 하지만 신맛이 너무 강한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다만 내 ‘혀’는 이렇게 내게 속삭인다. “블루보틀은 확실히 스타벅스 커피보다 신맛이 강해~” 나만큼 커피 취향이 ‘고급지지 못한’ 내 막내동생은 한 술 더 뜬다. 블루보틀을 마시고 나선 심지어 “한약 먹는 것 같다”는 궤변을 늘어 놓았다. 이런 ‘한약 같은 커피’를 마시러 일부러 일본으로 찾아오는 한국 커피 마니아들이 많다. 여기서 또 취향이 갈린다. 한국 사람들은 오리지널 블루보틀이 아닌 우유가 들어간 달달한 라떼를 많이 주문한다고 한다. 당분간은 한국인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블루보틀은 현재 미국(57점)과 일본(11점)에 68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일본에선 도쿄에 9곳, 교토에 1곳, 고베에 1곳이 있다. 해외진출에 나선 블루보틀이 (한국 제외)오직 일본에만 매장을 낸 이유는 뭘까. 또 유독 도쿄에 몰려있는 건 왜 일까. 일단 ᐅ일본이 ‘커피 대국’이라는 점 ᐅ도쿄 사람들의 취향이 고급화 되어 있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창업자의 개인적 취향도 반영됐다. 클라리넷 연주가였던 창업자 제임스 프리맨(James Freeman)은 한 인터뷰에서 “일본의 오래된 커피 가게들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았다”며 “특히 도쿄는 더 그러하다”(I'm very deeply inspired by the old-fashioned coffee shops of Japan, and in Tokyo particularly)고 말한 바 있다. 도쿄의 번화가 긴자 뒷 골목에는 아직도 레트로(retro: 복고풍) 느낌이 나는 오래된 커피숍들이 많다. 이들 가게 대부분은 한 잔 한 잔 정성스럽게 핸드드립 방식으로 고객 앞에서 커피를 내려준다. 제임스 프리맨이 이런 분위기에 반했다는 것이다. 그럼, 제임스 프리맨은 처음에 어떻게 블루보틀 커피를 만들게 됐을까. 왜 굳이 블루보틀이란 이름일까. 여기서 커피 역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683년 유럽 일대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제국의 터키군이 빈(비엔나)에 도착했다. 적군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포위망을 뚫고 인근 폴란드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터키어와 아랍어를 할 수 있는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라는 사람이 나섰다. 그는 위기를 극복하고 폴란드 원군을 요청하는데 성공했다. 터키군이 물자를 남겨두고 퇴각을 했는데, 그 더미에서 콩 봉지들이 발견됐다. 처음에는 낙타의 먹이인줄 알았지만, 아랍에 살던 경험이 있던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는 그게 커피 콩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는 원군 요청 포상금으로 그 커피 콩을 매입, 중부 유럽 최초의 커피 하우스 ‘블루보틀’(The Blue Bottle)을 개업했다. 비엔나 커피 문화의 출발이었다. 그 319년 후인 2002년, 클라리넷 연주가 제임스 프리맨이 샌프란시스코 인근 오클랜드에 커피 가게를 열었다. 그는 비엔나를 구한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차원에서 가게 이름을 ‘블루보틀’이라고 지었다. 제임스 프리맨은 평소 직접 원두를 구입, 매일매일 로스팅해 커피를 즐길 정도로 커피광이었다. 블루보틀이 유명하게 된 건, 그가 볶은지 24시간 이내의 신선한 커피원두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면서다. 입소문이 나면서 블루보틀 커피는 유명세를 타게 됐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 네슬레가 4억2500만달러(약 4500억원)에 블루보틀의 지분 68%를 인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루보틀 커피를 흔히 ‘제 3의 물결 커피’ (Third wave coffee)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제 1의 물결 커피’(First wave Coffee)는 1990년대 이전의 베이커리에서 빵과 함께 파는 커피, 혹은 개인이 공간을 임대하여 파는 형태를 지칭한다. 커피의 퀄리티에 주목하기 보다는 1~2달러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제공하였다. 1990년 이후, 우리가 잘 아는 스타벅스가 등장하면서 ‘제2의 물결 커피’(Second wave coffee) 시장이 열렸다. 집, 직장이 아닌 제3의 공간에서 퀄리티 높은 커피를 제공했다. 요즘의 가장 흔한 커피 전문점 형태다. 그러다 2010년 이후, 미국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드디어 ‘제 3의 물결 커피’(Third wave Coffee)가 시작 되었다. 대표적인 가게가 블루보틀(Blue bottle), 필즈 커피(Philz coffee), 스텀프타운(Stumptown) 등 이다. ‘제 3의 물결 커피’의 특징은 스타벅스 보다 훨씬 좋은 원두를 사용하며, 차별화된 로스팅 기법을 도입하여 기존의 커피와 차별화된 맛을 제공하다는 것. 대부분의 ‘제 3의 물결 커피’ 전문점들은 1~2분 이내에 커피를 내리기 보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니즈에 맞춰 커피를 만들어 준다. 핸드드립으로 시간과 정성을 들여 고객이 보는 앞에서 맛깔나게 커피를 내려주는 것이다. 획일화된 커피 맛에 지친 미국 소비자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제공되는 커피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제 3의 물결 커피’는 서부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제 3의 물결 커피’는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지 않고, 성장보다 퀄리티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제 3의 물결 커피’ 중에 해외진출을 한 브랜드는 블루보틀이 유일하다. 이상이 ‘한약 같은 커피’ 블루보틀의 유래와 성장기에 대한 내용이다.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78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로버트 파우저 교수의 ‘일본 도시재생’ 강의
로버트 파우저(Robert Fouser, 58)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일본의 마을 재생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언어학자인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그는 한국에서 13년, 일본에서 13년 살았다 '한일 마을 재생' 강연장에서 그런 그를 만났다 “제가 61년생인데, 그렇게 나이 많은 것 같지 않죠” 순간 강의실에 웃음이 와르르 쏟아졌다. 60을 바라보는 외국인 남자의 입에서 유창한 한국어, 그것도 유쾌한 유머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5월 10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해방촌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한국과 일본 마을 재생의 비교 탐구’라는 흥미로운 주제의 강의가 열렸다. 강연자는 언어학자인 로버트 파우저(Robert Fouser, 58)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언어학자가 무슨 도시재생을 강의하지’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파우저 교수의 이력을 보면 '아~'하고 고개가 끄덕여 질 것이다. # 서울 서촌 ‘한옥 지킴이’로 활동 파우저 교수는 이미 한국에서 꽤나 알려진 인물이다. 2008년 한국어를 가르치는 서울대 최초의 외국인 교수(국어교육과)로 임명되면서 화제가 됐다. 2012년엔 서울 종로 서촌 체부동에 한옥(어락당:語樂堂)을 구입, 한옥 보존 활동을 하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한국언론에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등 대표적인 외국인 진보인사 중의 하나로 평가받았다. 미시간주 앤아버가 고향인 그는 미시간대학교에서 일어일문학 전공했다. 일본어와의 인연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1948년까지 교토에서 미군시설 설계 일을 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GM에서 일을 했고, 그 이후엔 파이프 오르간 제조를 업으로 삼았다. 그런 아버지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분야가 건축이라고 한다. 그런 유전자를 물려받은 파우저 교수에게 건물&건축&공간은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그가 살았던 한국 서촌의 한옥은 더 그러하다. 한옥 보존활동 과정을 담은 에세이 ‘서촌홀릭’(2016)을 읽어본 독자라면, 그가 얼마나 도시재생에 관심을 뒀는지를 이해하고도 남는다. 파우저 교수는 1995~2006년까지 일본 교토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이후 2008년까지 3년 간은 규슈 최남단현에 있는 가고시마대학에서 일본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언어적 소질을 발휘하기도 했다. 2014년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한국을 떠난 그는 “지금은 보스턴 근처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13년 생활 “제가 한국에서 13년, 일본에서 13년을 살았습니다.” 파우저 교수의 이어지는 말에 이번엔 ‘와~’하는 소리가 강의실을 메웠다. 센터 2층에 마련된 강연장에는 지역 주민, 학생, 일반인, 전문가 등 50여 명의 사람들이 강의를 경청했다. 파우저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오사카부의 미노시, 히로시마현의 오코노미치, 후쿠야마시의 도모노우라 지역에서 진행됐던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 사례를 한국과 비교, 소개했다. 일본에서 도시재생 개념이 탄생한 건 1997년 무렵이다. 오사카부의 미노시에서 첫 지자체 단체조례가 만들어지면서다. 2000년경엔 일본 전역으로 확대됐다. 한국과 일본은 도시재생에서 어떤 차이가 있을까. 파우저 교수는 “한국에서는 도시재생이 재개발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한국은 관(官)이 주도하고 주민의 의견이 크게 반영되지 않습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주민과 NPO(비영리단체)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고이즈미 정권 때 NPO법이 법제화됐어요. 4명이 모이면 NPO를 만들 수 있고, 법적으로 사업을 할 수가 있습니다.” 정부나 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파우저 교수는 “망가트리는 재생이 아닌, 그곳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위한 재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시재생의 다음 단계는 부동산 시장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것. 파우저 교수는 “시장경제 원리를 이용해 재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일본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심각하지 않다 그가 살았던 서촌 일대 상가는 당시나 지금이나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임차인이 나 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문제화 되고 있다. 파우저 교수는 “체부동에 살 때 갑자기 세탁소가 없어지더라. 그러곤 생기는 게 맥주가게였다”고 말했다. 그가 13년 간 살았던 또다른 고향 일본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어느 정도일까. 파우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거품경제 시절에는 빌딩 가격이 오전 다르고 오후 다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고정돼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지 않기 때문에 임대료가 뛰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한국만큼) 젠트리피케이션이 심각하지 않는거죠.” 파우저 교수는 강의의 결론으로 “주거와 상업이 공존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사실 일본은 그게 좀 돼 있다”며 “사람이 있어야(와야), 또 장사가 돼야 마을이 재생된다”고 말했다. # 활력 없는 도시는 자기 멸망의 씨앗 2시간에 걸친 파우저 교수의 강의는 흡인력이 있었다. 외국인임에도 전혀 불편하지 않게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강연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도 좋았고 공감대도 컸다. 도시재생에 대한 파우저 교수의 생각을 좀 더 알고 싶어 ‘서촌홀릭’이라는 책을 손에 잡았다. 파우저 교수는 도시 평론으로 유명한 제인 제이콥스가 쓴 책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 다음과 같다. <지루하고 활력이 없는 도시는 자기 멸망의 씨앗밖에 될 수 없다. 반면에 활기차고, 다양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는 자기 재생의 씨앗이 될뿐만 아니라 사회가 전체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재팬올 기사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84>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